<천 개의 고원> 10고원. 전반부 후기

블랙커피
2019-09-02 15:13
356

지난 시간 세미나는 ‘되기’를 다루는 10고원 중 전반부를 다루었습니다.

10고원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앞 고원에서 조금씩 얘기된 것들도 있고,

‘되기’라는 말을 워낙 여기 저기서 많이 들어왔기에 생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술술(?) 읽혀지기도 했는데,

어느 정도 읽어 가다 보니 지금까지 내가 뭘 읽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어느 관객의 회상>부터 쭉 메모를 해가며,

각각의 회상에서 들/가가 어떤 얘기를 하고 있는지를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그러니 10고원에서 들/가가 강조하여 말하는 것들과 그 맥락들이 조금씩 잡히는 것 같았습니다.

 

먼저 들/가는 10고원 전반부에서 동물-되기를 말합니다.

박물학자들의 계열화나 구조화에 의해 동물과 인간을 사유하는 방식으로는

‘동물-되기’를 사유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되기’는 어떻게 사유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흔히 되기로 착각하는 모방이나 동일화는 되기가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상상이나 환상도 마찬가지로 되기가 아니라고 하죠.

들/가는 ‘생성의 블록’을 형성하는 것에서만 되기가 사유될 수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이질성, 전염, 공생, 역행(함입) 등의 핵심적인 단어들이 쓰입니다.

 

동물-되기는 세 가지 원리로도 제시됩니다.

1)무리 및 무리의 전염, 2)무리 속 특이자와 결연, 3)고른판 위에서 다른 다양체로의 끊임없는 이행.

이어서 들/가는 <스피노자주의자의 회상 1, 2>를 통해 ‘되기’를 존재론적으로 설명하는데요.

저는 이 부분에서 되기가 무엇인지 조금 감이 왔습니다.

스피노자는 모든 사물에 본질적 형상이 있다고 보는 서구 형이상학의 오랜 전통를 비판하면서

내재성의 철학을 진행시킨 철학자입니다.

스피노자는 ‘개체’를 오직 운동과 정지의 관계에 의해 파악하고,

이러한 개체가 더 복잡한 관계 속에서 다른 ‘개체’의 부분이 되고,

이런 일이 무한대로 계속되는 내재성의 판을 사유했습니다.

스피노자를 공부할 때 이 내재성의 판, 혹은 신이나 실체 개념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유인지라 잘 잡히지 않았고,

공부 내내 저를 혼란에 빠뜨리곤 했습니다.

얼마 전에 공부한 장자의 ’물화‘개념도 마찬가지였고요.

여러 텍스트들을 통해 ‘존재’가 아니라 ‘생성’을 사유해보려고 하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의 측면에서 세상을 보려는 경향을 어쩌지 못하는 저를 보곤합니다. ^^;;;

 

암튼 내재성의 판위에서 속도에 따라 특정한 배치물을 이루는 생성의 구도에서

사물 혹은 신체는 하나의 계열화와 그 계열화를 이루는 강도에 의해서만 구별됩니다.

이것이 신체의 경도와 위도죠.

여기서 되기란 무엇인지가 밝혀지는데요.

즉 신체의 위도와 경도를 바꾸는 것, 신체의 강밀도를 바꾸는 것이 되기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음...신체의 강밀도를 바꾼다!!

여기서 저는 스피노자의 ‘공통개념’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윤리학’이 연결되었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더 진행시키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이 부분과 연결하여 생각을 진행시키고 싶어지네요. ㅎㅎ

댓글 3
  • 2019-09-02 21:06

    메모하며 읽기가 중요하단 걸 다시 배웁니다!

  • 2019-09-04 12:41

    토론 시간에 말했던 것처럼 저는 되기를 이해함에 있어 다양한 경험 속에서 여러 특이성을 포착하려는 시도가 보다 유의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메모에 대한 피드백으로 "무언가 더 과감하게 시도할 필요가 있다"는 문탁샘의 피드백을 받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그런 방법론을 말할 때도 제가 어떤 레토릭을 가지고 표현하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 2019-09-04 20:05

    여기 저기에서 '되기'란 말을 많이 들어보았기에, 10고원에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그런데 실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게 된 '되기'는 그 실체가 잘 잡히지 않았다.

