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헤이 유교걸 2회]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고은
2020-09-21 15:57
203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말의 껍데기를 넘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어떤 이는 말을 해도 상사·애인·가족이 본인의 생각을 모른다며 슬퍼했고, 어떤 이는 자신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말하는 것 같아 힘들다며 아예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평생 말을 안 하고 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부질없는 망상이다. 나는 내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고, 말로 공수표를 날리지 않고 싶다. 『논어』를 읽다가 이 오래된 딜레마가 떠올랐다. 공자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子曰 :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5:9)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내가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말을 듣고 행실을 믿었다. 지금은 내가 사람을 대할 때 그의 말을 듣고 행실을 살펴본다. 여[재아]로 인해 이렇게 고치게 되었다.”

 

   재아는 『논어』에 등장하는 매 순간 공자에게 심하게 혼이 나지만, 언어능력으로 공문십철에 꼽힌 미스테리한 인물이다. 언젠가 재아가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인(仁)한 사람은 누군가 우물에 빠졌다는 소문만 듣고도 우물로 뛰어 들어갑니까?” 재아는 절대적인 인자(仁者)를 상정함으로써 인(仁)을 어떤 조건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진공상태에 두었다. 인(仁)을 언어로 장악하고 싶어 했다.

 

   반면 공자는 형식적으로 말을 세우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다른 제자들이 인(仁)에 대해 질문하면(問仁) 공자는 묻는 사람의 성향과 주변 상황을 고려해 대답해주었다. 정계로 나가지 못하는 안연에겐 사사로운 욕망을 이기고 예로 되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라고, 크게 볼 줄 모르는 소인배 번지에겐 사람을 널리 사랑하는 것이 인(仁)이라고 말이다. 말은 행동-경험을 특정한 언어로 기호화함으로써 어떤 부분은 드러내고 동시에 어떤 부분은 누락시킨다. 공자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말 자체에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는 것이라기보단, 자기 상황에 맞게 그 내용을 이해하고 삶 안에서 구현해내는 것이었다.

 

   나도 재아와 비슷하게 질문했던 게 아닐까? A와 만난 지 12년이 되어간다. A는 내 친구 중 가장 착하고 이타적이다. 우리는 주로 동창 B와 셋이 함께 만나는데, 의견이 충돌할 때면 A는 삐진 척 장난치면서도 선의의 마음으로 양보하곤 한다. 나는 평소에 상대에게 맞추느라 대인관계에서 쉽게 지치곤 하지만, A와 있을 땐 마음이 편해져 먹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말한다. 그런데도 A가 나를 모른다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

 

 

A와 B와 나

 

 

 

 

 

 

맥락을 살펴보기

 

   공자의 말에 따르면 나의 딜레마는 말과 행동 사이에서 생기는 거리로부터 나온다. 행동한 것을 말로 다 하지 못하면 말은 부족한 것이 되고, 말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말은 과한 것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말과 행동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聽其言而觀其行”
“그의 말을 듣고 행실을 살펴본다.”

 

