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양생이다> (3회) - 도전, 백만 원 벌기

기린
2020-09-12 07:47
371

 1. 호기롭게 무모한 도전을

 

공동체로 출근하는 일상에서도 일주일에 이틀 오후와 토요일에는 학원 일을 계속했다. 당시 학원 일로 백이십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걸로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은 없었지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려니 차츰 몸이 힘들어졌다. 학이당에서 하는 공부의 양은 점점 늘어나는데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학원이 인천에 있어서 일주일에 이틀을 120키로씩 운전 하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학원 일을 그만둘 핑계는 점점 늘어났지만 공동체 안에서 먹고 살만한 일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도 난 일단 학원 일을 접고 문탁 안에서 백만 원을 벌어 보겠다고 선언했다. 친구들은 나의 선언에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새로운 실험이 공동체에 주는 활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선언을 하게 된 데는 매달 이십만 원 정도의 임대비용으로 국민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주거 상황도 한 몫을 했다. 2년마다 오르는 집세를 감당해야하는 형편이었다면 아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 문탁네트워크 홈피 대문에 달려있던 ‘자본주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난 삶’ 같은 문구도 내 마음을 들썩였다.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내 삶이 고달픈 것은 다 그 탓이라고 핑계만 대다가 뭔가 ‘도전’해 볼만한 거리가 생긴 설렘이었달까.

 

당시 마을 경제 세미나를 했던 친구들이 마을 작업장을 만들었다. 화장품도 만들고 정기적으로 반찬을 생산하는 찬방도 있었다. 세미나를 통해 익힌 것들을 실제로 실천해보자는 활기찬 분위기에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자누리 화장품에 일꾼을 신청했다. 더치커피 사업단을 꾸렸던 친구가 개인 사정으로 못하게 되자, 날더러 더치커피를 생산해보라는 제안도 받았다. 커피에 대해 일도 모르는 내가? 다 알고 시작하는 일이 어디 있냐고 밀어 붙이는 바람에 얼떨결에 커피 사업단까지 맡게 되었다.

 

2. 욕망과 능력의 간극에서

 

나는 공동체에 오기 전에도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이십대에는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전화를 해서 위생용품을 파는 판촉사원 일을 했다. 친구의 소개로 알루미늄 현관문을 영업 설치하는 영업소의 경리일도 했고, 육 개월 정도 반도체를 생산하는 외국 기업의 생산직 일도 했었다. 삼십 대에 학원 강사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드라마 작가가 되면 이런 경험들이 맛깔스런 대사를 쓰는 밑천이 될 거라고 나를 다독이곤 했다. 기승전 ‘드라마 작가’ 꿈만 먹고 살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게 철학의 첫 번째 질문이에요. 그런데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질문이 솟아납니다. 거의 동시적으로.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구성되어 있지?(중략)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까요. (중략) 그다음에 나오는 질문이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즉 윤리학이에요. 윤리의 기준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예요. 전자를 욕망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능력이죠. 욕망과 능력이 딱 맞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어긋나죠.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정반대인 경우도 있고요. 그 간극 속에서 우리는 갈등과 괴로움, 번뇌를 겪습니다.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243쪽 /북드라망』

 

공동체에 접속하기 전 나의 상태가 꼭 저랬다. 내가 누구인지 나에게는 아주 오래된 질문인데 그게 철학하는 질문이었던 셈이다. 욕망과 능력의 간극, 드라마를 쓰는 작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좀처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욕망을끊어낼 수 없어서 삶의 바닥을 긁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는 욕망이나 능력을 운운할 틈도 없이 ‘백일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되었다. 나도 게으름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어쩌면 공동체에서 백만 원을 벌어보겠다는 뜻은 그 가능성이 일으킨 욕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도 간극은 발생했다.

