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단짠 글쓰기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2부 후기

은가비
2021-07-25 14:24
230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소진해가는 나의 기억을 믿을 수가 없고 닥친 숙제를 미뤄두는 불편함과 부담감을 얼른 내쳐내고 싶으며, 내일은 또 내일의 일정에 충실하기 위해 바로 후기를 쓴다. ㅋㅋㅋㅋ

 

지난 시간 세미나의 화두가 '글쓰기'였다면 이번 시간은 '고통'이었다. 김현지 샘은 위험하고 두려운 이 세상에서 아이를 갖고 싶은 욕망이 그 무엇보다 강렬했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자신의 이기심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지배했단다.  겸목 샘은 자신도 아이를 키울 때 수많은 초조함과 두려움을 겪었으나 자식들이 크고나서 그러한 문제들이 사라졌다고 하셨다. 이제 다 큰 자식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한다. "아이들을 통해 '나'를 성장시킬 수 있어."와 같은 입바른 이야기들을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길거리에서 만나는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며 흐뭇해 하는 자신의 이 간격은 무엇일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나 역시 아이 둘을 키운다. 이 땅에서 엄마로 아이를 키우는 것과 아빠로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지만, 내 인생에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간관계는 그 어디서도 경험못할 것이며, 그것이 예로부터 내려온 지배적 관습이든 아니면 내 마음의 정동이든 아이들은 '그냥 예쁘다'. 극한 세상에서 생존해야 할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모는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세상이다. 이기심으로 아이를 가지고 낳았다 하더라고 우리의 책임감은 절대 회피할 수 없다. 아니, 회피하고 싶지 않다.

 

김언희 선생님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겪으셨던 대상포진 이야기를 글로 쓰셨다.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통증과 호소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이렇게들 이야기했단다.  ‘좀 참아보라’거나 ‘그 정도로는 안아플 텐데, 아빠가 원래 엄살이 심하셨지’, ‘대상포진 통증으로 죽진 않아요. 그렇게 아프면 식사도 못할 텐데, 아버지가 삼시세끼 잘 드시잖아요.’라며 고통당하는 사람이 호소하는 고통의 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단다. 살아온 경험치에 따라 기억도 고통도 다른 법이지만 늘상 들었던 이런 이야기들이 가슴 아픈 이유는 나의 고통에 공감해 주지 못해서가 아니다. 처음엔 알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는 척 노력했던 그들이 내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유턴'해 버린 다음, 결국 '네 탓'으로 돌리는 모습 때문이었다. 절대 고독이다. 안다. 각자마다 살아내야 할 인생이 있고, 개개인만이 당면할 수밖에 없는 각 절정의 삶의 위치들이 있다. 그 순간, 그곳,  매일 절정의 고점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에너지를 탕진한 그들이 타인의 고통을 또 짊어지기엔 생존에 치명적일 수도 있기에 우리는 자꾸 고통받는 이들을 회유한다. 참으라고.. 그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고.. 신은 사람이 견딜 만한 시련만 주신다고.. 엄살이라고..

김언희 샘은 결말 부분에 이렇게 쓰셨다. '삶은 기억하는 것들이며, 그가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경험을 하게 된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고통의 극한과 밑바닥을 경험한 이들에게도 이것이 과연 유효한 문장인지 나는 의문이다. 개인은 대체 어디까지 수용력을 늘려야 하나. 개인의 책임은 대체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가. 그리고 김언희 샘은 상담사로서 내담자들을 만날 때 느끼는 그들의 힘을 경험한다고 하셨다. 내담자들은 버티다버티다 온 사람들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더 잘 살아가고자 하는 힘을 내고자 하는 강인한 사람들이라고.. 내담자들을 맞이하기 전에 기도를 하신다고 했다. 자신은 너무 작은 역량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을 모두 이해할 수 없지만 잘 들어줄 수 있기를... '잘 듣기'를 기도하신다고 하셨다. 너무 감동적이었다. 속으로 울컥했다. 나 역시 오래 전, 여러 회에 걸쳐 몇 달간 상담을 받은 경험이 있다. 별 일 아니야, 니가 참아, 문제 삼는 니가 문제지라고 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정말 맞는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나의 과거과 현재를 온 몸으로 들어주셨던 그 분의 표정과 말투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나는 나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는 것을 그 때말고는 경험해 본 적 없다. 들어준다는 것의 힘과 말한다는 것의 힘을 이제 나는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다. 아니, 잊혀지지 않는다. 

