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세미나 <페스트> 두번째 시간; 현실인가, 소설인가

Micales
2021-03-01 00:50
279

  확실히 비전 세미나는 문탁 생활을 오랫동안 해오셨던 베테랑 분들로 구성이 되어서 그런지, 노련하시다. 진심으로...그리고 그 사이에서 노련하지 못했던 나는, 미처 발을 제때에 빼지(?) 못하고, 끝끝내 걸리고 말았다...후기말이다. 오죽 내가 노련하지 못했으면 다른 분들 마저도 다음번에는 나와 함께 짝을 이루고 싶다고 말씀하셨겠는가('아~다음 번엔 재하랑 짝 해야겠네!! 뭐든 말하면 다 들어줄 것 같은데?'). 

  그래도 아직은 내가 막내니까, 열심히 해봐야겠다. 다른 분들처럼 노련(?)해지는 그 날까지!

 

  비전 세미나의 시작은 <페스트>와 함께 출발했다. 개인적으로도 한번 읽은 적이 있는 책인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겪은 코로나 속과 그렇지 않았던(정확히는 이렇게 될 거라고 꿈도 꾸지 못했던) 환경 안에서 읽을 때 생겨나는 경험은 사뭇 달랐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이 세미나를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닐까.

  <페스트>는 많은 일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소설 속의 까뮈의 묘사가 현재의 현실과 너무나 닮았기에, 그리고 코로나가 퍼지기 전과는 현재 상황이 현격히 달랐다는 점, 또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사실들이 모두 한데 뒤섞여 묘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과 소설과의 구분을 흐려놓았다. 

 

  누구나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할 때 '소설 쓰지 마'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오히려 소설, 그리고 그 비현실은 우리가 발딛고 서 있는 현실로부터 탄생한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서, 소설은 현실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페스트>의 그 모두가 예전에 읽었다면 비현실의 영역에 속하였겠지만, 지금, 시간이 흘러서는 마침내 진실로 현실이 되어 수많은 공감을 낳아내듯, 소설의 진실은 그것의 비현실, 창조성이 아니라, 그것이 말하려고 하는 미래, 혹은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의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비단 SF소설만이 그 자신의 미래를 보고 발견해내는 문제의식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설 그 자체, '거짓'이라고 불리우는 그것이 도리어 현실에서 발견하여 녹여내는 자기 내부에서의 현실 속을 구축해나가고, 그 속에서 우리들의 문제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가 까뮈의 '거짓'을 읽고, 지금에서야 만들어진 그 '거짓말 같은 현실'을 느끼고 나서 생각한 것은 그렇다. 소설의 거짓이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현실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다큐멘터리와 같은 '기록'들이 더 현실에 밀접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담은 '기록'과는 달리,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우리의 현실로써 나타날 수 있는 그 무엇을 포착해내는 것이 더 면밀히 현실을 분석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까뮈의 묘사가 굉장히 날카롭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까뮈가 자신만의 포착해낸 현실을 책에 녹여내기 위해 고찰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고전 문학, 즉 많은 '거짓'들이 우리들의 현실 또다른 '비전'을 찾아나가기 위해 중요한 것이지 않을까. 그만큼 현실과 더 밀접하기 때문에 말이다. 소설은 현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나타나는 어떤 구조들을 파악하는 것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문에, 이미 수십년 전에 쓰여진 <페스트>가 여전히 우리들의 현실에 침투할 수 있는 이유인것 같다. 

