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시즌1 장 뤽 고다르 <네 멋대로 해라>(1960)

청량리
2020-07-06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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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편한 영화처럼의 삶

|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 | 장 뤽 고다르 감독 | 1960

 

파트리샤 아파트 촬영현장

 

어떤 시네필들은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를 그의 이름에 들어있는 단어(God)와 같이 ‘영화의 신’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니 내가 어찌 ‘신’이 만든 첫 번째 장편영화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 À bout de souffle>(1960)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을 붙일 수 있으랴. 누벨바그(새로운 물결)가 소개되는 책에도 한결같이 거장 고다르에 대한 찬사가 잔뜩 붙어있었다. 그러나,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를 소개하는 문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상했다. 더군다나 이 영화를 보고나서 바르다의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에 견주어 보니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글을 그냥 쓰고 싶지 않아서 시간을 뭉개고 있었다.

게다가 <네 멋대로 해라>에 대한 ‘혁신적인 영화형식’이라든가 ‘세계를 놀라게 한 영화기법의 교과서’라는 평가와 더불어 영화사상 최초의 ‘영화에 관한 영화’라는 정성일 평론가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형식과 기법의 한계에 가두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시에는 굉장히 새로운 실험이었으나 지난 60년 동안 이미 많은 영화들 속에서 봐왔던 터라 더 이상 놀랄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자’ 누벨바그의 친구들과 고다르가 내세운 ‘새로운 영화’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러므로 아쉽지만 낡은 점프컷과 핸드헬드는 버리고 이 영화를 제로에서 다시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마리를 아녜스 바르다가 던져주었다.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공간과 시간을 조작하는 흥미로운 장면 둘이 있는데, 첫 번째는 미셸(장 폴 벨몽도)이 파트리샤와 그녀의 아파트에서 함께 머무는 장면이다. 미셸의 머릿속에는 파트리샤(진 세버그)와의 잠자리만이 가득하다.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지만 화면은 이리저리 편집되어 나눠진다. 두 번째는 미셸이 파트리샤를 태우고 파리를 돌아다니는 장면이다. 왼편에서 미셸은 목소리만 들리고 화면은 파트리샤의 얼굴을 고정해서 잡는다. 역시 차 안의 대화는 계속되지만 파트리샤의 얼굴 너머로 보이는 거리는 끊임없이 ‘점핑’한다.

 

소리(대화)는 현재진행형인 시간 속에 있는데, 화면(공간)은 그와 상관없이 나열되다 보니 머릿속에서 충돌이 일어난다. 이건 멀미가 일어나는 상황과 유사하다. 눈(화면)으로 인식하는 화면과 귀(공간감, 균형)가 느끼는 진동이나 움직임이 서로 다르게 뇌로 전달될 때 멀미가 발생한다. 앞의 두 장면은 일부러 시공간의 감각을 깨뜨려 관객의 편안한 몰입을 방해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앞서 소개한 점프컷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미셸이 마지막에 총을 맞고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장면이다. 피를 흘리며 이리저리 넘어질 듯한 주인공의 모습을 카메라가 함께 흔들리며 따라간다. 얼굴은 안 보이지만 장 폴 벨몽도의 ‘등’연기가 일품이었다. 게다가 넘어질 듯 위태로운 두 다리는 관객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장 폴 벨몽도는 아마도 이 장면 덕분에 프랑스의 스타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한 몇몇의 눈부신 장면을 제외하면, 자동차와 여자에 집착하고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미셸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럼에도 영화적 관습이 깨지고 내러티브가 해체된 편집 이전에 고다르가 쓴 각본(원안 : 프랑수아 트뤼포)에서 미셸을 읽어보고 싶었다. 어느 날, 파트리샤가 윌리엄 포크너의 글 <야생종려나무, The Wild Palms>을 인용하면서 당신은 슬픔(grief)과 무(無, nothing)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묻는다. 슬픔은 어리석은 것이며, 이것저것 복잡하다면서 미셸은 무(無)를 선택한다. 미셸이 선택한 'nothing'은 바로 고다르의 선택이기도 했다.