 

정의와 미소 샘은 고통을 기록한 책을 읽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고 인간에 대한 혐오가 생기며 외면하고 싶다고 하셨다. 미국을 좋아했는데 미국의 인디언 멸족사를 읽고 그 당시 미국이 제일 싫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요즘 단짠단짠 시즌 2에 들어와 인문학적 글쓰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문학적 글쓰기를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고 하셨다. (도전하신다면.. 응원합니다!! 아자아자!!!)  진실을 마주하는 것의 두려움과 자괴감은 우리 모두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극복은 가당치도 않다. 고통조차도 마주하기가 이렇게 힘든데.. 진실을 안다는 것은 왜이렇게 용기가 필요한 것일까? 묘선주 샘은 세월호 기념 행사에 가셨던 경험을 말씀하시며 유가족과의 정서적 연대를 느낀 경험을 말씀해 주시며 연대의 중요성을 역설하셨다. 김현지 샘은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엄마에게 투정을 부린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이야기하셨다. 고통의 '곁의 곁'도 필요하다는 것. 고통을 언어화하는 일의 중요성도 말씀하셨다. 조은 샘은 세월호 때 자신이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소수자들의 폭력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함께 집회도 갔지만, 지금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하셨다. 김지연 샘도 암 투병과 항암치료로 고통 받던 엄마에게 감정이입할 수 없었던 어려움을 말씀하셨다. 

맞다.. 우린 늘 고통 속에 산다. 다만 아니라고 착각할 뿐.  그것에 흠뻑 빠지기 싫을 뿐. 그래서 관망할 뿐.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없고,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없이 그림처럼 남아줄 수 없다. 나에게 넌 외롭던 지난 시간을 환하게 비춰주던 햇살이 아니라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고, 빛나는 보석이 아닌, 내 마음 속 지하실 가장 밑바닥으로 보내버린 내 자화상들의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이 고통의 세상에서 당신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렇게 우리의 시즌 2 세미나는 막을 내렸다. 이제부터는 글쓰기다. 서평을 A4 2-3매 정도로 쓰기로 했다. 내가 해본 노동 중에 가장 극한 '노동'이 글쓰기였다. 임신하고 열 몇 시간의 진통 끝에 애 낳는 것보다 나는 글쓰기가 더 힘들다. 그것은 마주한다는 것. 남이 아닌 나를 연기한다는 것, 나만 겪은 나의 세상을 재현한다는 것. 나라는 지옥을 끌어올려 다시 또 그곳에 입수한다는 것. 그래도 입수해보자. 하다보면 뭐가 될지.. 그것이 궁금하지 않은가?

 

 

댓글 5
  • 2021-07-25 15:02

    오늘 세미나에서 유독 말이 없다 생각했는데, 많은 생각들이 오갔네요! 늘 은가비샘의 생각이 궁금하고 많은 부분이 오리무중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 글쓰기에서  안개가 좀 걷혀갈까요?

  • 2021-07-25 17:57

    오늘 이야기가 은가비샘 덕에 더 잘 와닿는 느낌이에요. 글쓰기 참 힘든 작업이지만, 우리 모두 화이팅입니다! 늘 잘 들어주고 잘 표현하는 단짠 멤버들이 참 좋아요, 전.

  • 2021-07-25 19:11

    세미나 끝나고 영화 '생일'의 나머지 반을 보았어요. 주인공 전도연은 아들을 잃은 아픔을 외면하다 결국 마주하기로 결심하고, 치유된 듯한 결론이네요- (그녀의 눈에 유난해 보였던 유가족에 대한 이해와 자기 슬픔에 빠져 연대하지 못했던 미안함을 내비치며...) 우리들은 남은 한 달동안 글쓰기를 통해서 삶의 고통과 글쓰기의 고통을 동시에 마주해야만 하지만... 다음주부터 서로의 글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연대와 합평일에 해냈다는 기쁨으로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 2021-07-26 08:30

    글쓰기는 외부로 받은 고통이 아닌 우리가 선택한 고통이기에 즐겨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상담에 온 사람들이니까요. 최소한의 의지를 갖고있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11명의 상담샘들이 단짠엔 있으니까!!

  • 2021-07-26 13:33

    제가 고심끝에 단짠에 합류한 이유가 있었네요

    은가비샘 현지샘 지연샘 진우샘

    그리고 언희샘 정미샘 선주샘 단풍샘 조은샘  우리 팀원들과

    겸목팀장님의 기운에 힘입어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하며 고통을 마주하는 정희진샘의 글에서 에너지를 받아

    글쓰기 한번 시작해보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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