 

커피에 대해 일도 모르면서 커피 생산자가 되고 보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우선 더치커피를 생산하는 방법부터 배웠다. 이것도 엄연한 마을 작업장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수입과 지출로 수지타산을 맞추는 일도 포함되었다. 커피 몇 병을 팔아야 적자가 나지 않는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자니, 한 잔 천 원인 커피를 정량보다 많이 따르는 걸 보노라면 저절로 그의 뒤통수를 째려보게 되었다. 커피를 생산하는 일은 점차 익숙해졌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공동체에서의 생산이란 원두 구입부터 포장 용기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다른’ 가치를 모색해야 했다. 시중에서 파는 커피와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의 무능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동양 고전을 원문으로 읽는 공부를 했으니 그걸로 밥도 벌어보자는 활동에도 합류했다. 고전을 원문으로 읽기의 중요함을 강조하는 기획안을 검토한 친구들의 첫 반응은 너무 ‘올드하다’였다. 학부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원문을 주로해서는 아이들에게 재미를 어필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어디서나 그 놈의 재미가 문제였다. 기획을 수정하면서 어쨌든 <중등고전학교>를 열었다. 『논어』 『맹자』 『사기』 『장자』 등을 청소년들과 함께 읽고 쓰고 연극도 하고 방학 때는 암송 캠프도 열었다. 첫 해에 신청했던 중1 녀석들 중 셋은 고1이 될 때까지 함께 공부하면서 지지고 볶았다. 시즌이 바뀔 때마다 녀석들은 ‘의리’를 지켰다고 큰 소리를 쳤다.

 

 시간이 흐르면서 커피사업단은 적자가 쌓여갔고 고전을 읽으러 오는 청소년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매달 운영회의에서 사업단 활동보고 등을 통해 그 과정이 공유되었다. 어느 때는 내가 무능해서 인 것 같아 주눅이 들기도 했다가 어느 때는 내 탓이 아니라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일의 과정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리를 두고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자 예전처럼 나의 욕망과 능력 사이의 간극에서 허우적댈 핑계가 없어졌다. 동시에 내가 놓친 것을 점검하면서 다음 활동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곧 내가 하는 일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3. 친구들의 충고를 곱씹으며

 

일을 하면서 나를 소외시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백만 원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벌이는 좀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자누리 사업단의 일꾼으로 품삯을 받고 웹진 활동 등의 활동비로도 백만 원을 버는 일은 요원했다. 매달 들어가는 돈을 충당하느라 마이너스 통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점점 불안해졌고 다시 학원 일을 알아봐야 하나 망설이게 되었다.

 

그 즈음 문탁샘이 공동체밥상을 운영하는 주방지기를 해보라고 제안했다. 공동밥상이 차려지도록 밥당번을 조직하고 밥상의 식재료 등을 챙기는 일 등을 주로 하는 활동이었다. 식구들 밥상 차리는 일도 거의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엄두조차 내 본적이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공동밥상이라니 이건 집에서 차리는 밥상과 차원이 달랐다. 주방에 필요한 어떤 것들은 선물로 해결하고 또 어떤 것들은 장을 봐야 했다. 공부를 하러 오는 회원들에게 밥당번의 의미를 알리고 당번을 하도록 권하는 일도 중요했다. 공동체의 일상을 유지하는 동력으로 활약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런 일은 공부가 ‘많이’ 된 사람이 맡아야 하는 일이지 나 같은 초심자는 못하는 일이라고 사양했다. 공동체에서 벌어먹고 살겠다면서 이렇게 가리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드디어 자본주의 생산관계로부터 독립과 도주를 선언한 게으르니의 첫 작업날입니다.' -자누리의 후기에 오른 글중에서 찾음>

 

  친구들은 내가 너무 잘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충고했다. 처음에는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왜 문제인지 납득이 잘 안됐다. 하지만 계속 상황이 꼬이자 내가 반복하고 있는 행동이 보였다. 공동체 안에서 해 볼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우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인가부터 따지고 있었다. 그건 곧 잘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겪는 것이 아니라, 잘 하고 싶다는 자의식이 먼저 발동해서 나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냥 시작해 볼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잘 안 됐다. 분별을 허무는 공부를 한다면서 막상 일 앞에서는 분별이 작렬했다. 그러는 사이 무모하게 도전했던 기운도 사그라지고 불안이 되살아났다.

