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양생실험실 인문약방
마을양생실험실 인문약방 기린 2021.01.25 조회 135
    원문에 꽂히다    문탁의 초창기 홈피에는 공동체를 소개하는 문구로 용맹정진(勇猛精進),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마련(事上磨鍊) 등의 성어들이 즐비했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 성어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면 된다고 외치는 ‘무대뽀의 정신’이 저절로 느껴졌다. 앎과 행함의 일치라는 비전은 강렬했고, 내가 그동안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는 게 고달팠다고 납득되었다. 나중에 저 성어들이 중국 명나라 사상가 왕양명의 사유라는 것을 알았고, 그 뜻도 나의 독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고 혼자서 멋쩍어 했었다.    공동체에 와서 내가 처음 접한 고전은 『논어』 였다. 읽자마자 꽂힌 성어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었다. 어떤 일에 분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공자님이 스스로를 자처하는 말이기도 한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먹는 것도 잊는다니 기가 찼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까먹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소문이었다. 그 놀라움 때문에 몇 번이나 써 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점점 『논어』 읽기는 나의 행동을 가늠하는 준칙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자님의 말씀에 군자는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는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형제와는 우애가 있는 사람이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내가 인정머리 없는 딸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냈고, 명절에 형제들과 만나면 서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그러니 문장들이 나의 양심을 콕콕 찔렀고, 다른 일상에서도 그 준칙들로 인한 불편함이 갈등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2.사기열전 낭송집을 발간하다    이문서당에서 『사기열전』을 읽게 되었을 때는 내심 기대를 했다....
    원문에 꽂히다    문탁의 초창기 홈피에는 공동체를 소개하는 문구로 용맹정진(勇猛精進), 지행합일(知行合一), 사상마련(事上磨鍊) 등의 성어들이 즐비했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면서 그 성어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면 된다고 외치는 ‘무대뽀의 정신’이 저절로 느껴졌다. 앎과 행함의 일치라는 비전은 강렬했고, 내가 그동안 사상을 마련하지 못해서 사는 게 고달팠다고 납득되었다. 나중에 저 성어들이 중국 명나라 사상가 왕양명의 사유라는 것을 알았고, 그 뜻도 나의 독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고 혼자서 멋쩍어 했었다.    공동체에 와서 내가 처음 접한 고전은 『논어』 였다. 읽자마자 꽂힌 성어는 ‘발분망식(發憤忘食)’이었다. 어떤 일에 분발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면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공자님이 스스로를 자처하는 말이기도 한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먹는 것도 잊는다니 기가 찼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까먹어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경이로운 소문이었다. 그 놀라움 때문에 몇 번이나 써 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점점 『논어』 읽기는 나의 행동을 가늠하는 준칙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자님의 말씀에 군자는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편안함에 머무르지 않고, 부모님 앞에서는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형제와는 우애가 있는 사람이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는 내가 인정머리 없는 딸이라고 공공연하게 불만을 드러냈고, 명절에 형제들과 만나면 서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그러니 문장들이 나의 양심을 콕콕 찔렀고, 다른 일상에서도 그 준칙들로 인한 불편함이 갈등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2.사기열전 낭송집을 발간하다    이문서당에서 『사기열전』을 읽게 되었을 때는 내심 기대를 했다....
마을양생실험실 인문약방
마을양생실험실 인문약방 새털 2020.12.30 조회 232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정군에게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문학동네, 2007년)을 처방합니다        “굳이 써야 할까요?”   지난 가을, 나는 정군(닉네임)을 만나러 광화문으로 갔다.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평양냉면을 먹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정군이 가자고 한 식당에서 사람들이 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슴슴한 맛 특유의 감칠맛 같은 게 혀끝에서 느껴졌다. 그와 다음 약속을 잡고, 나는 걸어서 덕수궁으로 갔다. 하늘은 파랗고, 은행잎은 노랗고, 바람은 선선하고, 걷기에 좋은 가을날이었다. 덕수궁의 석조전과 돌담을 거닐며,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라는 정군의 말을. 내가 정군을 만나러 오며 듣고 싶은 말은 “글이 잘 안써져요. 어떻게 할까요?”였다. 사십대 초반의 애아빠인 정군이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지인들로부터 들었고, 나는 사십대에도 소설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문학전공자인 내 주변에 이제 소설쓰기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십대 때, 내 주변에는 시와 소설이 안 써진다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이들은 대부분 착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사, 공무원, 출판사 편집자 등 제 밥벌이는 하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소설쓰기를 포기한 인간의 부류에. 