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글쓰기3]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김현지
2021-12-06 09:48
351

아버지와 나 사이에 가능성이 생겼다

 

“이 가을이 내 마지막 가을이겠네.”

엄마는 10월의 단풍을 보고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그 후 엄마의 시간은 우리와 다르게 흘렀다. 엄마에게 건넨 말에 대한 응답이 한참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 엄마 혼자 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엄마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매일 집안의 곳곳을 쓸고 닦았다. 가끔씩 우릴 만나러 오는 엄마를 조금이라도 깨끗한 공간에 머물게 하고 싶어서. 그게 막을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아무렇게나 쌓인 그릇을 모두 꺼내 크기별로 종류별로 정리하고 있던 어느 날, 거실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태희 엄마, 우리 죽어서도 꼭 다시 만나세.”

 

애써 눌러도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지 못해 아버지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에 꼭 그러자고 대답했다. 뼈만 남은 몸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사력을 다해 약속했다. 저물어 가는 여자와 저물고 싶은 남자가 그렇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 장면에 나는 딴지를 걸고 싶었다. 나는 잊지 못했다. 어릴 적 엄마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던 아버지의 모습을. 엄마를 향해 고성과 욕설이 날아든 밤들을. 그리고 아주 가끔, 그런 밤이 지나고 나서 엄마의 팔뚝에 든 시퍼런 멍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엄마가 깜깜한 주방에서 남몰래 울던 모습을. 좋은 아빠였을진 몰라도 확실히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는 다 큰 딸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던 엄마의 표정을.

 

“엄마는 그렇게 욕하고 성질부리는 남편을 또 만나고 싶어?”

 

나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담긴 농담을 던졌다. 그런 내 공격을 막아 세운 건 엄마였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까불지 말라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또박또박 내뱉은 한 마디. 엄마의 날 선 목소리에 나는 금세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짧은 말 한마디가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말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아버지와 엄마 사이에는 내가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 있다는 것. 모르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므로 나는 아버지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내 판단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아버지를 향해 들끓던 분노를 잠재웠다. 엄마는 죽기 직전 온 마음을 담아 아버지를 방어했고, 그 방어 덕에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가능성이 생겼다.

 

 

사랑은 방법까지 사랑이어야 했다

 

내게 아버지는 좋은 사람 혹은 나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울적한 딸의 마음을 알아차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바닥까지 가라앉은 날이면 아버지는 내게 “업어줄까?” 하고 물었다. 아버지 등에 업혀 한참을 있으면 내 가슴으로 아버지의 온기가 전달됐다. 그 따뜻함에 의지해 별로였던 하루를 그럭저럭 괜찮은 날로 마무리하곤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예측을 벗어난 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 않았던 아니 할 수 없었던 23살의 어느 날, 휴학을 하고 싶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했다. 힘들어서 쉰다는 건 아버지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나를 거실에 꿇어앉히고 내가 누리고 있는 호사를 하나하나 나열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이 감당하는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아냐며 노기 어린 얼굴로 서운함을 표현했다.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던 나는 내 마음대로 쉴 수 없었다.

 

26살. ‘최종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는 문구를 보았고, 아버지는 교사가 된 나를 껴안고 울었다. 나는 아버지의 눈물이 거북했다. 그 눈물이 나를 위한 눈물일 리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스무 살쯤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의 폭력이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거라 해석했다. 아버지를 향한 양극단의 감정을 껴안고 사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설픈 해석술이라도 발휘해야 했다. 하지만 가장 이해받고 싶었던 순간에 외면당했던 기억은 묵혀놓았던 화를 터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사랑은 방법까지도 사랑이어야 했다. 돈을 벌고 나서부터 아버지를 더욱더 멀리했다. 앞으로는 아버지 때문에 어떤 것도 소모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게 내가 선택한 복수의 방식이었다. 엄마가 췌장암 판정을 받은 즈음 아버지를 향한 내 분노는 극에 달했다. 나는 아버지의 폭력이 엄마를 병들게 했다고 확신했다.

