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가족④] 지하실에 탈출구는 있을까?

우현
2020-09-18 22:05
372

 

청년과 가족 ④ 지하실에 탈출구는 있을까?

- 고미숙, [기생충과 가족 – 핵가족의 붕괴에 대한 유쾌한 묵시록]을 읽고

 

 

 코로나19가 터지기 이전, 국내외로 가장 ‘핫’했던 토픽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었다. “한국의 정서를 잘 담아낸 영화”, “소름끼치는 복선과 반전” 등으로 국내 미디어를 장식했었고, 각종 국제 영화제를 휩쓸며 해외까지 난리가 났었다. 그 당시 유투브에서는 “당신이 놓친 기생충의 복선 12가지”라던가, “기생충 결말 완벽 해석 총정리”와 같은 컨텐츠가 질리도록 올라와 있었다. 이젠 벌써 개봉한지 1년이 훌쩍 넘어버렸고(아카데미 상을 수상한지도 반년이 넘었다.), 유투브에서는 아무도 [기생충]을 다룬 컨텐츠를 만들지 않는다. 북튜브 빼고..ㅎ

 북튜브의 가족특강 첫 번째 시리즈인 [기생충과 가족 – 핵가족의 붕괴에 대한 유쾌한 묵시록]에선 [괴물]에서부터 이어져온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핵가족 붕괴에 대한 시선으로 푼다. 그리고 현대 핵가족과 자본주의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폐쇄회로를 탈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기생충 : 봉준호의 완전한 염세

 

그러니까 이제 더 이상의 출구는 없다는 선언이랄까요. ... [괴물]에서는 송강호가 딸을 잃은 대신 고아 소년과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설국열차]에서는 앞으로 앞으로 가다가 기차의 옆칸으로 탈출했죠. ... 모두가 얼어붙은 설원이긴 했지만 북극곰을 등장시킴으로써 삶이 가능하다는 암시를 했고, [옥자].. ... [기생충]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완전히 사방이 막혀버린 세계죠.

[기생충과 가족 핵가족의 붕괴에 대한 유쾌한 묵시록] 94p.

 

 핵가족과 자본주의의 영향아래서, 가족 이외에 다른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무력한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혈색이 도는 이야기는 ‘돈’이다. 모두가 돈 많은 백수, 건물주를 꿈꾸고,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밟고 가야할 발판으로 생각한다. 이런 사회구조가 지속되다보니 차곡차곡 월급을 모으는 건 다 옛말이 되었고, 어떻게든 크게 한탕 쳐보려고 주식을 해보거나, 비트코인에 혈안이 되며, 돈 된다는 사업은 앞 다투어 시작한다. [기생충]의 명성을 이용하여 조회수를 받아보려던 수많은 유투버들도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기생충]의 기생충이었던 셈ㅎ

 “이런 사회 속에서도 한줄기 희망은 있지 않을까?”가 봉준호의 전작들이 하던 말이었다. 전작들과 [기생충]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말에 희망 따윈 없다는 것이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이런 결말은 관객들을 찝찝하고 심란하게 만들었고, 그렇기에 기분 나쁜 영화였다고 평가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왜 마음에 들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염세적인 작품들을 좋아한다. 해피엔딩을 싫어하고, 꿈도 희망도 없이 어두운 걸 좋아한다. 이런 나의 취향을 이해 못하는 친구와 함께 기생충을 보았는데, 그 친구는 찝찝한 영화라고 평했었다. 왜 ‘이런 걸’ 좋아하냐는 그 친구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그게 현실적이니까.” 낭만적인 것들은 어느새 유치한 게 되어버렸다. 염세적인 걸 공감하고 즐기는 하나의 코드, 아웃사이더들의 취향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코드는 한편으로는 매우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폐쇄회로에 탈출구는 있을까?

 

 이 염세와 무력감은 혐오와 폭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그 극단을 보여주는 사례가 ‘일베’같은 커뮤니티일 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무차별적인 혐오는 자신들도 ‘루저’나 ‘아웃사이더’이기에 상대방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일종의 무의식에서 기반 됐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비하하고 멸시하는 행동을 윤리적 프레임에서 완전히 벗어나 하나의 웃음코드로서만 소비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올바른 프레임을 벗어날수록 더 유니크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베’의 수위는 높아져만 갔고, 결국 그 강도가 너무나도 지나쳤기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매장당했다. 여전히 (남초 여초 관계없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염세에서 무력감, 혐오의 정당화로 이어지는 코드가 만연하다. (금수저, 욜로 등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염세적인 게 나쁜 것이라고 하기엔 사회구조가 문제라는 걸 우린 알고 있다. 그리고 핵가족과 자본주의 폐쇄회로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기생충]은 묻고 있다. 이에 대해 고미숙샘은 이 끔찍한 현실을 응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기생충]에서의 키워드이기도 했던 ‘계획’을 버리는 것. ‘명문대를 가야해, 결혼을 해야해(핵가족을 이루어야해), 돈을 얼마나 벌어야해, 주식투자를 해서 인생역전을 해야해’ 등등과 같은 사회로부터의 정언명령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우리는 핵가족을 벗어난 새로운 관계들을 상상하고, 빚어낼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문탁에서 활동하는 나조차도, 그러는 게 정말 가능한지, 그런다고 이 자본주의의 폐쇄회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긍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에너지에 휩싸인다. 그리고 무력해지는 것도, 돈을 벌어서 방탕한 소비로 그 무력함을 지워버리는 것도 정말이지 쉬운 일이다. 적어도 출구를 찾아 나서는 것보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함정이라 한들 그 성공의 달콤함을 잊을 순 없다. 차라리 쾌락 주의자처럼 살다가 무책임하게 세상을 뜨는 게 더 매력적으로 들린다.

봉준호도 포기한 것 같은 이 현실 속에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도 그렇고, 여러모로 활기가 떨어지는 시기이다.

 

댓글 1
  • 2020-09-19 01:47

    기생충을 보며 한탕 치는 것 또한 엄청난 노력의 결과물이네 난 못해~
    그냥 살던대로 사는게 제일이야 라는 생각이 들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는데..ㅎ
    우리 이정도면 잘 살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세상에나 나에게나 주변사람들에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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