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9회]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 <돈 컴 노킹(2005)>

띠우
2022-01-17 03:46
311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1. 퇴물 카우보이, 어머니를 찾아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사적공간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다른 입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남과는 다른 정도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람과 휴대폰을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 여섯 명의 생각에서 차이들이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 몸의 일부인 젊은 세대라면 당연히 사적공간이라는 쪽이 강하겠지만, 전제가 부부나 가족이 되면 그 경계에 대해 모호한 입장들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만큼 어떤 잘못도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이 여러 매체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환상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의 오프닝은 인상적이다. 검은 화면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주인공의 두 눈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광활한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인물의 모습에 정통 서부극인가 할 찰나에 볼품없고 작은 규모의 영화촬영장이 보인다. 과거 서부극의 인기스타였던 하워드(샘 세퍼드)를 내세워 이제는 한물간 서부극을 찍는 현장인데 주인공이 촬영장을 무단이탈하는 모습이었다. 술과 마약, 돈과 섹스에 둘러싸여 방탕한 삶을 살았던 하워드는 현재 늙고 초라하다. 영화는 하워드의 초점없는 시선과 아름다운 풍경을 어긋나게 보여줌으로써 인물의 고립감을 증폭시킨다. 무책임하게 도망친 그는 30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어머니(에바 마리 세인트)에게 찾아간다.  

 

영화사에서는 계약을 위반한 그를 잡기 위해 서터(팀 로스)라는 인물을 보낸다. 그는 도망친 사람들은 어머니를 찾기 마련이라며 하워드의 발밑까지 추격한다. 중요한 사건은 여기서 시작된다. 하워드에게 다 큰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수 년 전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손자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 사실을 하워드에게 전해줄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가 스크랩해둔 사진첩에서 그는 도린(제시카 랭)과 찍었던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는데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촬영지에서 찍었던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를 만나도 이전과 별 다를 바 없이 하워드는 불안해하며 카지노에 들러 술을 마시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그는 그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길을 나설 수밖에 없어 도린과 아들이 있다는 몬태나 주의 뷰트로 향한다. 영화는 하워드가 자신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일종의 로드무비다. 

 

2. 난 그런 여자가 아니야

 

그런데 하워드에게는 아들 얼(가브리엘 만)뿐만 아니라 딸인 스카이(사라 폴리)도 있었다. 서부극이 부흥하면서 한창 영화촬영지로 북적거렸던 뷰트는 그들 모두의 과거와 연결된 도시다. 물론 하워드는 그녀의 존재도 모른다. 스카이의 어머니는 혼자 아이를 낳아 키웠고, 아버지의 존재를 따뜻한 이야기로 남겨주었다. 스카이는 아버지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곤 했는데 어머니의 죽음 이후 부모가 맺어졌던 도시 뷰트에 왔다. 비슷한 시기에 도린은 뷰트에서 얼을 낳았고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자세한 설명없이 살아왔다. 서부극의 쇠퇴와 함께 이 도시도 소외되며 쇠락해갔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화면의 색감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공허한 뒷모습은 더 쓸쓸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 그들 모두는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태어나 하워드를 처음 마주한 아들과 딸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얼은 불안한 행동으로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적대적이다. 반면 딸은 반짝반짝하는 눈빛에 그리움을 가득 담아 그에게 먼저 말을 걸고 뷰트에서 가정을 꾸리라고 조언한다. 또 이복형제인 얼에게도 따뜻하게 아버지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데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스스로도 현실보다는 꿈이 좋다고 말한다. 자신이 사진을 보면서 키워왔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모습이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린이 있다. 그녀는 쿨하게 하워드를 대한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아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지만 자신이 무책임했던 부분은 감내하고 사실을 전한다. 막무가내 하워드에, 현실감각 떨어지는 스카이에, 아버지와 판박이로 보이는 얼까지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도린이란 존재만으로도 이 영화는 다시 볼 만 했다.

 

얼이 2층에서 창밖으로 집어던진 소파에 앉아서 한참동안 생각에 빠졌던 하워드는 아침 일찍 도린을 찾아간다. 그는 자신이 만든 불행의 연속을 끝내는 방법으로 도린에게 가정을 꾸리자고 제안한다. 자기가 아들이 아닌 도린을 찾아온 것임을 이제 막 깨달았다고. 기막힌 전개다. 모든 상황에 침착했던 도린이 그 순간 불같이 화를 낸다. 자기 실패나 공허감을 마주하지 못하고 가족의 뒤로 숨어버리려는 하워드에게 겁쟁이라고 욕하며, 시간이 흐르면 옛일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세상 어딘가에 헌신적인 여자가 있다고 믿느냐고, 그 역할을 자신에게 해달라는 거냐고 묻는 도린. “난 그런 여자도 아니고 그렇게 될 일도 없어”라고 외친 후 그녀는 자기 길을 가버린다. 하워드는 잠시 그녀를 따라가다가 이내 우왕좌왕한다. 그가 정착할 곳은 여기도 아니다.