  책에서 그려지는 페스트는 단순한 질병 이상이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죽음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분노이자, 무기력감이자, 희망의 자리를 메운 절망이자, 뒤만 돌아 볼 수 있고, 앞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감염자 비감염자 모두를 잠식시키는 일종의 '늪'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루'는 말한다. '"그렇습니다.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고, 우리들 모두가 페스트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실은 모두가 페스트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타루는 그것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여기서 페스트는 질병이 아니다. 그보다도 마치 전염병처럼 빠르게, 조용히 모두를 감염시키는 '병적인' 어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페스트>의 시선은, 죽어가는 감염자들보다도, 살아서 여전히 투쟁하는 이들을 향하고 있다. 이들이 어쩌면 싸우는 그 동기는 그들 모두가 사실 그 안에 각기의 페스트를 지니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 사실을 자각했기에 싸워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때문에 외지인인 랑베르마저도, 자기가 이제는 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입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이 고장 사람이 아닌데요!" "지금부터는 유감입니다만, 선생은 이 고장 사람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                        *                         *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 십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우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언제나 올라올 수 있다. 언제나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에 타루와 리유와 그랑과, 랑베르와 그 모든 이들은 지루한 싸움을 계속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실히, 꾸준히 자기 자신을 살핌으로써만이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외부가 아닌, 우리들의 내부, 타루가 그랬었던 것, 깨달았던 것처럼, 우리들의 마음 속에 항상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애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독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계해야할 대상은 다름아닌, 나 자신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리유의 그 지루하지만 꾸준함은 자기 스스로 페스트에 감염되지 않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의사는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시가의 소음이 대뜸 커졌다. 이웃에 있는 어떤 공장에서 기계톱의 짧고 반복되는 소리가 싸각싸각 들려왔다. 리유는 머리를 흠칫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저 매일매일의 노동, 바로 거기에 확신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일이었다.’

 

 아마도 식상한 질문이겠지만, 현재 코로나는 단순한 질병을 넘어 우리에게 어떤 의미들을 재생산하고 있을까. 아니, 이미 우리들의 내부에 이미 있는 것이 아닐까.

댓글 4
  • 2021-03-01 21:49

    하하.. 첫줄에서 노련하다는 말이 칭찬인 줄 알고 읽다가 뒷통수를 맞았습니다.ㅋㅋ
    아무튼.. 이렇게 진지한 후기를 읽으니 제가 한 건 아니지만 (노련하게)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미나에서 '페스트란 무엇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시 그 주제를 환기시켜주는군요.
    오늘 지젝이 코로나와 관련하여 아감벤을 비판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우리의 주제와도 관련되는 것 같아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지젝은 아감벤의 주장을 이렇게 인용합니다.
    "의료의 이름으로 자유를 폐지한다면 결국 의료도 폐지될 것이다. 삶의 이름으로 인간적인 것을 폐지한다면 결국 삶도 폐지될 것이다."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방역조치가 시민을 옥죈다고 비판하는 아감벤에게 지젝은 그의 말을 되돌려 주려고 합니다.
    "자유의 이름으로 의료를 폐지한다면 결국 자유도 폐지되고 말 것이다. 인간적인 것의 이름으로 삶을 폐지한다면 결국 인간적인 것도 폐지될 것이다."
    까뮈의 <페스트>는 타루, 랑베르, 그랑, 리유들의 투쟁을 페스트와 싸우며 고뇌하는 여러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 속에서 코로나와의 싸움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일까요.
    저는 지젝의 글을 읽으며 그에 대한 대답이 결코 양자택일 같은 간단한 것이 될 수 없음을 새삼스럽게 깨닫습니다.
    타루가 페스트와의 싸움 속에서 자신 속의 페스트를 발견하고 마음의 평화를 잃은 것 역시
    그것이 간단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와 여기에 더하여 백신까지.
    자유와 인간적인 것, 의료와 삶을 묻는 지젝과 아감벤의 질문에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 속에 있는 코로나, 우리가 싸워야 할 코로나는 대체 어떤 것일까요?
    생각이 엇갈려 말이 되지 않는 말을 속으로 웅얼거리다보니 다시 <페스트>를 읽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나 지금은, 일단 다음 책부터 들고 읽으면서 이 질문을 더 밀고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 2021-03-02 20:58

    같이 읽지 않았다면 결코 읽지 않았을 것이기에 비전세미나에 감사를 보냅니다~~ 코로나와 지금의 나를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볼 기회를 가졌어요. 게다가 소설 책 너무 오랜 만이네요^^

