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여성부의 추억 (<아젠다> 15호/ 2021년08월 / 사장칼럼)

관리자
2021-08-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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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류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특별한 주문이자 격려 같은 것! 그리고 당시 지은희 장관은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을 앞두고 이것의 의미를 대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는 ‘인재’(?!)로 날 영입했던 것이다. 아마도 민중당 시절에 지은희 장관과 내가 당내 여성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선전물을 함께 만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라떼~는 말이야~

 

알다시피 여성부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에 만들어졌다. 대선공약을 지킨 셈인데 재밌는 것은 당시에는 김대중 뿐 아니라 이회창, 이인제 등 15대 대선후보 모두가 여성부 신설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여성운동은 80년대 후반부터 착실히 성장하고 있었고, 호주제 폐지를 비롯해서 가정폭력, 인신매매, 성매매, 일본군위안부, 고용평등 등의 의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있었다. 그 모든 성과들을 아우를 수 있는 화룡정점이 (적어도 그 때는) 여성부 신설이었다. 위의 의제들을 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는 별도의 정부조직을 만들어라!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정책에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라! 아무도 토를 달수가 없었다. 그 때 여성부 신설은 사회 전체의 뉴노멀이었고, 정치권에서도 누구든 선점하면 좋은 아젠다였다.

 

 

 

 

여성부의 첫 숙원사업은 호주제 폐지였다. 아니 그것은 1950년대 이래 모든 여성운동단체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과제였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여전히 전국의 유림아저씨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미풍양속의 사수’를 외쳐댔지만 2003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남성의 절반 이상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었다. 일제 잔재이지만 전통의 이름으로 둔갑하여 잘 만나지도 않는 시아버지나 혹은 한 살짜리 아들이 나의 호주(戶主)가 되어버리는 남성혈통중심주의를 찬성한다는 것은, 너무 후진 일이었다. 이이효재, 조한혜정, 고은광순, 권김현영... 부모성을 함께 쓰는 여성셀럽들도 많아졌다. 16대 대선의 주요후보들은 – 이회창씨를 제외하고 – 모두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호주제 폐지가 대세가 되긴 했지만 그것을 실현시킨 것은 확실히 참여정부의 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호주제 폐지를 주요 국정과제로 내걸었고, 무엇보다 초기 내각에 네 명의 여성장관을 임명했다. 법무부 장관에 강금실, 환경부 장관에 한명숙, 보건복지부 장관에 김화중, 여성부 장관에 지은희. 그리고 1대 여성부 장관이었던 한명숙 장관의 백업과 강금실-지은희 투톱의 환상적 콜라보를 통해 호주제 폐지가 추진되었다. 그들 모두는 여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자들이었다.

 

 

 

 

 

 

3. 성매매특별법의 추억

 

성매매특별법은 참여정부 여성부의 첫 사업이었다. 맥락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내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렸다. 미국 국무부에서 발생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최하위인 3등급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쪽팔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법을 추진하게 된 더 직접적인 계기는 2000년, 2001년, 2002년 연속적으로 발생한 군산과 부산의 성매매 업소 화재였다. 2000년 9월 군산시 대명동, 속칭 ‘쉬파리골목’ 성매매 업소에서 불이 나서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했는데 이유는 포주들이 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창문에 쇠창살을 달아놓고, 출입구도 두꺼운 철제문으로 잠가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들 여성은 모두 20대로 10대에 가출했다가 인신매매되고 감금되어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그동안 윤락행위등방지법(1961)의 저촉대상이었던 성매매. 그러나 이것은 윤락(淪落)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지는 것”(국어사전)을 처벌하는 법이다. 이 용어는 성매매가 여성의 성을 도구화하여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조직화된 산업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감춘다. 그리고 이 산업이 마약산업과 마찬가지로 인신매매, 감금, 폭행, 경제적 착취를 일상화하고 있는 거대한 조직범죄라는 것을 감춘다. 성매매특별법은 바로 이 악랄한 성산업 카르텔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흘러갔다. 포주의 폭력과 착취로부터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려는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여성들이 가장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그 법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침해한다고 했으며, 심지어 소복을 입고 시위를 했다. 소위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학자들도 이 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문화적이고 윤리적 영역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이 문제라고 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성노동’ 혹은 ‘성노동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여성부와 여성단체가 순결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모든 쟁점은 이 문제의 복잡성을 나타낸다. 그만큼 토론과 숙의가 필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여성부는 무조건 방어해야했고 여성부 공무원인 나는 입에 단내가 나고 발바닥에 땀이 나게 토론이 아니라 홍보를 위해 뛰어다녀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의를 일으킨’ 장관은 조용히 교체되었다.