 

엄마는 왜 삶의 끝에서 아버지와 다시 만나겠다는 약속을 한 걸까. 엄마는 어떻게 아버지를 향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을까. 나도 생의 마지막에는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 싶어질까. 아버지와 영원히 이별하는 순간이 올 때 당신이 내 아버지여서 좋았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게 됐다

 

엄마가 죽고 나서 한 달 뒤 결혼을 앞둔 언니가 새 가정으로 터를 옮겼다. 언니가 집을 나가던 날 아버지는 언니를 배웅하며 꼭 안아주었다. 아버지와 언니 모두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하지만 둘 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부러 씩씩하게 작별 인사를 주고받았다. 짧은 시간에 애사와 경사를 치른 집은 더없이 고요했다. 평생을 들어왔던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소리로 사람의 빈자리를 느꼈고, 외로웠다. 겨울방학이라 일터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즈음 나는 아버지와 자주 시간을 보냈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던 탓일까. 아버지를 향한 분노가 누그러진 탓일까. 그와 보내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점심을 먹기 전 아버지와 함께 엄마와 오르내리던 산에 갔다가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함께 저녁을 먹는 일과가 한동안 지속됐다. 보내는 시간의 양에 비례해 나누는 대화의 밀도도 높아졌다.

 

함께 산길을 오르던 어느 하루, 과묵하기로 유명한 엄마가 자기 앞에서는 수다쟁이였다고 자랑처럼 말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엄마는 바보라고. 아버지가 괴롭혔던 시간은 다 까먹었나보다고. 그 수모를 당하고도 아버지를 또 만나고 싶어 한다고. 죽기 전 나를 향해 쏘아붙이던 엄마의 모습은 아버지에게도 뜻밖이었는지 아버지는 그날의 기억을 여러 날에 걸쳐 곱씹어 말했다. 같은 말의 변주를 듣는 과정에서 나는 아버지가 꽤 오랜 시간 엄마에게 미안함을 표현했음을 알게 됐다.

 

아버지의 말에는 내가 모르는 시간들이 담겨 있었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서로의 속내를 말하며 엄마와 아버지는 하루를 끝맺곤 했다. 어떤 날에는 각자의 서러웠던 세월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자기 성질을 못 이겨 엄마를 서글프게 한 날들이 후회스러워 아버지는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사랑이란 말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이 부부에겐 생겼다. 엄마가 죽고 나서 아버지는 여전히 침대의 한 옆을 비워둔다 했다. 엄마가 옆에 누워 있는 것 같아 침대 한가운데에선 잠이 오지 않는다 했다. 이제 아버지의 하루 끝은 잠들기 전 손으로 쓰윽 침대의 빈자리를 훑는 일이 됐다. 그해 겨울을 나는 그렇게 보냈다.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 오고 갔을 수많은 이야기와 홀로 된 아버지의 마음결을 상상하며. 나는 예전처럼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게 됐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하기로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나는 결혼을 했다.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함부로 화를 분출하지 않으며, 쉽게 자신의 삶을 연민하지 않는 남자와. 그는 아버지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하는 공간에는 긴장과 불안이 없었다. 갈등이 발생해도 우리 사이에는 큰 목소리가 오고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 마음에 들었다. 반면 아버지는 더 외로워졌다. 종알종알 말동무해주던 딸의 부재는 아버지에게 커다란 상실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딸과 통화하기를 원했고, 외로움을 알아보는 딸에게 자신의 불쌍한 처지에 대해 하소연했다. 넓은 집의 적막이 얼마나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전화 너머 홀로 있을 아버지가 애잔했다. 독립을 해서도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나를 찾는 아버지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 우울에 빠진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드는 죄책감.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두 감정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통화 끝에 한결 개운해진 목소리로 막내딸이 최고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볼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가을이 되면 아버지의 슬픔은 더 깊어졌다. 엄마가 우리를 떠나기 시작한 계절의 기억은 아버지를 괴롭혔다. 전보다 더 애절해진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약해져버린 아버지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어 짐짓 담담한 척했지만, 내게도 가을은 힘든 계절이었다. 엄마가 죽은 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내 몸은 자주 까라졌다. 직장에서 슬픔을 티내지 않으려 애쓰다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울음이 터져버릴 때가 허다했다. 그런 날들을 며칠 보내고 나면 꼭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몸이 힘들어도 나를 찾는 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었다. 자식과 부모의 이별보다 더 힘든 게 부부의 이별이라던데…. 나는 내 고통보다 아버지의 고통이 더 마음에 쓰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슬픔까지 감당할 만큼 그릇이 크지 못했다. 내 슬픔을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의 슬픔을 호소하기에 바쁜 아버지를 견디기 힘든 날에는 ‘당신이 내 아버지인 게 너무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뱉는 순간 진실이 아닐 말로 아버지에게 상처를 줄 만큼 나는 아버지가 싫지 않았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아버지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에 대한 연민의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나는 여느 날과 달랐다.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도저히 괜찮은 척하며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울며 말했다. 아버지가 이렇게 슬퍼하면 나는 너무 슬퍼져서 하루를 잘 버틸 수가 없다고. 나는 아버지가 슬프다는 말을 듣는 게 정말 힘들다고. 평소와 다른 딸의 목소리를 듣고 전화 너머 아버지는 평소보다 더 크게 울었다. 아버지는 정말 몰랐다고 했다. 자신의 슬픔이 나를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그날 이후 아버지는 조금 달라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안부를 먼저 묻는 일이 늘어났고, 내가 먼저 전화를 걸기 전까지 나를 찾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약간의 변화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내 한계를 표현하고 나서부터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거리감이 생겼다. 안전거리 안에서는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고통에 마음 쓰는 착한 딸인 동시에 아버지의 고통까지 감당하려 했던 건방진 딸이기도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아내를 잃은 나이 든 남자’의 자리에 아버지를 위치시켜 놓은 게 나를 힘들게 했다는 걸. 이번 생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려면 아버지를 나보다 약한 존재로 바라본 오만함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여전히 내 아버지는 아내 혹은 딸이 자신의 마음을 살펴주길 바라는 20세기의 남자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댓글 3
  • 2021-12-06 22:21

