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봄날의 주역이야기 봄날 2022.01.26 조회 140
  인생은 참아야 할 일투성이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거나 변화하려고 한다. 새해 첫 일출을 보러 산으로, 바다로 가기도 하고, 새로 산 일기장에 정성들여 첫 줄을 쓴다. 작심삼일이 될 것이 뻔한 계획을 또 잡는다. 그런 새해의 다짐을 지키는 데는 크든 작든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술이나 담배를 끊는다던가, 매일 운동을 한다던가,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를 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리고 그 실행에는 또 크든 작든 ‘절제’가 요구된다. 술이나 담배를 끊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 금단증상처럼 견디기 힘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운동이나 공부도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억누르거나 견뎌내야 한다. 운동을 하려면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어하는 내 몸을 다스려야 하고, 공부도 가령 졸음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고, 견디고, 억눌러야 하는 일투성이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에서 늘 절제심을 시험받는다. 주역에도 이런 ‘절제’에 관한 괘가 있다. 60번째 수택절(水澤節)괘는 괘 자체가 60이라는 한 주기를 매듭짓는 자리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인간사에서 중요한 절제를 다루는 괘이기도 하다. 절(節)은 수목의 마디, 뼈의 마디, 음절의 곡조, 사물의 한 단락, 규칙, 절제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절(節)이라는 글자에 대나무 죽(竹)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대나무가 마디 하나를 키우고 또 다른 마디 키우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인간을 비롯한 자연 속의 생명들은 그런 방식으로 삶을 펼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절제이다. 마디를 매듭짓고 마디를 새로 시작할 때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가오는...
  인생은 참아야 할 일투성이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거나 변화하려고 한다. 새해 첫 일출을 보러 산으로, 바다로 가기도 하고, 새로 산 일기장에 정성들여 첫 줄을 쓴다. 작심삼일이 될 것이 뻔한 계획을 또 잡는다. 그런 새해의 다짐을 지키는 데는 크든 작든 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술이나 담배를 끊는다던가, 매일 운동을 한다던가,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를 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리고 그 실행에는 또 크든 작든 ‘절제’가 요구된다. 술이나 담배를 끊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 금단증상처럼 견디기 힘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 운동이나 공부도 그것을 방해하는 것들을 억누르거나 견뎌내야 한다. 운동을 하려면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어하는 내 몸을 다스려야 하고, 공부도 가령 졸음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고, 견디고, 억눌러야 하는 일투성이다. 그러니 우리는 일상에서 늘 절제심을 시험받는다. 주역에도 이런 ‘절제’에 관한 괘가 있다. 60번째 수택절(水澤節)괘는 괘 자체가 60이라는 한 주기를 매듭짓는 자리에 위치해 있기도 하고, 인간사에서 중요한 절제를 다루는 괘이기도 하다. 절(節)은 수목의 마디, 뼈의 마디, 음절의 곡조, 사물의 한 단락, 규칙, 절제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절(節)이라는 글자에 대나무 죽(竹)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대나무가 마디 하나를 키우고 또 다른 마디 키우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인간을 비롯한 자연 속의 생명들은 그런 방식으로 삶을 펼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절제이다. 마디를 매듭짓고 마디를 새로 시작할 때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가오는...