 

 사실 공동체에 오기 전에 내 삶이 한심한 것은 이 세상 탓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내세울만한 학력도 빽이 될 만한 집안도 볼만한 외모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루저로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런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게 된다면 나도 제 몫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러다 공동체에 와서 실제로 그렇게 되었음에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며 일에 나아가는 데는 여전히 한심했다. 머리는 새로운 앎으로 채워질지언정 몸은 좀처럼 민첩해지지 못하고 버퍼링이 걸렸다. 설령 일을 하더라도 잘 해야 한다는 자의식 때문에 몸에 힘까지 들어가서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계속 추동했다. 공부의 밀도를 더 높이라는 피드백을 서슴지 않았고, 외부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오면 밥벌이를 해야 하는 나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던 나도 일단 부딪쳐 보자고 마음을 바꾸었다. 외부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맹자』를 처음 강의하던 날은 거의 ‘원맨쇼’였다. 시선은 불안하게 공중을 떠돌면서 목소리는 공간에 쩌렁쩌렁 울렸고 말은 너무 빨라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한 시간 강의가 끝났을 때 정신이 멍해졌던 순간이 아직도 선하다. 그런 시간을 경험하면서 차츰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명확해졌고 무엇을 더 채워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냥 시작해 보는 마음으로 나서기는 여전히 쉽지 않지만, 한 번 두 번 시도를 거듭하면서 잘하고 못하고의 전제부터 따지는 습에서도 차츰 벗어날 수 있었다. 친구들의 충고나 추동이 없었다면 이나마 라도 나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4. 나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

 

 그렇게 친구들의 충고를 받아들이며 내가 마주치는 일에도 변화가 생겼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었다. 결국 <중등고전학교>도 문을 닫았고 도서관 등의 외부 강의가 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원 수업을 하면서 마련했던 경차도 팔았다. 5년을 납입했던 보험을 해약해서 마이너스 통장을 정리했다. 늘 간당간당하는 빠듯한 살림살이였다. 그렇다고 내 삶 전체가 빠듯했냐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동양 고전 공부를 내 전공으로 삼겠다는 뜻을 가상하게 여긴 우응순(나의 고전공부 싸부님)샘과 문탁샘이 매달 장학금을 챙겨 주셨다. 학교 다닐 때도 못 받아본 장학금이었다. 검증할 성적도 공부의 결과를 따지지도 않는 장학금이었다. 그 장학금은 때로는 생활비로 충당되었고, 또 어느 해는 중국으로 떠났던 수학여행 경비가 되기도 했다. 2017년에는 그리스로 수학여행을 떠날 기회가 있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선뜻 마음을 내지 못했다. 어느 날 문탁샘이 부르더니 그리스 가서 많이 보고 배우고 오라며 여행 경비를 챙겨 주셨다. 너무 뜻밖이라 어쩔 줄을 몰랐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난생 처음 친구들과 보름 동안이나 그리스를 싸돌아다닐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오래 오래 추억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알음알음으로 나의 살림살이를 보살피는 친구들 덕에 다달이 백만 원을 못 버는 빠듯한 벌이에도 ‘잘’ 먹고 ‘잘’ 살았다.

