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외침> 전반부 세미나 후기

인디언
2021-03-29 15:13
351

 루쉰의 『외침』 전반부를 읽었다.

1918년 발표된 중국최초의 현대소설 <광인일기>부터 발표된 순서대로 <쿵이지> <약> <내일> <작은 사건> <머리털 이야기> <풍파-야단법석> <고향>까지. 1918년부터 1921년 사이에 발표된 단편들, 그리고 『외침』을 엮으며 1922년에 쓴 ‘자서’.

 

 이 소설들은 단편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나름대로 연결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광인일기>에서 식인문화로 대표되는 중국의 오랜 문화와 습속에 저항하는 광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도 그 안에 속해있으되 그것을 인지하고 사람들을 그곳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자신의 세대는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는 듯하다.

대신 그는 ‘아이를 구하자’고 한다. 아직은 식인문화에 젖어들지 않은 아이.

그런데 <내일>에서는 아이가 죽는다. 여기서 ‘내일’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루쉰은 아이를 구하자고 한 가닥 희망을 가졌지만 결국 아이는 죽는다? 덧없는 희망이었을까?

그런가 하면 <약>에서는 젊은 혁명가가 처형되고 그 사람의 피를 치료제로 먹은 또 한 사람의 젊은이 역시 죽는다.

혁명가는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세상을 바꾸려 행동했을 터이고 사람의 피를 아들에게 먹인 이는 식인문화 속에 살던 우리였을 것이다. 그들의 어머니들이 찾은 무덤 위에 핀 꽃들은 죽음으로부터 피어난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었다면 루쉰은 또 어떤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머리털 이야기>와 <야단법석>은 변발을 소재로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웃프게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을 쓴 시기도 거의 같은 시기다.

<머리털 이야기>가 쌍십절의 기억을 소재로 신해혁명 불발과 군벌, 제정복귀를 노리는 무리 등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지식인들의 방황을 변발로 이야기하고 있다면, <야단법석>은 장훈복벽사건을 배경으로 11일간의 선통제 복위와 관련, 그에 따라 변발을 해야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벌어지는 민중들의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이야기 한다.

지식인들은 이 혼란한 시절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진정 개혁을 할 수 있는가?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는 우리네 민중들은 이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정치라는 것이, 정권이라는 것이 민중의 삶에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고향>에서도 비슷한 구도가 이어진다.

어릴 적 친구와 내가 살던 30년 전의 아름다운 고향은 이제 더 이상 없고 둘 사이는 두터운 벽으로 막혀버렸다.

그러나 그들의 이세들, 아이들은 또 새로운 친구가 되고 다음을 약속한다.

나는 바란다. 우리의 후대들은 다시는 다들 나처럼 멀어지지 않기를... 그들은 마땅히 새로운 생활을 가져야 한다.

<자서>에서 루쉰이 말한 것처럼 ‘스스로가 고통으로 여겼던 적막을 내 젊은 시절같이 아름다운 꿈에 부풀어 있는 청년들에게 다시 전염시키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루쉰은 자신이 비판하는 이 사회, 식인문화의 사회에 자신도 속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쇠철방 속의 사람들을 깨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스스로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확신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저항했다. 그것은 하나의 희망이 아닐까.

그러나 루쉰은 이런 희망에 대해서도 스스로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우상은 아닌지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

계몽주의자인지, 혁명가인지, 회의주의자인지... 아마도 모두 아닐 것이다.

냉철한, 조금은 비관적인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자각하는 삶을 살아간 지식인.

그러나 한 줄기 희망을 저버리지는 않는,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루쉰이 아닌가 싶다.

 

댓글 1
  • 2021-03-30 12:04

    루쉰의 <외침> 서문을 읽으니 나는 어쩌고 있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적막속을 질주하는 용사들-청년들-에게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도록 얼마간의 위안이라도 주고싶었다는 루쉰,

    그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절박하다.

    그 자신은 절박하지 않다고 하는 말에서 나는 뭐랄까 일종의 반어법 내지는 위악 같은 것을 느낀다.

    아름다운 꿈이 없는 시대, 지지와 반대의 온갖 소란이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외침>의 나머지 글들을 읽는 동안 이 생각을 좀 더 이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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