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영화인문학 시즌1> 버스터 키튼의 <제너럴>(1927)

청량리
2021-05-22 17:45
377

<우연 3부작>

우연의 결과  | 영화 <제너럴>(1927) 107분

 

 

 

 

 

 

 

 

성룡영화 혹은 봉준호영화

이름이 다소 낯선 ‘버스터 키튼’은 무성영화의 전성기, 그러니까 1920~30년대 당시 찰리 채플린과 쌍벽을 이뤘던 배우 겸 감독이다. ‘슬랩스틱과 흑백영화’라는 조합에서 콧수염과 헐렁한 바지가 자연스레 떠오르지만, 어려운 스턴트와 무표정은 어딘가 생소하다. 우리에게 흑백 무성영화의 장르는 채플린의 ‘코미디’로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반면 영화 <제너럴>(1927)은 코미디라기보다는 버스터 키튼(1895~1966)의 ‘액션영화’처럼 보인다.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성룡영화’의 아이덴더티는 영화의 엔딩크래딧과 함께 보는 ‘NG장면’ 모음에 있다. 고난도의 메인 액션 뿐만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장면, 그저 조금 신기한 장면들을 찍기 위해 그는 수십 번도 넘게 카메라 앞에서 몸을 던진다. 우리 눈에는 같은 동작을 ‘무한도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NG와 오케이 컷이 뭐가 다른지 알기 어렵다. 거기에는 성룡만이, 자신의 신체로 직접 해 본 사람만이 아는 차이가 숨어 있다.

 

영화<승리호> 포스터. 넷플릭스 결정이 어쩌면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영화에서 ‘장르’는 관객에게 전달되는 반복적 메시지 또는 그것을 고려한 영화적 기법들을 중심으로 나눈 편의상 분류기준이다. 다루는 내용이나 제작과정, 형식 등에 따라 장르는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멜로, 코미디, 스릴러, 흑백, 저예산, 상업, 패러디, 애니메이션 등등. 때문에 이러한 장르영화에는 어느 정도 공식이 존재한다. 최근에 개봉한 <승리호>(2021)는 배경은 먼 미래 우주공간이지만, 장르는 ‘코미디+액션’이다. <조폭마누라>(2001)이후 액션에 코미디를, 혹은 코미디에 액션을 섞는 '아주 기이한 습관'이 20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셈이다. 송중기와 김태리에 현혹되지 말자.

 

그런데, 성룡영화 역시 액션을 기본으로 코미디가 들어가 있지만, ‘코미디+액션’이라는 하나의 장르로 구분하기 어렵다. 가족영화? 무술영화? 코미디영화? 그래서 그냥 ‘성룡영화’로 부를 수밖에 없다. 영화 <기생충>(2019)을 스릴러냐 블랙코미디냐로 나누는 게 무의미하고, 그냥 ‘봉준호영화’로 부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아, 또 한 명이 있다. ‘주성치’영화도 그러하다). 그런 ‘성룡영화’가 다양한 액션기법을 모방하고 수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던, 정신적 사부가 바로 ‘버스터 키튼’이다. 찰리 채플린이 흑백 무성영화의 ‘아이콘’이었다면, 버스터 키튼은 영화사에 없었던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마블영화에 쿠키영상에 있다면, 성룡영화의 시그니쳐는 바로 NG영상이다.

 

 

신체로 말하는 슬랩스틱

버스터 키튼의 영화 <제너럴>은 최근에서야 미 국립영화등록청에 등재된 최고의 코미디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지만, 당시에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으나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외면 받았던 비운의 영화다. 이 영화의 실패로 키튼은 대형 제작사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성영화로 넘어가던 시기와 겹치면서 바뀐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인생은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잠시 알코올 중독에도 빠졌으나 여러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등 꾸준히 배우의 길을 걷는다. 뒤늦게 베니스영화제에도 초대되어 좋은 평가를 받게 되지만, 그의 수상소감처럼 ‘박수소리가 너무 늦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짧게 소개한다. 때는 1861년, 미국의 남북전쟁시대. ‘제너럴’은 조니 그레이(버스터 키튼)가 운전하는 기차의 이름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으나 그녀는 군입대를 못한 조니를 달갑게 받아들이질 못한다. 시간이 흐른 후, 조니가 운전하던 ‘제너럴’이 민간인으로 위장한 북군에게 탈취 당한다. 조니는 급하게 남군에게 지원요청을 하지만, 각본대로 조니 혼자서 그들을 추격하는 상황이 된다. 영화의 스토리는 도둑맞은 ‘제너럴’을 쫓아가는 조니, 그리고 다시 ‘제너럴’을 되찾아 돌아오는 조니, 그렇게 전후반으로 나뉜다.

