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 블루스> (5회) - 다시 한 번, 예스? Yes!!

문탁
2020-08-3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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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니체, 「구제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엄마가 이..상..해

 

413: 벌써 1년이 되었구나

  1년 전 오늘, 엄마가 아파트 안에서 쓰러졌다. 지난한 '간병블루스'가 시작되었다.

 

415: 왜 이를 갈지?

   간만에 형제 단톡방에 엄마 소식을 전했다.

   하나. 엄마가 몇 주 전부터 이를 조금씩 가셨는데 점점 심하게 가셔. 나의 치과주치의와 의논을 해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네. 치매를 의심하는 듯. ㅠ

   둘. 지난 번에 허리 통증 주사를 맞았는데도 여전히 아프신가봐.. 점점 더 “힘들다, 힘들다” 소리가 늘어나네...

   셋. 소화를 잘 못 시키심. 아무래도 운동량은 없는 상태에서 약은 계속 드시니까... 일단 일체의 간식을 중단. 그랬더니 변비가...ㅠㅠ

   넷. 그동안은 기저귀사용이 좀 줄었는데 요 며칠 기저귀 사용이 다시 늘고 있어. 다시 말해 변기에 앉기 전에 이미 대소변을 보신다는 거지. 왜 그럴까? 인지문제일까? 기능문제일까?

 

423: “이 가는 건 치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입니다

   <00치과> 원장과 전화 상담을 했다. 의사에 따르면 이를 가는 것은 치의학적 원인이 아니라 심리적 문제라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란다. 치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갈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끼우는 것인데, 그것은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장치를 낀 상태에서도 이를 간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쪽에서 상담을 해보는 게 좋겠다고 권한다. 다른 솔루션이 나올 수도 있다면서.

 

429: 엄마 표정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

   작년 9월 엄마가 퇴원한 후에도 일주일에 한, 두 번씩 꼬박꼬박 엄마를 찾아오는 건 막내뿐이다. 올 때마다 엄마가 좋아할 것들을 잔뜩 사들고. 그 막내가 요즘 낙담한다. 몇 주 전부터 엄마가 자기와 말도 안 하고 표정도 없어진 것 같다고 하면서....

 

510: 찰흙놀이! 엄마는 해당사항 없음

   어버이날 가족모임. 나는 엄마의 뇌를 자극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져오거나 그런 선물을 사오라고 했다. 손녀딸이 찰흙을 사왔다. 오우, 굿 아이디어! 버뜨 그날 그 찰흙으로 신나게 논 것은 엄마가 아니라 손녀딸들이었다. 엄마는 찰흙을 몇 번 꼼지락 거리다가 던져버리고 다 시끄럽다며 침대에 가서 누워버리셨다.

 

 

 

 

 

 

 

518: 치매 같은데요?

   오늘은 미금의 모 정신과에 인지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다. 원래는 분당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에서 받아야 하는 건데 워낙 대기가 길다보니 의사가 협력병원에서 인지검사를 받아 오라고 오더를 내렸다. 원래 일정은 3월2일. 신천지발 코로나로 인해 진료를 계속 연기해왔다. 결국 예정된 날짜를 두 달이나 넘겼고 이 두 달 사이에 엄마의 인지능력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초행길이고 휠체어까지 싣고 가야 해서 아침부터 마음도 몸도 분주하다. 차 트렁크의 잡다한 짐들도 미리 다 빼놓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병원 위치도 파악했다. 늦을까봐 일찌감치 집을 나선다. 간병인 아주머니와 함께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이동. 스스로의 힘으로 차에 올라타지 못하는 어머니를 ‘간신히’ 차에 태우고 휠체어도 트렁크에 싣고 다행히 늦지 않게 분당프라자에 도착. 휠체어를 트렁크에서 꺼내고 다시 어머니를 ‘간신히’ 차에서 내려 휠체어에 태워 5층까지 무사히 갔는데...치과도 있고 안과도 있고 신경과도 있는데 정신과가 없다. 뭐지? 다시 주소를 확인하니 분당프라자가 아니라 미금프라자 5층이네. 아~ 난 구제불능이다! 

   다시 1층으로 내려와 ‘간신히’, ‘죽을힘을 다해’, ‘등줄기에 땀이 쭉 나도록’, ‘젖 먹던 힘을 짜내’를 4번 한 끝에 겨우 미금프라자 5층 정신과에 도착했다.

   이후 두 시간 동안, 세 명(검사요원 – 간호사 – 의사)이 똑같은 거 묻고 또 묻고 또 묻고...

   "20에서 3을 빼면 뭐죠?"

   "50원은 10원짜리 몇 개죠?"