 

 나의 도전은 어떻게 되었을까? 올해 나는 처음으로 매달 백만 원을 따박따박 벌게 되었다. 공동체 밥상의 매니저 활동으로 오십 만원, 인문약방 활동으로 오십 만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변수 때문에 외부 강의가 전무해진 상황이라 이 결과가 더 소중하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도전은 백만 원으로 소박하게 살기나 자본주의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험 뿐 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동체에서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습득하는 과정이었고 끊임없이 ‘나’라는 자의식이 ‘시련’을 겪는 시간이었다. 그로 인해 점점 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 시련을 감당하고 싶다. 그런 면에서 나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댓글 7
  • 2020-09-12 08:51

    시련의 여주인공이라! 드라마네^^

  • 2020-09-13 11:43

    드라마보다 더 잼있고 감동까지 있는...
    기린샘표 드라마
    화이팅^^

    • 2020-09-14 23:21

      기린과 '샘표'로 보이네요. ㅋ
      추석 특집으로 은방울 키친에서 맛간장 한다던데 한 병 사야겠어요~
      인문약방에서는 쌍화탕을 전담하고 계시죠.
      기린샘표 쌍화탕도 많이 사주세요~~

  • 2020-09-13 13:33

    잼있다 ~!!ㅎㅎㅎ

  • 2020-09-13 21:06

    올~~~~ 성공!!!
    기린샘의 도전에 항상 화이팅! 응원합니다^^

  • 2020-09-13 21:40

    ㅎㅎ 재밌어요~
    기린샘의 도전과 변화 응원할게요~~

  • 2020-09-15 09:41

    기린샘이 은방을키친 매니저를 하고 있을때부터 뵈어서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있었는지 몰랐네요~ 새삼 놀라요~~
    현재진행형, 도전~ 늘 응원합니다.
    그리고 기린샘표 쌍화탕~ 아주 맛나요~저의 잇템입니다^^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기린 2023.12.11 |
조회 380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칠원의 관리, 장자   들꿩은 열 걸음을 걸어야 모이 한 번 쪼고 백 걸음 걸어야 물 한 모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새장에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찾는 수고로움이야 없겠지만 자유롭게 살려는 본성에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澤雉十步一啄,百步一飮,不蘄畜乎樊中. 神雖王,不善也.) 「양생주」 『낭송장자』 100쪽     『사기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몽(蒙)땅 칠원(漆園)의 관리(吏)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몽 땅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칠원이 옻나무를 심어 놓은 동산이라는 것에서는 이견이 없다. 장자가 살았던 시기에는 종이와 먹이 발명되기 전이라 대부분 죽간에 써서 기록을 남겼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액을 대나무로 만든 펜으로 찍어 죽간에 썼다고 한다. 그런데 옻나무는 아무데서나 흔히 자라는 수종이 아닌데다, 씨앗의 발아율도 낮고 잔뿌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 데도 3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이니 옻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옻나무 동산을 관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칠원의 관리는 중요한 직책은 아니어서 하급말단직이었을 것이라는 데도 이견은 없다.        「양생주」 3장에는 들꿩의 살이가 나온다. 꿩은 땅 위를 걷는 새로 몸이 길고 날씬하며, 발과 발가락이 발달되었으나 날개는 둥글고 짧아 멀리 날지 못한다. 먹이는 나무 열매나 풀씨 등의 식물성 먹이를 주로 섭취하는데, 작은 곤충도 먹는 잡식성이라고 한다. 먹이 대부분이 땅바닥에서 쪼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보니, 사냥감으로 노출되기 쉬워 식용으로도 널리 애용된 조류이기도 하다. 옛 문헌에 의하면 늦봄 풀숲에 숨어서 피리로 장끼소리를 내면 꿩이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오르기도 하는데 그때...
1.칠원의 관리, 장자   들꿩은 열 걸음을 걸어야 모이 한 번 쪼고 백 걸음 걸어야 물 한 모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새장에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찾는 수고로움이야 없겠지만 자유롭게 살려는 본성에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澤雉十步一啄,百步一飮,不蘄畜乎樊中. 神雖王,不善也.) 「양생주」 『낭송장자』 100쪽     『사기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몽(蒙)땅 칠원(漆園)의 관리(吏)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몽 땅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칠원이 옻나무를 심어 놓은 동산이라는 것에서는 이견이 없다. 장자가 살았던 시기에는 종이와 먹이 발명되기 전이라 대부분 죽간에 써서 기록을 남겼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액을 대나무로 만든 펜으로 찍어 죽간에 썼다고 한다. 그런데 옻나무는 아무데서나 흔히 자라는 수종이 아닌데다, 씨앗의 발아율도 낮고 잔뿌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 데도 3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이니 옻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옻나무 동산을 관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칠원의 관리는 중요한 직책은 아니어서 하급말단직이었을 것이라는 데도 이견은 없다.        「양생주」 3장에는 들꿩의 살이가 나온다. 꿩은 땅 위를 걷는 새로 몸이 길고 날씬하며, 발과 발가락이 발달되었으나 날개는 둥글고 짧아 멀리 날지 못한다. 먹이는 나무 열매나 풀씨 등의 식물성 먹이를 주로 섭취하는데, 작은 곤충도 먹는 잡식성이라고 한다. 먹이 대부분이 땅바닥에서 쪼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보니, 사냥감으로 노출되기 쉬워 식용으로도 널리 애용된 조류이기도 하다. 옛 문헌에 의하면 늦봄 풀숲에 숨어서 피리로 장끼소리를 내면 꿩이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오르기도 하는데 그때...
