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다섯번째 후기

요요
2020-12-12 11:16
461

<모비딕>은 모두 13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읽은 106장부터 135장은 <모비딕>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다.

흰고래 모비딕을 찾아 낸터컷을 출항한 피쿼드호가 이런 저런 일을 겪은 뒤

마침내 적도 근처에서 모비딕과 조우하여 세번의 승부겨루기를 하는데...

 

모비딕을 만나기 전 우리의 이야기꾼 이슈마엘은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던 몇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바로 피쿼드호의 목수와 대장장이 퍼스, 그리고 포경보트를 탔다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구조된 핍과 에이해브의 그림자 자아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유령같은 인물 페달라이다.

 

목수로부터 시작해보자.

 

"토성의 위성들 사이에 술탄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 아주 추상적인 인간 하나를 떠올려보자. 그러면 인간이 경이롭고 장엄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인류전체를 생각하면 당대의 사람들이거나 유전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대부분 쓸모없는 복제품 군상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미천한 신분이어서 고귀한 인간성의 모범 사례와는 거리가 멀지언정 피쿼드호의 목수는 결코 복제품이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이 무대에 친히 등장하게 된 것이다."

 

피쿼드호에 탄 사람 중에 복제품이라 할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하나가 다 고유성을 가진 특이한 인물들이었건만, 멜빌은 목수에게 특별한 애정을 표현한다.

목수는 장인으로, 피쿼드호에서 벌어지는 온갖 수선과 제작을 떠맡고 있다.

마침 세넷의 <장인>을 읽고 있던 나는 목수에 대한 멜빌의 묘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작업할 때의 그의 침착함과 무심함, 비인격적 태도, 냉정함, 비타협성은 주의깊게 묘사된다.

세넷이 장인노동을 통해 발견한 특징들이 <모비딕>의 목수에게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이런 표현을 보라.

 

"그는 순수하게 손만을 움직였으며, 그의 뇌는 만약에 그에게 뇌라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일찌감치 손의 근육으로 스며들어간 게 틀림없었다."

 

대장장이는 장인이면서 다른 한편 육지에서 모든 것을 잃고 상심하여 바다로 왔다.

그는 용광로의 뜨거운 불 앞에 앉아 온몸을 거슬리고 있다.

그런 그에게 에이해브는 이렇게 묻는다.

 

"미치지도 못한 채 온갖 불행에 시달리는 사람을 보면 참을 수가 없어. 대장장이 자네는 미쳐야 마땅한데 어째서 미치지 않는거지? 어떻게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는 건가? 자네가 미칠 수 없는 건 하늘이 아직도 자네를 미워하기 때문인가?"

 

대장장이가 미쳐야 마땅한데 미치지 않은 사람이라면, 피쿼드호에는 진짜로 미친 두 사람이 있다.

바로 핍과 에이해브다.

모비딕과의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잠을 잊은 에이해브는 핍에게 위안을 얻는다.

에이해브는 핍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보아라! 신은 온통 선이며 인간은 온통 악이라 믿는 자들아, 보아라! 전능한 신들은 고통받는 인간을 외면하지만, 인간은 비록 백치여서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를지언정 사랑과 감사의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득한 것을."

 

손을 잡고 가는 에이해브와 핍.

맨섬의 늙은이는 "저기 미치광이 둘이 가네"라며 중얼거린다. "하나는 강해서 미치고 하나는 약해서 미치고"라고 덧붙이며.

 

유령같은 존재 페달라는 마치 강해서 미친 에이해브의 거울 이미지와 같다.

그들은 둘다 잠을 자지 않고 갑판을 서성이고, 서로에게서 서로의 모습을 본다. 마치 서로를 감시하는 듯하다.

결코 끊을 수 없는 줄로 이어져 있는 두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우리는 전혀 알 수가 없다.

페달라는 명령자 에이해브의 명령을 듣는 것이 아니라 에이해브의 내면에 자신의 명령을 심어놓는 자이다.

그는 에이해브와 함께 모비딕을 쫓는 사냥꾼이며, 모비딕을 향한 질주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결국 페달라는 포경선의 밧줄들과 함께 모비딕의 몸에 묶여 모비딕과 하나가 된다.

죽음으로도 모비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운명, 이들의 추격은 결국 죽음을 향한 것이었던가?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에이해브는 방향과 속도를 가리키는 모든 기계와 작별한다.

이제 더이상 사분의도 나침반도 필요없어진 것이다. 심지어 측정기와 측심줄, 마지막에는 풍향을 알 수 있는 깃발까지!

모비딕을 눈 앞에 둔 지금, 피쿼드호의 항해를 도왔던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오직 자신의 눈과 귀와 몸에 의지해서 에이해브는 모비딕을 쫓고 모비딕과 싸울 의지를 불태운다.

그는 돌아갈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린 것일까?

 

퇴로를 닫아버린 에이해브가 남겨놓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1등 항해사이며 신실한 스터벅이다.

에이해브는 포경보트에 타기전 스터벅에게 피쿼드호의 운명을 맡긴다. 

