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시즌1 에세이#1_‘스윗 걸’은 어떻게 ‘스완 퀸’이 되었나

토토로
2021-05-02 14:57
125

스윗 걸은 어떻게 스완 퀸이 되었나

 

글 : 토토로

 

 

 

 

 

 

 

 

두 시간 안팍의 영화를 모여 보고난 뒤 항상 느끼는 건 관점도 기억하는 장면도 다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언제, 어떤 내가 영화를 보았는지에 따라 나의 리뷰도 달라진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만 건드리는 평범한 리뷰는 지루하고, 독특한 자기만의 해석은 자칫 억지스러울 수 있다. 똑같은 영화로 다섯 명이 에세이를 쓰는 일은 재미난 실험이자 모험이다. 뻔함이나 무리수. 둘 다 너무 쉽게 보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영화 에세이를 위해 어디에 포인트를 맞추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할까..고민만 하다 내가 이해하기 쉽지 않았으면서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몇 장면을 중심으로 연결해보며 풀어보려 한다, 부디 덜 뻔하길 바라며.

 

#시작-이상한 꿈, 상처 자국

<<블랙 스완>>은 니나의 이상한 꿈으로 시작한다. 꿈속에서 니나는 희고 순수한 백조의 춤을 추다가 검은 악령을 만난다. 악령과 엉켜 고통스런 춤을 춘 뒤 다시 아름다운 백조의 춤을 춘다. 꿈에서 깨어난 아침, 니나의 등엔 빨간 상처 자국이 생긴다. 그리고 영화에서 공연 될 <백조의 호수>는 애초부터 두 명이 아닌, 단 한명의 발레리나로 흑조, 백조 모두를 연기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 명의 발레리나가 빛과 어둠, 순수와 타락, 도덕과 일탈, 외면과 내면 사이를 넘나드는 춤을 추어야 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순수의 세계에 속하는 니나가 점차 어둠을 마주하게 될 것을 선명하게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니나의 주변인물들은 흑조의 연기가 부족한 그녀를 자극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들로 인해 니나의 불안과 정신분열이 심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꿈과 상처자국을 통해 니나가 이미 스스로 자신의 어둠의 날개를 돋아낼 때를 맞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타락

맘처럼 되지 않는 흑조 연기에 니나의 불안은 점점 커진다. 악몽, 구토, 모멸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남들 앞에 드러내지도 못한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온 엄격한 엄마의 착한 딸(‘스윗 걸’)로 내면의 어둠을 감추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반항과 신경질적인 감정들이 움튼다. 그런 니나를 찾아온 릴리를 따라 충동적으로 클럽에서 술과 약에 취하고 쾌락의 시간을 보낸다. 이 장면은 꽤 수위가 높기는 하지만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날 최초로 니나는 그동안 차단해 온 어둠의 것에 빠져들었으며, 억눌러 온 감정들을 터뜨리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릴리는 거침없고 자유로우며 검은 매력을 지녔다. 니나에겐 질투와 견제의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론 갖고 싶은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침대위에서 니나가 끌어안은 릴리의 등에는 검은 날개 타투가 크게 그려져 있다. 릴리의 몸짓을 따라 꿈틀대는 타투는 니나가 드디어 어두운 욕망에 손 내밀었음을, 그리고 릴리라는 존재가 타자이면서, 사실은 니나가 가둬둔 또 다른 자기 모습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릴리와의 격렬한 관계는 가둬둔 자신을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었고, 웃음은 해방감의 표현이었다.

 

 

#두 번의 살인

영화에는 정신 착란 상태에 빠진 니나가 살인을 저지르는 두 번의 장면이 있다.  살인장면은 꽤 극단적이지만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두 장면은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또 기괴하게 그려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니나의 불안이 심해져 더 그렇다. 그러나 두 장면은 단지 니나의 정신 분열 증세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니나가 죽인 첫 번째 상대는 오래전부터 닮고 싶어 하던 우상 베스이다. 공연 연습으로 불안이 극도로 심해진 어느 밤, 니나는 베스의 병실을 찾아간다. 베스를 우러러보며 몰래 훔쳐왔던 소지품들을 조용히 내려놓던 니나는 정신발작 증세가 나타나 베스를 찔러 죽이고 만다. 자신의 우상을 죽이고 도망친 밤, 니나의 어깨에서 작은 흑조의 깃털이 살을 뚫고 나온다. 우상이었던 존재를 죽인다는 것은 누군가를 닮은 니나(일종의 ‘제2의 베스’)가 아닌, 그냥 ‘니나’가 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릴리를 끌어안으며 쾌락을 맛본 첫 번째 타락을 지나, 베스를 죽이면서 니나가 내면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은 공연 날 대기실로 찾아온 릴리를 죽여 버림으로 발생한다. 릴리를 죽인 후 광기에 휩싸인 니나는 무대에서 최고의 흑조 연기를 펼친다, 베스를 죽였을 땐 검은 깃털 몇 개가 돋았을 뿐이었지만, 릴리를 죽인 후엔 온몸이 풍성한 깃털로 뒤덮이며 크고 힘 있는 흑조의 날개를 펼치게 된다. 표정도 몸도 강렬한 흑조로 변신하여 완벽한 춤으로 관객과 자신을 압도한다. 그러나 곧이어 자기가 죽인 상대가 사실은 릴리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그렇게 최고의 순간과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만 나는 그것을 비극적 결말로 보지 않는다. 마지막 춤은 절대자였던 엄마, 단장, 관객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춤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영화는 박수갈채로 끝을 맺었을 것이다. 그 춤은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강렬하게 뿜어내며,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니나는 극도의 환희를 맛본다. (누군가의 ‘작은 공주님’이 아니라, ‘스완 퀸’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싶다.)

 

블랙스완과 데미안

영화를 보며 소설 <<데미안>>이 떠올랐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블랙 스완>>은 <<데미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초반의 니나는 부모님의 밝고 안전한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어둡고 악마적인 것에 이끌리는 ‘싱클레어’ 같았다. 결국 니나도 싱클레어도 어리고 순수하며 안전하기만 세계를 깨고 나왔다. 그 둘은 어두운 것, 악마적인 것을 외면하거나 부정하지 않았을 때 더 성숙하고 강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니체의 명언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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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덧붙이자면,,,, 방탄소년단의 2016년 앨범 <<WINGS>> 는 <<데미안>>을 모티브로 삼아 만들어졌다. (앨범의 intro곡의 제목은 Boy Meets Evil이다. 참 의미심장하다!) 앨범 타이틀 곡 , , 눈물의 뮤직비디오는 악마의 유혹과 손잡으면서 (정신적인)소년기를 넘어간다는 내용이다. 워낙 상징, 은유가 많아 해석이 쉽지 않았는데, 이번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이 뮤비가 은밀하고 조용히 <<블랙 스완>>을 오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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