 

 

절로 박수가 나오게 되는 철도 침목 장면

 

대사와 영화음악이 없던 시절 극중 상황과 영화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은 슬랩스틱(slapstick)이었다. 배우들은 흡사 판토마임을 보는 듯한 표정과 넘어지고 좌충우돌하는 몸짓으로 모든 걸 표현한다. <톰과 제리> 역시 영리한 제리와 엉뚱한 톰의 행동을 통해 대사가 없어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찰리 채플린이 꼼꼼한 상황설정과 사회풍자적 스토리표현에 탁월했다면,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고난도 스턴트 액션에 가까운 그의 신체성에 좀 더 기대고 있다. 때문에 그의 슬랩스틱 연기는 비교불가 독보적이다(성룡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 영화의 단순한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뜻밖의 돌발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몸’연기 때문이다. ‘제너럴’을 훔쳐 달아나는 북군을 쫓아가는 조니. 그러던 중 앞서가던 북군은 기차선로에 침목을 던져놓으며 방해를 하자 조니가 탄 기차는 탈선의 위기에 빠진다. 기차 앞에 매달려 간신히 침목 하나, 하나를 치우면서 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대표 장면 중 하나다.

 

슬랩스틱은 우연의 결과다. 우연이란, 의도치 않은 결과이며 슬랩스틱 역시 의도해서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의 의도와 꼼꼼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신체적 조건에 기대므로 슬랩스틱은 계산되지 않는다. 물론 우연의 속성은 비단 키튼의 영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모든 것을 몸으로 전달해야 했던 흑백 무성영화(어쩌면 영화 자체)모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스턴트 액션에 가까운 슬랩스틱을 보여줬던 키튼의 영화들은 그 우연성이 좀 더 극대화된다. 성룡의 영화들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입을 벌리고 감탄하게 되는 이유다. 그것이 위험한 액션이기 보다는 수많은 반복 속에서 우연히 얻은 하나의 결과라는 사실 때문이다. 다른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행동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겨우 얻는 작은 차이의 오케이 컷이다.

 

'위대한 무표정'이라 불리는 버스터 키튼

 

 

영화 혹은 삶의 우연성

나는 복잡한 설정의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싫어하는 건 상황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영화다. 지금의 현재 말고 나와 당신의 삶을 설명으로 알 수 있을까? 과거의 ‘카더라’와 미래의 ‘그럴 걸’이라는 건 어쩌면 삶에서, 지금의 현재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우연의 산물이라는 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 조건들이 각본처럼 들어맞아야 얻어지는 결과기 때문이 아니다.

삶을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중에서 죽음은 우리에게 알 수 없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다. 그 속에서 다가오는 사건들은 우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아니 우연적 사건만이 삶을 구성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키튼의 고난도 스턴트 액션이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건 알면서도 되풀이해야만 겨우 ‘오케이, 컷!!!’ 싸인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우연성은 NG의 반복 속에 있다. 자, 한 번만 더 갈게요. 액션!!!!

 

 

 

 

 

 

 

 

댓글 1
  • 2021-05-23 12:34

    성룡 영화의 원조라구요?

    성룡영화 좋아했는데 왠지 슬랩스틱(코미디)들은 싫어했던 것 같아요. 

    슬랩스틱이 바보같은 꽈당인가, 정교한 액션이 가미되는가에 따라 다르게 와닿았던 탓일까요?

    슬랩스틱을 잘 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겨울에 다운로드만 받아놓고 못 본 제네럴 여름가기 전엔 확인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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