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 불교산책1회] 건너가기 위하여

요요
2021-08-12 11:06
529

 

건너가기 위하여

너희 비구는 나의 설법을 뗏목의 비유처럼 알아야 한다. 법도 응당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법 아닌 것이랴!(『금강경』)

 

뗏목의 비유

여행자가 있다. 길을 가다가 큰물이 넘치는 강을 만났다. 위험하고 두려운 이편 언덕에서 안온하고 두려움 없는 저편 언덕으로 건너가려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를 도와줄 나룻배도 없고 다리도 없다. 여행자는 나뭇가지와 풀잎을 모아 뗏목을 만들어 무사히 강을 건넜다. 계속해서 길을 가야 하는 여행자는 생각한다. “이렇게 고생고생해서 만든 뗏목을 놓아두고 가려니 아깝다. 뗏목을 머리에 이거나 어깨에 메고 가는 건 어떨까?”

 

불교경전에 나오는 뗏목의 비유다. 이 비유가 설해진 배경은 이렇다. 수행자들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어떤 수행자가 다른 해석을 내 놓았다. 대부분의 수행자들이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해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의견차이로 논쟁하는 것은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옳다는 보장도 없으니 수행자들은 서로의 주장의 근거를 대며 네 생각은 틀렸고 내 생각이 옳다고 옥신각신 하지 않았을까?

 

상황을 들은 붓다는 수행자들을 불러 모아 먼저 자신의 가르침이 어떤 뜻이었는지를 분명히 알려준다. 그런 뒤 이 비유를 설했다. 그리고 수행자들에게 물었다. ‘여행자가 어떻게 뗏목을 처리해야 하겠느냐?’고. 모두 ‘뗏목을 버려두고 길을 가야한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강물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두고 길을 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누구의 주장이 옳은가를 밝히고 승자의 손을 들어주면 그만일 텐데 붓다는 왜 ‘뗏목을 버려두고 길을 가야한다’는 대답을 끌어내는 뗏목의 비유를 설했을까? 그 이유는 이렇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건너가기 위하여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뗏목의 비유를 설했다. 수행승들이여, 참으로 뗏목의 비유를 아는 그대들은 가르침마저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가르침이 아닌 것임에랴! (『맛지마니까야』 22.『뱀에 대한 비유의 경』)

 

뗏목은 건너고 나면 집착하지 않고 버려야 하는 것. 여기까지는 알겠다. 자신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수행자를 호되게 꾸짖고 나서 내 가르침을 잊지 말라고 해야 할 것 같은 장면에서 벌어진 놀라운 반전. 이 비유에서 붓다는 느닷없이 자신의 가르침도 강물을 건너면 버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버린다. 옳지 않은 것을 버려야 하는 근거가, 헐! 올바른 가르침도 응당 버려야 하기 때문이라니! 돌연한 비약 같기도 하고 반전 같기도 한 이 느낌은 뭘까? 뗏목의 비유를 그저 멋진 문학적인 수사로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이 비유,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올바른 가르침도 응당 버려야 한다고?

뗏목의 비유는 래디컬하다. 왜 래디컬한가? 붓다의 가르침이 응당 버려야 할 뗏목에 비유될 수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무조건적인 경배와 묵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베다』나 『성서』, 『꾸란』을 생각해 보라. 대부분의 종교 경전은 계시라는 신비로운 후광에 둘러싸여 있고, 경전의 언어는 단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하고 신성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에 비해 뗏목의 비유는 붓다의 말씀인 팔만사천법문의 불교경전에 대해 어떤 신비의 아우라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뗏목의 비유는 절대적 진리를 자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붓다의 가르침은 상대적이고 방편적인 것이 된다. 방편은 방법과 편의라는 말이니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다르게 설한다는 대기설법(對機說法)과도 뜻이 통한다. 뗏목의 비유를 선택함으로써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상대적이고 조건적인 것으로 만들고, 저 높고 신성한 하늘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범속한 땅위로, 변화무쌍하고 위태로운 현실 가운데로 끌어내리고 있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이 비유는 어떤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붓다의 가르침마저 뗏목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불교 어디에도 믿고 기댈 안정된 지반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대체 왜 붓다는 가르침을 굳이 버리고 떠나야 하는 뗏목에 비유한 것일까?

