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 42길 5회]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마틴 스콜세지 <택시 드라이버(1976)>

띠우
2021-11-21 19:00
202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

 

- 영화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유럽에서 문을 연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거대한 스튜디오 중심의 독점자본주의로 성장하며 황금기를 맞는다. 그것은 메이저 영화사들이 수직적인 분업화와 표준 원칙을 통해 제작과 배급, 그리고 상영을 일원화한 통합 체계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거대한 꿈의 공장들은 쉴 새 없이 가동되어갔고, 영화는 자연스레 대도시 대중들의 중요한 여가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1948년 미국 대법원의 메이저 영화사들의 독과점행위금지가 판결되면서 미국영화계에는 다시 한 번 변화가 일어난다. 스튜디오 시스템을 벗어나 자유로운 예술영화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공장에서 벗어난 영화는 사회에 대한 성찰과 실험적이고 예술적인 표현을 시도했는데, 1960년대 청년 히피 문화와 저항 문화를 기반으로 한 뉴아메리칸 시네마 운동으로 이어졌다.

 

 

1968년 베트남전쟁 당시 사진기자 애디 애담스가 공개한 사진 한 장(일명 ‘사이공식 처형’)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불러온다. 사진 속에서 처형된 사람은 전쟁의 끔찍함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30여 명의 여성을 성폭행하고 무자비한 살인을 저질렀던 인물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그 이면이 드러났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 있어서 전 세계적인 비판 여론을 바꾸기 위해 이 사실을 은폐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베트남 안에서 벌어지는 잔혹성의 표면으로 돌렸던 것이다. 결국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 계기가 된 사건(통킹만사건) 자체가 미국이 조작한 사건이라는 것이 미 국방부 기록을 통해 확인되었고, 워터게이트 사건까지 터지면서 미국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시기를 겪는다.

 

우리는 <택시 드라이버(1976)>, <지옥의 묵시록(1979)>, <람보(1983)> <플래툰(1986)>, <포레스트 검프(1994)> 등 베트남 전쟁을 다룬 많은 영화를 만나왔다. 대중에게 강한 영향력을 주는 매체이니만큼 영화는 정치사회적 성격을 갖게 되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동일한 사건을 다루는데도 재현방식에 따라 진실에 대한 해석 양상은 조금씩 조작되고 변해가기도 한다. 전쟁 후 겪는 소외를 다루기도 하고, 무자비한 민간인 살해나 대량살상무기의 피해를 사실적으로 드러내기도 하고, 폭력에 기댄 주인공의 심리를 통해 전쟁의 이면을 들추기도 한다. 또 사회적 용서를 유도하거나,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폭력에 대한 감정을 환기시키는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베트남 전쟁이 미국인들에게 남긴 상처는 계속해서 영화적 소재로 재소환되어 미국의 도덕성을 회복하려고 했다.

 

- 잠들 수 없는 밤이 이어지다

 

 

마틴 스콜세지가 1976년에 연출한 <택시 드라이버>는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작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수상 소감에서 언급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었고, 영화 <조커>가 오마주한 작품이기도 하다. 전체 내용은 베트남 종전 직후의 미국을 배경으로, 뉴욕 맨해튼 뒷골목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퇴역 군인 트래비스 비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감독은 대도시 뉴욕의 삭막하고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인물의 고독과 혼란, 방황을 보여주면서 미국 사회의 총체적 암담함을 보여준다. 부정과 부패, 국제적 망신까지 당한 후 뉴욕에서는 온갖 종류의 범죄율이 사상 최대로 높아지고 있었는데, 낮에도 총칼을 소지한 인물들이 부지기수였다. 과거의 참전 용사들이 귀환 후 영웅대접을 받았다면, 베트남 참전 군인들은 맹렬한 비난을 받았다. 그들은 무기를 익숙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사회의 잠재적 불안 요소로 취급받았고, 대부분이 극심한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갔다.

 

트래비스 역시 미국의 숭고한 가치를 위해 전쟁에 참여했으나 남은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한 불면증뿐이다. 그가 밤에 택시를 모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 초반, 트래비스는 타락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지만 현실 속으로 편입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베키와의 만남을 통해 이는 구체적으로 시도되는데 밥을 먹고 선물을 하고 데이트를 한다. 그러나 그 편입과정은 만만치가 않다. 데이트 장소가 포르노 극장이라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대통령 후보인 상원의원 팔레스타인이 트래비스의 택시에 승객으로 오르자 계속해서 말을 걸지만 대꾸는 신통찮다. 이어서 12살의 어린 창녀 아이리스까지, 그와 의미있는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없다. 그의 존재는 사회 속에서 부정된다.

