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문학 시즌3 네번째 시간 후기

2021-10-2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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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 2011년 , 146분

 

-좋은 이야기는 끝나는 순간 삶속에서 계속 된다.-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중 66쪽

 

헝가리감독 벨라타르는 이 영화 <토리노의 말>을 끝으로 창작활동을 중단한다.

그의 후기작들은 절대적 형식미에 대한 추구로도 유명하며,

특히, 롱테이크촬영은 영화속에서 재현된 대상 뿐만 아니라,

스크린위를 흐르는 시간 자체를 하나의 사물처럼 인지하게 만드는 효과를

드러낸다는 영화사적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근현대 영화인사전-)

 

카메라는 아버지와 딸이 함께하는 마지막 순간으로 짐작되는 여섯날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첫 대사는 딸이 아버지를 향해 하는 말이다. ; 식사하세요.

마지막 대사는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말이다. ; 먹어라. 먹어야 한다.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 하는 말도 아니고, 줄곧, 감자, “감자”만 먹는다.

첫째날, 뜨거운 감자를 허겁지겁 해치우던 아버지의 식탐은

날이 바뀔수록 그 의미를 잃고,

이미, 그들이 키우던 말은 일찌감치 곡기를 끊고 죽음을 준비하는데,

딸이 그 말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모습은 꽤나 오랜시간, 공들여 그려진다.

여섯째날, 기름이 가득찬 등불에 불이 붙지 않자, 과묵한 딸이 아버지에게 묻는다.

“왜 이러는 거예요?”

눈빛이 무서운 아버지가 대답한다. “나도 모르겠다.”

끝없이 불어오는 바람(대자연의 분노?)앞에서

이유도 모른채,  아무데도 갈수 없고, 아무것도 할수 없는 인간존재의 나약함이,

마부의 채찍을 견뎌내는 토리노의 말처럼 보인다.

 

146분의 기-인 시간을 함께 체험!하며,

우리들의 이야기는 긴 러닝타임마냥 끝없이 이어졌다.

 

먼저,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을까?의 질문으로 물꼬를 튼다.

또는 왜 이렇게 어렵게 느껴질까?

책으로 비유하자면, 과연, 읽기에도 버거운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할까?인데.

 

간단한 줄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매우 불친절하고,

생략없는 느림을 견뎌내야 한다.

이 영화의 생소한 재현방식으로 인해 , 우리는

대상이나 대상이 처한 상황에 더욱 더 몰입하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튕겨져 나가기도 하는 이중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중첩의 상태에서 내 삶의 불편한 부분들을 떠올리기도 하고,

영화속 그들과 나를 동일시 하는 순간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의 일상과 별반 다를바 없기도 하고,

우리네 일상에서 갑작스레 마주하는 수많은 비일상의 순간과도 닿아있다.

삶과 죽음의 줄다리기안에서 그저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그런 식으로 영화는 대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바라볼수 있는 시선을

우리에게 체험하게 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먹고 자고 살아야 할 일, 해야할 일들을 해가는 일상이

감독이 일궈낸 영화적 언어로 재현되고 , 그것을 경험하는 우리는 그들의 일상에,

그리고 그들 일상의 그림자로 비친 우리의 일상에

얼룩처럼 의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토리노의 말>은 질문의 마중물 같은 영화가 아닐까?

영화속에서의 우물은 말라버렸지만,

영화가 끝나면 묵직한 피로가 몰려오는 동시에 두서없는 의문이 퍼올려진다.

 

-이렇게 해서 영화는 감광된 필름 첫 부분부터 단번에 구체적 현실속에 있는 사물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의해 굴절된 사물을 복제한다는 숙명을 지게 된다.

그리고 이 재현체계는 영화제작의 모든 단계에 작용한다.

주제, ‘양식’, 형식, 의미, 전통적 내러티브 모두가 일반적 이데올로기 담론을 되풀이한다. 이렇게 해서 영화에 의해 이데올로기 자체가 재현된다. 이 자기 재현 속에서 이데올로기는 스스로를 드러내고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스스로에 대해 가르친다.

따라서 자신을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만드는 이 체제의 본성을 알고 있는 영화를 대상으로 해서는, 자기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에 간극 혹은 단절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재현의 체제 자체를 의문에 부치고 영화로서 스스로를 의문에 부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의무가 된다.- 사유속의 영화중 253쪽

 

벨라 타르감독은 이 영화에서 총 31개의 쇼트를 사용했다고 한다.

