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4회] 달콤한 절제의 맛, 감절(甘節)

봄날
2022-01-26 02:20
658

 

인생은 참아야 할 일투성이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거나 변화하려고 한다. 새해 첫 일출을 보러 산으로, 바다로 가기도 하고, 새로 산 일기장에 정성들여 첫 줄을 쓴다. 작심삼일이 될 것이 뻔한 계획을 또 잡는다. 그런 새해의 다짐을 지키는 데는 크든 작든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술이나 담배를 끊는다던가, 매일 운동을 한다던가,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를 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리고 그 실행에는 또 크든 작든 ‘절제’가 요구된다. 술이나 담배를 끊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 금단증상처럼 견디기 힘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운동이나 공부도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억누르거나 견뎌내야 한다. 운동을 하려면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어하는 내 몸을 다스려야 하고, 공부도 가령 졸음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고, 견디고, 억눌러야 하는 일투성이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에서 늘 절제심을 시험받는다. 주역에도 이런 ‘절제’에 관한 괘가 있다. 60번째 수택절(水澤節)괘는 괘 자체가 60이라는 한 주기를 매듭짓는 자리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인간사에서 중요한 절제를 다루는 괘이기도 하다. 절(節)은 수목의 마디, 뼈의 마디, 음절의 곡조, 사물의 한 단락, 규칙, 절제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절(節)이라는 글자에 대나무 죽(竹)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대나무가 마디 하나를 키우고 또 다른 마디 키우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인간을 비롯한 자연 속의 생명들은 그런 방식으로 삶을 펼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절제이다. 마디를 매듭짓고 마디를 새로 시작할 때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가오는 어려움을 견디고 넘어서는 것, 수택절괘는 절제에 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흐르는 물과 고인 물, 그 경계에서

수택절괘는 위는 물(水), 아래는 연못(澤)의 형상을 하고 있다. 연못에 물이 고여있는 모습이다. 주역에서는 불은 밝음, 지혜, 양의 상징이고, 물은 고난, 어두움, 음의 상징이다. 그래서 물의 형상이 들어있는 괘는 안좋은 괘라고 푼다. 하지만 수택절괘는 의외로 좋다. 단, 하나의 조건을 달고 있기는 하다. 그 단서는 바로 ‘절제’이다. 어떻게 절제할 것인가. 방법은 물의 흐름에 따르는 것이다. 상괘의 물은 흐르는 물이고, 하괘의 물은 연못에 고인 물이다. 물은 연못을 꽉 채우면 흘러 넘친다. 그 흘러넘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일시적으로 흐름에 저항할 수는 있지만 결국 물은 넘치고 만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계속해서 더욱 극단적인 방법으로 물을 막아보는 것과 넘치기 전에 미리 물꼬를 터서 그 흐름을 관리하는 것. 후자의 경우 요구되는 것은 흐르는 물과 고인 물의 경계에서 예민하게 그것을 컨트롤하는 능력, 혹은 감각일 것이다. 이때의 절제는 무조건 찍어누르고 견디는 것이 아니다. 멈춰야 할 때는 멈추고, 흘려보내야 할 때는 흘려보내는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절제이다.

수택절괘의 괘사는 ‘절 형 고절 불가정(節 亨 苦節 不可貞)’이다. “절괘는 형통하나, 괴로운 절제는 바르지 않고 오래가지도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절(苦節)이라는 말은, 괴로운 절제, 억지로 참는다는 뜻이다. 절제란 스스로에게 가하는 강제인데, 그렇게 강제로 하는 절제는 바르지 않다는 뜻이다. 이때의 정(貞)은 ‘바르다’의 뜻이지만, ‘오래가다’의 뜻을 함께 가진다. 즉, 억지로 괴로움을 견디는 방식의 절제는 오래 갈 수 없고 이는 바른 절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절괘의 형통함을 제대로 쓰려면 고절(苦節)해서는 안된다. 상전에는 ‘천지에 절(節)이 있어 사시(四時)가 이루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한 계절이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 사계절이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처럼, 하나의 마디가 꽉 차면 다음으로 넘어가면서 순환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절제는 안간힘을 써가며 버티거나, 과정을 무시하고 스킵해버리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말한 고인 물과 흐르는 물의 비유에서, 첫 번째 방법처럼 물을 가두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고절이다.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인 미생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때마침 큰 비가 내렸고 다리 밑은 순식간에 개울물이 넘쳤다. 그러나 미생은 그곳을 떠나지 않고 계속 기다리다가 홍수에 떠내려가 죽고 말았다.”

