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자, 우리_2021 영화인문학 시즌1 후기-인재하

Micales
2021-03-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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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이미지들의 연속이다. 특정 장면, 씬(scene), 미장센, 특정 장면에서의 분위기를 전달해주는 음악, 캐릭터들의 성격과 역할의 분담 등,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메세지, 즉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들이다. 예컨대 영화는 이미지들을 눈으로, 귀로 전달하는, 움직이는 사진(혹은 이미지)이다. 그리고 지금껏 영화들의 기법들은 그러한 것들을 강화하는 식으로 발전해왔다. 배우들의 생김새나 특징을 바탕으로 특정 성격의 역할을 맡기는 타입 캐스팅부터(우리로 치면 '유해진=코미디, 마동석=액션' 쯤 되겠다.), 조명효과, 명암을 더욱더 강하게 하거나 조절하여 특정 씬에서의 느낌을 더욱 강조하는 것과 내면을 말해주는 줌 효과 등...영화는 어떠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예술이 각기 그렇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러한 것들을 조절하고, 독단적으로 연기와는 별개인 '연출'한다는 점에서 더욱더 이러한 '효과'들이 돋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렇기에 많은 영화감독들이 이러한 이미지에 대해서 사유한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인 원리와 일본의 표의문자에서 영감을 받아 발전하게된 몽타주 기법, 쿨레쇼프가 대표적으로 이미지들을 서로 연결지어 이미지들 간의 상호적 충돌로 인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한다는 것을 밝힌것으로 유명한 쿨레쇼프 효과, 그리고 에이젠슈타인이 몽타주 기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전함 포템킨>에서의 오데사 계단 학살 장면까지. 영화사 초기에 영화는 여러 정지된 순간의 사진, 다시말해 필름들을 이어붙인 것이었다. 

 

 '이미지'란 무엇일까. 이미지는 무엇을 전달한다. 그리고 의미를 함축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서의 이미지는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가치를 가진다. 공포영화에서의 공포스러운 분위기, 로맨스 영화에서의 로맨틱한 분위기들은 영화 속의, 스크린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이미지들에 의해서 그 느낌, 의미를 가진다. 영화는 이러한 것들을 담아내려한다. 공포에 질린 눈빛, 만족스러운 표정, 고통스러운 몸부림 등을 말이다.

 

 가치로써의 이미지는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지는 그대로의 느낌을 재현한다. 따라서 무엇을 가리키는 말과 달리, 직접적으로 모여주는 이미지는 더욱더 강력하고, 광범위하다. 그렇기에 선전영화는 그 어떤 선전 전단보다 더 강력하다.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의 담겨진 가치가 선전과 연결되어 있을 때, 다른 영화들 만큼이나 그 가치는 빠르게, 그리고 멀리 퍼져나간다. 

 "미국 스튜디오들은 결코 나치에 점령당한 유럽의 분위기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지만, 군대 드라마, 군부대 코미디, 연합국의 대의에 라틴 아메리카를 끌어들이기 위해 선린정책을 표방한 뮤지컬, 진주만 공격 이후에 대량으로 찍어내던 전쟁 어드벤처등은(...)전쟁 수행 능력에 주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영화를 뒤바꾼 아이디어 100-'선전영화Propaganda', 113p

 

