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다]7,8월 정기상영작 <의식의 물리학> 후기

청량리
2021-08-10 17:25
502

의식하지 않았으나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영화

[필름이다]7,8월 정기상영작  <의식의 물리학, When you look away>

 

 

 

 

 

날도 좋은 토요일 오후, 정체불명의 낯선 영화 한 편을 보겠다고 모인 사람들

그리고 파지사유에 오진 못했으나, 순간 갈까 말까 내적갈등에 시달렸던 사람들

아니면 영화 제목에 이끌렸으나 지금껏 아무생각 없었던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바로 이 영화 <의식의 물리학, When you look away>(2017)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지금 당신은 이 후기를 스크롤하는지도 모른다.

 

우선 먼저 말해두고 싶은 건 이 영화는 리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대신 흐름을 조심스럽게 따라가 볼 수는 있다. 

감독은 자신의 딸이 동물처럼 사고하는 모습을 보고, 나를 ‘나’로 인지하게 하는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 보기로 한다. 영화는 물리학자 홀게르의 양자물리학에 대한 어수선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그는 분명 도올선생과 유사한 보이스톤을 지녔다. 때문에 이해는 전혀 안 되지만 그의 설명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설명에 따르자면 뭔가 정해져 있는 건 없고, 측정할 때마다 그 '세계'는 무한히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우리가 의식하는 대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은 새삼 놀라웠다. 무지개는 일곱 빛깔일까? 아니다. 그건 우리가 빨주노초파남보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이 아이가 감독의 딸이다. 영화를 촉발시킨 장본인. 그러나 결국 아이는 자신이 동물이 아님은 자각하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에는 그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과학적 근거들을 제시하며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이유나 원리를 설명한다. 그러나 내가 봤을 때 과학적 이론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건 그들이 과학자이기에 갖고 있는 습관 같아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실험들이 결국 아쉬운 결과를 낳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실험을 실패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영화는 결국 의식의 흐름으로 정리가 안 된 채 마무리 되지만, 감독의 딸은 더 이상 동물처럼 사고하는 나이를 통과했고 감독은 아마도 계속 의식을 쫓는 실험을 카메라를 통해 진행할 듯하다. 결코 실패가 아닌 이유다. 2탄은 <파워팩의 물리학>이 될까?

 

덴마크의 이론물리학자 홀게르박사. 중첩과 이중슬릿 실험, 영화 줄거리는 몰라도 이것은 잊지 않을 듯하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황당하지만, '시몽동' 때문이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시몽동의 전개체이론을 듣다보니 내 의식 역시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고 그걸 이중슬릿의 실험처럼, 양자물리학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나의 무의식이 작동했던 걸까?

아니다. 사실은 이 영화는 정군 때문이다. 정군이 ‘세미나책’을 쓰지만 않았더라면, 그래서 북콘서트가 없었더라면, 그렇다면 봄날샘이 시몽동의 강좌를 홍보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내가 신청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양자물리학과 전개체이론은 무슨 관계란 말인가? 그럼에도 묘한 잔상처럼 남는 건 왜 일까?

아니다. 이건 사실 시몽동이나 정군으로부터 촉발한 게 아니라 사실 내가 궁금해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피에 암보 감독과 같은 질문을 사실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나의 의식을 훑어보기 위해서는 아마도 나의 인생뿐만 아니라 전 우주적인 관계망을 촘촘히 살펴봐야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렇게 설명되어 질 수 있는 문제라면 문탁샘이 토크 말미에 “유식(사상)을 공부해야 겠다”는 무서운 말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 감독은 양자물리학자 홀게르가 아니라 신상환 선생에게 이메일을 먼저 보냈어야 했다. 

 

필통회원들의 응원이 있어서 오늘도 필름이다의 카메라는 촤르륵 돌아갑니다. 

 

이로써 필름이다 정기상영날이 아니면 결코 안 찾아볼 것 같은 영화리스트에 한 편을 추가하게 되었다. 허나 재밌었다. 사람들의 토크가 자꾸만 영화에 집중하기 보다는 삼천포로 빠지는 이유는 자신의 문제와 이 영화가 '중첩 superposition'됐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고전에, 누군가는 전개체이론에, 누군가는 유식사상에,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들이 토크 시간에 흘러 넘쳤다. 그럼에도 전혀 불편하거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어쩌면 이 영화를 선택하는 순간, 이미 이러한 토크의 영향을 바랬는지도 모른다. 

 

p.s. 왜 이 영화를 보면서 '추억의 부스러기'에 쓸 영화로 <이너스페이스>(1987)가 떠올랐을까? 둘 다 훌륭한 과학영화이기 때문에? 아니면 둘 다 과학을 표지에 두고 전혀 다른 내용물이 담겨 있어서? 아니면 그저 맥 라이언의 리즈시절이 보고 싶은 사심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영화는 기린샘에게 추천하는 걸로.

 

 

 

댓글 5
  • 2021-08-10 18:06

    사전정보 없이 영화를 보니 재미있었어요.

    누군가 계속 찍고 있으니, 우리도 계속 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영화였어요.

  • 2021-08-10 20:51

    하하하. 청량리님! 신상환 선생님은 유식전공자가 아니라 중관학 전공자입니다.

    저는 금~토 신상환선생님의 줌 여름캠프 참석하여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론과 씨름하느라 영화보러 못갔는데..

    후기를 읽으니 이 영화가 참으로 궁금하네요.^^

    (여기저기 의리를 지켜야 할 곳이 많다보니 또 여기저기 의리를 다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 2021-08-10 22:12

    ㅋㅋㅋㅋ 어쨌거나~~ 이 영화는 안 졸고 봤다는 거~~

    요즘 주변에서 과학과학 하는 분위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청실장이 픽으로 추천받은 이 영화를 봐야 하는가?
     그나저나 내가 이 영화 안 본건 어떻게 알았지? 청실장의 의식의 물리를 따져봐야 겠쓰~~~ ㅋㅋ

  • 2021-08-10 22:36

    영화보다 필통 회원이 반가웠던 1인 입니다.

    솔직하게 사람이 없을까봐 간 것입니다 

     

    다들 영화 끝나고 00에 대해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고 하시네요

    '의식의 물리학'

    큰 기대를 가지고 간 건 아니지만 오랫만에 어려운 세미나 들어갔다 나온 기분!!

    두 번 보면 알아 들으려나 ㅠ

     

  • 2021-08-12 18:19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네요  노라 두번째볼때 같이 봐요

    이너스페이스는 재미난 영화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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