    저도 언젠가 일찍 돌아가신 아부지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어요. 갈등이고 화해고 뭐도 없었던 것 같아서요.

  • 2021-12-06 22:43

    이 글 읽으면서 작년 이맘때 정신줄을 놓은 어머니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자 끈떨어진 연처럼 불안해하며 폭주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꺼내기 쉽지 않았을 이야기를 이렇게 담담하게 풀어놓을 수 있다니.. 글쓴이의 힘이 느껴집니다.

  • 2021-12-13 12:04

    얼마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새삼스럽게 나서 눈가에 눈물이 촉촉....격한 감정인데 글에서는 오히려 다른 사람을 가라앉혀주는 힘이 있네요. 저도 그날 이후 매일(사실 잘 안되긴 하는데...) 남아있는 엄마에게 전화하고 있습니다. 현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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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군
2023.11.26 | 조회 34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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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 조회 303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요요
2023.11.20 | 조회 21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 광고를 듣고 웃음이 났다. 광고의 주인공은 ‘현해환경’이라는 기업이었다. 대개 ‘00환경’은 고물상의 고급진 표현인 경우가 많다. 현해환경은 고물상은 아니지만 배관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그 업체가 장자에 나오는 현해(懸解)라는 한자를 쓰는지 안쓰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웃었던 이유는 그 광고를 듣고 과연 ‘현해’라는 뜻과 기업의 일이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꽉 막힌 배관을 뚫어 물길을 해방시키듯, 장자의 현해(懸解)는 스스로의 마음을 옭아맸던 상황에서 풀려나는 ‘자기해방’의 경지이다. 세 번째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에서 나는 물화를, 자기동일성의 해방이며 현해(懸解)로 가는 지름길을 연 것이라고 썼다. 올해의 마지막 읽고쓰기1234에서 나는 현해를 비롯한 장자의 개념을 꼼꼼하게 읽고,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관찰해보려 한다.   식은 재 같은 마음과 마른 나무 같은 몸 유소감은 장자철학의 주요 내용이 안명론(安命論)과 소요론(逍遙論)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각각 운명론과 자유론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운명론에서 출발해서 자유론으로 결론지어지는 구조로 장자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장자의 철학체계도 여러 사상적 측면이 내부에서 대립하고 또 융합하면서 유기적으로 하나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특히 장자는 현실에 대한 깊은 관찰과 비판, 그 현실의 초탈과 이상적 세계가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자철학 안에는 현실세계와 이상적 세계로서의 정신세계가 늘 대립하고 있다. 장자철학 안에서 끝없이 모순적 국면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대립과 모순은 장자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적 맥락과 떼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는...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 광고를 듣고 웃음이 났다. 광고의 주인공은 ‘현해환경’이라는 기업이었다. 대개 ‘00환경’은 고물상의 고급진 표현인 경우가 많다. 현해환경은 고물상은 아니지만 배관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그 업체가 장자에 나오는 현해(懸解)라는 한자를 쓰는지 안쓰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웃었던 이유는 그 광고를 듣고 과연 ‘현해’라는 뜻과 기업의 일이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꽉 막힌 배관을 뚫어 물길을 해방시키듯, 장자의 현해(懸解)는 스스로의 마음을 옭아맸던 상황에서 풀려나는 ‘자기해방’의 경지이다. 세 번째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에서 나는 물화를, 자기동일성의 해방이며 현해(懸解)로 가는 지름길을 연 것이라고 썼다. 올해의 마지막 읽고쓰기1234에서 나는 현해를 비롯한 장자의 개념을 꼼꼼하게 읽고,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관찰해보려 한다.   식은 재 같은 마음과 마른 나무 같은 몸 유소감은 장자철학의 주요 내용이 안명론(安命論)과 소요론(逍遙論)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각각 운명론과 자유론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운명론에서 출발해서 자유론으로 결론지어지는 구조로 장자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장자의 철학체계도 여러 사상적 측면이 내부에서 대립하고 또 융합하면서 유기적으로 하나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특히 장자는 현실에 대한 깊은 관찰과 비판, 그 현실의 초탈과 이상적 세계가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자철학 안에는 현실세계와 이상적 세계로서의 정신세계가 늘 대립하고 있다. 장자철학 안에서 끝없이 모순적 국면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대립과 모순은 장자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적 맥락과 떼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는...
