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헤이 유교걸 6회] 선생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고은
2021-04-12 09:44
529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선생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선생님과 잘 지내기는 어려워

 

   내가 공부하는 인문학 공동체 문탁 네트워크에는 또래가 거의 없다. 처음에 나는 몇십 명의 선생님들의 공동체에 들어온 이방인, 그것도 낯선 젊은 이방인이었다. 문화의 차이, 어법의 차이, 공부의 차이가 두드러질 때마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대항했다. 다수의 어른에게 아부를 떨거나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들에게 마냥 반기를 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래가 없는 이곳에서 선생님들은 나의 친구였고, 나 역시 공동체에서 제 몫을 해야 하는 제자이자 후배, 동료였다.

 

   언젠가부터 매일 선생님들 얼굴을 보면서 이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함께 일하는 것 같은데, 다른 한편으로는 어리고 말을 잘 못하는 나를 일방적으로 대하는 같았다. 때문에 나는 『논어』에 공자와 제자의 대담이 나오면 눈여겨 보게 되었다. 『논어』는 내게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자료집이었다.

 

   『논어』엔 공자가 제자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잘 보인다. 나는 이점이 좋기도 했지만, 제자들의 입장이 궁금했으므로 아쉽기도 했다. 그런데 공부를 좀 더 하다 보니 『논어』의 문장과 『논어』 밖의 자료를 통해 제자들의 생각을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제자 중에서 나의 눈길을 끌었던 건 공자를 대하는 자공의 모습이었다.

 

 

▲ 모바일게임 <크래시피버> 속 자공의 모습

 

 

 

 

 

성공한 제자와 실패한 선생

 

   한대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열전』의 한 편인 「중니제자열전」에는 공자의 제자들이 등장한다. 그중 자공은 그의 국제적인 명망 때문인지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 날 공자는 자신이 태어난 노나라가 위험에 처하자 다른 제자들이 나서려는 걸 만류하고 자공을 기다렸다고 한다. 자공은 공자의 부탁에 가까운 부름에 응답했고 다섯 나라를 돌며 국제 판세를 뒤흔들었다. 흐름을 파악하고 물자를 활용해 여러 나라를 횡단하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둬서 진짜 부자들의 이름이 실린 「화식열전」*에 등장하기도 했다.

 

   명망 있는 정치가이자 대단한 부자인 자공과 공자의 관계는 성립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승승장구하던 제자와 달리 선생님은 그토록 바랬음에도 높은 관직에 등용된 적이 없었다. 권력자들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긴 했지만, 그의 위상을 부담스럽게 느꼈고 주장을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다. 공자가 살아있을 때 이 비대칭성은 크게 부각 되지 않았으나, 공자 사후엔 권력자들이 공자보다 자공을 더 추켜세웠던 것을 『논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화 <공자와 논어> 속 자공의 모습

 

   처음엔 왜 자공이 공자 옆에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논어』 안에서 공자는 자공의 능력에 대해 칭찬한 적은 없지만, 그것을 가지고 나무란 적은 있었다. 자공이 후배들을 어떻게 밀어주면 좋을지 고민할 때 공자는 사람들을 너무 비교한다며 혼냈고, 자공이 큰 규모의 살림을 꾸릴 때 공자는 억측으로 돈을 쉽게 불린다고 혼냈다. 심지어 최고 모범생 제자인 안회와 대놓고 비교까지 했는데, 내가 자공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진작에 공자에게 화를 내며 학단을 뛰쳐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공은 나와 달랐다. 공자를 얼마나 극진히 모셨는지 사마천이 이렇게 평가할 정도였다.

 

夫使孔子名布揚於天下者, 子貢先後之也.
무릇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골고루 알려지게 된 것은, 자공이 그를 앞뒤로 모시고 도왔기 때문이다. (『사기열전』, 「화식열전」)

 

   자공이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공자의 든든한 뒷배였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마천의 평가는 물질적인 혜택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다.

