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 양생 7회> 함께 만드는 루틴!

둥글레
2021-09-06 23:58
363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집순이다. “둥글레가 집순이라니 믿어지지 않아!”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뽀시락 거리며 뭘 만드는 걸 좋아했다. 움직이는 걸 싫어해서 집안에서 걷지 않고 굴러다닌 적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운동하기를 싫어했다. 그런데 형제들도 그렇고 운동신경은 발달한 편이어서 운동을 하면 곧 잘 배운다. 스노보드도 하루 만에 뒤로 내려오는 것까지 마스터했다. 이런 나의 성향들이 합해져 나오는 결과는 늘 정해졌다. 어떤 운동에 꽂히면 빨리 배워서 오버하다 금방 질리고 만다. 결국 운동이 루틴이 되질 못한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버티다가 작년에 문제가 생겼다. 작년이 운기적으로 폐나 기관지에 염증이 생기기 쉬운 해였다. 코로나 유행만큼이나 내 기관지 염증도 계속되었다. 기관지가 좁아져서 나오는 천명음에 잠을 깨다 보니 푹 잘 수가 없었다. 54일간 지속된 장마에 기관지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기침과 가래를 달고 살았다. 운동을 해서 습을 말리고 기운을 돌리지 않으면 천식은 더욱 심해질 거라는 판단이 섰다. 해서 큰맘 먹고 필라테스 PT를 시작했다. 인도 여행을 하겠다고 모아 둔 목돈이 들어갔다. 스스로 만들지 못한 운동 루틴을 남들처럼 돈의 힘을 빌어서 시도해본 거다. 

 

처음에 돈의 힘은 효과가 있었다. 운동을 하니 호흡을 깊게 하게 되었고 몸의 순환이 좋아졌다. 하지만 주 2회로 한정된 운동 횟수와 비싼 기구와 트레이너에 의존적인 상황은 내게 자율성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운동이 일상화가 되지 못하고 이벤트가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 상황에 따라 운동 센터가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자 그나마 이벤트로서의 기능마저 사라지고 말았다.

 

 

 

올해 초에 하루 10분 운동을 하자는 밴드 모임이 있어서 가입했다. 저렴하기도 했고 10분이라서 부담이 없었다. 그즈음 파지사유에서도 오후에 잠깐 운동을 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기왕에 하루 10분 하는 거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편이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친구들과 함께 하는 운동은 정말 즐거웠다. 제각각인 친구들의 운동 자세를 보면 깔깔 웃음이 났다. 무엇보다 꾸준히 하게 되었다. 꾀가 날 때도 있었지만 안 할 수가 없다.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운동합시다!”하는 기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고 친구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10분 운동 구성은 간단하다. 간단한 스트레칭, 서서 하는 복근 운동, 스쿼트, 런지 등 다양한 하체운동, 상하체를 함께 비틀거나 움직이는 온몸 운동 등이다. 구성은 간단하지만 운동을 하면 곡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굳어진 40~50대 몸들이 지르는 비명이다. 평소 몸을 잘 움직이지 않고 근육도 부족하니 10분이지만 운동의 강도가 크게 느껴지는 거다. 슬슬 운동 시간을 피하는 친구,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치는 친구가 생겼다.

 

이런 와중에 청년 우현이 운동에 합류했다. 우현은 살도 찌우고 몸 컨디션을 조절하고 싶어 했다. 얼마 가려나?라는 나의 우려가 무색하게 적극적으로 운동에 임했다. 이런저런 운동 자세를 연구(?)하더니 스쿼트는 이렇게 하면 운동 효과가 좋다거나, 새로운 운동이 추가되면 어떤 부분에 좋은 운동이라고 말해 준다. 워낙 움직이지 않아서 주변의 걱정을 샀던 그는 수영과 덤벨 운동까지 하더니 최근엔 살이 붙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고 왔다.

 

 

 

 

나의 경우, 운동을 6개월 이상 하고 나니 다른 운동을 할 체력이 생겼다. 숨이 차고 기침이 나서 회피했던 등산을 하게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 플랭크와 푸시업도 하고 있다. 친구들도 다들 처음보다 수월하게 운동을 한다. 처음에 10분이 왜 이렇게 기냐며 힘겨워했던 겸목은 지금은 10분이 쑥 지나가서 놀랐다며 너스레를 떤다. 파지사유에 왔다가 시간이 맞으면 운동하고 가는 객원멤버들도 늘었다. 유, 모로, 지금, 노라, 곰곰, 코스모스, 자누리, 띠우, 뚜버기, 블랙, 고은, 명식 등 객원멤버들의 면면은 요일별로 다채롭다. 늘 함께 하는 기린, 달팽이, 우현은 든든하다. 

 

생각해 보면 10분 운동이 루틴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함께 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파지사유가, 생태공방이, 일리치약국이 ‘우리’에게 삶의 터전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파지사유 매니저를 할 때 산책, 백팔배, 요가 등을 진행해 봤지만 이벤트성으로 끝났다. 어쩌면 그때 파지사유는 내게 삶의 터전이라기보다 이벤트에 가까운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 5일 출근하여 친구들과 일하고, 공부하고, 밥먹고, 운동하는 지금의 파지사유는 내게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곳이다. 이 터전에서 ‘함께 만든 루틴’을 통해 정미로운 일상을 길어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삶의 다른 부분도 담담한 루틴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댓글 5
  • 2021-09-07 10:06

    둥글레도 우현도 매일 10분 운동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군요. 아, 좋아보여요~~

    그동안 덥다는 핑계로 출퇴근 걷기 외에 몸을 움직이지 않은 저도 얼른 양생 루틴 만들어야겠어요!ㅎㅎ

  • 2021-09-10 12:55

    3시만 되면 어김없이 하는 그 운동이 이벤트가 아니란 점, 그래서 루틴이 될수 있었다는 말이 콕 들어오네요. 전 걷기가 좋더라구요. 날도 선선해지니 횟수를 늘여야겠어요

  • 2021-09-10 14:12

    10분 운동 객원맴버

    은근 자랑스럽군요 ㅋㅋ

     

    루틴을 만들어 가는 운동!

    참 좋습니다 

     

     

  • 2021-09-10 22:10

    10분 운동 정예멤버를 모집~~ 언제나 환영^^ 하다보면 재밌어요~~

  • 2021-09-12 18:18

    저 필라테스 운동기구... 얼핏 고문기구인줄 알았습니다ㅎㅎ 자발적으로 근육의 고통을 선택하고 즐기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다르겠지만요. 몸만들기는 7할이 음식이고, 2할이 운동, 나머지 1할은 의지라고 합니다. 오버하지 않는, 담담한 루틴 좋네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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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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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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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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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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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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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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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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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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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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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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