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 이야기 6회] 모든 전쟁은 참혹하다, 사혹여시(師或輿尸)

봄날
2022-05-1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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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정당한 명분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뉴스가 매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와의 개전선언 이래, 우크라이나, 특히 동남부 돈바스, 마리우폴을 비롯한 각 지역은 포화에 휩싸여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지역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러시아의 예상은 빗나갔고, 강력한 우크라이나의 저항으로 전쟁은 석달째로 접어들었다. 이 지역의 90%이상의 집들은 파괴됐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길 위에 내던져졌다.

많은 지역에서, 어제는 러시아의 탱크가 도로를 질주했다가 오늘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탈환하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지옥에 다름없다. 얼마 전, 이 전쟁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니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알자는 심정으로 <봄날의 살롱>이 열렸다. 속시원한 대답이나 해결책이 있을리 만무였고, 우리는 전쟁이라는 참상 앞에서 무기력한 슬픔을 나눌 뿐이다.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번 전쟁의 원인에 대해 여기저기 말이 많다. 그 원인은 간단하지 않다. 전쟁의 대의는 아주 복잡하고 오래된 역사적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기도 하고, 나토-미국의 연합과 러시아-유라시아 진영간의 격돌의 장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어떤 명분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전쟁이 참혹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명분이건 간에 먼저 전쟁을 도발한 자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국민이라는 이유로, 하릴없이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매일을 견뎌야 하는 운명, 부모가 죽고 자식이 죽고 집을 잃고 굶주림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 운명을 지운 사태에 대해 어떤 명분이 정당한가.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을 마주하면서 주역에도 물리적 전쟁에 관한 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지수사(地水師)괘가 바로 전쟁에 관한 괘다. 흔히 스승의 의미로 알고 있는 사(師)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무리’, 즉 군대를 가리킨다. 현대의 군사조직에 사단(師團)이라는 단위가 있는데, 5천년 전에 쓰던 군대의 개념이 여전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는 땅이고 아래는 물의 형상을 가진 지수사괘를 왜 군대, 전쟁의 괘라고 말하는 걸까. 땅은 양의 기운을 가진 하늘과 대비시켜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그 성질은 온순함, 순종함을 가진다. 물 역시 불(火)과 비교할 때 음의 기운이며, 험난함, 곤란함의 성격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지수사괘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고,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느낌을 가진다. 큰 힘이 움직이고 다이나믹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과는 별로 맞지 않아 보이는 형상이 왜 전쟁의 괘가 됐을까?

 

옛사람들은 전쟁, 즉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그 이유가 어떻든 부정적이라고 보았다. 자연, 우주의 운영원리는 생생(生生), 즉 낳고 낳는 것을 최고로 삼는다. 그런데 전쟁은 낳고 낳는 것하고는 반대로 끝없이 생명을 죽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원리이다. 전쟁은 부득이한 것이 아니고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하지만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끊임없이, 늘 부득이하게 일어나고 있다. 주역에 지수사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처럼 불가피한 전쟁이 주역의 시대에도 일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지수사괘는 그런 전쟁의 국면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현대의 인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 메시지는 지수사괘의 괘사에 그대로 드러난다. 사괘의 괘사는 “전쟁은 바른 것이어야 하니, 장인이 하면 길하여 허물이 없다(사 정 장인길 무구, 師 貞 丈人吉 无咎)”이다. 부득이한 전쟁이라면 바른 전쟁을 하라는 것인데, 어떤 것이 바른 전쟁일까? 이천은 “군대를 일으키고 무리를 움직여 전쟁을 하는 것은 천하의 해독을 끼치는 일이므로 전쟁의 도가 바른 것이 아니면 그 해악이 심각하다”고 말한다. 풀어 말하자면 ‘바른 전쟁의 도’는 천하의 해로움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장인이다. 결국 이천은 바른 전쟁의 도는 장인(丈人)이어야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장인은 사괘의 두 번째 효인 구이를 가리킨다. 구이는 지수사괘에서 유일한 양효로, 위아래 다섯 음효를 이끌고 전쟁을 벌이는 주체이다. 평시에는 오효의 자리가 군주로서 전체 효를 좌우하곤 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때를 가리키는 지수사괘에서는 힘센 장수인 구이가 이끌어간다. 장수가 이끄는 것은 군대이다. 이 군대는 다섯 음효이다. 음효는 그 힘이 약하다. 그러나 물방울 하나 하나는 약하지만, 모이면 큰 힘이 된다. 힘을 가진 세력은 군대가 되며, 군대는 전쟁의 필수요소이다.

