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역학 세미나> '똥꼬 차여서 쓰는' 대칭성 인류학 후기

모로
2021-03-09 18:42
427

올해 인문의역학 세미나의 첫 번째 책, <대칭성 인류학>이 3주간의 세미나로 끝이났다. 

세 번째 시간 발제를 담당했던 나는, 언제나 그러했듯 똥꼬 차이게 발제문을 제출했으며 후기를 쓰는 것도 미적미적 거렸다. 올해의 목표인 '행동하자'에 들어서기도 아직 멀은 셈이다. 그래도 기어코 엉망진창 후기를 올리고 본다.

 

사실 처음으로 대칭성 인류학이라는 말을 들었다. 단어부터 생소한 이 말은 나와 너와 우리는 모두 동일하다는 말이다. 염소가 나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동물은 식물이면서 동물일 수도 있으며, 죽음과 삶도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관점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많은 것들과 내용이 이어진다. 양생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제인 페미니즘과도 말이다.)

 

어려울 수도 있는 이런 모호한 주제를 신이치는 아주 ‘적절한’ 예시를 들면서 전개해 나간다. 내가 발제했던 제8장 부활하는 보편경제학에서는 무려 수학과 순수증여를 연결시켰다. 유용한 상상의 수인 ‘무한소’를 등장시킴으로써 순수증여를 설명했는데, 무한소란 0과는 다르지만 어떤 실수보다도 작은 수란다. 그래서 무한소는 몇 번을 더해도 역시 어떤 실수보다도 작다.

응? 이게 도대체 무슨 수지? 이런 수가 있어? 라는 생각이 들었ᅝᅳᆫ데, 이런 내 생각을 읽은 듯 곧바로 적절한 예시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유니콘이 있다. 유니콘은 실재하지 않는 존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니콘의 생김새, 특성등을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유용한 상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사고 혹은 무의식의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

 

증여에서도 마찬가지다. 순수증여의 개념은 어린 사환의 신에서 잘 표현된다. 부르주아 A씨는 어린 사환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초밥을 먹게 해준다. 답례나 기대를 하지 않고, 선량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원치 않는다. 하지만 그 마음이 위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즉 자신의 마음에 작게 남아있는 인정욕을 발견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는 이야기다. 이 사소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순수증여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심지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신이치는 이 가능하지 않은 순수증여의 개념이 필요한 것은, 증여가 현실적으로 표현 가능한 범위에 실제적으로 표상 불가능한 것까지 포함함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증여에 순수 증여를 더함으로써 개념을 완성시킨다고 설명한다. (수에는 ‘실수’와 표현 불가능한 수 ‘무한소’가 있어서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순수증여라는 개념이 사라진다면 증여로써 이루어졌던 관계가 모두 교환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이 사회의 빈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유용한 상상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 너무나 흥미롭지 않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여를 향한 삶이다. 우리는 증여를 통해서만, 그리고 섬세한 정신을 가지고 자신을 검열하고, 또 검열하면서 순수증여로 나아감으로써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비대칭적 사고인 교환을 통해서, 즉 내가 하나 주면, 하나를 받는 그런 사고로써는 결코 행복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 하나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주부 생활!! 즉 지긋지긋한 집안일에 대한 새로운 가치정립말이다. 가정에서의 나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백수라는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혹은 수고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혹은 엄마가 최고라는 말을 듣기 위해 그 수많은 집안일을 했다. 이는 짜증과 자기혐오로 돌아왔다. 정말 대가를 바라지 않고 타인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기쁨, 그것을 먼저 집안일에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벌써 화가 치밀어오르는 느낌이지만 아주 조금은 마음이 즐거워졌음을 고백한다. 

 

댓글 3
  • 2021-03-09 19:17

    ㅋㅋ 모로님의 바꾸기가 잘 성사되기를^^
    " 이 사회의 빈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유용한 상상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사실, 너무나 흥미롭지 않나?"
    -저도 대칭적 사고와 상상력의 관계가 흥미로운 책읽기였어요~~

  • 2021-03-09 21:56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는 범위에서 조금씩 증여의 범위를 늘여가 본다면... ㅋ
    페미니즘과도 연결이 되는군요... 반려종 선언!!!
    모로님 글 넘 재밌어요~~ ^^

  • 2021-03-10 08:49

    지난주 토요일 페미니즘강의 귀동냥했는데~~
    저도 그 생각했어요. 배우고나면 보이는 것들~~ㅎ
    그래서 생소했던 대칭성 사고를 주변에서도 충분히 연결시켜볼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ㅋㅋ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대칭성 사고는 이미 작동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교환만으로 엮이지 않는 관계이니..여러 다중의 가치가 내포된 그래서 강한 정동이 일 수 밖에 없는..
    이렇게 생각하니 강한 정동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그런 의문이 남네요~~ 어제 나온 수양이 필요한걸까요?ㅎㅎ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13
[이반일리치 읽기] 전문가들의 사회 _4,5장 후기 (4)
서해 | 2024.03.26 | 조회 131
서해 2024.03.26 131
512
[이반일리치 읽기] 전문가들의 사회 _2장 _ 후기 (10)
들장미 | 2024.03.21 | 조회 187
들장미 2024.03.21 187
511
[2024년 갑진년 사주명리 기초 강좌] 마지막 시간 후기 (6)
동은 | 2024.03.19 | 조회 92
동은 2024.03.19 92
510
[2024년 갑진년 사주명리 기초 강좌] 누드글쓰기 최종 발표 (8)
로이 | 2024.03.15 | 조회 160
로이 2024.03.15 160
509
이반일리치읽기- 1장 후기 (4)
김은정 | 2024.03.15 | 조회 142
김은정 2024.03.15 142
508
[2024년 갑진년 사주명리 기초 강좌]7강 누드글쓰기_1회 (4)
양금옥 | 2024.03.10 | 조회 102
양금옥 2024.03.10 102
507
[이반 일리치 특강] 후기 (14)
스프링 | 2024.03.05 | 조회 869
스프링 2024.03.05 869
506
[2024년 갑진년 사주명리 기초 강좌] 5강 십신2 후기 (3)
김보현 | 2024.03.02 | 조회 110
김보현 2024.03.02 110
505
[2024년 갑진년 사주명리 기초 강좌] 4강 십신1 후기 (4)
이소민 | 2024.02.23 | 조회 112
이소민 2024.02.23 112
504
[2024년 갑진년 사주명리 기초 강좌] 4강 십신1 후기 (4)
바람 | 2024.02.22 | 조회 112
바람 2024.02.22 112
503
[2023 갑진년 사주 명리 기초 강좌] 2겅 음양오행 개론, 오행의 기호 (3)
진아 | 2024.01.28 | 조회 129
진아 2024.01.28 129
502
[2024 갑진년 사주명리 기초 강좌] 2강 '음양오행 개론, 오행의 기호' 후기 (6)
김지영 | 2024.01.28 | 조회 241
김지영 2024.01.28 24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