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영화인문학> 에세이데이 발표 후기

청량리
2020-12-1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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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영화는 계속된다

청량리

 

 

 

올 초 띠우님과 으쌰으쌰, 그럼에도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시작한 영화인문학이었다.

그나마 믿는 구석은 둘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밖에,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죽이 되어도 두 사람의 주걱에 남는 밥풀 하나는 있지 않을까, 싶었다.

누구나 그러했듯, 세 번의 시즌은 정확하게 코로나의 시기를 관통했고,

그럼에도 영화를 본다는 것을 책을 읽는 것보다 앞에 두었던 영화인문학은,

그래서 온라인으로 진행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올해는 축제 대신 1년 동안 진행한 세미나들의 ‘에세이데이’로 꾸려진다 했을 때,

그 속에 영화인문학이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혼자 영화를 보다가, 여럿이 영화를 보다가, 이제는 친구들과 함께,

1년 동안 영화로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게 됐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영화를 사랑하는 법에 대해 유명한 글을 남겼다.

첫 번째 방법은 좋아하는 영화를 2번, 3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 방법은 그 영화에 대한 평을 쓰는 것이며,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에세이데이에는 모두 6명의 회원들이 참여했다.

이름 그대로 수수한 매력의 고등학교 선생인 수수님은 <결혼을 미친 짓이다>(2002)를,

올해 문탁의 에너자이저 재하님은 <마틴 에덴>(2019)을,

무겁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 않은 에코수행의 아이콘 토토로님은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3)을,

직장동료들을 싫어하지만 문탁에서는 대놓고 환영해 주는 윤호님은 <화차>(2012)를,

시즌3으로 막차를 탔으나 씨네필의 매력을 뿜어내는 담쟁이님은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를,

성실하고 매너 있는 우리동네 청년영화감독 권감독님은 본인의 신작 <화성>(2020)을 갖고 에세이를 썼다.

 

 

모두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갖고 글을 쓰기 위해 최소한 2번 이상 같은 영화를 봤을 것이다.

그리고 고심고심, 쓰고 또 쓰고 2~3페이지의 영화글을 썼다.

물론 이건 트뤼포가 시켜서 한 건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그 글로, 자신의 목소리로, 각자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도 영화인문학인데, 에세이를 종이로만 보여줄 수는 없잖아?

우리는 자신들이 고른 영화에 각자의 목소리를 입혔다.

그건 재하가 만난 ‘마틴 에덴’이었고, 토토로가 가꾼 ‘비밀정원’이었고, 윤호가 찾아낸 ‘김민희’였고,

수수의 미치지 않은 ‘결혼’이야기였고, 담쟁이가 꿈꾸는 ‘행복 프로젝트’였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지막 방법이 직접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미 다섯 편의 영화를 제작한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권감독의 시나리오를 촬영을 떠나기 전 함께 읽었다.

에세이데이 때 함께 하진 못 했지만, 촬영을 위해 ‘화성’으로 떠난 권감독의 영화 <화성>을 봤다.

마지막에 우주선이 화성으로 출발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모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올해 퇴근길 영화인문학은 끝났지만, 영화는 늘 끝나지 않는 것처럼,

내년에도 필름은 계속 돌아가고, ‘청띠’가 검은띠가 될 때까지 갈고 닦을 듯하다.

사연이 많아 보이는 노사연님이 그랬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아마 올해 최악의 필름이다 영화로 평가될, 그래도 뚜버기님이 좋아해 줘서 위안이 되는,

<나비잠>(2018)에서 김재욱도 우연 속에 뭔가 이유가 있다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던가.

그렇게 함께 우연히 본 영화 한 편으로 앞으로, 우리의 공부가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누군가는 '들뢰주'를 새로나온 술이라 하겠지만,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영화는 결국 세상이 될 것이다.

 

 

 

 

댓글 18
  • 2020-12-12 22:13

    들뢰즈가 들뢰주(酒)로 들린 건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여요. ㅎㅎ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지만 일단 빠지면 벗어나기 힘드니까요.
    띠우샘과 청량리샘이 처음 영화인문학 구상하신다고 회의하고 고민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다들 고생하셨어요. ^^

    • 2020-12-13 10:09

      들뢰주의 탄생/
      윤호님이 직장에 가서 문탁과 문탁에서 공부한 것들을 이야기하던 중,
      직장 동료들이 알고보니, 들뢰즈를 술이름으로 알고 있더라,
      그래서 '들뢰주'라는 새로운 술에 대해 윤호님이 이야기한다고
      동료들이 생각한다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영화인문학 회원들 모두 빵~터졌었죠!!! ㅋㅋㅋ