 

여기서 지수사괘는 우리에게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이기는 전쟁, ‘바른 전쟁’을 이야기한다. 위에서 말한 군대의 힘은 순종하는 힘, 즉 강력한 장수의 명령에 순종하는 힘이다. 이천의 해석을 따르자면, 장수는 바로 이 순종하는 힘을 지키는 것을 전쟁의 도로 삼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길(吉)하고 허물이 없는 전쟁으로 귀결된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병사들 하나하나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바로 장수의 덕목이다. 결국 지수사괘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부득이하게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전쟁의 해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무조건 전쟁을 빨리 끝내어,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바른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에서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장수는 보이지 않는다. 전쟁을 부추기는 선동(프로파간다)이 난무하면서 전쟁 당사자들은 서로의 전과를 과시하고 있다. 부차에서 학살당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시체가 줄지어 발견되었고, 우크라이나군대의 개인화기인 ‘재블린’이 러시아군의 탱크를 순식간에 부숴버리는 유투브영상이 올라온다.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지수사괘의 육삼효가 말하는 ‘사혹여시(師或輿尸)’가 바로 이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인다.

 

전쟁의 참혹함, 경관(京觀)

전쟁을 도발하는 자는 승리를 확신하며 전쟁을 일으킨다. 패할 줄 알면서 나서는 전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전멸할 것을 알

면서도 마지막 일전에 나서는 숭고하기까지 한 300인의 스파르타 병사를 묘사한 영화 ‘300’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생리적인 죽음보다 명예를 고귀하게 여기는 전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쟁에서 스러지는 것은, 죽어서도 이름이 빛나는 명예로운 전사가 아니라, 명분과 상관없이 동원된 양국의 이름없는 병사들이다. 육삼의 효사는 “군대가 수레에 시체를 싣고 오니 흉하다.(사혹여시 흉, 師或輿尸 凶)”이다. 병사들의 시체가 수레에 가득 쌓인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들은 전쟁의 희생양들이다. 이것은 고대 중국에서 전쟁에 이긴 군대가 패전병사들의 시체를 흙과 함께 산처럼 쌓아두고 전공을 과시하는 경관(京觀)이라는 폐습을 떠올리게 한다. 경관에 관한 이야기는 춘추좌전에 보인다. 초나라 장왕이 진나라 군대를 물리치자, 신하가 “무군의 깃발을 세우고 진나라 사람들의 시신을 거두어서 경관을 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장왕은 “그것은 무공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무릇 무(무력)라는 것은 창을 멈추게 하는 것이 무(武)의 진정한 덕목”이라고 대답하며 경관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쓰이는 물리적인 힘, 무력(武力)의 무라는 글자는 의미심장하다. 무(武)라는 글자는 ‘그치다’는 뜻의 지(止)와 창과 같은 무기를 뜻하는 과(戈)를 합한 글자이다. 결국 무력은 싸움을 그치기 위해 써야 하는 힘이다. 초나라 장왕은, 무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오직 분쟁을 그치는 것으로서의 무력일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말할 것도 없이 제후들의 끝없는 영토전쟁과 그 전쟁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고단함 삶이 이어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무력의 사용에 대해 고민하고 신중했던 군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나라를 세운 무왕은, 당시 천자의 나라였던 은나라 주왕의 폭정을 무력으로 무너뜨리면서도 백성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무왕은 전쟁을 벌이는 한편으로 정국을 안정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며, 백성들의 삶을 안정되고 풍요롭게 한 왕으로 평가된다. 이때 무왕은 무력의 일곱가지 덕목을 행했다고 한다. 초나라 장왕이 언급한 무왕의 무덕은 “1)폭력을 멈추게 하고(금폭,禁暴) 2)이를 위해 사용했던 무기/무력을 거둬들이며(집병,戢兵) 3)천명을 보전하고(보대,保大) 4)나라를 구하는 공을 세우고(정공,定功) 5)백성들을 안정시키고(안민,安民) 6)여러 제후국 백성들이 화합하게 하고(화중,和眾) 7)재물을 풍부하게 하는 것(풍재,豐財)”이다. 흔히 고대 인류는 야만적이고 후진적이라고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에 한정해 보면, 전쟁에 대한 사고방식은 오늘날과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오늘날의 그것이 더 야만적으로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현대판 사혹여시를 멈춰라