   말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그래서 말과 행동 사이가 어느 정도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문장을 어떻게 해석해볼 수 있을까? 한문을 살펴보면 말을 듣는다는 문장(聽其言)과 행동을 살펴본다는 문장(觀其行)이 대구를 이루고 있다. 공자가 들은 뒤에 들은 것을 검증하기 위해 봤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나는 공자가 듣기도 했고 보기도 했다고 해석하고 싶다. 공자가 재아를 만나기 전에 말을 말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면, 재아를 만난 뒤로는 말을 듣는 것과 행실을 보는 것을 함께 했다고 말이다. 행실을 본다는 것은 미처 말로 다 드러나지 않은 것까지도 살피는 것이다. 가령 침묵은 말 그 자체로만 받아들인다면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겠지만, 맥락과 배경을 함께 살펴본다면 어떤 말보다 더 강한 의미를 띌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논어』가 공자의 어록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자의 말이 실린 구절은 『논어』의 45%밖에 안 된다. 또 공자는 질문에 일관되게 대답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말하는 태도를 계속 바꾸기도 했다. 그는 제자들의 스승이기도 했지만 신하이기도 했고 마을의 구성원이기도 했다. 공자는 스승으로서 제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 맞는 말을 해주었고, 신하로서 듣는 사람이 오해하지 않게 또렷하고 분명하게 말했으며, 마을 일원으로서 공손하게 말을 잘 못하는 것처럼 굴었다. 이익을 따져가며 때에 따라 말을 바꾸었다기보단, 처한 상황 안에서 성실하게 말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A의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는 내 말이 전달되지 않는다며 막막해했던 건, 역설적이게도 말을 정말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공자에 따르면 단어와 문장에 함몰된 듣기는 제대로 된 듣기가 아니다. 어쩌면 문제는 다 전해질 수 없는 말의 한계가 아니라, 그 한계에 갇혀 말의 맥락을 살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행실’까지 고려해 A의 말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말은 일종의 신호가 된다. 내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알고 싶다는 신호.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각자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을, 서로 다른 감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알지만 그 감각의 차이를 조금은 좁혀보고 싶다는 신호. 이런 경우에 A의 모른다는 말은 무책임한 거리 두기라기보단 애정 어린 관심에 가까울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애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

 

   얼마 전 세미나의 에세이 발표회에 A를 초대했다. A는 자기소개를 하며 말했다. “그동안 고은이가 뭘 하고 사는지 말을 안 해줘서 몰랐는데… 이렇게 와서 보니 좋네요.” 깜짝 놀랐다. A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동안, A는 내가 뭘 하고 사는지 말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봐도 “넌 안 들어주잖아”라는 불평과 “넌 안 말해주잖아”라는 불평은 대개 같은 순간에 서로를 향해 말해진다. (서로 두 가지 불평을 동시에 말하는 경우도 많다. “넌 들어주지도 않고 말해주지도 않잖아”)

 

 

에세이 발표회에 온 B, A, A의 애인

 

 

   사실 A는 에세이 발표회에서 졸았다고 했다. 전날 공무원시험을 치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부터 멀리서 원정을 왔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에 만났을 때 A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함께 왔던 직업군인 애인과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고 했다. 또 집에 돌아와서는 내 에세이를 몇 번이나 읽었다고도 했다. 물론 이번에도 A는 이해를 잘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이해하지 못한 건 글에 압축적으로 실렸던 구체적인 사례였다. 글에 담긴 나의 바람은 제대로 간파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앞서 인용한 문장은 공자가 재아를 심하게 혼낸 것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공자의 말과 더불어 ‘행간’까지 짐작해보자면, 재아를 그저 나무라고만 싶었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공자는 재아의 말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까지도 생각해보았던 게 아니었을까? 말해지지 않은 것을 세심하게 포착하고 길어 올려 다시 말로 표현하는 일은 보통의 애정을 갖고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누군가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말해지지 않은 부분까지도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당분간 듣기 능력이나 말하기 능력 혹은 언어의 한계 같은 것에 집중하던 힘을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볼까 한다. “저 말은 무슨 맥락 위에서 나온 것일까? 왜 이런 상황에서 저런 말을 했을까?”하고 질문해보고 싶다. 물론 쉽지는 않다. 공부하는 나의 삶은 말을 읽고(독서), 말을 듣고(세미나), 말을 하는(글쓰기) 시간으로 채워져 있다. 말에 둘러 쌓인 곳 한복판에서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거꾸로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실험의 조건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댓글 4
  • 2020-09-21 22:25

    친구 A씨와의 찐우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공자님도 상황에 맞춰 조심스레 말씀하시고 들으셨다니 말하기는 원래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 맞나봐요.
    저도 늘 말하고 후회하는 일이 많아서 공감되네요.