   "지금 몇 시쯤 된 거 같아요?"  ....

   인지능력도 바닥을 치고 귀도 안 들리는 어머니.

    "몰라",  "안 들려",  "나 안 해"

   짜증 섞인 목소리, 역정 내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다.

   겨우 검사가 끝나고 잠시 의사와 면담. 의사는 이 정도면 100% 치매란다. 물론 더 분석해봐야 하지만 오늘 결과를 쑥~ 훑어만 봐도 그렇단다. 어머니를 담당하는 서울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알츠하이머는 절대 아니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전하니 고개를 갸우뚱 한다.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어머니를 차에 싣고 휠체어도 트렁크에 싣고 돌아오는 차 안, 어머니는 절인 배추처럼 꾸겨져 앉아계신다. 어머니도  못할 노릇이고 나도 못할 노릇이다. ㅠㅠ

 

 

623일 이 모든 것은 수두증 때문입니다

   정신의학과 진료 날이다. 이 역시 코로나 때문에 3개월이나 미루어졌다. 의사에게 요 몇 달 어머니의 증세에 대해 설명했다.

   “이를 간다. 인지능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외부 자극에 별 반응을 안 한다. 표정도 사라지고 있다. 숟가락질도 안(못) 한다. 이제 대, 소변도 못 가리신다. 잠을 점점 많이 주무신다, 몸을 점점 더 못 가누더니 누워서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시고 발 한짝을 떼지 못하고 이제 아예 옴짝달싹 못하신다....블라블라....”

   의사의 진단은 명쾌했다. 이 모든 것은 수두증 때문이란다. 인지검사결과를 보니 인지능력이 1년 만에 19점에서 6점으로 떨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알츠하이머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알츠하이머 확진판정을 받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지점수가 일 년 사이에 이런 식으로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반면에 2019년 2월에 찍은 뇌 MRI와 올 초 찍은 뇌 CT를 비교하면 뇌의 물은 훨씬 더 많이 찼다고 한다. 이 상태에서 이를 가는 문제, 인지 문제 등을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면서 현재 가장 좋은 방법은 션트수술을 통해 뇌의 물을 빼는 거라고 하신다. 일단 척수배액검사를 해보고 효과가 있으면 무조건 수술을 하잔다. 그런데 척수배액검사에서 효과를 못 볼 수도 있다고. 그건 이미 역치를 넘어간 것이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인다.

   작년에 척추골절 때도 수술하지 않고 버텼는데 이 고령에 전신마취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의사는 전신마취의 마이너스보다 뇌의 물을 빼서 보행 가능한 수준의 삶이 되는 게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훨씬 더 플러스가 될 거라고 이야기한다. 일단 신경외과 검사는 받아보기로 했다.

 

 

78부작용이 20%입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에 7월 2일 입원해서 척수배액검사를 하고 7월 4일 퇴원한 후 오늘 다시 담당교수를 외래로 만났다.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질의하기 위해 나는 질문지를 만들고 동생들에게 검사를 받고 다시 질문지를 수정했다. 그리고 의사 앞에서 한껏 몸을 낮추고 힘껏 수줍은 목소리를 내면서 “선생님.... 혹시 빠뜨리고 못 여쭤 보는 게 있을까봐 제가 뭘 좀......적어왔는데 혹....시.... 이거 꺼내보면서 질문.....해도....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이어진 즉문즉답!

 

 

 

 

 

  첫째, 수술을 해야 하나요? - 뇌실이 1년 사이에 26.3 ⇒ 38.9로 커졌고, 척수배액검사 결과가 좋기 때문에 수술하기 권한다.

  둘째, 수술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나요? - 뇌에 구멍을 뚫어 관을 삽입하여 복강으로 연결한다. 수술 시간은 두세 시간 정도이다.

  셋째, 수술 부작용은 무엇일까요? - 6개월 이내 20% 정도의 부작용이 생긴다. 션트관이 감염되거나 막히는 경우다. 그럴 경우 재수술해야 한다. 특히 감염일 경우 다시 전신마취를 하고 션트관을 제거한 후 4주에서 6주가량 입원해서 항생제 치료를 해야 한다. 그 이후 다시 션트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또 해야 한다. 두 번째 수술의 경우 감염 등 부작용 확률은 더 증가한다.

  넷째, 수술 이후 어느 정도 회복되는 것인가요? - 그 누구도 단정적으로 말 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부축을 받고 화장실 출입을 하는, 그 정도까지 기대한다.

  다섯째, 수술 이외의 방법은 없나요? -없다.

