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양생이다> 5회 포세이돈 신전에서 맹자를 낭송하다

기린
2021-01-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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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문에 꽂히다

 

 문탁의 초창기 홈피에는 공동체를 소개하는 문구로 용맹정진(勇猛精進),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마련(事上磨鍊) 등의 성어들이 즐비했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 성어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면 된다고 외치는 ‘무대뽀의 정신’이 저절로 느껴졌다. 앎과 행함의 일치라는 비전은 강렬했고, 내가 그동안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는 게 고달팠다고 납득되었다. 나중에 저 성어들이 중국 명나라 사상가 왕양명의 사유라는 것을 알았고, 그 뜻도 나의 독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고 혼자서 멋쩍어 했었다.

 

 공동체에 와서 내가 처음 접한 고전은 『논어』 였다. 읽자마자 꽂힌 성어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었다. 어떤 일에 분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공자님이 스스로를 자처하는 말이기도 한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먹는 것도 잊는다니 기가 찼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까먹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소문이었다. 그 놀라움 때문에 몇 번이나 써 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점점 『논어』 읽기는 나의 행동을 가늠하는 준칙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자님의 말씀에 군자는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는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형제와는 우애가 있는 사람이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내가 인정머리 없는 딸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냈고, 명절에 형제들과 만나면 서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그러니 문장들이 나의 양심을 콕콕 찔렀고, 다른 일상에서도 그 준칙들로 인한 불편함이 갈등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2.사기열전 낭송집을 발간하다

 

 이문서당에서 『사기열전』을 읽게 되었을 때는 내심 기대를 했다. 열전에서 만나는 그 많은 인물들의 삶이 공자님의 말씀처럼 불편하겠어? 확실히 그렇지는 않았다. 자신을 알아주었던 주군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객의 숭고미나 찌질과 위엄을 남나드는 유방의 인간미는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당시 열전의 인물들로 글쓰기를 했는데 쓸 문장이 없었다. 멋있기는 한데 왜 멋있는지 쓸 수 있는 단어가 너무 빈약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양고전으로 낭송시리즈를 발간하는 팀에 『사기열전』을 풀어쓰는 저자로 합류하게 되었다.

 

 칠십 편의 열전 중에서 낭송하기에 좋은 내용을 고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사건을 잘 전달하면서도 말로 하는 맛을 살리는 문장으로 다듬느라 아는 단어를 총동원했다. 원문에 입각해서 단어를 고르다보니 새롭게 써야 하는 글쓰기보다는 좀 수월했다. 하지만 워낙 방대한 스토리들을 축약하다보니 맥락을 놓치기 일쑤였다. 실제로 낭송집이 발간되고 내용이 잘 안 읽힌다는 피드백을 들었을 때 많이 부끄러웠다.

 

 낭송집이 시리즈로 속속 출간되면서 낭송과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낭송 페스티벌도 그 중 하나였다. 내가 하던 세미나에서는 『낭송장자』의 문장을 암송하기로 했다. 일단 문장을 외우기부터 시작했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문장을 급하게 읽어치우는 습이 또 발동을 했기 때문이다. 속도를 늦추고 꼭꼭 씹어가며 외우는 시간을 늘렸다. 그렇게 어찌어찌 다 외웠는데 정작 낭송을 하는 무대에 나서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말도 생각이 안 났다.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낭송하던 흐름이 내 차례에 이르러 뚝 끊기고 말았다.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다고는 했지만, 내가 그마저도 다 망친 것 같아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3. 미친 암송단을 만들다

 

  낭송 시리즈를 펴내는데 참여하기 전에도 공동체에서 낭송을 하기는 했다. 어린이 서당에서 『논어』 원문을 암송하는 공부법을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그날 배운 원문을 암송하는 미션을 수행했고, 연말 인문학축제에서 원문 낭송공연으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외우느냐는 거부감이 없었다. 원문 한자의 음을 배운 다음, 음대로 소리 내어 반복해 읽다보면 어느 순간 입에 붙으면서 저절로 외워졌다. 조를 짜서 외워보라는 미션에서 원문에 리듬까지 붙여가며 읽는 아이들을 보면 마치 놀이 같기도 했다. 그렇게 공간에 원문 읽는 소리가 가득차면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몸에도 그 리듬이 전해졌다. 동시에 새삼 원문의 뜻을 곱씹게 되곤 했다.

