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영 작가와의 모비딕 북토크>후기

산책
2020-12-18 19:19
590

올해는 서생원 덕분에 혼자서는 엄두를 내지 못 할 문학작품들을 읽어낸 나름 뿌듯한 한 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볼 때마다 '독서빚'을 진 것처럼 마음이 무겁던 '모비딕'을 읽고 함께 얘기 나눈 시간이 가장 기다려지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인물 한 명 한 명이 모두 개성과 매력이 넘치고 절로 줄이 그어지는 멋진 표현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총 700여 페이지에 135장이나 되는 장편을 다섯 명이서 같이 읽어가다 보니 집중력이 흐려져 놓쳤던 인물이나 문장들 그리고 서사까지 좀 더 촘촘하게 읽어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책읽기가 끝남과 동시에 사라졌을 사유가 오찬영 작가님과의 북토크를 통해 다시 살아나 생각지도 못 했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고 이렇게 후기를 쓰는 영광을 얻게 되니 모비딕과 연관된 사유에 또 한 겹의 입체감이 생기는 듯 합니다.

 

  그럼 먼저 북토크의 구성을 간략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사십 분 정도 걸렸고요, 순서는 오찬영 작가가 집필하신 '모비딕, 삶과 운명을 탐사하는 두 개의 항해로'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 크로와상의 공연, 질의응답, 작가의 소감. 이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얘기 중에 모비딕의 인물들 중 '에이해브'에게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는 것이 계속 귓가를 멤돌았는데 그 이유는 세미나 멤버들 중에서는 에이해브를 긍정적으로 보신 분이 안 계신 것으로 기억되고 또한 거기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던지라 중장년층과 청년층의 차이인가? 뭐 그런 생각을 하느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작가님이 쓰신 책에도 나와 있듯이 빠져들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절대 매력의 소유자 '퀴퀘그'  생각만 하느라 다른 분들은 누구한테 가장 큰 매력을 느꼈는지 제대로 못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

 

 

  문탁의 청년 그룹 '크로와상'이 부른 노래는 악동뮤지션의 ‘뱃노래’와 ‘고래’였는데 모비딕 북토크와 어울리는 노래로 잘 선정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룹 멤버분들이 진짜 악동뮤지션과 닮아보이셨어요.

 

 

공연을 감상하며 참여자분들은 차분히 질문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세미나에 참여했던 멤버들 위주로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인디언님이 질문의 테이프를 끊어주셨는데 인터넷도 자주 끊기는 바람에 그만... . 저의 집중력도 덩달아 끊겨서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 했습니다.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

 

다음으로 물방울님께서는 경이로움에 대한 동경과 질투 이외에 에이해브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물으셨는데 오찬영 작가님은 다리가 잘린 후에도 다시 그 두려움과 마주하는 에이해브의 도전정신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초록님께서는 에이해브와 트럼프가 닮았다는 것에 계속 의문을 가지셨고 이에 대해 작가님은 트럼프는 대놓고 에이해브의 모습이라면 오바마는 잘 포장된 에이해브라고 하셨습니다.

 

고은님께서는 종교와 철학의 넘나듦 속에서 종교의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에 대해 물으셨고 이에 대해 작가님은 그동안 자신이 믿어온 종교를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모두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만큼 철학 탐구 속에 성경의 재해석(생성)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확장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후기 작성자로 간택받았더라면 훨씬 더 집중을 잘 했을텐데  '~같습니다.'라는 말만 자꾸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

 