 

 

모두에게 존중받지 못한 채 사회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 트래비스는 정치인 팔렌타인을 저격하기로 마음먹고 총과 몸을 준비해 결전의 길을 나선다. 그러나 경호요원들의 눈빛 하나에 허둥대며 도망친다. 그 모습은 다시 봐도 어이가 없다. 뒤이어 분출하지 못한 분노를 안고 아이리스가 있는 사창가로 달려가 무시무시한 총격전을 벌이기 시작한다. 이때 인상적인 장면은 그가 포주를 죽인 후 계단에서 보인 모습이다. 살해 후 갑자기 오는 현실감이라고 해야 할까. 멈칫 계단에 앉아서 고개를 숙인 그의 고뇌는 되돌릴 수 없는 절망을 마주한 상황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결심하고 일어선 그 다음 장면에서 거침없는 총격씬이 이어진다.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듯. 모두 죽이고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날리는 트래비스의 미소는 클로즈업된다.

 

- 원치 않는 결말이라도, 결말은 온다

 

나는 오래도록 <택시 드라이버>의 결말을 주인공의 죽음으로 기억했다. 피칠갑이 되었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탓일 수도 있지만, 젊었던 시절의 나는 그가 이 비극적인 세상에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 모양이다. 그러다 다시 영화를 보면서 그가 멀쩡히 살아났고, 어린 아이리스를 구하며 갱단 소굴을 소탕한 영웅이 되었으며, 여전히 택시를 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영화 속 그의 일상은 조금 편해진 모습이었고, 이전에 거리를 두었던 동료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조금 기괴하게 여겨졌다. 그가 원한 삶이 이런 것이었을까. 차라리 죽었더라면...

 

 

마틴 스콜세지는 어느 인터뷰에서 ‘비록 영화의 결말에서 트래비스가 통제력을 되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그가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이탈리아 이민 2세대 출신인 감독은 온갖 이민자들이 모여든 뉴욕의 추악한 뒷모습과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관이 지닌 허구성을 일찌감치 포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독은 트래비스가 마지막에 전쟁처럼 벌인 총격살인행위가 사회정의로 탈바꿈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어떤 경고를 한 것이 아니었을까.  미국이 당시에는 베트남전을 반성하고 있지만 다시 그와 같은 행위를 반복될 수 있다고 말이다.  미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모순에 의해 발생한 불안이 근본적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니 말이다.

 

<택시 드라이버>는 오프닝과 엔딩 장면이 거의 유사하다. 택시를 모는 트래비스와 그의 시선을 따라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인다. 중간을 보지 않는다면 두 장면은 거의 똑같아 보인다. 마치 우리의 어제 오늘의 아침과 저녁이 비슷하게 굴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트래비스를 통해 감독이 보여준 모순되고 소외된 삶은 오늘날의 현대 사회에서 더 가속화되고 있다. 내일의 안정된 삶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라거나 행복을 위해 경쟁에서 승리하라는 것과 같은 모순에서 발생하는 불안이 우리들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해간다. 우리 역시 아름답고 윤리적인 사회정의를 꿈꾸며 행복한 삶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 정반대로 살면서 이상적인 결말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댓글 4
  • 2021-11-22 20:44

    전 이 영화 처음 봤던 때는 베트남 전쟁 등등하고는 거의 연결 못하고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가 기억남았어요.

    거울보며 삭발하는 장면, 푸샵하면서 몸 만드는 장면 등등....

    얼마 전에 다시 보면서 아... <택시드라이버>가 이런 영화였구나~! 했답니다^^

    그러면서.... 현재의 "모순되고 소외된 삶"을 사는 우리 모두의 불면과 분노와 우울은 어떤 스토리가 될 수 있을까... 