각 첫째날에서 다섯째날 까지는 6개의 쇼트를 여섯째 날에는 한 개의 쇼트.

숫자‘6’은 인간을 상징하며, 여기서 인간의 운명, 실존적 상황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그 무엇이 감독으로 하여금 관객들은 인식하기도 힘든 쇼트의 수까지 계산해가면서 이 영화를 만들게 한걸까?

 

그림을 오래 그린 사람들은 질료자체가 만들어내는 그림의 맛 자체를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무엇가를 만들 때의 그 재료와 진행 방식은 때때로 그 결과물 자체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도 한다.

비약적으로 느린 카메라의 시선, 그 생략없이 이어지는 롱테이크를 통해 보여지는

사각의 프레임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 고집스런 재현의 방식 덕분에 느끼게 되는 느림의 미학적 성취는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숨가쁜 빠름과 대조를 이루는 듯하다.

 

질문은 영화가 끝난 후,  삶 속에서 계속된다.

그리고 질문들은 삶을 좀 더 능동적으로 끌고 갈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바람앞에서 한없이 나부끼던 내 어지러운 생각들을 모아서 점을 찍어 보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점들을 연결해보고 ,그것들을 옮겨보는 작업을 시도하게 해주는

영화인문학친구님들^^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를 이야기할수 있어서 감사하고,

서로가 만들어내는 그 역동의 시간과 공간이 저에게 매번 설레임으로 다가온다는

고백의 말, 전합니다.

돌아오는 토요일 9시 반, <노매드랜드>에서 만나요.

 

 

댓글 8
  • 2021-10-25 22:09

    오~

    이 영화 유튜브에서 몇개의 리뷰를 봤는데, 제 눈에는 참님 후기가 좋네요.

    아쉽게도 영화를 못봤지만

    마치 본듯한 착각ㅋ~

    그리고 어질어질한 리뷰 현장이 그려지는군요.

    <노마드 랜드>에서 만나요~

  • 2021-10-26 12:14

    우와~~ 집중력있게 영화를 보는 참님의 후기

    그날 말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이어지는군요ㅎㅎㅎ

    잘 읽었습니다.. 이번주도 기대되네요^^

  • 2021-10-26 14:25

    예술적인 후기 "참" 좋네요^^

    진지하고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제 기억에 확실히 남은 '토리노의 말'이었습니다.

    영화가 머리를 식히는 것이 아닌, 공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몸으로 확 와 닿는 시간이었어요. 

    • 2021-10-26 16:01

      옆에서 말이 없던 수수는 비단 토토로의 부재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한 편의 영화가 이후 그녀의 삶에 끼친 걸 지금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녀는 즐거움의 노래라도 불렀을지도 모른다.

      <수수방관>(2022) 중에서 한 장면.

  • 2021-10-26 15:57

    또 한 편의 영화를 봤다는 뿌듯함과 

    다음 번 영화에 대한 불안함과, 

    그러면서도 다음 번엔 또 어떤 이야기들이 

    흘러다닐까에 대한 기대감

    그게 영화인문학을 만들어가는 듯합니다~

    • 2021-10-26 18:44

      ㅋㅋㅋ 맞습니다요~~

  • 2021-10-26 20:59

    빛과 그림자, 흑백의 질감과 거친 붓터치 같은 음악, 그리고 바람, 강한 눈빛과 날카로운 목소리 또 그리고 침묵. 모든 것이 멈춘 후의 침묵과 어둠과 고요... 이런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 있는 영화였습니다. 참님의 후기 보니 그 느낌이 다시 떠오르네요

  • 2021-10-26 23:05

    감자는 아니지만 비슷한 밥을 먹고(가끔 특별한? 자극적인? 맛있는 것을 먹고싶어하지만)

    두 가지는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옷만 입고(교복이 되어 버린 편한 추리닝..ㅜ)

    쓰는 것만 자주 쓰는 일상 속에서 버리지도 못하고 집에 참 많이도 안고 살고 있더라구요.....

     

    아직은 참…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무지 졸았지만… ‘나 이런 영화도 봤다’할 만한 영화를 본거같긴해요.ㅎㅎㅎ

    영화 인문학의 새로운 경험들이 지금은 그냥 좋네요^^ (에세이쓸때쯤 머리를 쥐어박으며 머리를 줘뜯을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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