 

  결국 아이들에게만 암송을 시킬게 아니라 내가 직접 암송을 해봐야겠다고 발심을 하게 되었다. 함께 암송할 친구들도 모았다. 매일 일정 분량의 원문을 암송하고 녹음한 파일을 카톡으로 공유하는 방식이었고 ‘미친(美親)암송단’ 이라고 이름도 정했다. 매일 암송하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원문과 좀 더 친숙해지자는 의미였다. 나는 주로 저녁에 잠자기 전에 암송을 했는데, 예상치 못한 저녁 약속이라도 잡히면 암송 시간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언젠가 하루는 약속장소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외우고 도착해서 역 화장실에서 녹음을 한 적도 있다. 다른 친구들도 여러 변수에도 각자의 형편에 따라 암송을 하고 녹음파일을 올렸다.

 

 

 『논어』를 암송하던 때에는 문장을 암송하면서 자신에게 꽂힌 내용을 글로 써와서 서로 피드백을 했다. 분명 같은 문장을 읽었음에도 새겨지는 내용은 다 달랐다. 그래서 원문은 그런 뜻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어떻게 읽히는가에 집중했다는 등의 의견으로 나뉘기도 했다.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하고 썰렁해진 채 피드백을 끝내는 때도 있었다. 그렇게 쓴 글은 공동체의 홈페이지에 ‘왈가왈부 논어’로 연재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왈가왈부하는 댓글을 기대했지만, 댓글은 고사하고 조회수까지 나날이 줄어들자 우리는 많이 의기소침해졌었다. 그래도 끝까지 『논어』 전문을 암송한 후, 우리는 한 권 전체를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 만나서 스무 편의 원문을 다 읽고 나니 저녁을 먹어야 할 때가 되었다. 목은 아프고 배도 고팠지만, 끝까지 해냈다는 성취감에 온 몸이 뻐근해오던 기분 좋은 감각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4.암송, 몸에 새기는 공부

 

암송하려면 일단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러자면 매일 매일 하는 암송도 거를 수 없다. 미친 암송단에서 『맹자』를 암송하던 해에 친구들과 열흘이 넘는 일정으로 그리스 여행을 가게 되었다. 처음 가는 유럽 여행이라 들뜨기도 했지만 낯설어 긴장도 되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긴장도 풀 겸 묵었던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그리고 원문 암송도 거르지 않았다. 여행 일정을 마치고 저녁에 숙소에 들어오면 짬을 내어 원문을 암송하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징하다고 놀렸다. 그리스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수니온곶 포세이돈 신전에 올랐다. 탁 트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에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수니온곶 석양이 장관이라는 정보를 접한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신전 주변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암송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며 가방에서 원문을 꺼내 암송을 시작했다. 포세이돈 신전 기둥 사이로 불어가는 바람에 내가 원문을 읽는 소리도 실려 가지 않았을까. 그 때 여행을 같이 간 친구는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그 때 그리스 신전 앞에 앉아 『맹자』를 암송하던 나의 모습이 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암송을 하려면 소리를 내서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눈으로만 읽어서는 외워지지 않는다. 반복해서 소리를 내면서 읽다보면 생각에도 공명이 일어난다. 그러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재고되는 질문이 생기고 관점이 이동하기도 한다. 내가 읽는 소리가 귀를 통해 뇌에 전달되어 나의 앎을 재구성하는 생생한 감각, 그 생생함이 나를 기쁘게 했다. 그런 기쁨을 경험하고 나면 반복해서 읽고 외우는 일이 공부의 과정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반복은 몸 어디엔가 새겨진다. 그러다 어느 날 어느 때 그 문장들이 술술 흘러나와 곤란에 처한 상황을 전환시키기도 했다.

