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완이의 쿠바통신 6] 기억의 파도타기 - 환자 Y의 이야기 -

관리자
2021-04-0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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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병원 가는 날

 

오늘은 Y가 가족주치의와 약속이 있는 날이다. 꼰술또리오는 벌써 엄마와 아기들로 득실거릴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소아과의사와 산부인과의사가 찾아오는 정기검진 날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 바쁜 날에 진찰을 예약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면 Y는 동네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다.

 

거실에 나오니 식탁 위에는 Y를 위한 빵과 커피가 올려져 있다. 옆방에서 하숙하는 학생이 아침식사로 준비해놓은 것이다. 이 친구는 현재 Y의 유일한 가족이다. 전공 수련을 위해서 쿠바로 유학 온 볼리비아 의사인데 올해 2년차 레지던트가 되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정신 쏙 빠져서 살더니, 올해는 의사가 된 티가 좀 난다. Y보고 주치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라고, 혹은 이 약 저 약을 처방해달라고 해보라며 참견을 해댄다. 그럴 때마다 Y는 깔깔 웃는다. 자기는 의사 복이 많아서 집 안팎 어디에서도 아플 수가 없겠단다.

 

병원에 갔더니 역시나 아이들로 가득 차 있다.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주치의를 만났다. 의사네 집안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걱정거리를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좀 하다보면 진단시간의 칠 할은 수다가 되어버린다. 마침내 의사가 진찰을 끝내고 처방전 종이를 꺼내들었을 때, Y는 의사 하숙생의 조언을 전달했다. 의사는 어깨를 으쓱한다. 요즘 약국에는 이 약도 저 약도 없어요. 약이 들어올 때까지는 한참 걸릴 텐데... 결국 이번에도 쿠바에서 제일 흔한 진통제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Y는 한숨을 쉬며 말한다. 디삐로나(Dipirona) 처방전이나 주세요. 머리 아플 때 먹게요.

 

 

처방약,

 

Y의 공식 병명은 우울증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화병이다. 하나뿐인 딸이 쿠바를 떠나버렸던 십 년 전부터 이 병이 시작되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풍채 좋고 사람 좋은 Y가 웃는 얼굴 뒤로 병을 키우고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처음 병이 생겼을 때는 정말 대단했다. 먹지도 자지도 못했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미친 사람처럼 화를 퍼붓다가 갑자기 침묵했다. 누군가 집을 찾아오면 손발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이웃들과 친구들은 Y가 언제 자살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Y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결과를 예상했다. 그는 딸에게 인생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꿈이랄 것도 없었고 번듯한 직업도 없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짧게 끝난 후로는 재혼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누가 봐도 정성스럽게 살았다. 딸을 키우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으므로, Y는 자신의 어린 분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자 했다. 여기에는 히스테리에 가까운 과보호와 쓸데없는 걱정도 포함되었다. 딸이 성장할수록 모녀간의 마찰이 커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들의 갈등은 딸이 연애를 시작할 때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애인과 함께 엄마를 떠나버렸다.

 

따라서 Y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다. 딸이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그 외에 약국에서 파는 약은 다 임시방편이다. 수면제에 기대서 불면증을 덜고 진통제로 두통을 줄여서 일상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가끔씩 덮치는 악몽과 공황장애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게다가 어떤 약이든 결국 내성이 생긴다. 주치의는 진찰시간마다 Y의 속이 풀릴 때까지 넋두리를 늘어놓도록 기다려주는데, 지금으로서는 이게 가장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다. 관심과 공감에 내성을 보이는 마음의 병은 없으므로.