 이러한 대중 속에서의 가치의 재생산은 비단 선전영화 자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영화는 주관적이지 않다. 언제나 감독의 시선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영화에나 특정한 시선, 가치는 삽입되어진다. 우리 주변의 영화들 또한 가치를 담고 퍼져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에서 내가 <언터쳐블>을 보았을 때 몰랐던 지점은 영화의 편향된 시선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놀랐던 지점은 <언터쳐블>이 생각보다도 현재까지도 우리가 보는 할리우드의 많은 영화들에서 나오는 것과 많은 것들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말해서 당시 영화의 품질 자체만 다를 뿐, 내부적인 서사는 거의 비슷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꼈다. 불의를 쫓는 영웅들, 규정된 악당, 그리고 언제나 시련 끝에 이기는 서사와 새로운 희망과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엔딩,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명확히 지어놓은 뒤 내부의 시선을 쫓는 감독의 시선과 외부로 규정되어 내부적 서사는 잃어버린 채로, 그 모든 악의 근원, 발생 원인까지도 외부로 규정지은 채 나오는 '이탈리아에서 건너온(즉 '외부'에서 유입된)' 마피아들. 그것이 현재의 영화적 장치들과 무엇이 크게 다를까. 내/외부, 선/악, 개인들의 희생/무서사성, 공격에 대한 방어, 수호로써의 공격/오직 파괴를 위한 공격, 등 현재도 '적'은 '적'이고, 아군은 병사이기 전에 '사람'이다. 시련과 고난의 초점은 오직 내부에만 맞추어져있다. 적들은 '몰려오고', 주인공들은 '막아낸다'. 즉, 적들로 명백히 규정된 이들은 공격의 가치를 표방하고, 주인공들은 방어, 즉 수호의 가치를 표방한다. 최근에도 나오는 호평을 받은 다수의 전쟁영화들(굳이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겠다), 영웅서사들, 이 모든 것들이 특정한 이미지들을 가진다. 그리고 그 이미지에서 가치들이 부여되고, 생산되어진다. 

 

 하지만 단순히 이미지와 가치를 가지는 것만이 문제일까. 문제는 그렇게 특정 이미지들에 국한지어져 규정된 가치들이다. 이미지들에 부여된 의미들은 그러한 표상들이 고정화되었을 때, 역으로 자신들이 부여한 이러한 이미지들에 의해 다시 의미를 부여받는다. 의미는 이미지의 맞추어진 울타리 안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은 안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익숙해진 것들에 사람들은 더이상 움직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영화에서만이 아닌, 일상으로도 적용이 된다. 사람들은 어떤 것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사물을 특정한 가치와 표상들로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는다. 마치 누군가를 만났을 때 첫인상으로 그 사람을 구분짓고, 가치화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사물은 정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사람도, 사물도, 시간이 흐르면 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가치의 규정은 제한된 영역 속에서 사물들을 구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이미지 속에서 굳어진 의미들은 점점 그 의미가 좁아진다. 문제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그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고착화는 그 반대편에서 피해자들을 양산해낸다. 어쩌면 그것은 폭력으로 나아간다. 절대적인 이미지와 가치는 우리들을 앞으로 나아가기 무겁게 만든다. 따라서 '변화'는 반영되어야한다. 더이상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정적인 우물, 즉 이미지는 개구리를, 가치를 가둔다.

 

 그렇다면 영화와 더불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멈추어 있지 않고, 나아가려는 태도 아닐까. 의미를 하나의 표상 안에 가두어 두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그리고 기존의 표상들을 새롭게 구축하여 나가는 방식이 변화의 반영이지 않을까.  대상을 고정적이 아닌, 유동적인 것으로 수용하는 태도가 의미의 규정에 대한 폭력을 더이상 생산하지 않는 길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대상을 정적으로 본다. 그것을 벗어나려 하는, 우리의 익숙함에 안주하는, 그 '편함'을 피하는 것, 끊임없이 '불편'해지는 것이 진실을 인식하는 방법인 듯하다. 불편해지는 것, 갇히지 않기 위해, 일상의 폭력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해야하는 것, 아닐까. 내가 지난 번에 이창동의 <시>를 보고 '쓰다'고 했듯, 그 불편한 쓴 맛을 맛보아야하는 것, 눕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다.

 

<언터쳐블>.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알 카포네(로버트 드니로)를 인터뷰하기 위해 모여있다.

 

불편함(?)을 마주하는 시간!!

 

 

댓글 1
  • 2021-03-29 07:01

    영화를 불편하게 혹은 낯설게 마주하는데 있어서 B급 영화가 아마도 힌트가 되진 않을까, 싶네요.

    주류의 문법이나 이미지를 답습하지 않고, 그것이 감독의 시선이든 자본의 논리든, 여하튼 저렇게도 영화가 가능하다는 지점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무언가로 고착화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불편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관계가 변화한다는 것, 그것이 고착화든 변화든, 그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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