저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유쾌한 전복, 예를 들면 인간적인 것들을 보조관념으로 수단화하여 고래나 바다의 속성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방식을 통해 허먼 멜빌이 자연과 인간의 위치를 전복시키는, 즉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에서 매력을 느꼈는데 작가님도 그런 점에서 매력을 느꼈는지와 북토크를 하면서 갑자기 든 내 안에 에이해브, 이슈메일이 둘 다 있고 어떤 사건들을 계기로 그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는 갑작스런 깨달음에 기초해 작가님은 소설 속 인물들 중 원래의 본인은 누구와 가장 흡사하고 현재는 어떤 인물로 전이 중이며 그렇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작가님도 저와 같이 그런 전복적인 표현에 매력을 느꼈고 원래의 본인은 에이해브와 가장 가깝지만 지향점은 이슈메일에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 그리고 문탁님이 이 책을 쓰는 동안 모비딕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물으셨는데 갑자기 채팅창에 아무래도 우리 들으라고 물으신 것 같다는 취지의 글들이 몇 개 뜨기도 해서 갑자기 카프카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카프카는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의 글을 썼을 뿐인데 그 저의를 파악하느라 진땀 빼는 독자들의 모습이 연상됐달까요.

 

크로와상 멤버분들도 질문을 했는데 비대면이라는 편안함 때문인지 집중이 잘 안 되어서 기억이... .

 

그래도 질문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이 있었는데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기까지 자신의 생각을 길게 길게 말씀하신다는 점이었습니다.문득 문탁식 질문 스타일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정작 '문탁'님의 질문은 단도직입적이어서 헷갈리네요.

 

마지막으로 오찬영 작가님의 소감을 듣고 인증샷 찍은 후 북트크를 마쳤습니다.

 

모비딕과 관련된 것 이외에 글쓰기와 관련된 것도 질문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오찬영 작가님이 공부하고 계시는 '이문서당'이 어떤 곳인지 관심이 생겨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는데 제대로 된 정보는 얻지 못 했습니다. 저랑 제 아들이랑 둘 다 상담 한 번 받아보고 싶습니다ㅋ

 

아참 그리고

모비딕 세미나 첫 시간에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소외감을 느낀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거대한 고래를 잡겠다는 원대한 야망을 품어본 적도 없고 위험과 비밀이 난무하는 거친 바다 위를 몇 년씩 떠도는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엄두를 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소설을 통해 거친 남성들의 마초적인 세계를 엿보고, 내것이 아닌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대리만족 정도를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5회에 걸쳐 모비딕을 다 읽기까지 그 현란한 표현들과 개성 넘치는 매력들에 푹 빠져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느꼈던 거리감은 여전히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오찬영 작가와의 북토크를 마친 다음 날 밤이었습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저의 사랑스러운 둘째, 강아지를 데리고 밤산책을 나갔습니다.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하나, 나름의 구상에 빠져들었고 그러면서 문득 어떤 깨달음이 왔습니다.

 

아, 나도 이미 피쿼드 호를 타고 거친 바다 위를 떠돌고 있었구나.

 

아나키스트에 염세주의자였던 제가 어떤 소수정당에 매료되어 정말 그럴 줄 몰랐던 정당활동을 너무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비딕 대신 새벽이를 만났고 파괴가 아닌 돌보미가 되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 사진이랑 동영상 올리기가 잘 안 되네요. 이 또한 생략하겠습니다... .

댓글 6
  • 2020-12-18 22:32

    산책님, 후기 감사합니다.
    본문에 사진2장 추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찬영님이 공부하는 곳은 남산 감이당입니다.ㅎㅎ

    • 2020-12-18 23:26


      사진 첨부 감사합니다.
      그리고 감이당이었군요.
      바로 검색 들어가겠습니다^^

  • 2020-12-18 22:54

    와 새벽이 돌보미 하고 계시는군요!! 저도 자원신청까지 했다가 코로나 때문에 취소했었는데...
    언제 이야기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후기 잘읽었습니다.

    • 2020-12-18 23:30

      고은님도 새벽이를 알고 계셨군요.
      완전 반갑습니다.
      저는 12월 보듬이 신청해서 매주 한 번씩 가고 있어요.

      가보시면 자꾸 눈앞에 아른거리실 거예요ㅋ

  • 2020-12-19 00:16

    산책님이 제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현장감느껴지는 후기네요^^
    저는 에이해브에 대해 좀더 생각하게 되네요^^
    싫으면서도 이에 매료되는 이유가 뭘까요?
    이상하다 ......ㅋㅋ

    • 2020-12-19 09:40

      강한 것에 끌리는 본능?
      거저 다 운명이외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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