  여섯째, 수술 안 하면 어떻게 되나요? - 전형적인 치매로 진행될 것이고 어느 임계치를 넘으면 그 어떤 치료에도 반응 안하게 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생각났다. 흉부외과 교수 김준완은 대표 싸가지이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팩트폭격을 서슴지 않는다. 보다 못한 레지던트가 간곡히 건의한다. 제발 환자와 가족에게 좀 더 친절하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면 안되냐고. 이 의사 정색을 하며 ‘NO’라도 대답한다. 한 술 더 떠서 그 레지던트에게 앞으로 환자들에게 절대! “간단한 수술이다”, “성공한다”, “살 수 있다” 따위의 말을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 그 의사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겉빠속촉’처럼 겉으로는 싸가지였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라는 반전이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겪어보니 아니다. 정보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가능한 보수적으로 전달하는 의사는, 보호자 입장에서는 진짜 별,로,다.

 

 

2. 진단과 판단사이

 

   아, 그랬구나. 엄마가 수두증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 외에도 엄마는 고혈압, 고지혈증, 우울증, 갑상선 기능저하 등을 앓고 있다. 게다가 1,2번 요추골절이라는 치명상까지 입은 상태이다. 그러니 최근의 엄마 증세가 척추골절에 따른 구조적 후유증인지, 자연 노화와 관련된 것인지, 진짜 치매가 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의 복합적 발현인지 정확히 판단하긴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를 가는 것과 관련해서는 껌을 사다 드리고, 뇌를 자극하기 위해 뽁뽁이를 안겨 드리고, 간병인이 쓰는 일지에 활동과 운동 항목을 추가하여 관찰을 강화하고, 재활치료사 방문치료를 추진하고, 어머니 삼시세끼에 온 정성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어머니의 퇴행을 늦춰보려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수두증 때문이었구나. 조금씩 조금씩 흡수가 덜 되던 물이 어느  순간 역치를 넘어가면서 이 모든 증세를 한꺼번에 드러낸 거였구나.

   이제 어머니 증세의 인과관계는 완벽히 파악되었다. 그런데 진단(수두증)이 명료해지고 표준적 치료(션트수술)에 대해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그 치료방법을 선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다른 차원에 속한다. 그건 진단이 아니라 판단의 영역이다. 엄마 뇌, 수술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우선 인터넷을 뒤졌고 <뇌질환 환자모임>같은 카페도 찾아내서 샅샅이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션트수술 효과를 보았다고 하고, 어떤 경우는 부작용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케이스바이케이스. 이건 판단에 도움이 안 된다. 주변 지인을 통해 다른 신경외과 의사들의 자문을 받아보았다. 신경외과 의사들의 견해는 비슷했다. 어머니의 증세는 전형적인 ‘정상압 수두증(normal pressure hydrocephalus)’이고 이 경우 대체로 적극 치료를 실시하며, 운이 좋다면 수술 이후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일 매일 형제들 단톡방에 불이 났다. 의학논문까지 뒤지던 막내는 다른 병원에 또 가보자고 조른다. 남동생은 수술 쪽으로 살짝 기울어져 있고 반면에 올케는 수술 하지 않는 쪽으로 맘이 가 있다. 이 부부는 저녁마다 투닥거리는 모양이다.

   문탁 친구들과도 의논을 했다. 우응순샘의 첫 반응은 “너, 어머니 불로장생을 바라냐?”였다. 그런 게 아니라면 연로한 어머니에게 수술 시킬 필요가 없다는 뜻이렷다. 행간마다 “너, 도대체 그동안 공부 왜 했니?”, “너, 일리치 강의하러 다니는 애 맞니?”라고 일갈하는 게 읽혔다. 인문약방팀과도 의논했다. 둥글레도 수술 반대. 너무 연로하시고 20% 확률의 부작용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엄마의 재활치료사도 수술 반대. 오랫동안 뇌수술환자 재활병원에 근무하면서 수술 자체가 스트레스로 작용한 많은 임상 케이스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모두의 의견이 나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듣는다고 더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오리무중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판단은 무엇을 기준으로 내려야 하는 것일까? 만약 엄마라면 어땠을까? 지금은 엄마가 자신의 삶에 '주권'을 잃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엄마는 수술을 감행하셨을까? 아니면 수두증적 치매도 생로병사의 자연적 과정으로 생각하고 수술을 거부하실까? 역시 잘 모르겠다. 딸내미는 “엄마라면 수술 안 하겠지만 할머니라면 수술 하지 않으실까?”란다. 그래도 애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명해지는 게 있다. 판단의 준거는 의학적 정보나 임상적 데이터 따위가 아니고, “병원이 병을 만든다” 등의 일반적 담론도 아니고, “엄마라면...” 같은 쓸데없는 추측도 아니라는 것을. 결국은 내가, 내가 뭘 원하는가? 이다. 나는 뭘 원하는 것일까?