  • 2020-09-22 13:45

    ㅅ ㅏ ㄹ5 ㅎ ㅐ

  • 2020-09-22 22:15

    '말'ᆢ 역시 평생의 화두죠 요즘의 저에게도 아주 반갑고도 유익한 글이네요.
    그리고 헤이 유교걸! 넘 멋져요 ~

  • 2020-09-23 16:02

    한편으로 말로 하지 읺으면 상대가 모를 수 있다. 그래서 계속 빗겨나더라도 말해야 하지 않을까... 공자는 정명, 말로써 세상을 바꾸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맥락과 상황 파악은 말하기의 또다른 노~오력 아닐까??

글쓰기
지원 2020.10.12 조회 182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얽거나 짜서 만드는 방법   “개인들을 이런저런 속성이 부착되는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는 원자론적 인간관은 개인적 정체성들과 여러 능력들 그 자체가 여러 가지 점에서 사회적 과정들과 관계들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 『차이의 정치와 정의』     목공 반장님이 타카 핀을 갈아 끼우다가 집어던지면서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이 형, 그렇게 성격대로 할 거면 여기 왜 왔어! 그럴 거면 직접 일 받아 해!”   ‘이 형’이라는 분도 성격이 만만찮다. “어 알았다 그래!” 하고선 작업벨트를 풀어놓고 현장에서 ‘휙’하고 나가버린다.   당황한 내가 이 형을 따라 나가려는데 반장님이 나한테도 버럭 한다. “김 실장! 내버려 둬. 내가 혼자 끝내면 되니까 가는 사람 잡지 마!” 고래 싸움에 기가 눌린 새우 실장은 현장을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음에도 혹여 등이 터질까 잠자코 반장님 말을 듣는다.   버럭 반장님   지난 3년 동안 함께 일하던 목공 반장님이 최근 많이 바빠져서 이번 현장을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나는 주변 작업자 분들에게 수소문해 새로운 목공 반장님을 소개받았다. 최근에서야 함께 일을 하게 된 이 ‘버럭 반장님’은 보기 드문 목수다. 한옥으로 시작해 가구공장에서도 오랜 기간 일했고, 목공으로 할 수 있는 갖은 일들은 두루 해본 분이다....
고은 2020.09.21 조회 203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도 살펴보기                   말은 잘해도 못해도 문제      내 친구 중 나와 가장 이질적인 감각을 가진 이는 중학교 동창 A다. A를 만나면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다. 우리는 구겨진 병뚜껑을 가지고도 10분을 웃는다. 물론 웃음기 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종종 A에게 벽을 느꼈다. 그는 내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을 준비하고, 값이 나가는 작고 귀여운 가방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질척거리는 공동체 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거나, 사회문제에 감정이입 할 때면 A는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속초 영랑정에서 거센 바람을 맞고 있는 나와 A        한편으로 내 말이 A에게 전달되지 않는 건 내가 말을 잘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문제 같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던 때였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 다를수록 나의 말은 상대를 빗겨 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다 말을 잘한 날이면 나는 종종 집에서 샤워를 하며 후회했다. 정말 내가 그걸 다 알고 있는 걸까? 진짜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겉치레뿐이지 않았나? 말에 인플레이션이 생긴 것 같았다.    ...
지원 2020.09.15 조회 215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괴담이 가득한 세상에서     목공소 괴담   목공소에 취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급한 주문이 있어 밤늦게까지 목공소에 남아있던 날. 목수님은 먼저 퇴근하셨고, 나도 퇴근을 위해 정리를 하던 중이었다. 동네는 조용했고, 방금 전까지 들리던 테이블 톱의 소음이 사라진 탓에 목공소는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기계들과 쌓여있는 나무들이 왠지 으스스하게 느껴지던 순간, 갑자기 목공소 한쪽에서 엄청나게 큰 굉음이 들려왔다.   “꽝!”   “으악!” 난 손에 들고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내팽겨 치고 일단 목공소 밖으로 뛰쳐나갔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무슨 소리지…?’ 숨을 고르고 마음을 진정시킨 뒤 천천히 문을 열고 목공소에 들어섰다. 