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학교 - 단기세미나]<역사, 눈 앞의 현실> 첫번째 시간

진달래
2021-01-05 21:39
498

자손 대의 일까지 미칠 수 없고, 당대의 일만 구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한자의 탄생>이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탕누어는 여전히 어렵다. 

게다가 줌으로 하는 세미나라니, 강독도 아니고 회의도 아닌 줌 세미나, 과연 잘 될까? 

오래 전에 사두고 반쯤 읽다만 <역사, 눈앞의 현실>은 언젠가 <춘추좌전>을 읽기 전에 꼭 다 읽어봐야지 하고 책상 앞에 두고만 있었던 책이다. 여러모로 문탁은 어수선하지만 방학을 핑계로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 책 좀 누가 나랑 읽어 주세요." 

언젠가 함께 <춘추좌전>을 읽던- 그도 다 못읽었지만- 토용샘과 인디언샘, 그리고 요즘 고전공부에 삘받으신 봄날, 그리고 느티나무샘, 금요클래식을 함께 들었던 유진샘, 자작나무샘이 세미나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미나 전날 문자를 주고 받다 당첨된 풍경샘- 어자피 줌으로 하니까, 느티샘의 연락을 받고 아침에 누워있다 세미나에 참가하게 된 담쟁이샘까지 무려 아홉명이 되었다.  

 

<춘추>는 춘추시대 노나라 역사책이다. <춘추좌전>은 일종의 <춘추>의 해설서이다. 너무 간단하게 쓰여서 잘 알 수 없는 <춘추>에 전후 맥락의 이야기를 덧붙여 훨씬 자세하게 만들었다. 탕누어는 왜 <춘추좌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까? <춘추좌전>을 역사책으로 본다면 탕누어가 쓴 <역사, 눈앞의 현실>은 딱딱한 제목과 달리 수필인지, 소설인지, 모를 - 모두 이건 "문학작품이야"라고- 이야기들이다. 서문에 탕누어도 이 책을 "하나의 문학작품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로운 사람도 있고, 그래서 이책이 어려운 사람도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세미나에 참여한 모두가 탕누어가 <춘추좌전>을 어떻게 읽고 무엇을 보고 싶어했는지 궁금해 했다.  그 첫번째가 왜 하필 '자산'인가이다. 

예전에 <춘추좌전>을 읽을 때 들었던 생각 중 하나, '이거 노나라 역사책 맞아?' 노나라 역사라고 하지만 노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송, 정, 진(陳), 진(晉), 제, 초 등 주변국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 것 같았고, 그 중에 송나라나 진(陳)나라, 정나라와 같은 작은 나라들이 허구헌날 몰려 다니며 싸우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자산은 이 작은 나라들 중 하나인 정나라의 재상이다. 

작가도 이야기를 했듯이 사마천도 별로 주목하지 않았던 자산을 탕누어는 왜 주목하고 있을까? 우리는 그가 타이완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작가가 보고 싶었던 것은 <춘추좌전>을 통해 단지 춘추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현재 눈앞의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그래서 <춘추좌전>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인물 중에 '자산'에 주목했을 것이다. 거대한 중국에 비해 턱없이 작은 타이완,  거기에 우리도 비슷한 처지임을 같이 이야기 했다. 

전쟁이 빈번했던 춘추시대, 무력으로는 자기를 방어할 힘이 없던 정나라의 자산을 통해 아마도 현재, 거대한 중국과 미국 등 열강에 끼인 소국의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논어>에 보면 공자는 자산을 '은혜로운 사람(惠)'으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맹자>는 그가 은혜로운 사람인지는 모르나 정치를 할 줄은 모르는 사람으로 평가했다(惠而不知爲政). 탕누어는 자산의 이러한 행동이 대국이 아닌 소국의 정치, 즉 장기적인 생각과 발전에 적합한사유를 가지고 있는 대국의 입장이 아니라 당장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소국의 입장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산이 형법을 큰 솥에 써 넣어 여러 사람이 보게 했을 때 진(晉)나라의 숙향이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에 대해 질책 했다. 그때 자산은 "저는 재능이 없어서 자손 대의 일까지 미칠 수 없고, 당대의 일만 구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답한다.  

대국과 소국을 논할 때 문득 중국에 처음 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아, 이렇게 큰 나라에 살면 생각도 다르겠구나.'  또 요즘 코로나로 각 나라들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행태들을 보면서 대국과 소국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뭐 이런 생각들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맹자>에 등장하는  일통(一統)에 대한 사유, 그에 따른 위험성(?) 등등 팬더믹을 지나고 있는 이 때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탕누어의 글쓰기는 그의 박식함 때문인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디가 어딘지 헷갈리게 하는 지점이 있다. 자산의 이야기는 <춘추>의 저자인 공자- <춘추>의 저자를 공자라고 딱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서 탕누어는 그렇게 보자고 했다.-의 이야기로, 다시 소국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타자에 대한 관용의 이야기로, 그래서? 뭐라는 거야! 

쉬는 시간도 없을 뻔했고, 세미나 시간도 넘겼던 첫 시간이었다. 발제도 없고 해서 뭘 이야기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의외로 할 이야기도 많았고, 재미있었다. 소제목을 쭉 훑어보면서 탕누어의 글쓰기에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후기는 여기까지 쓸까 한다.  

1장 마지막, 보르헤스의

"좋은 묘지명은 그렇게 정확할 필요가 없다." 

댓글 3
  • 2021-01-06 11:58

    불문법의 시대에 최초로 법을 명문화한 사람.
    작년에 읽은 춘추좌전 해설책에서는 정자산이 두고두고 욕을 먹었대요. 일상적인 예가 법보다 나라를 더 잘 다스릴 수 있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었기 때문이래요. 물론 당시는 예가 일상부터 통치까지 모두 아울렀으니... 탕누어는 소국으로 살아남기 위함이라고 해석하는 건가요? 그 책에서는 오히려 춘추시대의 예는 소국에게 최후의 보루였다고. 그렇다고 자산이 예의 기능을 부인했던 건 아닌데, 자신이 형법을 항아리에 새겨넣는 행위가 나중에 이렇게까지.. 진시황의 혹독한 법조항을 욕할 때마다 정자산이 불려나올 줄이야 본인은 몰랐겠죠.. 소국으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탕누어의 논리가 궁금하네요.

    • 2021-01-06 23:11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안받을테니 드루와!

  • 2021-01-06 23:15

    계속 읽다보니 드는 생각이, 탕누어가 자산에 주목했다기보다는 좌전의 저자가 자산을 자꾸 소환한 이유에 탕누어의 관심이 있는것 같아요. 나아가 탕누어는 좌전 보다는 그 저자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는것 같기도 하구요. 숨어 있는 저자에 대해. .... 어쨌든 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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