길드다 아젠다
길드다 아젠다 송우현(코코팰리 혹은 김왈리) 2022.01.23 조회 168
  대선이 이슈다. 이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어색하다. 그만큼 나는 대선에 관심이 없고, 정치나 시사 이슈들에 어둡다. 그런 내가 대선에 관한 글을 쓰게 되다니 너무 어이가 없지만, 그런 김에 내가 왜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내 주변의 20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내 삶이랑 정치랑 무슨 상관인데        난 정치 자체에 비관적이라기보다는 정치와 내 삶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느낀다. 파란색 정권일 때나 빨간색 정권일 때나 내 삶에서 체감한 차이는 없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정책에 따른 혜택과 불이익을 받은 적도 있었겠지만, 그걸 정권의 영향으로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법을 잘 지키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나는 무단횡단을 자주 한다), 오히려 법을 이용하면서 군대도 면제받았으니(중졸 학력으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장기 대기자로 면제처리를 받았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나쁜 놈이려나? 아니면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는 정책을 펼쳐도 관심 없는 호구?      반면 내가 처한 환경은 좀 특이하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문탁 주변 사람들은 왼쪽 성향이 강한데, 내가 자주 보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고향 친구들은 완전 오른쪽이다. 진보, 보수 같은 키워드만으로 두 집단을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대략적으로는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봐온 왼쪽은 ‘다 함께 잘 사는 삶’을 추구하지만,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그냥 이념적으로만 추구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반면 오른쪽은 모두가 잘사는 삶보다는 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대선이 이슈다. 이 말을 하는 나 자신도 어색하다. 그만큼 나는 대선에 관심이 없고, 정치나 시사 이슈들에 어둡다. 그런 내가 대선에 관한 글을 쓰게 되다니 너무 어이가 없지만, 그런 김에 내가 왜 이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는지, 내 주변의 20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내 삶이랑 정치랑 무슨 상관인데        난 정치 자체에 비관적이라기보다는 정치와 내 삶이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느낀다. 파란색 정권일 때나 빨간색 정권일 때나 내 삶에서 체감한 차이는 없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정책에 따른 혜택과 불이익을 받은 적도 있었겠지만, 그걸 정권의 영향으로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법을 잘 지키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나는 무단횡단을 자주 한다), 오히려 법을 이용하면서 군대도 면제받았으니(중졸 학력으로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는데, 그마저도 장기 대기자로 면제처리를 받았다), 국가 입장에서 보면 나쁜 놈이려나? 아니면 자기들 밥그릇 챙기려는 정책을 펼쳐도 관심 없는 호구?      반면 내가 처한 환경은 좀 특이하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문탁 주변 사람들은 왼쪽 성향이 강한데, 내가 자주 보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고향 친구들은 완전 오른쪽이다. 진보, 보수 같은 키워드만으로 두 집단을 설명할 순 없지만, 어쨌든 대략적으로는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내가 봐온 왼쪽은 ‘다 함께 잘 사는 삶’을 추구하지만,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그냥 이념적으로만 추구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반면 오른쪽은 모두가 잘사는 삶보다는 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영화대로 42길
영화대로 42길 띠우 2022.01.17 조회 152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1. 퇴물 카우보이, 어머니를 찾아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사적공간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다른 입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남과는 다른 정도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람과 휴대폰을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 여섯 명의 생각에서 차이들이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 몸의 일부인 젊은 세대라면 당연히 사적공간이라는 쪽이 강하겠지만, 전제가 부부나 가족이 되면 그 경계에 대해 모호한 입장들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만큼 어떤 잘못도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이 여러 매체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환상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의 오프닝은 인상적이다. 검은 화면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주인공의 두 눈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광활한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인물의 모습에 정통 서부극인가 할 찰나에 볼품없고 작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1. 퇴물 카우보이, 어머니를 찾아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사적공간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다른 입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남과는 다른 정도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람과 휴대폰을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 여섯 명의 생각에서 차이들이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 몸의 일부인 젊은 세대라면 당연히 사적공간이라는 쪽이 강하겠지만, 전제가 부부나 가족이 되면 그 경계에 대해 모호한 입장들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만큼 어떤 잘못도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이 여러 매체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환상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의 오프닝은 인상적이다. 검은 화면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주인공의 두 눈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광활한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인물의 모습에 정통 서부극인가 할 찰나에 볼품없고 작은...
요요와 불교산책
요요와 불교산책 요요 2022.01.16 조회 206
무엇이 비린 것인가   세상의 살아있는 생명을 수호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그들을 해치려 하고, 계행을 지키지 않고, 잔인하고, 거칠고, 무례한 것, 이것이야말로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이 아닙니다.(『숫타니파타』 『아마간다의 경』)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를 읽었다. 새벽이라는 돼지가 있다. 새벽이는 직접행동DxE(Direct Action Everywhere) 활동가들이 화성에 있는 한 종돈장에서 훔쳐온 돼지이다. 이들은 왜 돼지를 훔치는 절도의 범죄를 저질렀을까?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2019년 4월부터 자발적 참여자들과 함께 매주 도살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몸으로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차를 막았다. 도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동물들의 얼굴을 잠시라도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첫 도살장 방문 후 세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그들은 돼지 5,000여 마리를 기르는 종돈장에 몰래 들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돼지 세 마리를 훔쳤다.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살아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700만 마리의 돼지가 도살된다. 새벽이는 공개 구조되어 살아남은 돼지의 이름이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새벽이의 보금자리인 생추어리를 만들었다. 생추어리(sanctuary)는 ‘saint’와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곳’을 뜻하는 라틴어 ‘sanctuarium’에서 왔다.(위키피디아) 생추어리는 마치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면책특권이 주어지고 보호받을 수 있는 ‘소도’와 같은 성역이자 피난처이다. 수태될 때부터 고기가 되기로 운명 지어진 돼지들이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도살되는 현실에서 새벽이는 지옥행 운명으로부터 구조된 돼지가 되었다.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는 역설은 ‘죽이는 것은 합법이고 살리는 것은 불법인’(작가 홍은전의 추천사에서 인용) 공장식 축산의...