 

 

3. 그래, 수술하자!

 

710: , 얘들아, 엄마 진짜 이상해

   엄마의 아침 기상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평균 10시 반. 최근 들어서는 11시를 넘기고 있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겨우 겨우 깨워서 휠체어에 태워드리기 전 기저귀를 갈아드리려고 했다. 보통 침대를 지탱해 잠시 서 계시면 그 사이에 재빨리 기저귀를 가는데 오늘은 마치 오징어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신다. 아이고, 엄마, 왜 이래? 간병인과 함께 간신히 엄마를 일으켜 세웠더니 이번엔 휴지처럼 몸이 흐느적거리면서 아래로 무너진다. 둘이서도 엄마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겠다. 마침 엄마를 보러 온 외삼촌이 엄마를 번쩍 들어 휠체어에 간신히 태웠다. 그랬는데 휠체어에서도 허리를 곧추 세우지 못하고 몸이 점점 한쪽으로 넘어간다. 몸과 함께 목도 가누질 못하고 같은 방향으로 넘어간다. 어, 이거 뭐지? 응급실에 가야 하나?

   조금 후 엄마는 안정이 되었지만 내 마음은 계속 쿵쾅쿵쾅 요동친다. 아, 수두증으로 이런 증세가 발현될 수도 있구나. 앞으로는 이렇게 가슴 철렁한 일들을 자주 겪을 수도 있겠구나. 점점 많이 주무시다가 어느 순간 혼수가 와서 바로 돌아가시기도 한다더니 정말 그런 일이 생길수도 있겠구나....

 

715: 연건동 서울대 병원

   남동생 불알친구가 서울대 병원 의사다. 엄마한테는 아들과 다름없다. 대학생 때인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밥을 먹다가 생선가시가 목에 걸렸는데 맨밥 한 수저를 꿀꺽 삼키라는 엄마 말에 혼비백산하여 이비인후과로 달려간 녀석이다. 그런데 이 녀석이 자기 어머니 수두증 션트수술을 한, 같은 병원 의사를 우리한테 강추했다.

   연건동 서울대 병원. 집에서 한 시간 반이 걸린다. 엄마는 차 안에서 거의 몸부림을 치고 나는 내내 우향우 자세로 엄마를 케어 하면서 (그래서 허리가 나간다. ㅠ) 겨우 병원에 도착했는데 오, 마이, 갓, 이곳은 휠체어가 부족하단다. 전화번호를 적고 휠체어 순서가 올 때까지 정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겨우 휠체어 하나를 차지해 병원 안으로 들어가 수속을 하고 영상을 등록하는데 오매, 얼마나 느린지 한 시간이 지나도 끝나질 않는다. 게다가 진료 지연이 90분이라고 전광판에 뜬다. 아, 죽을 맛이다.

   병원 도착 후 두 시간 가까이 지나 겨우 겨우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번과 진단도 같고 션트 수술이라는 처방도 같다. 그런데 이 분야 베테랑이라는 내 또래의 이 의사, 너무 심플하다. 수술은 당연하고(“고혈압이면 약 먹잖아요?”), 간단하고(“실제 관 끼우는 데는 5분도 안 걸려요”), 부작용은 문제될 게 없단다.(“아, 1% 정도인데 그것도 얼마든지 관리 가능해요”)

  뭐가 이렇게 쉬워? 남동생은 수술 쪽으로 맘을 굳혔다. 일단 여기서도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마도 나도 뻗었다.

 

87: ........

   지루한 장마가 계속 되고 있다. 집안의 습도는 78%를 육박한다. 마치 하루 종일 습식 사우나에 와 앉아 있는 것 같다. 움직임이 적은 엄마를 위해 오래된 제습기를 창고에서 꺼내서 틀어놓았다. 난 제습기라는 걸 처음 사용해봤는데 시끄럽기가 이를 데 없고 게다가 더운 바람이 나온다. 문탁 친구 하나가 이 이야기를 듣더니 누가 방 안에서 제습기를 사용하냐고, 그런 건 교회 지하실에서 밤에나 틀어놓는 거란다. 차라리 하루 30분씩 보일러를 켜라고 조언했다. 엄마 방이 조금은 뽀송해진 것 같다.

 

 

 

 

   남동생에 이어 막내 동생도 수술 쪽으로 맘을 굳혔다. 나는? 매일매일 엄마를 보는 나는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엄마-흐림’ 날은 수술 쪽으로 ‘엄마-맑음’ 날은 수술 안하는 쪽으로 마음이 오락가락 한다. 그런데 최근 핸드폰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작년 11월만 하더라도 엄마는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올 5월만 하더라도 엄마는 스스로 숟가락질 하고 계셨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 급속도로 갑자기 나빠진 게 확실하구나!

