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연기법과 인공지능_첫시간 후기

봄날
2021-11-21 12:35
323

초기 불교경전의 숲에서 노닐다가 조애너 메이시의 <붓다의 연기법과 인공지능>으로 나왔다.

메이시의 주장은 연기법과 오늘날의 컴퓨터과학 이론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론이 '닮아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일반시스템이론과 불교라는 두 사상 체계를 활용해서 상호인과율의 특성을 밝히고 자연 시스템의 법칙(dharma)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저자는 원인-결과라는 선형적 도식을 가지고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 하고 있다.

 

우리도 늘 어떤 일의 원인이 어떤 결과를 낳는다고 쉽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잘하고 잘못하고, 그것에 따라 결과가 좋게, 혹은 나쁘게 나온다고 생각하고 짧은 순간 환희에 차거나 깊은 절망에 빠지거나 한다. 그런데 그렇게 명료하게 원인과 결과를 쌍으로 지을 수 있을까. 과학실험에서 어떤 가정을 증명할 때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조건을 똑같이 한다면, 이론상으로는 똑같은 결과가 나오게 된다. 그러나 그 '똑같은 조건'이라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것일까. 완벽하게 똑같은 조건이란 '실재'하지 않으며, 그런 것이 있다고 가정하는 순간,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는 개념에 빠지게 된다.

 

또 내가 세미나 시간에 말했듯이 내가 게임에서 패배하는 원인이 짝궁의 실수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짝궁의 실수는 나의 비협조 '때문에' 일어난 결과인 것을 알아차리곤 할 때, 그 얽혀있는 인과의 고리(혹은 계기)는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의 원인이 저것의 결과가 된다고 할 때 이것의 원인에는 어떤 것의 결과가, 또 저것의 결과에는 또 어떤 것의 원인이 연루되어 있다. 일반 시스템 이론도 이처럼 인과관계에는 무한히 많은 변수가 작용하고 있으므로, 단선적인 인과개념으로는 고도화된 과학기술도 설명할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저자의 시스템이론에 대한 설명 중에 나는 '범주'라는 단어에 '꽂혔다'.

 

"일반시스템이론은 다양한 영역 속에 있는 일정한 것의 관찰을 토대로 하는 하나의 메타학문으로서...두 개 이상의 전자를 가지고 있는 원자들의 전자궤도 패턴에서든, 자신의 평형을 유지하고 있는 생명체적 유기체의 전기 화학적 패턴에서든, 변수들은 상호간에 조건이 되고 있으며, 또한 선형적인 인과의 고리로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결과 시스템적 견해는 실체가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과정에서 원인과 결과는 더 이상 범주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

 

실체가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은 연기가 조건적 발생 자체를 다루고 있다는 것과 같은 초점이며, 원인과 결과가 더 이상 범주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연기'라는 말(파팃짜 쌈우빠다)자체의 의미, '함께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있음'과 같은 뜻이다. 세계에는(세계는) 고정된 실체란 없으며 오직 조건에 의해 생겨났다 사라질 뿐이다. 

 

인상평 같은 후기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연기, 시스템 이론이라는 개념이 아직은 너무 막연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고대철학이 어떤 방식으로 선형적인 인식체계를 가지게 됐는지, 그 가운데에서도 비선형적인 사유의 역사를 함유하고 있으며 고대 인도, 아니 불교 안에서도 인과관계에 대한 다양한 사유방식이 혼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3장부터는 본격적인 연기이론으로 접어들게 될 것 같다. 읽어가면서 내가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이 사라진다'는 설명을 깨닫게 될 수 있을까....

 

댓글 2
  • 2021-11-22 10:24

    연기는 붓다도 어려운 거라고 말씀하셨으니까 ㅋ 어렵다는것을 받아들이고 시작해봐야할 듯 하네요 ㅎ

    무엇보다도 '경험해보아야한다' 는 것이 발목을 잡기는 하지만 무상과 무아를 이해하는데 연기가 도움이 될것이라하니 정신바짝차리고 따라가 봅시다 ^^

  • 2021-11-22 23:40

    어려워요. 어려워요...
    전 연기법을 공부하면 번뇌가 일어나요.

    연기법은 어렵고요. 일반시스템 이론은 어려워서 무서워요.

    이게 왜.. 난 왜.. 이렇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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