그러나 스터벅이 예감했듯이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쫓는 한, 피쿼드호조차 에이해브의 운명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에필로그에서 우리는 다시 퀴퀘그와 이슈마엘의 운명의 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퀴퀘그는 관을 준비할 정도의 열병에 시달렸으나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퀴퀘그의 관은 피쿼드의 호의 구명부표로 사용되게 된다.

 

"지금 여기서 무자비한 죽음의 무시무시한 상징이 하찮은 우연으로 말미암아 극도의 곤경에 빠진 목숨에 대한 구원과 희망의 표상이 되었다. 관으로 만든 구명부표라! 이보다 심오할 수 있을까? 어떤 영적인 차원에서, 관이란 결국 불멸성을 보존하는 그릇이라고 볼 수 있을까?"(에이해브의 독백)

 

죽음의 기호가 생명의 기호로 바뀌는 반전, 우주에서는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퀴퀘그의 관은 이슈마엘을 살게하는 구명정이 되었다.

목숨을 걸고 친구를 지키겠노라던 야만인 퀴퀘그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 소설의 말미에는 또 다른 반전이 준비되어 있었다.

고래를 쫓다 포경보트에 탄 자식을 잃은 레이철호의 선장은 에이해브에게 단 며칠만이라도 보트수색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에이해브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에게는 모비딕을 쫓는 일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퀴퀘그의 관에 매달려 바다를 떠돌던 이슈마엘을 구조한 것은 자식을 찾느라 그 해역에 머물던 레이철호였으니!

이 또한 운명의 여신의 장난이 아니고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세미나에서 레이철호의 선장이 자식 하나를 잃은 것인가, 둘을 잃은 것인가를 둘러싸고 왈가왈부했다.

불현듯 레이철호의 항해사가 구조한, 사람이 많이 탄 보트에 선장의 아들이 타고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슈마엘은 아브라함에 버림받은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가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레이철(호)에 구조된 것이니.. 이 또한 성경의 상징을 비튼 것은 아닐런지..

 

지난 시간까지 <모비딕> 전체를 통해 에이해브에 대한 묘사는 감질날 정도였다.

그런데 모비딕을 쫓는 격추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에이해브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된다.

이슈마엘이 고래의 철학자였듯이 그 또한 고래를 쫓는 광기의 철학자이자 운명의 철학자였던 것이다.

신에게 도전한 에이해브는 신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신에게 죽음으로 맞선 것일까?

 

"에이해브는 과연 에이해브인가? 이 팔을 들어 올리는 건 나인가, 신인가, 아니면 누구인가? 하지만 위대한 태양도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하늘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면, 단 하나의 별도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서만 회전할 수 있다면, 이 작은 심장은 어떻게 고동치고 이 작은 뇌는 어떻게 생각이라는 걸 하는가? 신이 고동치고 생각하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내가 아니다. 하늘에 맹세코, 우리 인간은 저기 양묘기처럼 이 세상에서 빙빙돌고, 그걸 돌리는 나무 지레는 바로 운명이다. 그리고 보라! 언제나 미소짓는 하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보라! 저기 저 다랑어를! 저 다랑어가 날치를 쫓아가 물어뜯게 하는 건 누군가?"(132장, 에이해브의 독백)

 

피쿼드호의 우주는 그렇게 종말을 맞이하였다.

피쿼드호에 탄 30여명의 삶도.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까지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에 충실했으니,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 침몰하는 배의 돛대 위에 있던 인디언 타슈테고의 망치질이었던 것이다.

그 망치질을 어리석음이라고 해야할지? 고결한 야만인의 침착함이라고 해야할지? 혹은 운명애라고 해야하나?

 

(오늘 아침도 간병인의 전화를 받고 심란했는데

제 후기 역시 해야 할 일을 하는 타슈테고의 망치질 같은 게 아닌가 싶네요.ㅠㅠ)

 


다음주는 <모비딕>을 리라이팅한 오찬영작가를 모시고 북토크를 합니다.

오찬영의 책을 읽으면서, 나라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쓰고 싶은지를 포함하여

작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지 생각해 오도록 해요.

5주에 걸쳐 읽은 <모비딕>을 총정리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뵈어요~~

 

 

 

 

 

 

댓글 2
  • 2020-12-12 20:01

    심란한 와중에도 모비딕을 잘 마무리해주는 후기 감사해요^^
    참 흥미롭게 매주 다음 내용을 기대하며 읽은 모비딕
    다음주에 잘 마무리해요~~

  • 2020-12-13 19:11

    모비딕이라는 대서사시의 피날레를 요요님의 생동감 넘치는 후기로 다시 읽으니
    뭔가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에이해브의 독백처럼 아무리 강한 자도 약한 자도 현명한 자도 어리석은 자도 간사한 자도
    결국은 모두 운명을 사는, 운명의 노예들일뿐인 것 같다는 각성이 들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무한 연민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목수와 대장장이 그리고 페달라까지 느지막하게 등장한 인물 한 사람 한 사람도
    모두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힘드신 와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여러 세미나와 모임을 주최해가시는 요요님

    감사드리고 또 다른 세미나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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