 

 

* ‘화식’이란 단어 자체가 『논어』에서 공자가 자공을 가리키며 했던 말이기도 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회는 거의 도를 터득했지만 자주 쌀독이 비었다. 사는 천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재산을 불렸으나, 그의 예측이 자주 적중했다.””(子曰, “回也其庶乎, 屢空. 賜不受命, 而貨殖焉, 億則屢中.”, 11:18)

 

 

 

 

 

자공이 공자 옆에서 배운 것

 

   자공은 본래 물자를 활용하여 상황을 중재하는 능력이 뛰어났는데, 좋은 언변과 처세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공자는 이러한 자공을 간파하고 주의를 줬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척척 해내던 자공에게 지적은 낯선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학창시절 내내 모범생이라 칭찬만 받다 문탁 네트워크에 와선 온갖 꾸지람을 다 들었는데, 혼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자공도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자공은 공자에게 계속 면박 받으면서도 뭔가 시도해보려는 노력을, 그 시도가 맞는 방향인지 확인받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논어』에는 공자가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묘사가 세 번 나오는데, 그중 화자가 밝혀진 건 자공이 한 말뿐이다. 어쩌면 자공은 공자가 자신과 달리 말로 상황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게 아니었을까? 자공은 공자를 두고 본성(性)이나 하늘의 도(天道)와 같이 중요한 개념을 말은 하지 않고, 그것을 일상에서 드러내는 것만 볼 수 있었다고 묘사했다.* 공자는 처세에 가까운 언변이나 추상적인 논변을 펼치는 대신, 주위를 살피고 마음을 쓰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 EBS 다큐프라임 <절망을 이기는 철학: 제자백가>의 자공과 공자의 모습

 

  어느 날 노나라의 시조인 노주공의 묘소에 들어가게 된 공자는 묘나 예식에 대해 열심히 물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은 공자가 예로 유명한 것은 거짓이라며 비아냥거렸다. 주자는 공자가 처음 벼슬을 할 때 있었던 일이라고 봤는데, 만약 공자가 그 기회를 틈타 이익을 얻고자 했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능수능란하게 풀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에겐 말로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 것보다 세심하게 살피고 질문함으로써 묘소에 마음 쓰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뿐만 아니라 공자는 평소에도 주변에 상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고기를 좋아하면서도 음식을 적게 먹었고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자공은 공자에게서 상황을 잘 살피고 그에 적절하게 마음 씀의 중요성에 대해, 그러니까 돌봄의 중요성에 대해 배운 게 아니었을까? 말이 앞선다고 혼나던 자공은 언젠가부터 앞뒤로 공자의 상황을 살피며 마음을 쏟았던 것 같다.

 

 

*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의 문장은 들을 수 있으나 선생님께서 성과 천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들을 수 없었다.”(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5:12)

 

 

 

 

 

선생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자공이 얼마나 공자를 잘 돌봤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논어』에 몇 번 나온다. 공자는 생전에 손자뻘인 어린 제자들에게 절대적인 존경을 받았고, 공자는 제자들에게 일관되게 온후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아들뻘, 친구뻘인 제자들과 공자는 서로 서운한 티도 내고 싸우기도 하며 감정적인 교류를 주고받았다. 그중에서도 자공 앞에서 공자는 뜻을 펼치지 못한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한탄했다. 공자의 한탄을 들은 자공은 공자에게 애정과 존경이 담긴 대답을 했고, 공자는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쓸쓸한 속내를 다 드러냈다.

 

子曰: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구나!” 자공이 말했다. “어찌 선생님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아래에서 배워서 위로 통달하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일 것이다!” (14:37)

 

 

애니메이션 <공자전>에서 공자의 뒤를 지키는 자공의 모습

 

   또 다른 날엔 자공이 공자를 은근하게 아름다운 옥에 비유하고는 이를 보관할 것인지, 팔 것인지를 물었다. 공자는 이번에도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은 쓰이고 싶은 사람이라고 두 번이나 반복하여 대답한다.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자공은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말로 공자의 마음을 건드렸고, 공자는 속을 털어놓을 사람으로 자공을 꼽았다. 섣부르게 말로 앞서기보다 마음을 쓰며 주위를 살피는 돌봄의 능력은 자공의 정치·경제 활동에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자공을 보고 있으면 자공과 대조되는 나의 모습이 보여 웃기기도 하고, 자공의 진득한 마음이 느껴져 코끝이 찡해지기도 한다. 선생님은 나이가 들고, 아픈 곳이 늘어가고, 재빠르게 적응하기 어려워지는 신체가 된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고, 그 문제들과 잘살아보려 노력하고, 때때로 실패하고 절망한다. 내가 선생님을 아부할 혹은 대항할 상대라고 본 것은 선생님에게 절대적인 권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로는 제자가 앞서고 선생님이 뒤서니, 누구에게도 권력자라는 별칭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생님이 제자에게 베푸는 돌봄만큼이나, 선생님에게도 돌봄이 필요하다. 선생과 제자는 서로를 돌보는 사이다.