   그리고 오늘, 요즘 들어 하루 대부분을 멍하니 계신 엄마가 삐뚤빼뚤 써 놓은 낙서를 발견했다.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절자’라는 이모의 이름을, ‘속상해’라는 엄마의 심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에 쓰여진 “많이 사랑해요, 큰 딸에게, 혜담이가”라는 글씨!

 

 

 

 

   울컥! 그건 혹시 정신줄을 거의 놓아가는 엄마가 나를 향해 보내는 마지막 메세지가 아닐까?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나는, 아직, 엄마를 이렇게 떠나보낼 어떤 준비도 되어 있지 않구나. 그래, 수술 해보자!

 

 

4. 수술 블루스, 난리 블루스

 

 

817: 입원이 전투

   경기도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다. 서울은 아직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건동 서울대 병원 입구는 마치 전시통제구역 같았다. 어떤 경우에도 보호자 1인만 통과된단다. 수술 동의서 서명을 위해 반드시 직계가족 두 명이 와 있으라고 했다고 말해도 정문 경비는 요지부동이다. 난 커다란 가방을 메고 이미 지쳐서 늘어져있는 엄마를 휠체어에 싣고 혼자 병원으로 들어가 수속을 했다. 동생 내외는 입원 물품이 담긴 캐리어를 들고 병원 밖에서 동동거리고 있다가 겨우 원무과와 간호사실의 허락을 받고 병원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입원 후 엄마는 머리를 빡빡 밀었고 우리는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머리, 목 뒤, 배 이렇게 세 곳을 절제할 것이고 (이건 뭔 소리?), 배 수술을 한 전력이 있으면 유착에 따른 수술시 감염 위험도가 있어 그냥 닫을 수도 있고 (이건 또 뭔 소리?), 부작용은 보통 1달 이내에 3~5% 정도 나타난단다. (의사 세 명이 누구는 20%, 누구는 1%, 누구는 3~5%란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818: 코로나 시대 수술 풍경

   엄마의 수술 순서는 세 번째, 오후 두, 세시쯤이 될 거란다. 그런데 보호자 대기실은 코로나로 폐쇄되었고 모든 수술환자 가족은 병실에서 대기해야 한단다. 하지만 병실엔 보호자 한 명밖에 있을 수 없다. 엄마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는데도 동생들은 병원에 와 있겠다고 한다. 다행히 가족 상봉은 수술이 끝난 직후 잠시나마 이루어졌다. CT를 찍기 위해 영상의학과에 내려와 대기하고 있는 엄마 곁으로, 동생들은 마스크를 쓴 채, 교대로 가서, 엄마 얼굴 정도를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 엄마에게 얼굴을 보여주고, 우리 왔다고, 엄마 고생했다고 말을 건네고 싶어도, 우린, 절대,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 이게 코로나 시대 병원의 뉴노말이다.

 

 

818~ 819: 이러다가 진상 환자, 진상 보호자 되겠다

저녁 5시 : 간호사가 주의할 점을 알려준다. 수술 직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가 배뇨라면서 밤 12시까지 자가 배뇨를 못하면 다시 폴리를 끼고 소변을 빼야 한단다.

저녁 5시 반 : 교수가 회진을 왔다. 수술 자체는 잘 되었단다. 보통 8정도가 노멀한 뇌압이지만 엄마의 경우 뇌압이 15로 너무 높은 상태였다고, 하지만 급격히 낮추면 물이 다시 찬다거나 출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일단 10으로 맞춰놓았단다. 며칠 후 다시 CT를 찍고 필요하면 그 때 뇌압을 다시 조정한단다.

저녁 6시 : 기저귀를 살펴보니 기저귀가 젖었다. 다행이다. 소변 보셨구나.

저녁 8시 : 잠깐 사이에 엄마가 머리 붕대를 홀라당 벗겼다.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깜짝 놀라면서 감염위험이 있으니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한다..

저녁 9시 : 간호사가 붕대를 다시 감았는데 엄마는 자꾸 머리 붕대를 벗기려고 한다.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결국 엄마 손을 침대에 묶었다. 인턴이 와서 손을 묶는 것에 대한 보호자 동의서를 받아갔다.

저녁 10시 : 한 시간째 소리를 지르고 몸부림을 치면서 괴로워하신다. 아픈가? 섬망인가? 손을 묶어서 갑갑해서 그런가? 진통제는 밤 12시나 되어야 한 번 더 준다고 했는데... 이런 저런 말로 엄마를 달래보지만 소용이 없다.