며칠 전, 5월 9일은 러시아 전승기념일이었다.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세계의 매체들은 이날을 기점으로 보일 러시아의 행보에 관심을 집중했다. 일각에서는 이날을 기념해 종전을 선언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왔었지만, 푸틴은 전승일 기념사에서, 자국이 도발한 전쟁의 정당함만을 거듭 주장했을 뿐이었다. 나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모스크바 거리에 도열한 탱크와 병사들의 행군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장갑차와 각종 화기들의 행진과 목청껏 구령하는 병사들의 행군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뉴스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이 이번 전쟁에서 점령한 우크라이나 도시들에서도 전승기념일 행사를 열 계획을 세웠다면서 마리우폴에서는 주민들이 동원돼 거리의 시신과 잔해들을 치우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의 항전 거점인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선 러시아의 대대적 공세가 진행되고 있다.”(5월5일자 경향신문 인터넷 뉴스에서)

 

러시아는 전승절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병렬식을 거행하는 그 사이에도,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34차례의 폭격을 쏟아 부었다.(나무위키) 나는 전공(戰功)의 과시, 현대판 사혹여시가 21세기인 현대에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이 사태에 소름이 돋았다. 이것이 3천년 전의 사회를 야만이라고 비웃는, 문명인들의 모습인가. 지금 재현되고 있는 이 사혹여시는 오히려 고대의 그것과 비교할 때, 규모나 성격면에서 훨씬 참혹하고 비극적이다. 심지어 러시아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핵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숨기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해서 러시아의 도발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뜨겁지만, 우리는 그 목소리 속에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강도가 숨어있으며, 그 이해관계는 또 다른 전쟁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안다. 무력 전쟁은 정말 불가피한 것일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쟁은 참혹한 것이고, 싸움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전쟁의 도(道)라고 강조하는 지수사괘의 말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댓글 3
  • 2022-05-14 07:33

    경관, 이게 전쟁의 솔직한 모습이겠지요.

    오히려 장왕의 무력이란 싸움을 그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더 위선적으로 와닿네요 ㅠㅠ

    명분있는 전쟁을 부르짖는건 지금도 마찬가지라..

    하지만 어디선가 본 내용인데, 명분과 전쟁을 연결시키는건 유가의 고민을 반영하는 거라고.

    춘추이전 귀족정치 시절의 무력이란 자연스런 귀족들의 일이었지만

    후대 유가들이 보기엔 문치주의에 반하는 일이라 그 시절 역사를 새롭게 해석해내야했다고..

    그래서 폭정을 그치게 하는 것이란 명분을 역사에 넣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무력을 사용한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무력을 부정하는 정치에 대한 신념이 들어가 있다는 거겠지요.

    그런데 이미 명분을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명분 추락의 시대에

    오로지 이해관계 저울질만 있는 시대에,

    앞으로 그 저울질이 더 심해질것을 예고하는 전쟁이 아닐까도 싶고..

    후대에 이 시대의 무력을 뭐라고 고민할까, 야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을 수나 있을까..

    착잡한 마음에 이 글을 쓰신 봄날님도 힘드셨을거 같네요. 고생하셨어요

  • 2022-05-14 16:22

    노자에서도 부득이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전쟁에 대해서 말합니다. 

    전쟁의 비참함을 보고 슬퍼하는 자애의 마음을 가진 자가 전쟁에서 승리하며, 승리하더라도 전승을 과시하지 말고 죽은 자를 애도하는 상례를 치르듯 해야 한다고 하지요. 

    경관이라는 폐습 때문에 노자에서 그렇게 말했나봅니다. 

    오늘 책을 보다가 마침 <손자병법>에 나오는 구절을 읽었어요.

     

    백전백승하는 것만이 최상의 선(善)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다른 군사를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선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전쟁방법은 적의 계획을 깨는 것이다. 그 다음 방법은 적의 외교를 깨는 것이다. 맨 마지막 방법이 무기로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자는 남의 군사를 굴복시키되, 싸우지는 않는다.  또 남의 성을 함락시키려 공격하지 않는다.

     

     

  • 2022-05-16 11:03

    전쟁... 예나 지금이나, 명분을 내세우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게 현실...

    늘 힘없는 사람들만 죽어나가죠....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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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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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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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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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봄날 2023.11.12 |
조회 214
봄날의 주역이야기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봄날 2023.07.04 |
조회 285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조회 369
봄날의 주역이야기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봄날 2023.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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