 

 지난 여름 인문약방에서 기획한 걷기 캠프 루트를 사전 답사하기 위해서 운탄고도를 걸었다. 길은 평탄한 편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몸에 신호가 왔다.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무릎에 점점 통증이 느껴진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 때 한 친구가 날더러 『논어』 원문이라도 낭송해보라고 부추겼다. 친구들이 너무 힘들어하는 상황이라 뭐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논어』 첫 편인 ‘학이편’을 낭송했다. 우선 원문을 낭송해주고 연이어 차근차근 뜻을 설명해주었다. 친구들은 나의 낭송을 들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것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발가락이 쓰라린 감각이 안 느껴진다고 신기해했다. 읽고 또 읽어 입에 붙고 몸에 새겨진 문장으로, 예고 없이 닥친 곤란을 감당할 수도 있었던 짜릿한 경험이었다. 이처럼 삶의 어떤 순간에 빛을 발해 우리가 가는 길을 밝혀주는 공부, 암송은 그 빛을 몸에 새기는 공부다.

 

댓글 7
  • 2021-01-25 14:21

    아~~ 이 글을 읽는데 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지 모르겠습니다.
    글의 첫 시작에서 마지막까지 짧은 기간이 아니었는데, 한 글(혹시 한 페이지 ? ㅋ) 로 정리가 되어버렸네요...
    단락 사이마다 붙여진 말풍선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ㅋㅋ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동안(물론 ~ing 이지만) 의 동양고전 원문 읽기~~~
    논어를 같이 시작한 동학으로 저에게는 인생템이 될 정도의 굵은 공부였습니다.(아~~ 과거형으로 쓰고 있네요.ㅜㅜ) 나중에 암송을 같이 하진 못하였지만...
    사실 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엔 (우리에게 왜곡되어 표면만 전달된, only 효의 이미지로 인해) 논어에 대한 거부감이 컸지요.
    그러나, 동양고전은 일단 원문을 보면 그게 왜 성인의 말씀인지 수긍하지 않을 수 없지요.
    (어찌어찌 마음열고 읽게 되는 해설본은 너무 쉬운 듯하지만 남는 게 없습니다.... 신기하게도...)
    동양고전은 암송이 되었건, 그냥 읽기가 되었건 어떻게 접하건 간에 제 삶에도 깊숙이 파고 들게 된 것 같습니다. 이건 말로 설명이 불가해요 !!!

  • 2021-01-25 14:43

    내논어는 내몸 어디에 새겨져 있을까?
    갈피갈피 뱃살사이에 꼭 박혀 나올 생각을 안하니 ,여전히 나는 난처하고 막막한 상황에서 난처하고 막막하기만 할뿐 ...
    그래도 언젠가 방구처럼 트림처럼 재채기처럼 나타났음 좋겠다. 그래도 기린님 덕분에 미친 복습단 덕분에 재미있었어요.

  • 2021-01-25 18:43

    아~ 기린샘이 이렇게 공부하셨군요~!!ㅎㅎㅎㅎㅎ 그리스 신전 앞에서 맹자라...?!

  • 2021-01-26 08:25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는 게 고달팠다고 납득되었다"

    아침부터 대굴대굴..때굴때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2021-01-26 09:52

    기린을 따라서 미친 암송단, 사서덕후 한게 참 고맙소...^^
    새로운 인문약방에서 펼쳐질 기린의 고전인생을 계~~~속 응원해요!!!