 

 

4. 여성부 잔혹사의 세월

 

무엇이 문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던 것처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념에 너무 사로잡혔던 것일까? 문화적이고 다차원적인 이슈를 손쉽게 금지와 처벌의 사법모델로 환원했던 것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둘 다. 다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어떤 장면 하나. 성매매특별법 첫날, 경찰의 압도적이고 경쟁적이고 전시적인 단속. 다음 날 신문의 대서특필. 솔직히 나는 좀 당황했다. 구조적인 성산업을 해체하겠다는 여성부의 바람은 경찰이 매일 매일 발표하는 성매수 남성들의 검거숫자에 묻혀버렸다. 아주 오랫동안 포주와 밀착관계를 맺고 있던 경찰들은,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강경하게 단속을 했다. 성매매특별법은 경찰의 협조 없이는 집행되기 어려운 것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경찰의 행동에 딴지를 거는 것도 불가능했다. 장관도 나도 속앓이를 했지만 별다른 도리는 없었다.

 

나중에 영화 <한공주>로 널리 알려진 끔찍하고 잔혹한 밀양여중생 집단성폭력 사건 때도 그랬다. 나는 사건을 인지한 그날 당일 바로 KTX를 타고 밀양으로 내려갔다. 사건을 신고한 피해자의 이모, 그리고 평생 남편한테 맞고 산 피해자의 엄마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 일은 경찰의 관할이었다. 난 경찰의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을 믿을 수 없었고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지만 단 한 순간도 조사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여성부 직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중에 그 경찰들은 성폭력 사건을 이렇게 다루면 절대 안 된다는, 2차 가해의 전범이 된다.

 

 

 

 

 

여성부는 처음부터 별로 힘이 없었다. 그리고 진보적인 대통령들이라도 여성부가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진보적으로 보이고 싶고 여성표도 얻고 싶지만 그렇다고 남성표를 잃는 것을 감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여성부의 조직개편과정이다. 2001년 여성부가 여성가족부가 되고(이 때는 보건복지부의 영유아 보육업무를 이관 받았다) 2008년 여성가족부가 다시 여성부가 된다.(영유아 보육업무를 다시 보건복지부로 보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영유아 보육업무가 아니라 청소년 업무를 보건복지부에서 이관 받아 다시 여성가족부가 되었다. 좀 더 온건한, 좀 더 관습적인 활동을 하라는 ‘윗분’들의 의중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찍’ 소리라도 내려면 라이트플라이급에서 벗어나서 플라이급이나 밴텀급은 되어야 한다는 내부의 절실함 때문일 수도 있다. 라이트플라이급으로는 슈퍼헤비급인 재정경제부를 상대하여 예산을 따오거나 헤비급인 국방부를 상대하여 성인지 예산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구조로는 여성부의 1급 실장도 메이저 부서의 4급 사무관을 상대하긴 어렵다.

 

 

 

 

 

여성가족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류승민이나 하태경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으니 당장 폐지되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얻어맞는 동네북 신세를 면하려면 말빨도 좀 세지고 덩치도 좀 커져야 하지 않겠는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부터 뭔가 액션을 취해보는 건 어떨까? 이 정부의 전 현직 여성장관들이 연판장이라도 돌리거나 공동기자회견이라도 하는 것도 모양이 좋아 보이고 모모한 유력인사들, 앞 다투어 김대중-노무현을 좇는 사람들이, 자신들도 두 전직대통령만큼의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로 삼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하태경 등의 덕분에 여성가족부 노이지 마케팅이라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지금까지 여성부 추억팔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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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2021-08-24 10:12

    '성매매 여성의 성인식'을 "정희진의 패미니즘의 도전"에서 읽으며 그때 지은희 장관이 스톡홀름 현상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앍고 찾아본 기억이 납니다 . 그때 그속에 계셨더랬군요. 이상과 현실은 늘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성매매 방지법으로 시도해 본것은 긍정적 진전있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조금씩 이런 일들이 반복되며 세상은 나아자고 있자고 믿고 살아야 살 수 있으니까요?

    50년전.100년전을 생각해보면 세상 개벽한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걸 감사할 줄 모르고 잘 잘못만 따져대니 속도가 더딜뿐..

    애쓰셨네요. 

     

  • 2021-08-24 11:04

    한공주! 아직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영화인데....그때 밀양에 내려가셨다고요?? 이걸 여태 몰랐네요!!

  • 2021-08-25 10:01

    그때 문탁샘의 옷차림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ㅋㅋㅋ

    '어공'생활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듣던게 이리 오래되었네요

    그래도 그때 여성부가 한발짝 내디딘건 분명하지요

    지지부진해서 문제지만.ㅠㅠㅠ

     

    여러분, <아젠다>구독합시다!!!

    길드다가 사라지면 안되니까요^^

    • 2021-08-25 18:29

      맞아요. 공무원 정장이 한 벌도 없어서 싼 걸로 여러벌 샀었어요. 결국 나중에 다 누군가에게 줘버렸지만^^

  • 2021-09-10 19:50

    저도 비슷한 시기에 그 언저리쯤 있었네요. 암튼 2004년은 불판을 갈아 엎자는 캐츠프레이즈가 먹히던 시절이라, 이런저런 시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ㅎㅎ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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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28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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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조회 18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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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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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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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157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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