무엇이 비린 것인가   세상의 살아있는 생명을 수호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 그들을 해치려 하고, 계행을 지키지 않고, 잔인하고, 거칠고, 무례한 것, 이것이야말로 비린 것이지 육식이 비린 것이 아닙니다.(『숫타니파타』 『아마간다의 경』)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를 읽었다. 새벽이라는 돼지가 있다. 새벽이는 직접행동DxE(Direct Action Everywhere) 활동가들이 화성에 있는 한 종돈장에서 훔쳐온 돼지이다. 이들은 왜 돼지를 훔치는 절도의 범죄를 저질렀을까? 디엑스이 활동가들은 2019년 4월부터 자발적 참여자들과 함께 매주 도살장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몸으로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차를 막았다. 도살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동물들의 얼굴을 잠시라도 마주하기 위해서였다.   첫 도살장 방문 후 세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그들은 돼지 5,000여 마리를 기르는 종돈장에 몰래 들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돼지 세 마리를 훔쳤다.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살아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1,700만 마리의 돼지가 도살된다. 새벽이는 공개 구조되어 살아남은 돼지의 이름이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새벽이의 보금자리인 생추어리를 만들었다. 생추어리(sanctuary)는 ‘saint’와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곳’을 뜻하는 라틴어 ‘sanctuarium’에서 왔다.(위키피디아) 생추어리는 마치 누구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면책특권이 주어지고 보호받을 수 있는 ‘소도’와 같은 성역이자 피난처이다. 수태될 때부터 고기가 되기로 운명 지어진 돼지들이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도살되는 현실에서 새벽이는 지옥행 운명으로부터 구조된 돼지가 되었다. ‘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는 역설은 ‘죽이는 것은 합법이고 살리는 것은 불법인’(작가 홍은전의 추천사에서 인용) 공장식 축산의...
영화대로 42길
영화대로 42길 청량리 2022.01.03 조회 149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카메라로 드러나는 질문의 태도 | 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s | 롤랑 조페 감독 | 1984             영화 <킬링필드>는 1973년 캄보디아에서 시작합니다. 인접한 베트남에서 전쟁에 패한 미국이 막 철수할 무렵이었죠. 그로 인해 미국의 지원을 받던 캄보디아 ‘론 놀’정권의 세력도 약해지고, 론 놀 역시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즈’가 무정부 상태의 캄보디아를 장악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자 시드니(샘 워터스톤)는 급박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수도 프놈펜으로 날아갑니다.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는 현지통역인 겸 기자인 프란(행 S. 응고르)은 비행기가 연착되고, 지프차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합니다. 그의 예상대로 그날, 크메르 루즈군을 섬멸하기 위한 폭격이 미국의 잘못으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폭탄이 투하되고 수 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왼쪽이 시드니, 오른쪽이 프란   다음 날 두 사람은 함께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려하지만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미군의 방해로 미군 헬기를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기자라고, 기자!!” 물론 소용없습니다.시드니는 미군 대령에게도, 프란에게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카메라로 드러나는 질문의 태도 | 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s | 롤랑 조페 감독 | 1984             영화 <킬링필드>는 1973년 캄보디아에서 시작합니다. 인접한 베트남에서 전쟁에 패한 미국이 막 철수할 무렵이었죠. 그로 인해 미국의 지원을 받던 캄보디아 ‘론 놀’정권의 세력도 약해지고, 론 놀 역시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즈’가 무정부 상태의 캄보디아를 장악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자 시드니(샘 워터스톤)는 급박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수도 프놈펜으로 날아갑니다.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는 현지통역인 겸 기자인 프란(행 S. 응고르)은 비행기가 연착되고, 지프차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합니다. 그의 예상대로 그날, 크메르 루즈군을 섬멸하기 위한 폭격이 미국의 잘못으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폭탄이 투하되고 수 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왼쪽이 시드니, 오른쪽이 프란   다음 날 두 사람은 함께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려하지만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미군의 방해로 미군 헬기를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기자라고, 기자!!” 물론 소용없습니다.시드니는 미군 대령에게도, 프란에게도...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