  • 2020-12-13 06:22

    코로나시대에 어울렸던 행복한 송년의 밤이었어요^^

    • 2020-12-13 10:46

      샘~~처음 올린 후기와 지금 후기에서 다른 그림 찾기 해보세요 ㅎㅎㅎ

      • 2020-12-13 20:27

        흠... 기억의 왜곡이 되는 순간!! 죄송합니다. 마스크를 꼭 쓰겠습니다ㅋㅋㅋ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어떤 의도가 들어가는 건가?
        진짜 기억의 왜곡을 실감하네요
        저는 저렇게 열심히 양손을 사용하며 말 한적이 없어요 ㅠㅠㅋㅋㅋ

  • 2020-12-13 08:1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지 재밌었다고 들었음
    못 나가서 매우 미안함
    그래도 늘 열렬히 응원함

  • 2020-12-13 09:10

    영화인문학 하면서
    ''좋은 추억 물고기'' 몇마리 만들었어요^^
    나중에 이 물고기들을 건져 올리게되겠죠.

    함께 하신 분들께 감사를~~~

  • 2020-12-13 10:00

    저도 간만에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를 돌이켜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두 내년엔 영화보러 다니고 싶어졌어요~

  • 2020-12-13 10:06

    오늘 일요일 여의도 회사에 와서 한강을 보니 청량리님의 글이 좀더 시적이네요 🙁 저는 개인적으로 그 시간을 즐겼고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공학적인 것과 사무적인 부분에 시간을 사용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띠우님이나 청량리님과 달리 평상적인 용어와 생각으로 유지했지만 지적인 오락 시간을 알게된 문탁을 통해 또 하나의 즐거운 경험을 찾았습니다 다음에 또 뵈어요 🙂

  • 2020-12-13 10:22

    처음에는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의 틈이라도 갖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영화이야기를 하려고 오셨을 수도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삶을 고민하고
    자기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놓으며 성찰하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에세이 날
    의도적인 것은 아닌데도 늘 웃음을 주시는 매력만점 봉옥샘의 마디마디 한 마디,
    시작할 때와 끝날 때 톤이 확연히 달라져버린 여울아샘의 기분좋은 웃음소리,
    마음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었던 느티나무샘의 풍부한 표현과 표정까지...

    세 분,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윤호님 말마따나 다들 또 봐요^^

  • 2020-12-13 10:39

    "나 필통으로 돌아갈래~"라고 외치고 싶을만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윤호님, 수수님, 토토로, 재하님 만나서 반가웠어요^~^

  • 2020-12-13 11:20

    영화인문학은 힘들고 막막하던 시기에 저에게 작은 숨구멍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0-12-13 11:23

    어제 단카단 100일 행사 시작 전에 잠깐 청량리가 수수님 에세이를 보여주었어요.
    저는 생각도 못해본 발표 형식, 멋지던데요!
    미리 글을 완성하고 목소리를 입히는 과정에 시간도 많이 들었을텐데
    영화인문학에 쏟는 참가자들과 청량리+띠우의 애정과 열정이 느껴졌어요.
    다른 분들 영화와 에세이도 궁금하더라고요.
    거기에 더해 합평 열기가 뜨거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에세이데이 못갔던 것이 못내 아쉽군요.^^

  • 2020-12-13 21:55

    흑, 필통이다 올~출석 회원의 명예를 유지하지 못한 2020년;;
    흑, 에세이데이까지.... 내 에세이 쓰느라 못가는 불운이,
    영화마당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여울아님이 다녀와서 연발하는 칭찬에 점점 소심한 질투까지 흑,
    다들 좋았겠습니다~~

  • 2020-12-13 23:06

    문탁에 가는 목요일 퇴근길이 즐거웠습니다.
    에세이는 마음의 짐이었지만, 글을 써야 내 공부가 된다는 걸 알기에 억지로 썼습니다.
    발표를 하고 보니 좀 예술적인 영화를 고를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되더라구요. 앞으로 더 많은 영화를 보며 시야를 넓혀야겠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이 질문을 막 하셔서 좀 당황했지만(하필 그 영화를 다들 보셨을까요..), 오랜만에 만나는 긴장과 자극이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게 정말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언젠가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어 질' 날도 올까요? ㅋㅋ (지용 감독님에게 존경을~)

    마지막까지 에세이 영상 편집해 준 청량리님,
    매주 따뜻하게 챙겨준 띠우님,
    모두 감사했어요~ 또 만나요^^

  • 2020-12-14 18:42

    영화인문학 마지막 에세이 올립니다.
    토토로, 수수, 재하군 글입니다

  • 2020-12-14 18:46

    이어서 이윤호, 담쟁이님 에세이입니다

  • 2021-01-09 08:41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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