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방학 단기 문학 세미나 후기

띠우
2021-08-20 20:35
97

문학단기세미나 후기

 

8월 초부터 3주에 걸쳐 <멋진 신세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2021 젊은작가수상집>중 순서대로 4편을 함께 읽었다. 16일 동안 네 번의 세미나라는 다소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수수님 방학을 맞아 영화인문학팀이 의기투합^^(방학이 없는 청량리님도 마지막 시간은 참여). 단기세미나게시판이 없어서 영화인문학 게시판에 남긴다.  

 

우선 올해 <젊은작가수상집>은 다소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을 받았다. 일곱 편 모두 여성작가 작품으로 성, 장애, 소수자 이야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여성의 목소리, 혹은 기록하는 여성이 많아진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각각의 작품이 독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작품마다 서평이 있는데, 이것들을 읽고 나면 내가 읽은 글과 그들이 읽은 글이 같은 작품인가 생각이 든다(책 읽고 궁시렁거렸더니 자누리샘이 읽어보고 싶다고 해서 책을 빌려드렸다). 개인적으로는 김혜진의 <목화맨션>이 기억에 남는 정도...

 

이 작품은 궁색한 집주인 만옥과 더 궁색한 세입자 순미의 이야기다. 집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둘 다 가난하고 하루하루의 삶이 녹록치 않아보인다. 이삿날 함께 먹은 냉면에서 시작된 이들의 인연은 재계약을 세 차례 거치는 동안 계속된다. 서로의 사정을 아는,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관계의 끝은 재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순미에게 만옥이 나가달라고 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도시에서 만난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우정이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정한 인간관계로 이야기가 끝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는 이들의 연대와 우정이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집으로 보이지도 않을 이 공간을 둘러싸고 나눈 그들의 이야기에는 분명한 온기가 있다. 작가는 여기에 만옥의 입을 빌려 우리에게 말한다. 재개발로 그 집들이 무너지는 순간, 정말 무너지는 것들이 집뿐이냐고. 집이라는 공간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다음으로, 1932년에 발표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2019년에 발표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함께 읽은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90년 가까운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서로를 넘나든다.

 

“세계는 이제 안정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잘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때문에 시달리지도 않고, 아내나 아이들이나 연인 따위의 강한 감정을 느낄 대상도 없고, 마땅히 따르도록 길이 든 방법 이외에는 사실상 다른 방법은 하나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혹시 무엇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소마가 기다립니다.”  -멋진 신세계

 

“소피. 우리가 왜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는지를 생각해 본 적 있어? 시초지의 역사를 배우며 그렇게 많은 과거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는 이 마을에서 자란 이들이 서로 연인이 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같은 자궁에서 태어나 자매처럼 자란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낭만적 감정과 성애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단지 우연이기만 할까?”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인간성을 드러낼 수 있는, 어느 순간에는 제어하기 어려워지는 감정을 포기하는(?) 삶을 받아들인 인류의 미래가 두 작품 모두에서 그려지고 있다. 말 그대로 분쟁의 씨앗이 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한다. 어쩌면 괜찮은 사회일지도 모르고, 실제로 선택할 수 있다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멋진 신세계>가 통제된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서 반감이 든다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의 마을은 성인이 된 개인에게 자신이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야기의 발상은 유사하지만 전개과정은 다른데 전자에 비해 후자가 오히려 도전적인 느낌이 든다. 사랑이나 증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통제하는 사회에서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과는 달리, 그런 감정들을 제거한 마을에서 살 것인지 아닌지를 어떤 나이가 되면 선택할 수 있다.

 

김초엽의 소설집 앞부분(<순례자~>, <스펙트럼>,<공생가설>,<우리가 빛으로 갈 수 없다면>)에서 공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면, 뒤(<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로 갈수록 ‘이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이해란 사실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어쩌면 무시가 더 손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똑같은 일이 벌어져도 그러려니 하기 보다는 순간적으로 다시 화를 내곤 하는 관계. 그럴 때 우리 삶은 매일매일 같은 일을 차이없이 반복하는 지루한 삶이 되어버릴 것이다. 보통 가족들이 이런 구조 속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관내분실>은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못했던 모녀관계 이야기다. 엄마가 죽고 난 후, 임신한 딸은 도서관에 저장된 엄마를 찾는 과정을 지나며 엄마에게 이해한다는 말을 전한다. 엄마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존재다. 과거의 기억들이 현재와 맞물리고 미래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그 기억에는 새로운 현재가 덧붙여져야만 하지 않을까. 고정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생이란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알지 못했던 엄마의 과거가 딸의 현재로 다가올 수 있었고, 앞으로 딸이 살아갈 삶은 엄마의 삶의 전개와는 다르지만 그 위에서 변화를 거듭해갈 것이다. 문학이 가진 힘은 이런 순간에 우리에게 전해진다. 동일시가 아닌 차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깊이있게 사유함으로써 조금씩 변화를 경험하는 즐거움 말이다.