 

<사기> <장자> <전국책> 등 여러 고전에 등장하는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에피소드이다. 상전에 ‘절은 통함과 막힘을 아는 것(知通塞)’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천이 불러낸 이 미생의 일화는 통함과 막힘을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변한다. 다리 밑이라는 장소를 고집함으로써 미생은 약속도 지키지 못했을뿐더러 자신의 생명도 지키지 못했으니, 통함과 막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소치이다.

 

흔히 절제라고 하면 물질에 관한 욕망을 누르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곧 괴로움 혹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속담에 ‘말 타면 종 부리고 싶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의 소비는 또 다른 소비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그 욕망을 채우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것을 ‘참아야 한다’는 도덕적 태도로 고집할 때 더 극심한 심신의 고통을 유발한다. 금주나 금연을 결심한 사람도 역시 그 결심을 실천하는 것은 극한의 고통이 따른다. 모두 고절이다.  괘사는 고절은 할 수 없다(不可)고 단정한다. 일시적으로는 절제할 수 있어도 오래갈 수 없다. 그런 절제는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면, 고절이 아니라면 어떻게 절제하라는 말인가?

 

편안하게 절제할 수 있는 방법

통함과 막힘을 안다면 절제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렵지 않은 절제. 이와 같은 절제를 절괘에서는 안절(安節)이라고 말한다. 편안하게 절제한다는 것인데, 어떻게 이 수준에 이를 수 있을까. 사실 안절은 실천하는 것말고는 경험할 방법이 없다. 어쩌면 고절과 안절은 절제를 관념으로 접근하느냐, 실천으로 접근하느냐로 구분될지도 모른다. 실천 없는 금연은 불가능하다. 금단증상의 와중에서 시간이 지나면 괴로움이 사라질 것을 아는 이상,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온몸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고절에서 안절로 이행하는 그 순간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적은 물질에도 만족하는 삶,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삶의 모습이 안절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 라이피즘(lifism)이라는 삶의 방식을 제안하는 중앙대 김누리 교수다. 라이피즘은 인간의 삶과 생존과 생명을 존중하고, 그 바탕이자 전제인 생태를 중시하는 일련의 사상적, 실천적 활동을 가리킨다. 그가 주창하는 라이피즘의 계기는 의외로 단순해 보인다. 그는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아버지 김철이 생전에 늘 “생활수준을 높이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생활수준을 한번 높여 놓으면, 그것을 내리기가 어려운 법이지요. 그러면 세상과 타협을 하게 되는 거지요. 전 가난이 그다지 두렵지 않아요. 가난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힌 거지요.”(한겨레 2022년 1월 1일자, ‘살롱 드 여울’ 인터뷰 기사에서 )

 

안절은 기본적으로 이렇게 소박한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삶과 맥락이 일치한다. 중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산다는 것이다. 가난을 결핍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의 토대로 여기는 것. 우리가 지향하는 덜 벌고, 덜 쓰는 삶은 다름 아닌 안절이다. 그렇다고 안절이 물질적인 측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 대한 과도한 격정같은 감정의 소모를 절제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도 안절이다.