그래서 나는 정군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십대가 아니라 사십대에도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소설을 쓰는 일은 어떤 시너지효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정군은 가뿐하게 말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정군에게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문학동네, 2007년)을 처방합니다        “굳이 써야 할까요?”   지난 가을, 나는 정군(닉네임)을 만나러 광화문으로 갔다. 그와 이야기를 마치고, 우리는 평양냉면을 먹었다. 평양냉면의 슴슴한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정군이 가자고 한 식당에서 사람들이 왜 평양냉면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슴슴한 맛 특유의 감칠맛 같은 게 혀끝에서 느껴졌다. 그와 다음 약속을 잡고, 나는 걸어서 덕수궁으로 갔다. 하늘은 파랗고, 은행잎은 노랗고, 바람은 선선하고, 걷기에 좋은 가을날이었다. 덕수궁의 석조전과 돌담을 거닐며,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라는 정군의 말을. 내가 정군을 만나러 오며 듣고 싶은 말은 “글이 잘 안써져요. 어떻게 할까요?”였다. 사십대 초반의 애아빠인 정군이 소설을 쓰고 싶어한다는 얘기를 지인들로부터 들었고, 나는 사십대에도 소설쓰기를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문학전공자인 내 주변에 이제 소설쓰기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이십대 때, 내 주변에는 시와 소설이 안 써진다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이들은 대부분 착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교사, 공무원, 출판사 편집자 등 제 밥벌이는 하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나도 여기에 포함된다. 소설쓰기를 포기한 인간의 부류에. 그래서 나는 정군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십대가 아니라 사십대에도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애로사항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소설을 쓰는 일은 어떤 시너지효과를 가져오게 되는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정군은 가뿐하게 말했다. “굳이 써야 할까요?”...
길드다
길드다 고은 2020.12.26 조회 128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공자님은 자기계발이 좋다고 하셨어               전공에 대한 거부감      2017년 겨울, 4명의 청년과 문탁 네트워크의 선생님들이 평창에 모였다. 인문학 공동체에서 오래 공부한 청년들이 가진 욕망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길드다가 탄생했으니, 길드다는 시작부터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특출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잘 살고 싶다고 말했다.     2017년 평창에 모인 4명의 청년과 문탁 네트워크의 선생님들      길드다가 시작된 뒤로는 길드다 일에 허덕였다. 퀴어나 장애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게 길드다의 멤버들은 그들만큼이나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한 멤버는 쓰고 싶은 글이 명확했다. 그가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길 바라며 내가 길드다 운영 일을 좀 더 맡았고,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주제의 책과 이슈를 백업했다. 다른 멤버는 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있는 술자리에 끼거나, 술 먹기를 썩 즐기지 않는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길드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중요하게 여겨진 건 전공에 대한 개개인의 역량이었다.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보면 내 전공은 동양고전이나 다름없었으나, 나는 전공을 전면에 잘 내세우지 않았다. 전공, 그러니까 나의 일을 앞세우는 건...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공자님은 자기계발이 좋다고 하셨어               전공에 대한 거부감      2017년 겨울, 4명의 청년과 문탁 네트워크의 선생님들이 평창에 모였다. 인문학 공동체에서 오래 공부한 청년들이 가진 욕망을 확인하고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길드다가 탄생했으니, 길드다는 시작부터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특출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잘 살고 싶다고 말했다.     2017년 평창에 모인 4명의 청년과 문탁 네트워크의 선생님들      길드다가 시작된 뒤로는 길드다 일에 허덕였다. 퀴어나 장애인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내게 길드다의 멤버들은 그들만큼이나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한 멤버는 쓰고 싶은 글이 명확했다. 그가 글 쓸 시간을 확보하길 바라며 내가 길드다 운영 일을 좀 더 맡았고, 그에게 도움이 될만한 주제의 책과 이슈를 백업했다. 다른 멤버는 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있는 술자리에 끼거나, 술 먹기를 썩 즐기지 않는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며 술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길드다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중요하게 여겨진 건 전공에 대한 개개인의 역량이었다. 그간의 행적으로 미루어보면 내 전공은 동양고전이나 다름없었으나, 나는 전공을 전면에 잘 내세우지 않았다. 전공, 그러니까 나의 일을 앞세우는 건...
해완이의 쿠바통신
해완이의 쿠바통신 관리자 2020.12.25 조회 139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파스텔색의 청년   P-14. C가 새벽마다 타는 마을버스다. 이제 막 기점에서 출발한 버스는 텅 비어있다. 대학교에 가려면 그가 사는 아바나 끝자락에서 버스로 두 시간은 달려야 한다. 왕복 네 시간 거리를 사 년째 통학하고 있다. 그간 C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는 법을 익혔다.   곧 버스는 형형색색의 사람들로 가득 찬다. 당장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허름한 버스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카리브해 쿠바는 원색의 땅이다. 물, 자동차, 건물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행색도 번쩍번쩍하다. 호피무늬 레깅스를 입은 할머니, 머리띠부터 드레스까지 핑크색으로 통일하고 아침 강의를 나가는 교수, 금빛 목걸이와 귀걸이를 뽐내며 일터로 가는 청년. 맨살을 훤히 드러내는 것은 이 뜨거운 나라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 속에서 C는 홀로 파스텔색인 것처럼 옅게 존재한다. 청바지, 단정한 티셔츠, 검은 운동화에 검은 책가방이 그의 복장이다. 한여름 더위에 나시를 꺼내...