  • 2021-01-26 12:45

    기린이 공부의 인연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덕을 많이 쌓았다는 걸 댓글보고 알았습니다.
    쌓는 줄도 모르고 쌓는 공덕이야말로 최고의 공덕 아니겠습니까?ㅎㅎㅎ

  • 2021-01-28 23:02

    발가락 물집 이야기 들었었는데 글로 읽으니 더욱 감동이구먼요~~

    그거 알아요? 기린쌤의 '무대뽀' 예전엔 좀 무서웠는데 요새는 그게 매력적인거...ㅋㅋ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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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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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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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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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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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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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주역64괘에서 42번째 풍뢰익(風雷益)괘는 산택손(山澤損)괘의 다음에 배치된 괘이다. ‘덜어낸다’는 뜻의 손괘와 ‘보탠다’는 뜻의 익괘를 보면 어딘지 경제적인 관점이 생기는 듯 하다. 그 관점으로 보면 손은 손해, 익은 이익으로 보게 되고, 결국 손괘는 안좋은 괘이고, 익괘는 좋은 괘라는 일차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경제는 고대사회에서도 그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영역 중 하나였으니 주역에 경제개념을 다루는 괘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주역에서 다루는 손과 익은 기업의 ‘손익계산서’같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손괘와 익괘 모두 풍요로움, 풍성함, 여유있음을 상징하는 부(富)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리고 손괘의 손이라는 의미가 덜어내거나 빼는 마이너스(-)를 뜻하고, 익괘의 익이 더하다는 의미의 플러스(+)를 가리키는 것도 맞다. 하지만 손괘가 무작정 마이너스나 손해를, 익괘가 무한정한 플러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주역은 부의 크고 작음, 부의 커지고 작아짐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유동하는 부(富)’, 즉 고정되어 쌓이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부가 만들어내는 ‘효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뜻은 이천은 손괘와 익괘를 비교하면서 “손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더하는 것이며,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하면 익괘가 된다. 백성의 위에 있는 자가 은택을 베풀어서 아래에 미치면 익(益)이 되고, 아래의 것을 취하여 자신을 후하게 하면 손(損)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손괘와 익괘는 무언가 흐르는 방향이 정반대로 대비되는데, 흐르는 것이 부(富)라고 했을 때, 손괘의 부는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 익괘의 부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다(↓)는 것이다. 조금 더...
봄날 2024.03.08 |
조회 163
토용의 서경리뷰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무슨 책을 읽을까?   한문강독세미나는 한문으로 된 동양고전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2010년부터 시작했으니 문탁의 역사와 함께한 세미나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강독하던 책이 끝을 보일 무렵이면 다음 번 책을 두고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서경』을 시작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강독 중이던 『근사록』이 끝나갈 무렵 다음 책을 두고 세미나원들간에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 동양고전의 기본이 사서삼경인데 사서는 읽었으니 이제 삼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시경』,『서경』,『주역』 중 무엇을 읽을까? 『주역』과 『시경』은 이문서당에서 읽고 있거나 읽을 예정이니 패스.(이문서당에서는 2018년에 『주역』을 2019년에 『시경』을 읽었다.) 자연스럽게 남은 것은 『서경』. ‘그래 너로 하자. 그렇잖아도 네가 많이 궁금했다.’ 큰 이견 없이 『서경』으로 결정되었다.   그동안 사서를 읽으면서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시왈(詩曰)’, ‘서왈(書曰)’에 당혹스러운 적이 많았다. 한자와 문장도 어려운데다가 앞뒤 맥락도 모르는데 한 구절 뚝 떼어다가 써 놓았으니 말이다. 그럴 경우는 대부분 주장하는 논리의 근거로 인용을 한다.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더라도 『서경』의 내용이 문장 속에 녹아 있는 경우도 많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게 마련이다.’의 출전도 『서경』이다.   『서경』은 공자가 성군으로 칭송하는 요순의 정치와 본받고 싶다던 주공의 교훈을 자세하게 싣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논어』의 마지막 편인 「요왈」은 제왕의 정치에 대해 『서경』에 나오는 요, 순, 탕왕, 무왕의 말을 간추려 전하고 있다. 맹자도 자신의 왕도정치를 주장할 때...
토용 2024.02.29 |
조회 269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띠우 2024.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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