    이 글을 읽으며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 2021-11-24 17:01

    더 나은 세상은 왠지 오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감이 드네요… ㅜ

  • 2021-11-27 18:23

    지난주까지도 토요일 오전이면 영화인문학을 했는데, 오늘 허전한 마음에 이 영화를 보고 띠우샘 글을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로버트 드니로가 멀쩡하게 택시를 다시 모는 걸 보고 우리 영화 '하녀'가 생각났어요. 파괴적인 결말이 예전엔 어디서나 부담스러웠던 걸까요. 영화가 어디까지 현실의 문제를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글 잘 읽었어요^^

  • 2021-11-30 07:11

    우습게도 제 기억에 남는 베트남전쟁씬 영화는.......한국영화 <클래식>입니다ㅎㅎ

    조승우(준하)가 베트남전에서 시력을 잃고 첫사랑앞에서 그걸 감추려고 했단 말이죠. ㅋ~

    전쟁은 트래비스에게도 준하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넹 ㅜ.ㅡ

     

     <택시 드라이버>,  띠우샘 글 읽고나니 다시보고싶어졌어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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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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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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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The Hours(2002)>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 리치몬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버지니아 울프와 1951년 미국 LA의 풍요로운 일상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읽는 로라 그리고 2001년 뉴욕의 출판 편집인으로 별명이 ‘댈러웨이 부인’인 클라리사의 ‘어느 하루’를 교차 편집하며 보여준다. 버지니아와 로라가 살았던 때는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동성애 자체를 감추어야 했던, 혹은 전쟁 직후의 경제 번영 속에서 미국 전체가 가부장제 질서를 견고히 하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직후의 삶을 살았던 앞의 두 여성과는 달리 2000년대의 클라리사를 둘러싼 사회환경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있었다. 그것은 불안이다.     각각 버지니아, 로라, 클라리사로 분한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의 뛰어난 연기는 오늘날 여성의 삶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한다. 여기서 리처드라는 인물의 등장은 의문을 낳는다.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첫사랑이며 버지니아와 같은 작가다. 또한 버지니아처럼 자살에 성공하는 인물이다. 여성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만으로도 영화는...
띠우 2024.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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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죽은 시인의 시간(hours) <디 아워스>(2002)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주연 : 니콜 키드만,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 114분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2003)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로라 브라운(줄리앤 무어), 클라리사 본(매릴 스트립) 세 명의 여성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중첩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1923년 ‘버지니아’로 시작해서 1951년 ‘로라’와 2001년 ‘클라리사’로 이어진다. 이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세 명을 관통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가 집필 중인 소설이며,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얻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과 서로 맞닿아 있다. 단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리처드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그 장면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리처드(에드 해리슨)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옛 연인이면서, 영화 속에서 버지니아처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죽은 시인의 시간(hours) <디 아워스>(2002)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주연 : 니콜 키드만,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 114분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2003)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로라 브라운(줄리앤 무어), 클라리사 본(매릴 스트립) 세 명의 여성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중첩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1923년 ‘버지니아’로 시작해서 1951년 ‘로라’와 2001년 ‘클라리사’로 이어진다. 이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세 명을 관통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가 집필 중인 소설이며,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얻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과 서로 맞닿아 있다. 단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리처드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그 장면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리처드(에드 해리슨)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옛 연인이면서, 영화 속에서 버지니아처럼...
청량리 2024.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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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한국영화시리즈 마지막 회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천재   -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베이비붐 세대의 문화예술론   1941년생인 하길종 감독은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4·19혁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을 겪으며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다. 1965년, 그는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 UCLA 영화과에 진학하였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병사의 제전>(1969)은 미국 영화과 졸업생 가운데 4명을 뽑는 ‘메이어 그렌트(Meyer Grent) 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났다. 당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조지 루카스 등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연출했던 아서 펜의 조감독으로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국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는 형이 있었다. 해외에서 병역기피자가 되어 형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는 1970년에 강제소환된다. 베트남전과 68혁명의 영향으로 자유를 향한 저항정신이 휘몰아치던 시기의 미국을 떠나 귀국하면서 보게 된 한국 사회는 그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길종의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사전검열뿐만 아니라 사후검열이라는 이중의 검열 제도가 있었고, 해외파에...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한국영화시리즈 마지막 회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천재   -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베이비붐 세대의 문화예술론   1941년생인 하길종 감독은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4·19혁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을 겪으며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다. 1965년, 그는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 UCLA 영화과에 진학하였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병사의 제전>(1969)은 미국 영화과 졸업생 가운데 4명을 뽑는 ‘메이어 그렌트(Meyer Grent) 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났다. 당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조지 루카스 등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연출했던 아서 펜의 조감독으로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국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는 형이 있었다. 해외에서 병역기피자가 되어 형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는 1970년에 강제소환된다. 베트남전과 68혁명의 영향으로 자유를 향한 저항정신이 휘몰아치던 시기의 미국을 떠나 귀국하면서 보게 된 한국 사회는 그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길종의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사전검열뿐만 아니라 사후검열이라는 이중의 검열 제도가 있었고, 해외파에...
띠우 2023.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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