저녁 10시 반 : 아무래도 이상하다. 수술 당일,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는 걸 방치하면 몸에, 특히 뇌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 혹시 소변이 마려운데 소변이 안 나와서 그런 건가? 그런데 아까 간호사는 잔뇨검사 결과 그건 아니라고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둘 수는 없다. 다시 간호사실에 가서 한번 더 봐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다시 잔뇨검사. 앗, 오줌보가 꽉 찼단다. 폴리 끼고 무려 650cc의 소변을 뺐다.

새벽 2시 : 탈진한 탓인지 코까지 골면서 주무신다.

새벽 5시 : 손을 묶어 놨는데 나도 잠시 깜빡한 사이에 또 머리의 붕대를 벗겨 놓으셨다. 그런데 교대한 이번 간호사, 이건 자기 업무가 아니라고 주치의 올 때까지 기다리란다.

새벽 6시 : 복부 CT를 찍으러 가야 한단다. 그래야 금식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고. 나는 머리 붕대 다시 묶어 주지 않으면 CT 찍으러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간호사는 무조건 CT를 찍어야 한다고 우긴다. 나는 머리 드레싱 다시 하고 붕대 다시 묶어 주지 않으면 절대 병실 밖을 안 나가겠다고 계속 버틴다. 아, 이렇게 진상 환자, 진상 보호자 되는 거구나.

 

 

820: 오매, 이거 무슨 성경에 나오는 일어나라같아

   수술 수 48시간 경과

   오매, 엄마가 오줌 마렵다고 말하고 변기에서 소변을 보시네! 오매, 엄마가 숟가락질을 하시네! 오매, 엄마가 혼자서 침대에 앉아서 양말을 신으시네! 오매, 엄마가 아이스크림 두 개 중 하나를 픽하네! 오매, 엄마가 손주랑 영상통화를 하네! 오매, 엄마와 긴 대화가 가능하네!  이 정도면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해서 앉은뱅이가 일어났다는 것과 다름 없는 거 아냐? 정말 감격스러웠다.

  와, 인간의 뇌란, 정말 대단하구나!! 잠시 뇌과학을 공부해볼까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빠르게 패스! <마이너리티리포트>, <메멘토>, <인셉션>, <레인맨> 등이나 다시 보는 걸루.

 

 

 

 

 

825: 난리가 따로 없구나

   정부는 8월23일부터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인턴, 레지던트들은 8월21일부터 단계적 파업에 돌입했고 8월26일부터는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한단다. 이미 ‘주치의’ 개념은 무너졌다. 병동 담당, 그것도 두 개 이상의 병동을 혼자서 커버하는 레지던트 한 명이 있을 뿐이다. 당연히 환자 한 명 한 명의 상태는 모른다. 그래도 수술 부위 드레싱이라도 해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826: 단 한 명의 의사도 볼 수 없다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의사를 한 명도 못 봤다. 전문의들은 사복을 입고 1인 시위를 한다. 교수는 재활이 무지하게 중요하다고, 수술 직후 재활치료의 성과에 따라 보행가능정도가 달라진다고 하면서 재활과로 전과를 신청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병동에서는 레지던트도 간호사들도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다시 간호사실에 직접 전과를 요청했다. 저녁 늦게 재활의학과 레지던트가 다녀갔다. 전공의 파업 때문에 환자를 새로 받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827: , 그냥 집으로 가자

   다시 선택의 시간. 하나는 재활병원으로 일단 갔다가 집으로 퇴원하는 방법. 다른 하나는 바로 집으로 퇴원하는 방법이다.

  재활만 생각하면 전문병원에 가는 게 좋다. 아무리 수술이 잘 되었어도 보행여부는 재활에 달렸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재활의지가 없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일상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집으로 퇴원해야 하나? 일상이 가능하고 그에 따라 엄마의 멘탈도 빠르게 안정되겠지만 수술한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이것 역시 판단하기 쉽지 않다.

   병동 담당 레지던트는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한다. 빨리 내보내고 싶은 모양이다. 재활병원을 가겠다고 한다면 주치의가 소견서를 쓰고, 병원진료협력팀이 보호자와 의논 후 원하는 지역의 재활병원에 그 소견서를 보내고, 그러면 그곳에서 소견서를 보고 입원가능여부를 판단한 후 보호자에게 연락을 준다고 한다. 일단 그러겠다고 했다.