 

공생을 위한 절제는 달콤하다

그런데 주역은 안절이 궁극의 절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안절의 절제는 자기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고, 그래서 안절은 늘 자기만족에 그친다. 수택절괘의 구오 효사는 이 자기만족을 넘어선 절제인 감절(甘節)에 대해 말한다. 구오의 효사는 ‘감절 길 왕유상(甘節 吉 往有尙)’이다. “달콤한 절제는 길하니 나아가면 상서로움이 있을 것이다”라고 푼다. 가장 높은 차원의 절제에 이르면 절제가 달콤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안절이 자신의 절제에 집중하는 것이라면, 달달한 감절은 나의 절제가 타인의 기쁨이 되는 절제이다. 정이천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 있어서는 편안히 행하고 천하는 기뻐하며 따르니, 절제함이 달고 아름답다.” 그의 해석을 따르면 절제라는 것은 자신이 편안히 행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모든 사람들과 조응하는 것이다. 절제의 본질은 이미 나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인 것이다. 나는 구오 효사의 갈 왕(往)자를 타인과의 적극적인 교류, 교감으로 해석한다.

 

이 감절은 이반 일리치의 용어, 컨비비얼리티(conviviality)와 닮아있다. 컨비비얼리티라는 말은 ‘개개인이 인위적인 제도의 억압 없이 인생의 모든 순간에 생기발랄하게 스스로 학습하고 지식과 기술의 경험을 나누며 서로 도와주는 자율적 공생의 상태’를 가리킨다. 이때의 컨비비얼(convivial)은 ‘화기애애한 모임의 즐거움을 선호한다’는 뜻으로, 원래는 스페인어의 ‘연회’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이 단어에는 두 가지의 가치가 녹아들어 있다. 하나는 ‘개인의 지극한 즐거움’이고, 다른 하나가 ‘남과 더불어 누림’이다. 나와 타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자율적으로 절제하는 것, 함께 하는 기쁨을 이루는 근본정신이 바로 감절이다.

 

절제를 ‘~해야 한다’는 당위로서 접근하면 고절이 되기 쉽지만, 생활 속에서 습관이나 태도를 바꿔 자연스럽게 몸에 절제가 배게 되면 안절로 변화한다. 말은 쉽지만 안절이 되기까지 많은 공부와 수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주역은 안절이 궁극의 절제가 아니라 감절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감절의 모습은 어떤 것일지 감이 오지 않았을 때, 나는 문탁 홈페이지의 ‘공생자행성’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곳에는 기꺼이 절제하며 함께 즐거워하는, 감절하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http://moontaknet.com/?page_id=244) 생태적인 삶, 반소비적인 삶의 지향에 공감하면서 기꺼이 절제에 동참하는 친구들이다. 혼자 절제하는 것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친구들의 기쁨 덕에, 또 새로운 절제의 의욕도 생긴다. 혼자 하는 절제는 편안하지만, 함께 하는 절제는 달콤한 기쁨을 동반한다. 달달한 감절의 공생. “그래, 바로 이 맛이야!”

 

 

댓글 7
  • 2022-01-26 09:00

    안절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더 나아가 감절이 있었네요. 뭐든 나만 좋은거로 끝날게 아니라 함께 해야하나 봅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 2022-01-26 09:50

    컨비비얼리티를 잇는 감절 맘에 들어요  

    올해도 함께 감저ㄹ해보아요

  • 2022-01-26 10:12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르는건 뭐죠ㅎㅎ

    잘 읽었습니다~ 

    안절도 감절도 참 소중한 마음이 그 안에 숨어 있는 듯

  • 2022-01-27 09:25

    작년에 수택절 괘사를 점사로 받아놓고 끙끙댔던 기억이 떠올라 더 재밌게 읽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의 고절이 뭔지 다시 살피고, 감절의 희망은 놓지 않아야겠어요!

