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올리기에 댓글 흥행이 될 것을 기대하며 쓴 <대성당> 첫 시간 후기

작은물방울
2021-05-2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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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들>을 읽고 난 후 안되겠다! 싶었다. 작가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이것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카버의 평전이지만 약간 말랑한 느낌의 책을 주문하여 읽었다. 그의 삶이 적혀 있는 이야기는 스펙타클한 영화였다. 

<미국의 목가>를 읽을 때도 그러했지만 그의 삶은 나의 이야기 같았고 나의 아버지 이야기 같았다.

사실 미국의 두 문학을 접하고 아버지 생각이 부쩍 많이 났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고,  너무나 일찍 사랑의 배반을 알았고, 너무나 일찍 태어난 아이들에게 당황했던 젊은이였다.

가난한 집안과 쇠락해가는 마을에서 그가 얻은 것은 낚시와 사냥 그리고 술이었다.

그럴 수밖에. 돈이 없는 사람들의 취미가 다들 그렇지 않은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끔찍하게도 싫은 사람의 탈출구는 무엇일까?

그는 사랑의 온기가 그것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하고 문학에 조예가 깊고 미래의 꿈을 확실하게 가진 당돌한 여성 카버의 어머니가 일하는 도넛 가계의 알바생 메리 앤이었다. 그들은 성인이 되기도 전에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1년 후 다시 또 아이를 낳았다.

메리는 그에게 헌신했고 자신의 꿈을 유예시키며 집안 경제를 책임졌지만 카버는 자신의 기대와는 다르게 점차 무력해졌다.

카버의 무력은 미국의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유수의 대학이 아닌 주립대학 영문학학사 자격증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제재소 노동자, 청소부, 편집자, 완구 조립 등의 일을 전전했다. 그조차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해고가 되어서 술을 마셨는지 술을 마시고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어서 해고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무엇이 먼저인가가 뭐가 중요한가? 누구든 그렇게 침잠해본 사람들은 알 수 있다.

어떻게 삶의 해방구를 찾아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그 답답함이 술을 마시게 하고 무기력을 불러온다.

돈을 벌어 오는 남편은커녕 자신의 연인에게 부담스러운 존재 그래서 미안하지만 그래서 더 왜소해지려고 하기에

그녀의 사회 활동을 시기할 수 밖에 없는 찌질함. 그 찌질함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자기 한몸 조차 건사하지 못하건만 언제나 자신의 공간에 함께 있는 아이들, ‘달라붙어 있는 것들’ 그것들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가 첫 번째 읽은 부분에서 카버의 인생이야기인지 창작인지 알쏭달쏭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셰프의 집> <보존> <비타민>에서는 부부의 이야기가

<깃털들><칸막이 객실>에서는 아이의 이야기가.

세계적인 봉감독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가장 개인적인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찰나의 순간, 우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엮어주기도 하지만 부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그의 삶이 그랬듯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인 듯 하지만 중간 중간 등장하는 낯선 이들도 등장한다.

<비타민>에 등장하는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흑인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주인공과 동병상련의 처지인 흑인 가정, 그리고 제빵사 <칸막이 객실>에서 자신의 가방을 잃고 만난 흑인들. 그들의 신분과 계급은 결코 멋지다고 할 수 없지만 주인공을 위로하고 깨닫게 하고 치유하게 만든다.

 

문체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쉬운 단어, 간결한 문장 하지만 행간에 숨은 여러 가지 감정과 상황들. 그 상상들이 그의 작품에 더 깊게 빠지게 만든다. 더 깊이 공감하게 하고 나조차도 몰랐던 감정들과 만나게 한다.

 

<대성당>은 그가 갱생의 삶을 시작하고 난 후 발표된 작품집이다. 카버의 삶의 태도의 변화는 작품의 변화에도 나타날 것이다.

그의 전작들이 궁금하다. 나쁜 레이 시절의 작품과 착한 레이의 작품을 비교해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댓글 5
  • 2021-05-28 17:16

    미국단편소설을 처음 읽은 거 같아요. 단편 특유의 서사는 시작이 끝인 느낌 아닐까요? ㅎㅎ 몇 편 읽어 나가다 보니 제게는 길이가 딱 좋더라구요.

    물방울님 덕분에 카버와 전 부인과의 관계를 자세히 알게 되니 더 잘 소설 속 부부의 이야기가 다가오더라구요^^

  • 2021-05-28 20:10

    여울아님, 아마 처음은 아닐걸요? 이런 저런 기회에 미국단편소설 읽었을 듯.^^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해도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나 <크리스마스 선물>, 에드가 알렌포우의 <도둑맞은 편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같은 게 있네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미국 단편소설의 계보도 알아보면 화려할 것 같아요.^^

    저는 <깃털들>을  다시 읽었어요. 이젠 처음 읽을 때처럼 그렇게 생경하진 않네요. 

    차분하게 읽어보니  다른 작품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요.

    별것 아닌 것 같은 장면들을 통해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그런 소설 쓰기의 방식이라고나 할까.

    <깃털들>은 이후 전개를 버드의 시선으로 뭉뚱거려 퉁치면서 소설이 끝나고 있다는 게 다른 이야기와 좀 다른 점인 것 같기도 해요.

    다시 읽으며 생각한 건데, 잭과 프랜은 평소에 거의 다른 사람과 교제가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자신들의 작은 울타리 안에서 폐쇄적이고 자족적으로 살던 사람들이 초대받아 간 버드의 집에서

    공작새를 보거나 석고로 뜬 못생긴 이빨모형을 보거나 어린 아이를 보게 되는 장면은

    그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낯선 감각과 인상의 홍수처럼 느껴지네요.

    그래서 그 날이 정말 특별한 날이었을 것 같아요. 

    그 경험이 그들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미세한 변화와 균열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겠지요?

    우리는 세미나에서 잭과 프랜의 변화에 대해 소설 안에서 인과를 찾으려고 애를 썼는데, 

    이 이야기를 끌고가는 버드라는 인물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깃털들>을 통해 제가 잘 모르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래서 이 이야기가 마치 두사람이 직장동료의 갑작스런 초대를 받아

    예상치 못한 낯선 경험을 하게 된 저녁 식사 자리 처럼, 제게도 레이먼드 카버를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구나, 싶네요.ㅋ

     

     

    • 2021-05-29 09:56

      선생님. 읽은지 20년 넘은 건 읽었다고 하면 안됩니당~

       

  • 2021-05-28 20:35

    일상속에서 소설적 소재를 찾아내서 섬세하게 표현하는 카버의 소설쓰기가 처음엔 많이 생소했는데 6편 읽는동안 조금씩 익숙해진것 같아요

    평범한 미국사람들의 일상을 엿볼수 있는데 사람들 사는 모습들은 참 비슷하구나 싶기도 하고 

    자전적소설은 아니라도 자기 이야기로 소설을 쓴다는 카버의 이야기가 맞는듯요

    물방울의 카버 배경이야기가 소설이해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 2021-05-29 14:14

    전 셰프의 집을 처음 읽었는데, 참 좋았었어요. 그리고나서 깃털들 읽었는데 '이 뜬금없음은 뭐지' 하면서도 작가에 대한 첫인상이 좋았어서인지 흥미롭더라구요.

    개인적으로 긴 호흡의 장편보다 단편을 좋아하는데, 카버의 문체나 글의 소재와 내용이 맘에 들어요. 

    전 그냥 책을 통해 작가를 알아가는거로 끝내는데 물방울은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보네요. 덕분에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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