 

 

 

3. 다시 길 위에서 시작이다

 

도린과 헤어지고 술을 마시다 차에서 잠든 하워드를 서터가 마침내 찾아낸다. 그는 영화 <서부의 유령>의 계약 위반 통지서를 들이밀며 촬영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영화 제목 한 번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제 서부유령 하워드에게 서터의 등장은 반가울 지경이다. 마침내 이곳을 떠날 이유가 생겼다. 황량한 미국 서부를 가로질러 과거를 향해 먼 길을 왔던 하워드는 가족을 만났지만, 이것도 하나의 일탈로 끝나버린다. 현재를 살아가기에는 그가 여전히 과거의 겁쟁이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어딘가 존재할지 모르는 구원의 빛을 향해 길을 떠나는 인물들은 빔 벤더스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다. 1984년 발표했던 <파리 텍사스>의 주인공 트레비스가 그러했듯이, 2006년의 하워드도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지 못하고 길 위로 다시 나선다.

 

하워드는 각박하고 고독한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과거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현재를 마주하지도 못한다. 계속 회피하고 과거도 현재도 아닌 불완전한 경계선에서 살면서 암담한 미래를 예감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의 문제들로부터 자기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것은 지독한 환상이다. 특히나 모성신화와 같이 여성을 사랑과 포용을 갖춘 환상적인 구원자로 바라보는 시선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때로는 종교가, 공부가, 이성이 그리고 말 그대로 가족이 우리의 문제에 답을 던져줄 수도 있다. 다만 그것들이 하나의 진리처럼 오지는 않을 것이다. 똑 떨어지는 답을 찾기 어려운 우리 삶에서 ‘~때문에’라는 말이 정답인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부이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이라는 말들은 실제 삶 속에서 모순이 될 때가 많다. 전혀 그렇지 않은 사인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삶이란 얼마나 숨 막히겠는가.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삶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것은 현재 뿐이고, 이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전부구나”

 

이것은 같은 해 개봉되었던 짐 자무쉬의 영화 <브로큰 플라워>에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 돈(빌 머레이)도 하워드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어느날 다 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들일지 모르는 청년에게 들려준 말로, 감독은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철학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느끼면서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은 늘 깨어있겠다는 다짐같다. 깨어있다는 것은 고집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앞서 휴대폰을 두고 나눈 이야기는 생각보다 꽤 길어졌다. 그리고 차이가 느껴지는 만큼 내가 찾은 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었다. 이제껏 살아온 방식이더라도,  현재의 상황 안에 좀더 집중하고 귀기울인다면 작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을 가능성으로 남겨둔다면, 현재의 삶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영화는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뒷모습으로 끝난다.  다시 길을 나서는 사람들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만남이라도 그 자리에 멈춰 주저 앉지 않는다면 새로운 삶의 길은 계속될 것이다. 

 

댓글 6
  • 2022-01-17 10:51

    영화 한편 다 본것같네요. 어찌나 스무쓰하게 장면들을 넘기는지...다음 영화 보고 싶네요. 서부의 유령을~ 찍었을까? ㅎㅎ

    그런데 하워드는 굳이 말하자면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인듯한 느낌~~

  • 2022-01-21 00:43

    이 영화를 예전에 필름이다 X 영화인문학 구성으로 본 게 기억납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 역시도 그 장면들이 스쳐지나갑니다. 

     

  • 2022-01-21 09:07

    영화를 보다 보면 아이의 존재를 아이 아빠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낳아 키우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아빠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까.

    이 영화에 나온 아들과 딸을 보았을 때도 그런 감정들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과연 자식들만의 몫인가. 그것에 대해 파고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창문으로 집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던져 버리던 아들의 분노가 기억나는 영화였습니다. 글은 띠우샘의 또다른 창작품이네요. 잘 읽었어요~~ ㅋㅋ

  • 2022-01-21 09:26

    요즘 영화 한 편이 절실? 그리웠는데..^^ 

  • 2022-01-21 15:04

    2020년 7월 필름이다  상영작이었죠.

    토용님 딸 문정이가 후기를 썼었어요.

    저도 이 영화, 진짜 재밌게 봤구, 수수님처럼 아들 얼이 창밖으로 티비, 소파 등을 마구 던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죠. 하지만 더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밖에 던져진 소파 위에서 마구 춤을 추던 아들의 애인. ㅋㅋㅋㅋㅋㅋ

     

    그 때 저의 20자평은 "찌질 중년남성, 동서가 따로 없다" 였어요. ㅋ

  • 2022-01-21 23:33

    읽으면서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야기다 싶었는디 ㅋㅋ

    같이 봤던 영화네요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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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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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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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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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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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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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194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91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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