    지난 세미나 시간 확인한 것은 블랙커피샘이 썼듯이,
    1. 되기란 '모방'이나 '동일화'가 아니라는 것 - 사실 나는 당연한 것 같은 이 사실에 큰 감응을 받았다.
    아...'되기devenir'란 그것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구나.
    여성-되기가 여성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고, 동물-되기는 동물처럼 되는 것이 아니구나!
    '되기'는 명사라기보다는 동사구나! -.-;;;;
    2. 여기에 덧붙여 뭔가 흥미진진함을 느꼈던 것은 '되기'가 그것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되기란 결국 그 '사이between'라는 생각!
    동물-되기란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그 '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되기'는 생성, 창조가 된다.
    월든의 파지사유-되기, 파지사유의 자누리-되기란 그 둘이 가지고 있던 응고된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월든도 파지사유도 아닌 그 무엇으로 새롭게 생성되는 것!
    그 당연한 것을 지난 시간에 새롭게 알게된 것 같아 기뻤다는.

    '되기' 부분에서 '모방이 아니다', '사이'라는 것을 재발견했다면,
    '동물-되기'에서 놀라웠던 개념은 동물-되기의 큰 특징인 '무리'와 '특이자'였다.
    <어느 마법사의 회상 1,2,3>을 다시 읽어보았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모든 동물은 일차적으로 패거리이며 무리라는 점이다. 모든 동물은 특성들보다는 무리의 양태들을 갖고 있다.
    ... 무리에 대한, 다양체에 대한 매혹이 없다면 우리는 동물이 되지 못한다"(455)
    "요컨대 모든 동물은 <특이자anomal>을 갖고 있다. ...
    동물-되기를 위해서는 언제나 모비딕이나 요제피네와 같은 특이자와 결연해야 한다."(464)
    "어떤 경우에건 이 가장자리나 특이자 현상이 없는 패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467)
    "우리들이 매혹된 <자아>의 위치를 상상했다면, 이는 그 자아가 파괴에 이를 정도까지 마음을 쏟는
    그 다양체가 내부에서 그 자아를 작동시키고 팽창시키는 다른 다양체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아란 두 다양체 사이에 있는 문턱, 문, 생성일 따름이다. 각각의 다양테는 '특이자'로
    기능하는 가장자리에 의해 규정된다."(474)

    스피노자의 존재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동물-되기가 가능하려면 우리는 우리를 단독개체로 보기보다
    부분드로 이루어진 떼, 무리, 패거리로 봐야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동물-되기' "이렇게 해!"라는 명령이 아니라 전염의 방식으로 이루진다는 것.
    아니 그렇게 이뤄질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동물-되기란 이성적 이해가 아니라 흡협귀나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듯 전염으로 가능하다.
    그래서 들뢰즈는 "무리에 매혹되지 않는다면"이란 말을 쓰는 것 같다.
    동물-되기란 나를 개인-단독자가 아니라 떼거리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시시 때때로 나 자신을 "무리"로 바라본다.
    '내'가 친구를 만나지만 나는 항상 문탁네트워크의 일원으로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고,
    가족의 일원, 동아리의 일원으로 나를 보고, 나 또한 그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난다.

    특이자와의 결연 역시 <무리>의 중요한 특징이다.
    하나의 무리가 특징짓는 것은 중앙이 아니라 사실 경계이다. 그 경계에 서 있는 마법사, 추방당한 추장, 괴물, 악마....
    백인들을 백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갈색피부를 거무스름한 피부를 가진 경계자때문이고
    문탁공동체라고 할때는 매일매일 문탁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정도 나오는
    간혹가다 강좌에, 세미나에 모습을 보이지만 하지만 애매모호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그 경계가 만들어진다.
    어떤 공동체에서도 특이자가 없다면, 가장자리 경계에 위치해 있는
    저 사람(사물)이 우리 공동체의 일원인지 의심되고,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때에야
    공동체가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는 것.
    들뢰즈의 언어로 말하지만 괴물, 악마와 같은 기괴한 자를 통해서 말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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