 

팔순이 넘은 아녜스 바르다가 30대의 젊은 아티스트 JR과 함께 만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에서 장 뤽 고다르를 만나러 가는 후반부 장면이 있다. 바르다는 JR에게 짧은 단편영화를 보여주는데, 주인공이 바로 고다르와 그의 부인이었던 안나 카리나였다. 사실 이 영화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 삽입되었다.

왼쪽이 안나 카리나, 오른쪽이 고다르

 

클레오가 암에 걸린 게 아닐까 불안해하며 친구 도로시를 찾아가자 영화관에서 일하는 도로시의 친구가 보여준 단편영화였다. 영화 속에서 고다르는 강물에 선글라스를 벗어던지며 채플린과 키튼처럼 우스꽝스럽게 연기를 한다. 그러나 JR과 함께 고다르의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바르다는 고다르를 회상한다.

“그는 고독한 철학자야. 그는 영화를 창조하고 영화계를 바꿔놨지. 창조자이자 탐구자야. 영화계엔 그런 사람이 필요해. 지금도 좋아하지만 서로 못 봐.”

 

약속한 시간에 고다르의 집에 도착했으나 문은 잠겨있었다. 대신 바르다에게 보내는 암호만이 유리문에 적혀 있다. ‘카페 두아르네네즈에서. 그리고 <해변에서>’ 해석하면 이렇다. ‘바르다, 당신이 온 걸 알고 있어. 그리고 우린 아직 자크 드미를 기억하고 있지’ 먼저 세상을 떠난 자크 드미는 바르다의 남편이자 고다르의 친구였다. 노년의 친구가 어렵게 기차를 타고 찾아왔으나 고독한 그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이론도 필요 없고, 기존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하며 자신 스스로가 영화를 만들어야 했던 장 뤽 고다르. 모든 것이 허물어진 폐허 속에서 영화에 관한 이론은 영화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삶을 영화로 보여주었다.

자동차와 여자에 집착하고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미셸의 죽음은 사랑하는 여인의 배신이 그 표면적 원인이다. 그러나 실제로 험프리 보가트의 팬이기도 했던 고다르가 미셸의 고독한 죽음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부폐된 기성세대, 알제리 독립전쟁이 드러낸 프랑스 사회의 추악한 이면들, 과거의 고전적 답습으로만 이어지는 영화계와의 결별선언이자 사회적 원인고발이 아니었을까.

맨 왼쪽이 고다르. 핸드헬드와 휠체어로 이런 영상을 만들다니!!!

 

미셸은 경찰이 쏜 총을 맞고 비틀거리다 거리에 쓰러진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 눈을 감기듯 늘 혼자였다. 차를 훔치고 운전하고 도망 다니며 돈을 훔치거나 받으러 돌아다닐 때도 그는 혼자였다. 그러나 그 상황은 관계의 부재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고독에 가까워 보였다.

고독한 미셸이나 고다르가 혼자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네 멋대로 해라>는 앞으로 살아갈 그의 삶처럼,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속 어느 작가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파트리샤가 그에게 인생의 목표를 묻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작가는 이렇게 답한다. “불사조가 된 다음에 죽는 겁니다.” 작가의 대답 속에 고다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말하는 것은 불생불멸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죽고 사는 삶의 반복 이리라. 2018년 영화 <이미지의 책>으로 칸 영화제에서 등장한 장 뤽 고다르. 스마트폰의 인터뷰 영상화면으로나마 그를 볼 수 있어서 놀라웠고 다행이었다.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상으로 <영화인문학 시즌1> 의 영화들을 마칩니다. 

영화인문학 시즌2에서도 좋은 영화와 소개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시즌2 첫 번째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1982) 입니다.

 

댓글 1
  • 2020-07-08 15:36

    흑백사진들이 멋지네요!
    흑백영상을 고집하는 '지음' 스튜디오의 입장도 궁금해지고.
    그러나 묻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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