 

붓다의 가르침을 세 가지로 요약한 삼법인 중 첫 번째인 제행무상(諸行無常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에서 출발해 보자. 모든 형성된 것이란 인연화합으로 만들어진 모든 것이다.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생명 있는 것과 정신적인 것이 모두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이 단 한 순간도 고정된 것이 없이 늘 변화한다는 것이 제행무상이다. 이 세계가 끊임없는 무상한 흐름이라는 것, 아마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랫동안 인연화합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 불변하는 것을 찾아왔다. 플라톤의 이데아, 『우파니샤드』의 아트만, 기독교의 하느님 등은 모든 형성된 것들의 기원을 추론하여 변하지 않는 존재나 원리가 있다고 가정한다. 우리도 쉽게 어떤 사물이나 개념에 대해 변치 않는 본질이나 본성이 있는 것처럼 가정하곤 한다. 가령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탄식은 ‘영원한 사랑’이라는 이상을 전제하고 있는 것과 같다. 붓다는 그런 기원에 대한 가정이나 영원한 것에 대한 가정을 논의할 가치가 없는 주장, 희론(戱論)으로 간주한다.

 

뗏목의 비유는 그 무엇도 절대화하지 않는, 무상에 철저한 입장과 태도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비유이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는 올바른 가르침조차 응당 버려야 한다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뗏목에 대한 비유를 그저 멋진 문학적 레토릭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뗏목의 비유는 붓다가 말한 그대로 ‘건너가기 위하여 집착하지 않기 위하여’ 설해졌다. 건너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강물을 건너기는커녕 이 언덕으로 되돌아오는 반복

그런데 뗏목의 비유를 우리의 삶으로 가져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의 가르침마저 놓아버리라고 설하는 붓다를 따라 우리도 자신이 붙들고 있던 것-저절로 일어난 느낌이든 숙고한 결과로서의 견해든-을 아무 집착 없이 가볍게 놓아버릴 수 있을까.

 

나의 경우를 보자. 그 동안 내가 의지한 뗏목이 그리 훌륭한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거센 물결을 만났을 때 좌초하기도 하고 파도에 밀려 떠내려가기도 하고 익사의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20대에 내가 의지한 뗏목은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적 이념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이었다. 그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했듯이 나 역시 그 꿈을 따라 가시밭길을 자처했다. 그런 만큼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운동의 후퇴를 마주했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깊은 절망감을 맛보았다. 그랬던 만큼 다시는 뗏목 같은 것을 믿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몸과 마음에 배인 습 때문인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또 다시 대안을 찾아 대안학교라는 뗏목을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그게 끝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내가 붙든 뗏목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10년을 가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고 나도 변하고 내가 마주친 삶의 조건도 계속 달라졌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기 위해 뗏목을 만드는 줄 알았는데 정신차려보면 또 다른 차안으로 돌아와 있다는 것이었다. 강을 건넌 것이 아니라 여전히 이 언덕 주위를 배회하면서도 나는 내가 의지하던 뗏목 내려놓기를 주저하고 망설이곤 했다.

 

주위를 돌아보면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고 있는 조건과 인연들에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 무상한 변화에 자연스럽게 감응하기보다 기존의 생각과 행동의 습속을 고집하고 반복한다. 저 언덕으로 건너가기는커녕 이 언덕을 떠나지 못한 채 자기에게 익숙한 생각과 행위의 패턴을 고수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감정을 쓰며 산다.

 

비슷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자동적으로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로 반응하는 것을 반복하다가는 수많은 인연과 조건들의 무상한 변화를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내가 가진 호오나 선악의 판단기준이야말로 과거의 내가 축적해 온 경험과 습속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붙들고 있는 한 우리는 사유를 멈춘 상태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비슷한 행동과 사고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뗏목의 비유를 우리 자신의 삶으로 가져와 보면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것도, 뗏목을 내려놓는 것도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붓다는 올바른 가르침마저 버려야 하는데도 각자의 신념이나 견해, 취향이나 기호, 습속이나 익숙한 감정이 무슨 대단한 보물이라도 되는 양 놓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려 했을 것이다.

 

 

버리고 떠나는 공부

뗏목의 비유가 그러하듯이 ‘버리고 떠남’은 거의 모든 불교경전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메시지다. 붓다의 설법을 듣고 무상을 알게 된 자는 무상을 알기 전의 자신을 버리고 떠난다. 재가의 삶에서 출가의 삶으로, 혹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

 

건너가기 위하여 인문학 공부를 하며 일상을 꾸려온 지 10년. 이젠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나 자신을 바꾸는 공부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공부가 삶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지만 언제나 효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게 문제다. 공부로 인해 야기되는 치명적인 부작용도 있다. 아는 것을 건너가기 위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아는 것을 자신의 재산으로 여길 때 자의식이 풍선처럼 부푸는 것이다. 많은 지식인에게서 나타나는 병증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동체가 이런 병증을 숨길 수 없는 최고의 수련의 장이라는 점이다. 깨달음을 얻은 후 열반에 들기까지 45년 동안 붓다가 이끈 공동체 역시 이런 일들이 자주 발생했으리라. 뗏목의 비유 역시 수행자들 사이에서 옳고 그르고를 따지며 논쟁하는 현장에서 설해진 가르침이었음을 기억하자.