  • 2021-03-03 00:08

    페스트는 갑자기 나타났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사라졌지만, 코로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변이가 나타나는 것 보면. 그렇다면 이젠 싸우지 말고 같이 사는 방법을 찾아봐야하지 않을까요.
    그러는 사이 지금보다 더 효과가 좋은 치료제나 백신이 나올 수도 있겠죠.
    코로나가 있든 없든 우리의 삶은 계속 되어야만 할 것이고, 제가 그랑이라는 인물에 끌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인 것 같아요.
    매일 행하던 그만의 의례, 이 책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 2021-03-04 13:27

    우선 '노련해서' 죄송 ㅎㅎ
    하지만 이 후기를 보니 역시 잘 한 것 같군요.
    전염병이 있기 전의 노멀, 전염병 이후의 뉴노멀...
    그게 얼마나 다른 것인지 혹은 다르지 않은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의 상황도 지젝과 아감벤의 주장들처럼 자유가 먼저인지 의료가 먼저인지, 삶은, 또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다보니 더욱 더 질문만 끝없이 이어집니다.ㅠㅠㅠ
    명쾌한 해답이야 찾을 수 있을거라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질문이 조금이라도 더 깊어지기를 기대하며
    열심히 읽고 계속 세미나 같이 해봅시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6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6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올려주세요 (6)
경덕 | 2024.04.15 | 조회 76
경덕 2024.04.15 76
75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5주차 후기 - 후기 고대철학 (2)
효주 | 2024.04.14 | 조회 56
효주 2024.04.14 56
74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5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올려주세요 (5)
효주 | 2024.04.07 | 조회 64
효주 2024.04.07 64
73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4주차 후기 - 아리스토텔레스 세미나를 하였다 (4)
덕영 | 2024.04.06 | 조회 78
덕영 2024.04.06 78
72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4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올려주세요 (5)
경덕 | 2024.04.01 | 조회 91
경덕 2024.04.01 91
71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3주차 후기 - 플라톤의 이데아를 찾아서... (5)
경호 | 2024.03.29 | 조회 113
경호 2024.03.29 113
70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3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올려주세요 (6)
효주 | 2024.03.25 | 조회 80
효주 2024.03.25 80
69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2주차 후기 - 불가식길 이섭대천 (3)
경덕 | 2024.03.23 | 조회 97
경덕 2024.03.23 97
68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2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올려주세요 (6)
경덕 | 2024.03.17 | 조회 99
경덕 2024.03.17 99
67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1주차 후기 (4)
효주 | 2024.03.16 | 조회 143
효주 2024.03.16 143
66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1주차 질문과 발제문은 여기에 모아주세요 (5)
효주 | 2024.03.11 | 조회 132
효주 2024.03.11 132
65
[개강 공지] 3월 12일, 서양철학사 세미나를 시작합니다!
효주 | 2024.03.09 | 조회 128
효주 2024.03.09 128
64
[서양철학사 읽기 세미나]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현대 철학까지 (10)
경덕 | 2024.02.24 | 조회 980
경덕 2024.02.24 980
63
들뢰즈, 5장 영화로서의 세계_이미지의 기호론 요약 (3)
봄날 | 2022.02.23 | 조회 204
봄날 2022.02.23 204
62
들뢰즈, 유동의 철학 2장 (2)
토용 | 2022.02.15 | 조회 237
토용 2022.02.15 237
61
들뢰즈,유동의 철학1-1 (4)
요요 | 2022.02.08 | 조회 334
요요 2022.02.08 334
60
시즌 2 에세이 (8)
토용 | 2021.12.21 | 조회 359
토용 2021.12.21 359
59
시즌 2 에세이 개요 (7)
토용 | 2021.12.14 | 조회 354
토용 2021.12.14 354
58
붓다의 연기법과 인공지능 네번째 시간_질문 (5)
봄날 | 2021.12.07 | 조회 307
봄날 2021.12.07 307
57
붓다의 연기법과 인공지능 세 번째 후기 (1)
진달래 | 2021.12.07 | 조회 298
진달래 2021.12.07 29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