 

여하튼 십 년 전부터 약을 찾아다니는 것은 Y의 일상이 되었다. 우울증이 완치될 기미가 보이질 않으므로 어쩌면 죽을 때까지 ‘약국 가기’를 일정에서 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변화는 Y의 생활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쿠바에서 약 구하기는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미션이기 때문이다. 약을 사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당연히 동네 약국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쿠바의 약국에는 채워진 선반보다 빈 데가 더 많다. 쿠바의 모든 물건 구매가 그렇듯이 약 한 종류를 사려고 해도 여러 약국을 돌아야 한다. 따라서 치밀한 사전작업이 필요하다. 약사와 안면을 터야 하고, 필요한 약이 공장에서 들어오는 날을 알아두어야 하고,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기 전에 재빠르게 줄을 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처방전은 종이쪼가리일 뿐이다! 약을 헐값에 제공한다는 이유로 쿠바 의료의 처방전은 귀하게 여겨지지만, 약이 없으면 다 도로 아미타불 아닌가.

 

Y는 이런 번다한 동선이 싫지가 않다. 뭐가 되었든 간에 몸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줄에서 오래 기다리는 것도 괜찮다. 그 핑계로 옆 사람과 수다를 떨 수 있다. 약을 사려는 사람치고 병들지 않은 사람이 없으므로,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아픔의 공감이 된다.

 

하숙생이 병원에서 운 좋게 약을 직접 구해다주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이면 둘 다 서로 크게 기뻐한다. 하숙생은 Y가 줄을 서는 수고를 안 해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그러나 사실 Y는 이 친구가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줬다는 것이 기쁜 것이다. 땡볕 아래에서 약을 기다리는 게 얼마나 고된 일인지 푸념을 늘어놓으면 가만히 귀기울여주는 것도 고맙다. 오늘 하루 할 일이 있었고 그걸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때로는 이게 약이다.

 

 

병인(病因), 미국

 

쿠바에는 비공식적인 약국이 있다. 외국이다. 외국에 가족이 살면 쿠바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약들을 조달받을 수 있다. 가장 만만한 장소는 쿠바에서 가까운 미국 마이애미다. 그곳에는 쿠바인들이 워낙 많이 살아서 아예 스페인어로만 운영되는 약국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Y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미국에 살면서 연락되는 가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병세가 악화되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Y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미국으로 떠났다. 첫 번째로 떠난 사람은 남편이었다. 그가 뗏목을 타고 마이애미로 건너갔을 때 Y는 스무 살, 딸은 한 살이었다. Y는 처음부터 남편의 계획에 반대했다. 생활이 어려워도 가족이 찢어져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러나 남편은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 땅에 도착하는 모든 쿠바인들은 일 년 안에 영주권을 얻는다. 돈을 벌어 거처를 마련하면 그때는 Y와 딸을 데리러 쿠바로 돌아올 것이다. 결국 그는 홀로 쿠바를 떠났다.

 

이틀 만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하지만 그 뒤로 몇 년 간 뜨문뜨문 이어진 연락은 다섯 번을 넘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오던 연락이 어느 순간 끊겼다. 먼 타국에서 사람이 통째로 증발해버린 것 같았다. Y는 생각했다. 큰 사고를 당한 걸까? 말 못할 사정이 생겼을까? 아니면 우리를 버린 걸까? 속 타는 마음에 시댁도 찾아가봤지만 그들도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 진실이었다. 이제 그는 Y의 인생에서 없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딸과 홀로 살아야 했다. 보란 듯이 딸을 잘 키워내리라고 다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운명의 장난일까, 애지중지 키운 딸은 이십 년 후 아버지의 전철을 똑같이 밟았다. Y에게 말 한 마디 없이 뗏목을 타고 마이애미로 향한 것이다. 애인의 꼬드김에 딸이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둘이 함께 계획을 세웠는지는 모른다. Y는 처음부터 딸의 애인이 싫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를 비난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어쩌면 딸을 떠나게 만든 것은 Y였을 수도 있다. 남편에 대한 감정을 삭힐 수 없는 날에는 어린 딸 앞에서 원망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딸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가 건너간 땅에 대한 환상을 몰래 키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반빛, <바다너머> (2021)

 

 

통증, 바다

 

딸이 떠난 후 Y는 하숙집을 시작했다. 경제적인 이유는 둘째 치고, 홀로 살았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행히 그의 집은 대학교에서 가까웠다. 쿠바에 정 붙이고 살아야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문을 두드렸다. Y도 정 붙이고 살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기꺼이 그들을 맞이했다.