목공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불을 켜고 소리가 난 장소로 조심스레 걸어가며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목공소에 온 손님들을 맞고 상담하기 위해 만들었던 테이블이 두 갈래로 쩍 하고 갈라져 있었다.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불을 끄고 도망치듯 목공소를 나갔다. 목공소 괴담의 탄생 순간이다.   변화를 거듭한다   다음 날 목수님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갈라진 나무 사이에 본드를 넣고 클램프로 양쪽을 걸어 당겨 고정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거실에 만들어놓은 테이블이 굉음을 내며 갈라졌다는.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에서 나무는 계절, 특히 습도의 영향을...
고은 2020.08.17 조회 337
    *[걸 헤이 유교걸]은 길드다 김고은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한때 유교를 사회악이라고 생각했던 20대 청년이 <논어>를 읽으며 유교걸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습니다.       미련하고 성실하게 질문하기                     불안정한 하루하루      새 향수를 샀다. 플라워 계열 중에서도 부담스럽지 않기로 유명한 향수였다. 얼핏 이모 화장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낯선 향이기만 하면 괜찮았다. 향수를 즐겨 뿌리고 다녔던 적이 없었기에 신경을 좀 썼다. 옷장을 열면 잘 보이는 곳에 향수를 뒀다. 작은 향수 공병을 사서 늘 가지고 다니는 파우치에 넣어두었다. 다음날 입을 옷을 생각해 두었을 땐 미리 옷에다 향수를 뿌려놓고 잠들기도 했다.      리프레쉬가 필요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몇 달째 기승을 부리면서 일에 차질이 생겼다. 기대했던 공부도, 오래 준비했던 활동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길드다에 멤버변동까지 생겼다. 나는 상황을 정리하고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해 친구들을 살폈다. 한 명 한 명 찾아가 생각을 물었고, 다 같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말을 아끼고 듣는 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친구들의 어떤 말은 이해할 수 없었고, 어떤 행동엔 약간 불쾌함도 느꼈다. 모든 상황이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것 같아 갑갑했다.     얼마 간 리프레시를 선물해준 어메이징 그레이스에게 감사를        향수 뿌리기 규칙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향이 조금씩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탑노트의...
지원 2020.08.10 조회 339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 김지원의 북&톡 연재글입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매달 한 편의 글을 연재합니다.     프롤로그 : 저는 만드는 사람입니다     아니고…아니고….   나는 보통 다음 두 문장 중 하나로 나를 소개한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수입니다.”   “가구를 만들며, 인문학을 공부합니다.”   이 문장들에 대해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아, 목공으로 밥벌이를 하고, [조금 진지한] 취미로 인문학 공부를 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한편으로 이 두 가지 활동이 하나는 몸을 쓰는 일, 다른 하나는 머리를 쓰는 일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 많은 사람들에게 일과 여가가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나에겐 그렇지가 않다. 우선 나는 함께 인문학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길드다’라는 인문학 스타트업을 만들어, 적은 돈이긴 해도 본격적으로 인문학 세미나와 강의를 진행하며 돈을 번다. 그것을 준비하는 시간은 가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고되고 지난하다. 심지어 어떤 때에는 수업이나 글쓰기 준비를 위해 주문 건을 줄이거나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목공도 때때로 그 즐거움에 비춰볼 때 밥벌이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인문학 공부가 밥벌이이고 목공이 취미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처럼 상식적인 궁금증들에 나는 조금 소심한 목소리로 “그건 아니고….”라고 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전공자도 아니고, 목수가 직업인 것만도 아니고, 공부가 취미도 아니고, 아니고…아니고…. “그럼 집에 돈이 많은 거야?”…그건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