기린 2023.10.25 |
조회 373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기린 2023.08.17 |
조회 285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춤추다 배운 연독이위경   기린     연독이위경, 중도를 지키는 삶   좋은 일을 해서 명성이 나는 것도, 나쁜 일을 해서 형벌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_낭송장자 78쪽)     위 문장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좇는 위험을 밝힌 「양생주」 1장의 후반부 내용이다. 내편에서 선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문장인데, 장자는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삶에서 양생의 가능성을 본다. 좋은 일이 드러나서 명성을 얻게 되면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쁜 일로 형벌을 받게 되면 몸을 상하게 된다. 온전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양생에서 선도 악도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중도의 삶을 통해 시비선악을 넘을 수 있을 때, 자신과 주변까지 보살피면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원문을 살펴보면 중도의 삶은 연독이위경(緣督以爲經)이다. 직역하면 살피는 선으로써 날실로 삼는다 는 의미인데, 이때 날실은 아래 위로 지난다. 위진시대 곽상은 연독이위경을 “순중이위상(順中以爲常)”으로 주석하였다. 중심을 따름으로써 법도로 삼는다는 것이다. 살핀다는 의미의 독(督)을 가운데(中)로 주석을 달았다. 이러한 주석은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사람에게는 여덟 개의 맥(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독맥(督脈)은 중앙(中)을 흐르는 맥이라는 설명에 따른 영향이라고 한다. 독맥은 꼬리뼈 부근에서 등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 정수리를 지나 인중에 이르는...
춤추다 배운 연독이위경   기린     연독이위경, 중도를 지키는 삶   좋은 일을 해서 명성이 나는 것도, 나쁜 일을 해서 형벌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_낭송장자 78쪽)     위 문장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좇는 위험을 밝힌 「양생주」 1장의 후반부 내용이다. 내편에서 선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문장인데, 장자는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삶에서 양생의 가능성을 본다. 좋은 일이 드러나서 명성을 얻게 되면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쁜 일로 형벌을 받게 되면 몸을 상하게 된다. 온전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양생에서 선도 악도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중도의 삶을 통해 시비선악을 넘을 수 있을 때, 자신과 주변까지 보살피면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원문을 살펴보면 중도의 삶은 연독이위경(緣督以爲經)이다. 직역하면 살피는 선으로써 날실로 삼는다 는 의미인데, 이때 날실은 아래 위로 지난다. 위진시대 곽상은 연독이위경을 “순중이위상(順中以爲常)”으로 주석하였다. 중심을 따름으로써 법도로 삼는다는 것이다. 살핀다는 의미의 독(督)을 가운데(中)로 주석을 달았다. 이러한 주석은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사람에게는 여덟 개의 맥(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독맥(督脈)은 중앙(中)을 흐르는 맥이라는 설명에 따른 영향이라고 한다. 독맥은 꼬리뼈 부근에서 등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 정수리를 지나 인중에 이르는...
기린 2023.06.13 |
조회 370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양생(養生)을 탐구하는 기획 세미나를 4년째 하고 있다. 그간 양생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 양생을 정의하는 텍스트도 있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담론을 통해 내 삶과의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막연하다. 양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고 싶었다.     양생(養生)의 원출전은 『장자』 내편 중 「양생주」편이다. 직역을 하면 삶을 기른다, 가꾼다 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태어난 생명을 둘러싼 모든 보살핌을 포함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영양도 섭취해 주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가는 지식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양생주」 첫 장에서는 지식의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양생과 지식의 관계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나아가 양생을 위한 지식은 어떻게 터득하는 것일까?     삶을 위태롭게 하는 지식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양생주」 1장_낭송장자)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곧 삶을 위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은 삶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차츰차츰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그 세계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삶을 잘...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양생(養生)을 탐구하는 기획 세미나를 4년째 하고 있다. 