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영화인문학시즌3>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페드로 알모도바르

띠우
2021-01-0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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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선이 낳은 사유의 확장 

- 내 어머니의 모든 것(2000) / 페드로 알모도바르(Pedro Almodovar)

 

초현실주의 거장이었던 루이스 부뉴엘(1900~1983) 이후 잊혀져가던 스페인 영화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은 사람은 페드로 알모도바르(1949~ )입니다. 알모도바르(Almodovar)라는 이름은 ‘자유의 장소’ 또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요. 당시 스페인은 36년간 독재체제를 지속시켰던 프랑코가 죽은 후 불어닥친 민주화의 열기 속에 있었습니다. 그에 의해 표현되는 작품세계는 그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죠.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기도 했던 그는 독특하고 화려한 색채 사용이나 노골적인 성적 코드, 자유분방한 욕망을 대담하게 표현합니다. 기존의 가치관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엉망진창으로 보일지라도 솔직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갑니다.

 

 

그의 초기 작품 속 인물들은 양성애자,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대부분이 성소수자에 속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비꼬기라도 하듯 이상하고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욕망을 드러내죠. 그러나 다른 한편, “내 일생 전체를 따라왔던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선호하며 문제를 야기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항상 남의 구설수에 올라야 했으며, 이와 함께 살아야만 했다”라는 그의 인터뷰는 그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을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그가 표현하는 자유로움과 낯선 시선은 꽤나 매력적입니다. 사회 규범에 자신을 맞추느라 둔감해진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니까요.

 

그는 강렬한 원색을 자주 이용합니다. 이는 검은색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유럽의 역사 속에서 전쟁이 잦아지면서 사람들은 검은색 옷을 주로 입게 되었고, 이후 검은색은 남성적인 권력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남성성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며 자신의 정체성 안에서도 혼란스러운 ‘여성성’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화 속 남성들은 무책임하고 무능하며 힘없는 존재들입니다. 긴 독재의 시대를 겨우 빠져나온 스페인은 이후 빠르게 세계화되며 가부장적 가치관과 권위주의가 무너져 가고 있었죠. 기존의 모든 억압적이고 관습적인 체계들을 부정하고 변화를 인정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해체 없이는 새로운 세계로 가는 일은 불가능하겠지요.

 

 

 

<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사람들(1980)>의 경찰관, <내가 뭘 잘못했길래(1984)>의 택시기사,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1988)>의 비열한 성우, <키카(1993)의 사이코 아버지와 아들 등, 그가 묘사하는 남성들은 대부분이 권위적이고 폭력적입니다. 그러다 이번에 우리가 함께 이야기할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 이르면 이전 작품 속에서 파괴적이고 권위적이며 독선적인 모습을 드러내던 남성들의 모습조차 아예 사라져버립니다. 오직 여성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영화가 끝나고 이런 자막이 올라옵니다. ‘베티 데이비스, 지나 롤린스, 로미 슈나이더, 모든 여배우들, 연기하는 남녀 모두, 여자가 된 남자들, 어머니가 되고자 하는 모든 여자들, 그리고 내 어머니께 바칩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그는 ‘어머니’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단지 모성애 가득한 여성의 이야기일까요.

 

 

영화가 시작하고 주인공 마뉴엘라가 생일을 맞이한 아들과 함께 보는 영화는 <이브의 모든 것>입니다. 여배우 마고를 동경하는 이브, 성공을 꿈꾸는 그녀의 욕망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인정되는 욕망입니다. 재키 스테이시는 <이브의 모든 것>이 ‘여성이 다른 여성을 보는’ 여성적 영화보기의 쾌락을 재현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시각은 단순히 자본주의적 시각의 변이일 뿐입니다. 단지 여성이 여성을 본다는 이유만으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죠. 그렇다면 왜 감독은 이 영화를 자신의 영화 도입부에 배치했을까요. 저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주인공인 마뉴엘라가 사회 속에서 배제된 욕망을 마주하면서 갖는 변화를 주목하게 됩니다.  양성애자인 남편을 외면했던 그녀가 아들의 죽음 이후에  타자의 욕망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느껴지기 때문이죠. 자본주의적 욕망의 변주로써 <이브의 모든 것>이 영화 초반부에 나왔다면 이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영화 속에서 연극무대로 반복되면서 그 시선의 변화를 따라갑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주요인물은 스텔라와 스탠리 부부, 스텔라의 언니 블랑슈입니다. 블랑슈는 사회구조속에서 배제당하는 성적 욕망을 가진 인물입니다. 가부장적인 동생 부부 사이에서 블량슈의 등장은 아슬아슬한 분위기속에서 균열을 불러오죠. 스텔라가 아이를 낳으러 간 사이 스탠리는 블랑슈를 겁탈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블랑슈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립니다. 감독은 모든 사실을 짐작하는 동생 스텔라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영화 속 무대 장면을 통해 여러 번 보여줍니다. 영화 주인공 마뉴엘라가 무대 위의 스텔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씩 변해갑니다. 감독은 우리가 기를 쓰며 유지하려는 허구적 사회규범의 모순, 혹은 스스로가 타자의 시선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잘 들여다보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지요.

 

 

자식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마뉴엘라가 아들이 죽은 후에야 옛 남편의 욕망을 다시 마주하겠다는 것은 여성, 남성이라는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영화 속에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인물인 여장남자 아그라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스페인어로 '아그라도'는 기쁨, 즐거움, 반가움을 뜻한다고 합니다. 보통 이런 성격의 인물은 감초역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그녀는 이야기가 진행되어갈수록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우연히 올라선 무대 위에서 아그라도는 자신의 몸이 겪어야만 했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도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고 가볍게 말합니다.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자신이 꿈꾸는 자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가볍습니다. 감독은 만들어진 여성성 또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죠.

 

마뉴엘라가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라는 경계에서 자유로워져 타자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에서 어머니를 발견하게 됩니다. 얼마 전 ‘대기만성’이라는 단어가 경계의 의미를 새롭게 해주었던 것이 떠오르네요. 동양적 사유에서 ‘크다’는 개념은 우리인식의 경계 너머에 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사유가 아직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영화 속 여성들은 마뉴엘라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그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는 가족은 그동안 우리가 가졌던 인식너머의 것으로 보입니다. 전통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족이 해체됨과 동시에 층위가 다양하고 새로운 가족이 생성되는 것이랄까요. 인식 너머의 존재, 크다는 가능성은 흥미롭습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통해 감독이 말하는 ‘여성성’이란 ‘생성’하는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타자들이 지닌 시선의 층위 속에서 쉽지 않게 생성되고 사라지는 순환이 일어나겠지요. 하나의 기준이나 필연이 아닌 그때그때 낳는 힘에 의해 말입니다. 영화를 통해 만나는 아그라도나 수녀인 로사와 그의 부모, 여배우 위마와 니나 등 낯선 시선들은 우연적이며 새로운 사유를 낳습니다. 마누엘라는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만들어내지요. 영화를 보며 그 시선과 나의 시선이 만나는 짧은 순간, 조그맣더라도 세상을 향해 어떤 소리를 외치게 됩니다. 우리가 매주 만나서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도 이런 우연한 만남을 만드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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