봄날
2023.11.20 | 조회 215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읽기     들어가기 : 처음에는 한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요즘 중국 한나라와 관련 있는 책을 보고 있다. 한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자는 모토였지만,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두세 권 남짓이다. <춘추>를 해석해낸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 무제의 평전과 <염철론> 및 <사기>. 처음 김영민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한나라에 있었다. 세미나에서 강의안을 쓰자고 결의한 이상, 관련 이차자료를 봐야 하는 이상, <읽고쓰기 1234>도 하고 겸사겸사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할 때 상상되는 모든 것들(‘漢’)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이후 중국인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이 구축되었으며, 독존유술獨尊儒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통치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경학/역사/문학 등 중국 정신 문화 영역에서의 모델이 구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당시의 지도만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에 단지 그 ‘원형’이 세워졌다는 의미이지, 완벽히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상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생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과정을 밝히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서론에서 기존 정치사상사 전개에 딴지를 건다. 어떻게? 바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기본...
  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읽기     들어가기 : 처음에는 한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요즘 중국 한나라와 관련 있는 책을 보고 있다. 한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자는 모토였지만,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두세 권 남짓이다. <춘추>를 해석해낸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 무제의 평전과 <염철론> 및 <사기>. 처음 김영민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한나라에 있었다. 세미나에서 강의안을 쓰자고 결의한 이상, 관련 이차자료를 봐야 하는 이상, <읽고쓰기 1234>도 하고 겸사겸사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할 때 상상되는 모든 것들(‘漢’)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이후 중국인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이 구축되었으며, 독존유술獨尊儒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통치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경학/역사/문학 등 중국 정신 문화 영역에서의 모델이 구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당시의 지도만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에 단지 그 ‘원형’이 세워졌다는 의미이지, 완벽히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상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생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과정을 밝히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서론에서 기존 정치사상사 전개에 딴지를 건다. 어떻게? 바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기본...
자작나무
2023.11.13 | 조회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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