 

학생들은 바다 건너 새로운 공기를 몰고 왔다. Y는 중국 학생과 사 년을 붙어 살면서 다도예절과 중국조리법을 배웠다. 브라질의 커피 밭에서 자란 학생 덕분에 색다른 커피콩도 맛보았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볼리비아인 친구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핸드폰으로 고향의 풍경을 보여준다. 원체 성격이 부드러운 Y는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냈다. 사실 그가 청년들에게 쏟는 정성을 보면 잘 지내지 않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Y는 그들에게서 딸의 그림자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예전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지나친 간섭은 지양하고, 단지 청년들이 무탈하고 행복하게 청춘을 보내기만을 기원한다. 미국으로 떠나버린 남편과 딸처럼 Y도 자기 나름대로 제자리를 떠나는 중이다.

 

이것은 병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한 발짝씩 내딛는 여정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Y가 병을 수용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극복할 수 없는 통증이 있었다. 바다였다. 병을 다스리기 위한 Y의 첫 번째 원칙은 바다를 보지 않는 것이다. 바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학생들이 말레꼰으로 산책하러 가자고 해도, 쿠바의 제주도라 할 수 있는 이슬라 데 호벤뚜드(Isla de Joventud)로 놀러가자고 졸라도 Y는 꼼짝할 수가 없다. 눈 시리게 아름다운 카리브해는 그에게 악몽이다.

 

십 년 전에 딸은 쿠바를 떠났지만 끝내 미국에 도착하지 못했다. 딸이 애인과 함께 탄 뗏목은 남편의 것보다 더 엉성했다. 배는 불운한 바람을 맞고 엉뚱한 방향으로 표류했다. 삼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는 북아메리카 대륙은 며칠이 지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가져온 물은 동이 났다. 애초에 부실한 배에 많은 것을 실어갈 수가 없었다. 바다 위에서 그렇게 딸은 죽었다. 애인은 살았다. 딸이 탈수로 사망한 후에야 바람이 배를 육지로 데려갔다고 했다. 며칠 후 기력을 회복한 그는 쿠바에 전화를 걸었다.

 

사망신고 연락을 받은 Y는 전부 흰소리라고 생각했다. 왜 딸이 마이애미에 있는가? 왜 딸이 숨을 쉬지 않는다고 하는가? 그 당시 딸은 Y의 집을 나가서 애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일주일 정도 연락을 안 하는 것은 다반사였다. Y는 언니와 어머니가 사는 집으로 달려갔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허구인지 확인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소식을 전해들은 언니와 어머니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둘은 그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었다.

 

하나둘씩 진실이 밝혀졌다. 떠나기 전에 딸은 송별 파티를 성대하게 열었다. 친구들, 이웃들, 가족들 모두가 초대받았다. 오로지 Y만 초대받지 못했다. 엄마를 지나치게 잘 알았던 딸은 차마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엄마는 자신이 영영 떠난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으로 떠났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처럼 말이다. 그래서 순진한 딸은 행복한 계획을 세웠다. 마이애미에 도착한 후에야 엄마에게 자신의 행방을 알리리라. 모든 게 다 정리되면 그때는 엄마도 쿠바에서 미국으로 데려오리라. 이 계획이 일생일대의 불효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딸이 알 리가 없었다. Y는 딸의 마지막 얼굴을 볼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때의 기억은 Y의 머리 깊은 곳, 간뇌의 해마체 밑바닥에 잠겨있다. 딸의 유품을 몰아넣은 상자도 장롱 속에서 십 년 째 죽은 듯이 잠자고 있다. 그렇지만 해마체에 있어야 할 기억은 뇌를 탈출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박힌 것 같다. 바다를 볼 때마다 회한이 밀물처럼 덮친다. 시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애인이 묘지에 묻어주기는 했을까? 아니면 바다 위에서 떠돌다가 서서히 해체되었을까?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마침내 받아들였을 때조차도 Y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쿠바를 떠날 수가 없었다. 쿠바인은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때만큼 허망했던 때도 없었다. 미국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고, 쿠바와 미국을 갈라놓는 카리브해에는 불행의 무저갱이 있었다.