          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파스텔색의 청년   P-14. C가 새벽마다 타는 마을버스다. 이제 막 기점에서 출발한 버스는 텅 비어있다. 대학교에 가려면 그가 사는 아바나 끝자락에서 버스로 두 시간은 달려야 한다. 왕복 네 시간 거리를 사 년째 통학하고 있다. 그간 C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자는 법을 익혔다.   곧 버스는 형형색색의 사람들로 가득 찬다. 당장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허름한 버스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카리브해 쿠바는 원색의 땅이다. 물, 자동차, 건물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행색도 번쩍번쩍하다. 호피무늬 레깅스를 입은 할머니, 머리띠부터 드레스까지 핑크색으로 통일하고 아침 강의를 나가는 교수, 금빛 목걸이와 귀걸이를 뽐내며 일터로 가는 청년. 맨살을 훤히 드러내는 것은 이 뜨거운 나라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 속에서 C는 홀로 파스텔색인 것처럼 옅게 존재한다. 청바지, 단정한 티셔츠, 검은 운동화에 검은 책가방이 그의 복장이다. 한여름 더위에 나시를 꺼내...
마을양생실험실 인문약방
마을양생실험실 인문약방 문탁 2020.12.13 조회 443
프롤로그   아침에 눈을 떴는데 집안이 고요했다. 아주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커피를 내렸고 사과를 깎았다.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으니 조용하다. 엄마가 없어서 평화가 왔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훌쩍거렸고 사과를 우물거리면서 울었다. 결국 그렇게 병원으로 쫓겨 간 엄마가 불쌍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집에서 평화를 느끼는 내 맘이 너무 징그러워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삼십 분간 대성통곡을 했다.   그랬다. 엄마의 션트 수술 후 지금까지 약 3개월간은 내가 엄마랑 같이 산 지난 6년 중 특히 힘든 시간이었고, 최근 몇 주는 그 3개월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수술 이후 생긴 섬망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기는커녕 빈도나 정도 면에서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들에게 계속 SOS를 쳤고, 급기야 얼마 전 이러다가 내가 죽을 것 같으니 누구든 엄마를 모셔 가라고 카톡을 날렸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동생들은 긴급회동을 했고 각자 일주일에 두 번씩, 엄마가 혼미해지는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에 4시간 정도 엄마를 돌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최근 한 달 가량 우리 사남매는 간병 총동원 체제를 구축해서 엄마를 함께 돌봤다. 그런데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욕을 해대고, 차려놓은 밥상을 바닥에 패대기를 치는 엄마를 도저히 어찌 달랠 도리가 없게 되자 난 오후 2시쯤 119 구급차를 불렀다.      ...
프롤로그   아침에 눈을 떴는데 집안이 고요했다. 아주 오랜만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커피를 내렸고 사과를 깎았다.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으니 조용하다. 엄마가 없어서 평화가 왔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훌쩍거렸고 사과를 우물거리면서 울었다. 결국 그렇게 병원으로 쫓겨 간 엄마가 불쌍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집에서 평화를 느끼는 내 맘이 너무 징그러워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주방 바닥에 주저앉아 삼십 분간 대성통곡을 했다.   그랬다. 엄마의 션트 수술 후 지금까지 약 3개월간은 내가 엄마랑 같이 산 지난 6년 중 특히 힘든 시간이었고, 최근 몇 주는 그 3개월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수술 이후 생긴 섬망이 시간이 지나면서 나아지기는커녕 빈도나 정도 면에서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동생들에게 계속 SOS를 쳤고, 급기야 얼마 전 이러다가 내가 죽을 것 같으니 누구든 엄마를 모셔 가라고 카톡을 날렸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동생들은 긴급회동을 했고 각자 일주일에 두 번씩, 엄마가 혼미해지는 오후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에 4시간 정도 엄마를 돌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최근 한 달 가량 우리 사남매는 간병 총동원 체제를 구축해서 엄마를 함께 돌봤다. 그런데도 사태가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며칠 전,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욕을 해대고, 차려놓은 밥상을 바닥에 패대기를 치는 엄마를 도저히 어찌 달랠 도리가 없게 되자 난 오후 2시쯤 119 구급차를 불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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