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우승을 차지한 <전태일 힙합 음악제> (<아젠다> 16호/ 2021년09월 / 뭐든지리뷰)

관리자
2021-09-2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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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회째를 맞이하는 <전태일 힙합 음악제>.

전태일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힙합 음악제로,  재작년의 1회에서는 1차 온라인 예선 때 탈락했었다. 하지만 이소선 여사의 10주기를 추모하며 그분의 말씀 '살아서 싸워라, 하나가 되어라'를 주제로 한 올해에는 온라인, 실연심사, 본선을 뚫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집에 올 때마다 보이는 트로피 덕에 아주 헤벌쭉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래퍼들의 현실

 

 

우승도 좋지만, 나에겐 여러 동료 래퍼들을 만났다는 게 무엇보다 큰 수확이다. 총 12명이 본선에 진출했는데 본선 진출자들이니만큼 실력은 모두 출중했고 19세부터 3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으며 음악 스타일도 가지각색이었다. 모두 음악으로는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은 똑같았지만 말이다.

 

이건 아마추어 래퍼들이 처한 현실의 조건이다. 주 6일 알바를 뛰면서 남는 시간에 틈틈이 작업하거나, 쌀국수집 매니저로 있으면서 매일 9시에 퇴근하고 새벽까지 작업하는 일상. 아니면 빚을 져가며 앨범을 만들고 활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만큼 불안정한 직업이고 우리가 미디어로 접하는 ‘돈 많은 래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이런 현실을 토로하면서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있으니 괜찮다며, 언젠간 뭐라도 되지 않겠냐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트렌디 래퍼’, ‘언더 래퍼’, 그리고 ‘아마추어 래퍼’

 

음악제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한 줄’을 쓰게 했는데 그 소개 문구에 ‘반년 뒤에 성공’이라고 적어낸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 포부만큼이나 스타일도 눈에 띄었다. 깔끔하게 탈색한 머리, 팔 쪽에 살짝 보이는 타투, 새하얀 재킷 위로 흔들거리는 화려한 목걸이……. 마치 이미 ‘성공한 래퍼’처럼 보였다. 그는 홍대 쪽에 살며 크루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해나가고 있었는데 주로 ‘오토튠’을 사용하는 ‘요즘 스타일’의 래퍼였다. 랩도 음계를 잘 사용하며 트렌디하게 뱉고, 그의 친구는 본선 무대에서도 ‘오토튠’을 사용하는 등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마치 홍대 소공연장이나 <쇼미더머니>에서 볼법한 스타일이었다.

 

반면 소개 문구를 ‘053’이라고 간결하게 쓴 분도 있었는데, 자신의 출신인 대구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래퍼였다. 그는 자기가 유일하게 나온 컴피티션(대회, 경연)이 <전태일 힙합 음악제>라고 말하며, <쇼미더머니>를 보이콧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랩이라든지, 화려한 기교와 퍼포먼스보다는 정말 ‘랩’으로만 승부하겠다는 듯한 가사가 인상적인 분이었다. 그 분은 또 대구의 많은 ‘언더 래퍼’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거나 회사 없이 스스로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등 이미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모습에 제일 가까웠지만, 벌이는 활동에 비해 수입이 거의 없으니 빚을 내가면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래퍼는 ‘용산에 용 산다’라는 소개 문구로, ‘아재’스럽다며 놀림 받은 래퍼다.(사실 난 되게 재밌는 라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홍대에 몰려다니는 래퍼들과도 알고 지냈지만 트렌디한 스타일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다른 동료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좀 더 솔직하고 담백한 가사들을 담은 앨범을 만들었다. 나이 서른 먹고도 알바를 하며 음악하고 있는 자신의 심정이라든지, 래퍼들이 비싼 차를 자랑할 때 친구들과 렌트카를 빌려 여행 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이야기라든지, 친구들과 옥탑방에 모여 떠들고 고기를 구워먹는 이야기 등등……그러나 여전히 알바로 연명하는 삶이 쉽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같이 도와주고 힘내주는 동료들에게 정말 고맙다고, 이번 음악제에서도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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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포함해 경연에 결선에 올라온 열두 명 모두 각자의 자신만의 특성(차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어떤 래퍼로 정의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분류법으로 나눌 수 있었다. 유행하는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트렌디 래퍼’,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우직하게 힙합의 멋을 추구하고자 하는 ‘언더 래퍼’, 그리고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며 한국 힙합 담론에도 낄 수 없는 ‘아마추어 래퍼’들이다. 이런 분류와 명칭을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구분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 않을까 싶다. 