 

 

진통제, 수다

 

기억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는 냉혹한 질문이 남는다. 이 지옥을 스스로가 만든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다. 딸을 그렇게까지 과보호하지 않았더라면, 딸을 인생의 의미로 삼는 게 제 욕심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사랑하는 엄마가 되고자 했지만, 사랑한다는 게 무엇인지 질문한 적이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Y는 진실을 정면에서 마주할 수가 없다. 이런 질문의 끄트머리가 의식의 수면 위로 보이기만 하면 심장이 멈출 것처럼 가슴이 아프고 뻐근하다.

 

따라서 그는 바다를 아예 보지 않는 쪽을 택한다. 이 괴로운 기억을 극복해야만 병을 떨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있다. 하지만 근치(根治)도 환자의 체력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다. 악몽의 바다에서 수영을 하려면 우선 마음의 근육이 있어야 한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Y는 구명조끼를 찾는다. 악몽의 파도가 덮쳐올 때는 이 파도가 한바탕 지나갈 때까지 어떻게든 수면 위에 떠 있어야 한다. 기억 속으로 침잠해버리면 영원히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가 붙잡는 ‘구명조끼’는 바로 수다 떨기다. 이웃이든 학생이든 의사든 간에 옆에 사람을 앉혀놓고, 오늘 하루 무슨 일을 했는지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시간을 보낼 것. 맛있는 것을 먹을 것. 그 후에는 산책을 할 것. 그러고 나면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잠잠해진다. 때때로 사람들은 Y의 구조 요청을 귀찮아한다. 그래도 그가 홀로 고립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다. 모두가 살과 살을 부대끼면서 사는 쿠바에서는 병자를 외면하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못 된다. 기억의 파도타기, 이것이 Y와 이웃들이 매일 함께 하는 의료처치다.

 

한 번 조각난 마음을 다시 이어붙일 수 있을까? Y도 모른다. 어떤 명의도 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안다. 예전에는 Y도 막연하게 살아갈 이유를 구체적으로 찾고 싶어 했다. 그러나 요즘은 살게 되었으니 그냥 사는 것이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망가지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살아있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으니 그는 벌써 치유의 길 초입에 서 있는 셈이다. 게다가 그의 말마따나 그는 의사 복이 많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어, Y는 병든 기억으로 출렁이는 일상을 나름대로 살아갈 테다.

댓글 7
  • 2021-04-04 18:43

    아, 읽는 동안 몇번이나 가슴속에서 뭔가가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어요.

    많은 이들에게 꿈의 바다인 카리브해는 쿠바의 비극을 품고 지금도 무심히 출렁이고 있겠지요.

  • 2021-04-04 19:41

    쿠바혁명 해밍웨이만 알고 있는 우리에게 쿠바의 다양한 얼굴을 소개해주셔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 2021-04-04 21:15

    쿠바이야기는 한 편 한 편이 영화 같네요

    잘 읽고 있습니다

     

  • 2021-04-05 22:30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짠하네요...

  • 2021-04-07 15:46

    한번 조각난 마음을 다시 이어붙이기가 .....

    그럼에도 살아갈 이유를 찾고 또 살아가야 하는 게 삶이죠

    쿠바 이야기 정말 한편 한편이 영화같아요

    사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긴 하죠... 

  • 2021-04-08 09:00

    영화같다지만, 그 영화가 삶인 것을....

  • 2021-04-13 21:55

    Y가 아름다운 카리브해를 바라보며  장농속의 딸의 유품을 보내며 딸과 조우하는 날이 오기를...

    이번에도 그림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