 

공부는 자칫 아는 것을 쌓고 나를 강화하는 것이 되기 쉽다. 그러나 뗏목의 비유는 무상을 통절하게 깨닫는 것이 공부라고 알려준다. 무상하게 변하는 삶 속에서 궁극적으로는 집착하고 붙들 것이란 없다고 가르친다. 붓다의 가르침조차 저 언덕으로 건너가기 위한 것일 뿐, 붙잡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닐진대 하물며 지금 번뇌 가득한 이 언덕에서의 내 생각, 내 느낌, 내 방식에 대해서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댓글 9
  • 2021-08-12 13:26

    버리고 떠나는 공부라는 문장도 묵직하지만, 오랜만에 읽는 요요샘 글이라 넘 반갑네요!!! 2편도 빨랑 올려주세요~

  • 2021-08-12 20:10

    아는 것을 건너가기 위한 것으로 여기기!! 저도 묵직하네요^^;

    요요샘의 불교 산책~~ 기대 기대요~

  • 2021-08-13 11:07

    쌓는 공부가 아니라 버리는 공부!

    버리면 한결 가벼워 건너기도 쉬울텐데...

    불교공부는 공부의 패턴 자체를 바꿔주어 힘들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것같아요~~

     요요샘 글을 여기서 보니 더 반가워요~^^

  • 2021-08-14 20:51

    건너가기 위해 필요한 것도 버리라는 가르침

    그 가르침조차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니

    심오한 불교의 세계를 요요샘의 글로 접할 수 있는 기회...좋아요^^

    • 2021-08-15 11:50

      이년전  요요샘과 불교공부하며

      접한 무아의 개념에 무섭고 두렵기까지한 감정을 느낀적이 있었는데요^^;; 글 너무 잘 보았습니다.샘 글보고는  다시 무상의 힘으로, 무상한 인연과 조건따라 일어나는 세상 모든 일들에 환영까진 못하더라도 자연스레 감응 할 수 있도록 평삼심즉도의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드네요~~^^

       

      • 2021-08-15 18:46

        오! 정향샘!! 그 때 함께 읽은 맛지마니까야에 나오는 뗏목의 비유로 글을 썼는데.. 고맙습니다!!

        다시 같이 공부할 기회를 만들어 보아요~~

  • 2021-08-16 01:08

    배를 버린다는 것은 항우가 전쟁터에서 배수진을 칠 때 했던 것인줄만 알았는데......

     

  • 2021-08-23 19:05

    자신을 바꾸려는 공부 저는 이제 한발 내딛였어요. 

    버리라는 불교 공부를 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것을 붙들고 집착하며 놓지 못하는 제게,

    요요선생님 글이

    건너가기 위해서는 익숙한 나와의 결별(내생각, 내느낌, 내방식)을 받아들여야한다고 말하네요.

    명심하겠습니다!

     

  • 2021-09-30 12:14

    와우! 지혜가 담겨있는 명문입니다.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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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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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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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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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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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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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요요 2023.06.11 |
조회 371
요요와 불교산책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요요 2023.03.20 |
조회 447
요요와 불교산책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쌍윳따니까야』 15장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쌍윳따』)   수많은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지금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2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심신을 갉아 먹고 있었던 그 모든 고통이 끝난 것에 대한 안도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시에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야윈 몸을 끌어안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뺨에 얼굴을 비벼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어루만진 입관식에서도, 어머니의 몸을 담은 관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도, 한 줌으로 수습된 유골을 땅에 묻을 때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었다는 회한과 자책감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눈물의 경』을 떠올렸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수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대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비탄에 빠지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은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쌍윳따니까야』 15장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쌍윳따』)   수많은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지금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2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심신을 갉아 먹고 있었던 그 모든 고통이 끝난 것에 대한 안도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시에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야윈 몸을 끌어안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뺨에 얼굴을 비벼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어루만진 입관식에서도, 어머니의 몸을 담은 관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도, 한 줌으로 수습된 유골을 땅에 묻을 때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었다는 회한과 자책감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눈물의 경』을 떠올렸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수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대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비탄에 빠지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은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요요 2023.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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