  • 2022-01-27 11:35

    '어얼쑤'  이모티 좀 찾아줘요~~

  • 2022-01-30 20:39

    안절, 감절을 공생과 연결지으니 그럴듯하네요^^

    주역세미나에서 절제가 금지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었다면 이제 그 달콤함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샘의 글이네요

    잘 읽었어요~~

  • 2023-04-27 15:37

    면접관님이 면접을 보고있던도중 저에게 감절에 의미에 대해서 말씀을하시저라구요 좋은의미일까요..?? 읽어봐도 도통 의미를 잘모르겠네요...

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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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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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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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3.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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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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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3.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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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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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봄날 2023.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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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이제는 전세계적인 놀이가 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이 문장을 말하고 뒤돌아보는 순간, 사람들은 전력질주 하다가 즉시 멈춰야 한다. 이때 앞으로 나가는 관성을 막지 못하고 움직이면 지게 된다. 움직임과 멈춤 사이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이 놀이의 관건이다. 난괘 중의 난괘로 꼽히는 수산건(水山蹇)괘의 상황이 꼭 이렇다. 마구 앞으로 달려 나가도 안되지만, 그저 멈춰 있기만 해도 패한다. 만약 사업을 하거나, 이성을 만나거나, 어떤 큰 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점을 쳐서 수산건괘를 얻었다면, 당장 그 일을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그만큼 수산건괘는 어떤 일을 강행하는 것이 어려운 때임을 강조한다. 이 어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수산건(水山蹇), 앞으로 가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라 주역에서 ‘물’은 험함, 고난의 상징이다. 그래서 주역의 괘 중에 ‘안좋은 괘’ ‘어려운 괘’라고 불리는 괘에는 항상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들어있다. 수산건괘도 상괘가 감괘이다. 위는 물, 아래는 산이 놓여 있는 형상의 수산건괘는 높은 산을 간신히 넘었는데, 다시 물을 만나는 고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앞은 험한 강이고, 뒤는 내가 넘어온 산이 있으니,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   괘의 순서로 볼 때 수산건(水山蹇)괘는 화택규(火澤睽)괘의 다음에 나온다. 주역 64괘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서 해석하는 서괘전은 “규(睽)는 어긋남이니 어긋나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수산건괘(蹇卦)로 받았다”고 말한다. 규는 ‘사팔눈’처럼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반목하는 형상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이제는 전세계적인 놀이가 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이 문장을 말하고 뒤돌아보는 순간, 사람들은 전력질주 하다가 즉시 멈춰야 한다. 이때 앞으로 나가는 관성을 막지 못하고 움직이면 지게 된다. 움직임과 멈춤 사이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이 놀이의 관건이다. 난괘 중의 난괘로 꼽히는 수산건(水山蹇)괘의 상황이 꼭 이렇다. 마구 앞으로 달려 나가도 안되지만, 그저 멈춰 있기만 해도 패한다. 만약 사업을 하거나, 이성을 만나거나, 어떤 큰 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점을 쳐서 수산건괘를 얻었다면, 당장 그 일을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그만큼 수산건괘는 어떤 일을 강행하는 것이 어려운 때임을 강조한다. 이 어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수산건(水山蹇), 앞으로 가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라 주역에서 ‘물’은 험함, 고난의 상징이다. 그래서 주역의 괘 중에 ‘안좋은 괘’ ‘어려운 괘’라고 불리는 괘에는 항상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들어있다. 수산건괘도 상괘가 감괘이다. 위는 물, 아래는 산이 놓여 있는 형상의 수산건괘는 높은 산을 간신히 넘었는데, 다시 물을 만나는 고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앞은 험한 강이고, 뒤는 내가 넘어온 산이 있으니,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   괘의 순서로 볼 때 수산건(水山蹇)괘는 화택규(火澤睽)괘의 다음에 나온다. 주역 64괘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서 해석하는 서괘전은 “규(睽)는 어긋남이니 어긋나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수산건괘(蹇卦)로 받았다”고 말한다. 규는 ‘사팔눈’처럼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반목하는 형상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봄날 2022.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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