 

후기를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시간도 섞이고 읽은 순서도 섞여버렸다.

그대로 이어가자면,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을 문명과 야만으로 나누어버리는 이분법에 대해서 ‘표현의 문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의견, 우리가 쓰는 어휘나 문장을 보면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실제로의 삶이 그럴까. 이분법의 단호한 표현처럼 계급으로 인간을 나누더라도 인간 각자가 가지는 욕망은 서로를 비추어 비슷할 텐데 구분이 가능하냐는 것... 자연스레 인간세상에서 문명과 야만은 누가 정하는 것인지, 또 어느 것이든 강제로 통제 가능하냐는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정신적 성찰 없이 소비(소마라는 약물)를 통해 결핍을 해결하는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재미있었던 것은 요즘 아이돌의 음악에 철학적 언어를 집어넣기도 하는데, 자칫 유행의 형식이 아닌가 하는 질문. 인문학이 도처에서 유행하는 것과 유사한 맥락으로 보이기도 한다. 인간성찰의 자리에 소비를 집어넣어 버리는 유사함을 발견한다.

 

거기에 계속해서 언급되는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는 어려웠다. 작품이 쓰여진 시대맥락을 모르고 읽으니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옳고 그름으로 매순간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판단하고 사유하는지를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긍정성이 발휘되기도ㅋ.

 

과학의 진보를 어떻게 보아야할지 오락가락한다. 1932년의 현재가 지금의 현재와 다르지 않은데, 오늘날 되돌릴 수 없는 기후환경문제가 불러올 대재앙에 대한 섬세한 관심이 빠져있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확실한 결론,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면 지금은 기술문명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떤 선택들을 해가며 살아야할지 혼란스럽다 등등

 

김초엽에 대해서는 낭만적인 과학자라는 평이 있었다. 하나하나 이야기할 내용이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네 번의 세미나가 끝났다. 양자물리학, 언어의 확장성, 증강현실, 공감각, 움벨트, 이타심, 윤리학, 사랑, 페미니즘,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가 언급되었다. 이 기억을 가지고 10월 첫째주 영화인문학 시즌3에서 우리는 다시 만난다.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수수, 토토로, 재하, 청량리님까지 머내영화제를 준비하는 녹음을 마쳐야 하고, 이 후기에 댓글로 문학세미나를 마친 소감도 적어야 한다. 시킨다고 하는 분들도 아니고 사정한다고 하는 분들도 아니고 다들 알아서 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여~~~ 이번 주까지 모두가 이 미션을 완수하실 수 있기를~~

 

여러분~ 짧지만 문학세미나도 즐겁게 마쳤네요. 모두 건강 잘 살피시고 곧 만나요^^

 

 

 

댓글 4
  • 2021-08-21 07:52

    단기세미나로 소설을 선택한 건, 어쩌면 영화인문학의 필연인지도 모른다.

    단편소설을 읽을 때마다 영화의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소설의 한 대목이나 영화의 한 장면은 그저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일까?

    지금, 문득..... 윤호님을 구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영화인문학에서 영화보고 수다떠는 날이 오겠죠?

    저도 덕분에 김초엽 작가를 다시 보게 되어 좋았습니다.

    목화맨션은 꼭 한 번 읽어볼께요~

     

     

     

     

     

     

     

    • 2021-08-22 09:40

      다시 우연과 필연사이? ㅎㅎㅎ

      저도 가끔 윤호님을 떠올리는데ㅋ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 2021-08-21 18:11

    쌤~믿지도 않는 주님을 왜 찾으십니까!ㅋ~

     

    단기문학세미나 덕분에 미루고, 미루던 <멋진 신세계>를 읽었네요.

    초반에는 집중이 안되던 내용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상당히 흥미진진해졌습니다.

    이 책을 읽으니 유독 '언어의 소중함'에 대해, 불행을 선택할 권리나 나도  소마를 원하고 있는건 아닌가 등등..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그리고 김초엽의 소설집.

    오~~기대이상 이었어요. <감정의 물성>에서  "왜 부정적인 감정까지 돈을 지불해가며 원하는가"라는 질문이랑 여러 작품들에서 느꺼지는 쓸쓸함들이 좋았어요. 

    과학. 미래. 우주개발을 소재로 한 소설집이었지만 결국 질문은 '현재의 삶'에 대한것이더군요.

    젊은 작가의 기발함에 묵직한 메세지로  인해

    더운 여름 방학, 즐겁게 보냈네요.

    영화가  아닌 문학으로 만난 세분. 하고 싶은 얘기가 어찌 그리들 많으신지ㅋ.ㅋ

     

    이제 가을에 영화로 다시 만나요~~

    꽤 긴 댓글이 되었네요.

    띠우샘 씨익~~웃으시길 ( ^______^ )

     

    • 2021-08-22 09:44

      주여~~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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