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단짠 클래스 고미숙 선생님 특강 후기

숨쉬는돌(문경미)
2021-03-23 11:03
365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사는 것은 더 좋아하고), 읽을 때마다 몰랐던 세계에 눈 뜨게 되는 것을 기뻐하였으나 며칠만 지나도 읽은 내용은 휘발되고, 읽었다는 행위만 남는 것이 늘 속상했다. 정답은 쓰기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쓰는 행위는 너무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라 다른 뭔가가 또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미뤄두었다. 그러나 찾아도 다른 답안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 후 우연히 인도된 글쓰기 세미나에 참여하게 되었다. 복직을 했고, 아주아주 빡센 사회학 책읽기 모임을 하고 있고, 품을 많이 내야하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여 양질의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그렇지만, 그동안 미뤄두었던 시간만큼 더 애써보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

 

첫날은 특강으로 고미숙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고미숙 선생님 책의 출판 경로를 따라가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배움, 한 분야를 파고드는 치열함 이런 것들을 생각했었는데, 역시 어느것 하나 쉽게 넘어가지 않는 꼬장꼬장함(긍정적 의미)을 장착하고 계셨고, 세상을 통찰하는 안목으로 풀어주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해석에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1. 왜 사람 사이의 연결은 정서적 유대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말랑말랑한 정서적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얄팍한 유대감에 배신당할 때 크게 아픔을 느끼는 나로서는 왜 사람간의 연결이 정서적 유대(사랑, 우정 등)로만 이루어져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시며, 이제는 그런 연결보다는 지성과 배움으로 연결된 더 단단한 관계에 눈을 돌리자는 말씀이 좋았다. 개인사를 나누며 하소연하고 신세한탄만 하는 만남은 만남의 현장에서는 따땃~하게 연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 아무것도 해소된 것은 없고 부담만 늘어 다음에 만날 때는 반가운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앞선다. 결국 죄책감을 가지고 만남을 시작하게 되는 이상한 악순환.

현재 몰두하고 있는 부분을 나누고, 배움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만남은 이상하게도 에너지를 더한다. 나에게도 오히려 피로하고 쉬고 싶을 때 더 만나고 싶어지는 친구가 있다. 만나고나면 에너지를 얻고, 더 잘 살고 싶은 욕망이 마구 올라오게 하는 친구다. 새삼 고맙구먼!!

2. 쾌락과 욕망에 이끌리는 삶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생명의 진액이 고갈되고, 이성과 지성의 힘이 부족할 때 사람은 쾌락과 욕망과 감정에 이끌린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쇼핑은 관계에서 실망하고 정서적으로 헛헛함이 채워지지 않을 때 시작된다. 멋진 옷을 고르고, 그 옷을 입은 내 모습을 상상하는 기쁨, 휴직 기간 중 돈이 쫄리는 와중에도 (그래서, 더) 망설임 없이 클릭질을 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일 년만 지나도 쓰레기가 되는 옷들은 쌓여만 하고, 충동적인 클릭으로 중복되는 컨셉의 품목들은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시들어갔다.

지성의 힘이 최고로 발휘되고 있는 요즘, (쇼핑할 시간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쓸데없는 소비는 줄고, 단발성 쾌락은 나를 유혹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 종속되지 않는 삶, 내 존재를 소비로 증명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멈추지 않겠다.

3. 읽고 쓰는 삶,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과거에는 종교가 우리의 갈길을 비춰주었다. 멘토로서 진리를 깨닫게 하고 삶을 구원할 수 있도록 인도했다. 그러나 지금의 종교는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종교를 제도로서 지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기에 그 안에서 진리는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도생, 책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읽었으면, 써야한다. 쓰기는 도약이다. 쓰는 과정을 통해 배움을 자기 삶과 연결지을 수 있고, 창조적 변용이 일어난다. 쓰는 과정 자체가 자기를 위로하는 행위이며, 양생의 과정이다.

글쓰기를 하면서 한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자로서, 감추어진 자신의 민낯과 본래면목이 드러날까봐 두려운 자가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질문했다. 우문이지만 현답을 주실 거라는 마음이 있었고,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다.

선생님은 본인도 글쓰기를 하면서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어렵고 지난한 과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완성이 없는 과정이라, 그냥 갈뿐.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위치를 확인하고, 그 지점부터 나아가면 된다고. 그 말씀은 큰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

일루즈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고 삶에 접속시키고 싶으나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헉헉거리고 있는 게 속상하고 부끄러웠는데, 어쩌겠나 그게 나의 주소인걸. 쓰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나의 위치를 확인했으니, 이제 나아갈 뿐.

4. 함께, 글쓰기의 의

겸목 선생님은 오리엔테이션을 마치며,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에 나온 문장을 인용하셨다. "아내는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에 지퍼가 열렸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라고.

함께 공부하는 학인으로서 지퍼가 열렸음을 얘기해주는 사람이 되자고.

꾸준히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글로 쓰고, 글로 타인과 연결되고..

그런 시간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훗날 어떤 '나'가 되어있을지.

설레는 날들이다.

댓글 5
  • 2021-03-23 11:26

    아니! 그날의 기록을 이렇게 꼼꼼이 복기해주시다니...감사해요! 설레며 걱정하며 가봅시다~

  • 2021-03-23 13:11

    몇일이 지났는데 다시 새록새록 되새김 할수 있는 후기 멋져요^^

  • 2021-03-23 13:35

    지난 모임에서 저와는 달리... 책 내용을 잘 기억하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 이것들을 어떻게 기억하나 걱정스러웠는데요. 숨쉬는돌님의 글을 읽다보니, 걱정보다는... 그런 인식이 저의 위치 파악이었고 공부를 통해 실제 삶과 연계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좋은 에너지 감사합니다!

  • 2021-03-23 16:43

    다시한번 곰쌤의 강의를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고 단짠에 집중해보렵니다^^ 정성스런 요악정리 감사드립니다!

  • 2021-03-23 21:34

    잘 읽었습니다.

    정리를 잘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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