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눈먼 자들은 신성한 거야..."

여울아
2021-03-08 04:50
230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187p)

 

발제자인 토용과 나, 그리고 다수의 세미나 회원과 나, 우리는 이 책이 전하는 정서를 전혀 다르게 읽었다. 

토용은 발제에서 소설 속 인간 군상들의 행태가 한 마디로 "무섭다"였는데, 

그에 반해 나는 우병실 1호 눈먼 자들의 연대가 "성공적"이라는데 주목했다. 

 

이 책이 내게 흥미진진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 둘 눈 멀기 시작하는 장면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뭔가 이들의 연계성, 즉 왜 이들은 눈이 멀게 되었나, 혹은 공통적으로 이들이 눈먼 이유를 밝혀내는 데 주목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실명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187p)

 

그러나  <페스트>와 달리, 전염병이라 의심되는 백색실명은 원인을 알 수 없다. 

안과 대기실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하나 둘 같은 병실로 모이더니
마침내 검은 안대를 한 노인까지 합류했을 때 어쩌면 이 의문은 풀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먼다는 설정은 이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 위한 장치일 뿐이지 않을까. 

 

눈먼 자들을 보호와 방역이라는 명목으로 수용소에 격리시키고 총을 들고 감시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 주변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고 전세계가 암묵적으로 같은 시스템 안에 있다는 것! 

끔찍한 일이 분명하다! 그래서 토용은 "무섭다!!"고 여러 번 외쳤겠지...(발제에서..)

 

나는 의사와 의사 아내,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같은 병동 사람들이 처음 만나 통성명을 나누자마자  

어깨를 잡고 집단적 "줄서기"로 화장실을 찾아나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이 줄서기는 눈먼 자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협력이었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은 앞 사람 옆 사람 뒷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즉, 눈이 멀었기 때문에 가능한 연대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

<페스트>에서 그랑은 인류를 구원할 평화는 "공감"으로 시작된다고 말했다. 

눈먼 자들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 혹은 차림새, 특징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닥친 재난으로 인해 협력할 수밖에 없었고, 한 공간에서 서로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중심 인물에는 의사의 아내가 있다. 우병동 1호실 눈먼 자들에게 그녀는 구원자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 아내와 같은 역할을 자신이 할 수 있을까... 다들 자기 일처럼 고민했다는데, 

나는 오히려 그녀를 신적으로 여겼다. 신이나 성모마리아. 

만약 신이 있다면 이 여자처럼 우리를 보호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먼 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눈멀 지 않았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보는 능력을 눈먼 자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모습. 

"눈먼 자들은 신성하다."고 했던 자동차절도범의 독백이 오버랩됐다. 

 

한편으로 이 여자만 (합당한 이유없이)눈 멀지 않는다는 설정은

인류를 구원할 단 한 사람의 구원자라는 서양적 클리셰처럼 여겨진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문장부호의 과감한 생략이 눈을 어지럽혀서 상당히 불편했다.

하지만 누구의 말인지 쉽게 분간이 가질 않아서 다른 책보다 더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더욱 스토리에 몰입하게 되고, 장면마다 마치 백색실명처럼 환해진다.  

 

<페스트>에서 요요샘은 우리에게 산다는 것과 인간다움, 삶과 자유(저항)...에 관한

아감벤과 지젝의 담론을 소개했었다. 이 주제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계속 생각할 거리다. 

쉽지 않다. 이 두 가지가 과연 둘로 나뉠 수 있을까. 어느 한 쪽 없이 성립될 수 있나. 

인간답지 않은 삶. 저항 정신 없는 인간... 누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만 신호를 보낸다. 

 

"치지직.. 절대 포기하지 말아요." 드라마 <시그널>

 

*다음 시간은 338p까지 입니다~

 

댓글 2
  • 2021-03-09 20:28

    <페스트>를 읽고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니 예전에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을 때보다 훨씬 더 디테일에 주목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는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흐름에 휩쓸려 그저 숨가쁘게 읽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두 작품을 비교하며 읽게 되는 것이 이번 커리 구성의 묘미인 것 같기도 하고요.
    <페스트>가 페스트와 싸우는 사람들을 그렸다면
    <눈먼자들의 도시>는 느닷없이 감염되어 백색실명 상태에 빠져 격리 감금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페스트>가 오랑시라는 닫힌 공간의 이야기였다면
    <눈먼자들의 도시>는 정신병원과 문 바깥 군인들의 두 세계를 다루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아요.
    사회로부터 배제되어 수용소에 갇히고, 죽여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벌거벗은 생명 '호모 사케르'의 이야기처럼 소설이 시작되었지만
    뒤에 이어지는 부분을 읽으니 단지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군요.
    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고, 우리는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여울아가 성모마리아 같다고 했던 의사아내가(물론 저도 그렇게까지? 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는 했습니다만..^^)
    어느새 들라클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의 형상'으로 바뀌는 것도 흥미롭네요.
    사실 이 소설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페스트>에서 여성들이 주변적 인물로만 등장했던 것과도 매우 다른 구도이기도 하지요.

  • 2021-03-09 22:23

    전 여전히 왜 실명을 전염병으로 삼았는지 궁금해요^^
    책을 다 읽으면 알게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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