   몇 시간 후 보바스 병원, 린 병원, 러스크 병원 등에서 연속으로 전화를 받았다. 평균 30분 이상씩 통화. 하지만 결정은 의외로 쉽게 내려졌다. 어떤 재활병원도 보호자 면회가 절대 금지였기 때문이다. 엄마를 낯선 간병인에만 맡겨서 재활병원에 보낼 수는 없다. 어떤 경우라도 그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차라리 재활을 포기하자. 집으로 가자. 

 

 

5. 네버엔딩 스토리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바뀌었다. 인간의 몸과 정신이 이렇게까지 가역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엄마는 다시 벌컥 화를 내고, 자주 짜증을 부린다. 간호사가 혈압을 재려고 해도 내가 보청기를 끼워 드리려고 해도 운동치료를 가자고 해도 난리를 치신다. 간호사도 간병인도 나도 엄마가 무서워 전부 전전긍긍이다.

   집에 와서도 이 상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집에 왔는데도 자꾸 집에 가자고 딴 소리를 하고 여기가 집이라고 하면 눈을 부라리시면서 막 어쩔 줄을 몰라 하신다. 심지어 어제 밤에는 30분 동안 나에게 쌍욕을 해대시고 “아빠를 잡아 먹은 년”이라는 둥, “엄마도 잡아 먹을 년”이라는 둥, 그런 애먼 소리를 하시면서 나를 흔들고 때리고 꼬집으셨다(갑자기 힘도 엄청 쎄지셨다). 중간 중간 머리를 감싸 안으면서 몸부림도 치셨다(응급실 가야 하는 걸까? 근데 응급실에 의사가 있나?). 남동생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겨우 겨우 엄마를 진정시켰다.

 

 

 

 

   왜 그럴까? 섬망일까? 아니면 인지가 회복되면서 우울증도 활성화된 것일까? 아니면 뇌의 다른 버그가 생긴 걸까?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수술 후유증인가? 잘 모르겠다.

   어쨌든 퇴원 삼일째, 나는 이미 피로도가 극에 달했고 정신도 다시 너덜너덜해졌다. 엄마랑 산 지 5년. 4년은 감정노동으로 시달렸고 1년은 육체노동으로 힘들었는데 이제 감정노동에 육체노동까지 한꺼번에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에 우울해진다.

 

  다시 니체를 떠올린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최고의 긍정 형식”인 ‘영원회귀’ 같은 개념을 생각해냈을까? 실바플라나 호숫가, 거대한 바위 곁에서 우연히?

 

    “깊은 고독 속으로 살며시 찾아들어 이렇게 말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 “네가 지금 살고 있고,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살아야만 하고, 또 무수히 반복해서 살아야만 할 것이다 : 거기에 새로운 것이란 없으며,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사상과 탄식, 네 삶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이 같은 차례와 순서로...티끌 중의 티끌인 너도 모래 시계와 더불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대는 땅에 몸을 내던지며, 그렇게 말하는 악령에게 이를 갈며 저주를 퍼붓지않겠는가?....“너는 이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해서 다시 살기를 운하는가?”라는 질문은 모든 경우에 최대의 중량으로 그대의 행위 위에 얹힐 것이다. 이 최종적이고 영원한 확인과 봉인 외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대 자신과 그대의 삶을 만들어나가야만 하는가?” (니체, 『즐거운 학문』, 341절)

 

   난 이제 알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어떤 반복되는 생도, 늘 되풀이되는 고통도, 다르게 감당하라는 윤리적 요청인 것을!!

   <엄마와 살기 시즌3>  나는 살..아..가..야..겠..다!!  그렇게 할, 또 다른 ‘건강’(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댓글 12
  • 2020-08-31 12:42

    흙흙흙....읽기가 쉽지 않네요. 간병을 기록하는 샘께 감사드리요!! 언젠가 다시 읽을 날이 있을 것 같아서요....

  • 2020-08-31 13:02

    정말이지...숨 가쁜 간병 일지네요... 순간순간이 너무 중요한 선택들의 기로이고...
    샘이 일단 건강하셔야 할 거 같아요.
    인문약방에서 샘 보약부터 챙겨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20-08-31 13:03

    눈물이 나네요 ㅠㅠ
    살아가고 있는게
    슬프고
    슬픈게 삶일까요..

  • 2020-08-31 13:03

    너무 실감나게 쓰셔서 눈물이 글썽하네요...

  • 2020-08-31 13:31

    선생님..선생님 건강도 잘 챙기세요...

  • 2020-08-31 13:46

    너무 리얼하고
    너무 치열한 간병 다큐네요.
    어머님께서 삐툴삐뚤 보내신 사랑 메세지에
    눈물이 핑~
    하필이면 요즘같은때에
    파업하는 의사들한텐 화딱지!

    문탁선생님.
    부디 선생님의 건강도 지키시며 간병하시길요.