 

 

 

 

 

선생님을 돌보는 건 어려워

 

   선생님과 서로 돌보고 의지하는 관계, 배움을 일깨워주는 관계가 아니라 권위적인 관계로 만든 것은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을 땐 항의하고, 꾸지람을 들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당시 선생님의 상황과 마음을 깨닫게 되는 데에는 늘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논어』 속 자공을 어설프게 흉내 내보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열린 회의에서 우리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는 선생님 말끝에 “선생님은요?”하고 꼬리를 붙여봤다. 바쁜 일정을 토로하는 선생님의 말 중간엔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이 시간과 에너지를 꽤 잡아먹죠…”하며 말장구를 쳐봤다.

 

   기다렸다는 듯이 긴긴 이야기를 풀어놓는 선생님을 보며 내가 자공이라도 된 것 같아 들떴지만, 그 기분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바로 직전 회의에선 “글쎄요… 선생님과 저는 성향이 좀 다른 것 같은데요”라며 반기를 들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글을 썼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내가 자공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나는 자공을 만나며 내가 무엇을 망각하고 있는지 반복해서 상기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댓글 7
  • 2021-04-12 20:39

    자공은 정말 다 가졌네. 언변, 재산, 거기다 인물도 좋아(만화지만 너무 잘생김. 그 옆 재아는? 아! 지못미!)그런 자공이 공자 옆을 오래도록 지켰다는게 더 대단한듯. 앞으로의 관전포인트는 고은이의 자공되기?

    화이팅!

  • 2021-04-13 07:24

    '돌봄' 이라는 표현이 기원전 5세기 스승과 제자 사이에 놓이면 이렇게 해석해볼 수도 있군요^^

    " 섣부르게 말로 앞서기보다 마음을 쓰며 주위를 살피는 돌봄의 능력은 자공의 정치·경제 활동에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고은은 말보다는 마음을 쓰며 주위를 살피는 능력을 돌봄으로 해석한 것으로 읽히네요. 전 자공이 스승의 마음을 '어떤' 측면에서 살펴보았을까.... 스승이 주위의 상황을  파악하는 방식을 이해했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서 요즘 <논어>를 다시 곱씹고 있는데요^^   올해 페미니즘에서 해러웨이를 읽으면서 '상황적 인식(맥락적 인식)'에 대한 해러웨이의 질문에서 헤매고 있는 것과도 연동되어서요... 고은의 글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더 깊어지네요^^ 

  • 2021-04-13 21:40

    고은이 글을 읽어 보니 자공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인 것 같네요.

    그러니까 외교와 경제에서 성공 할 수 있었겠지요.

    자공을 그런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고은도 베리 굿!! 이예요

  • 2021-04-16 12:19

    자공을 배려의 아이콘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새롭네요. 

    그게  돌봄이라는 단어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요즘 <열자>를 쬐금 보고 있는데 말귀 못 알아듣는 자공이 나와요. 

    도가라인에서 자공은 그런 쪽 이야기는 도통 못 알아듣는 거만한 친구로 주로 나온다는 군요. 

    자공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좀 기분이 그렇더군요^^

     

  • 2021-04-21 16:18

    고은이, 응원해요 !!!!!

  • 2021-04-22 22:35

    으음.. 아부를 떨거나 순응을 한다고... 혹은 반기를 들지 않으면 선생님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선생님이 혼을 내는 이유가 뭘까? 어리다고 일방적으로 혼나는 것 같은 억울함을 이 글에서는 여전히 풀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고, 고은이에게 문탁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여전히 어렵고 피상적인 것 같아서 안타깝네... 사실.. 요즘 어른들은 자식에게조차 돌봄을 기대하지 않거든... 관계에 부담갖지마. 그냥 훨훨 날아다녀. 욕먹을 거 무서워서 날개를 펼치지 못하면 과연 그 관계가 즐거울까? 행복할까? 

  • 2021-04-26 10:47

    선생님을 돌보기란 쉽지 않지만 그렇기에 필요한 일일 수 있겠네요! 자고(은)공 되기 응원합니당!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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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조회 10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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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48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0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192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90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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