그간 양생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 양생을 정의하는 텍스트도 있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담론을 통해 내 삶과의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막연하다. 양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고 싶었다.     양생(養生)의 원출전은 『장자』 내편 중 「양생주」편이다. 직역을 하면 삶을 기른다, 가꾼다 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태어난 생명을 둘러싼 모든 보살핌을 포함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영양도 섭취해 주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가는 지식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양생주」 첫 장에서는 지식의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양생과 지식의 관계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나아가 양생을 위한 지식은 어떻게 터득하는 것일까?     삶을 위태롭게 하는 지식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양생주」 1장_낭송장자)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곧 삶을 위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은 삶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차츰차츰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그 세계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삶을 잘...
기린 2023.04.11 |
조회 419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2017년 말 워크샵에서 다음 해의 공동체 주방을 운영하는 매니저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이 할 파트너를 찾던 어느 날, 공부방에서 당시 공동체 주방이었던 주술밥상 매니저와 마주쳤다. 회계 등등의 인수인계 잡무와 내년 운영 계획 등이 오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예민해졌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 그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여섯이나 했다는 거야?! 나: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혼자서라도 해야지!   우리 둘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구는 기존의 매니저 여섯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더 물색해보자고 했다. 이미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나는 다들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날 나와 함께 공동체 밥상을 맡을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는 상황,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적절한 말도 찾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2016년 공동체 밥상이 파지사유로 내려오면서 ‘주술밥상’ 시대가 열렸다. 주술밥상은 공동체의 밥상과 단품요리를 만드는 찬방을 함께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친구들과 기획력 있는 친구까지 합심해서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대박을 내보자는 야심찬 밥상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그 주방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단이 났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우리는 제각각 마음이 좀 상했다. 나는 그 친구와 헤어져...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2017년 말 워크샵에서 다음 해의 공동체 주방을 운영하는 매니저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이 할 파트너를 찾던 어느 날, 공부방에서 당시 공동체 주방이었던 주술밥상 매니저와 마주쳤다. 회계 등등의 인수인계 잡무와 내년 운영 계획 등이 오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예민해졌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 그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여섯이나 했다는 거야?! 나: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혼자서라도 해야지!   우리 둘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구는 기존의 매니저 여섯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더 물색해보자고 했다. 이미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나는 다들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날 나와 함께 공동체 밥상을 맡을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는 상황,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적절한 말도 찾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2016년 공동체 밥상이 파지사유로 내려오면서 ‘주술밥상’ 시대가 열렸다. 주술밥상은 공동체의 밥상과 단품요리를 만드는 찬방을 함께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친구들과 기획력 있는 친구까지 합심해서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대박을 내보자는 야심찬 밥상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그 주방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단이 났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우리는 제각각 마음이 좀 상했다. 나는 그 친구와 헤어져...
기린 2021.04.19 |
조회 564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