 

 

  힙합의 이분법을 벗어나, 다양성의 힙합으로

 

이를 통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힙합씬에 작용하는 일종의 권력구조나 분위기, 이데올로기 같은 게 분명히 있다는 것이고, 그에 따라 래퍼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만드는 특정한 방식들이 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은 오글거린다고 말하는 래퍼가 힙합퍼에겐 멋있어 보이는, 힙합에서만 통하는 ‘멋’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래퍼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힙합’이라는 문화가 가진 특성을 통해, 이미 성공한 래퍼들의 선례를 통해, 그 ‘멋’을 재현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게 되고, 그게 곧 ‘원래의 자신’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반복되다 보면 특정한 ‘멋’만 힙합의 담론으로 이야기되고, 랩이나 힙합을 새롭게 해석한 무언가는 ‘힙합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면서 그 담론에조차 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한 긱스의 ‘Officially missing you’는 대중들의 입맛을 의식했다는 이유로 힙합 취급을 받지 못했고, 긱스의 래퍼 ‘릴보이’는 ‘언더 래퍼’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따돌림을 받았다. 그런 맥락에서 <전태일 힙합 음악제>는 ‘언더 래퍼’나 ‘아마추어 래퍼’들에게 조금 더 유리한 구조였다고 생각한다. ‘전태일’이라는 키워드가 갖고있는 어떤 진중함이나 가사의 메시지가 중요해 보이는 분위기는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에게도 좋은 결과가 있었지, 결코 절대적인 실력에서 월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가 힙합씬에 깔려있는 권력구조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소수자들의 화합과 저항 의식으로부터 시작된 게 힙합이니만큼, 우리는 계속해서 ‘힙합이 아닌 것’이나 ‘아마추어’라고 퉁쳐오던 것들을 되돌아보고, 그들도 떳떳하게 ‘힙합’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정된 ‘멋’이 아닌 각자들의 차이를 녹여낸 음악들을 만들고, 들어야 하며, 그들이 특정한 래퍼로 포섭되거나 음악을 포기하지 않도록, ‘아마추어’들끼리 뭉쳐야 할 것이고, 그들을 주목할 수 있는 미디어나 대회가 더 많이 열려야 할 것이다. 내가 받은 상금도, 열두 명의 래퍼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근근이 살아가는 만큼 상금 전부를 쏟을 순 없겠지만, 상금 일부가 마중물의 역할을 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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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드다의 리뷰 코멘트!
 
└ 김고은(고은) : 언더 래퍼였기 때문에 <전태일 힙합 음악제>에서 유리했다는 평가가 날카롭네요. 그런데 '언더 래퍼'라... 생중계를 보며 코코팰리 코인을 탑승하려던 길드다의 꿈은 저 멀리...(?)
 
└ 그냥명식(명식) : '살아서 싸워라, 하나가 되어라'의 ver. 코코펠리는 지금부터 시작! 
 
└ 석운동(지원) : 이게 힙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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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2021-09-22 16:33

    힙합~!!!

  • 2021-09-23 14:08

    오~ 상금 일부를 마중물로..

    <증여론> 읽은 코코펠리!! 뭔가 달라도 다르군요.^^ 멋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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