  • 2020-08-31 15:19

    문탁샘^^ 정말 동천동에 '효녀비' 하나 세워야겠어요 ㅋ 여름도 막바진데 모쪼록 건강도 챙기시면서요

  • 2020-08-31 18:22

    신경외과 수술중에 션트수술은 아주 간단하고도 간단한 수술인데 그걸 엄청많이 고민 하셨네요.
    아무튼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오신 건 좋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지지고 볶아도 수술후 엄마모습 보고 좋으셨겠어요

  • 2020-08-31 22:43

    "어떤 반복되는 생도,늘 되풀이 되는 고통도,다르게 감당하라는.. "
    이 부분이 제게 큰 일깨움을 주네요.

  • 2020-09-01 01:10

    너무 감사한 글ᆢ

  • 2020-09-02 12:40

    도움이 되는 글 감사합니다. ^^

  • 2020-09-13 11:20

    문탁샘..손잡아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저는 소민이가 한 말 때문에 자꾸 웃음이 삐져나와요.
    "엄마는 수술 안받는다고 할 것 같은데 할머니는 할 것 같애..."
    아프지 마요. 문탁샘이 아프면 진짜로 진상환자 될 거 같아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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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 2020.09.13 조회 134
나의 '장인'에게 보내는 마음의 소리 -김초엽의 단편소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처방합니다     ‘감정의 물성’을 읽다가   2002년에 개봉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50년 후인 2054년의 미래를 보여준다. 50년이 지나지 않았지만, 개봉 당시 가히 판타스틱 했던 미래기술들이 오늘날에는 많이 상용화되었다. 생체인식기술, 멀티터치인터페이스, 홀로그램, 증강현실, AI안경,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 등 영화적 재미를 가져왔던 미래기술들을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이 된 첨단기술들은 영화 속에서만큼 매력적이지 않다.     2019년에 출판된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년)에서도 조만간에 출시되거나 상용화될 것 같은 미래기술들을 엿볼 수 있다. 인간배아 디자인, 냉동수면기술, 웜홀 터널, ‘기쁨/슬픔/우울’ 같은 감정을 담고 있는 팬시상품,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 도서관 등, 비교적 ‘현실적인’ SF판타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 중 가장 빨리 상용화 되는 것은 ‘마인드’ 도서관이라고 생각한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우리의 장례문화를 떠올려볼 때, 곧 납골당과 추모공원은 사이버상의 홀로그램과 가상현실로 대체될 것 같다. 이것을 관리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하고 우리는 넷플릭스나 왓챠처럼 정액제로 사용요금을 결제하게 될 것이다.   “감정의 물성?” “그러니까 자기들 말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래요. 종류도 꽤 많아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 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진짜 비누처럼 써도 되지만 그냥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기린 2020.09.12 조회 191
 1. 호기롭게 무모한 도전을   공동체로 출근하는 일상에서도 일주일에 이틀 오후와 토요일에는 학원 일을 계속했다. 당시 학원 일로 백이십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걸로 먹고 사는데 별 지장은 없었지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려니 차츰 몸이 힘들어졌다. 학이당에서 하는 공부의 양은 점점 늘어나는데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학원이 인천에 있어서 일주일에 이틀을 120키로씩 운전 하는 일도 부담스러웠다. 학원 일을 그만둘 핑계는 점점 늘어났지만 공동체 안에서 먹고 살만한 일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데도 난 일단 학원 일을 접고 문탁 안에서 백만 원을 벌어 보겠다고 선언했다. 친구들은 나의 선언에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새로운 실험이 공동체에 주는 활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선언을 하게 된 데는 매달 이십만 원 정도의 임대비용으로 국민임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주거 상황도 한 몫을 했다. 2년마다 오르는 집세를 감당해야하는 형편이었다면 아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또 문탁네트워크 홈피 대문에 달려있던 ‘자본주의 예속으로부터 벗어난 삶’ 같은 문구도 내 마음을 들썩였다.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면서 내 삶이 고달픈 것은 다 그 탓이라고 핑계만 대다가 뭔가 ‘도전’해 볼만한 거리가 생긴 설렘이었달까.   당시 마을 경제 세미나를 했던 친구들이 마을 작업장을 만들었다. 화장품도 만들고 정기적으로 반찬을 생산하는 찬방도 있었다. 세미나를 통해 익힌 것들을 실제로 실천해보자는 활기찬 분위기에 나도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자누리 화장품에 일꾼을 신청했다. 더치커피 사업단을 꾸렸던...
문탁 2020.08.31 조회 426
“그것이 생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니체, 「구제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엄마가 이..상..해   4월 13일 : 벌써 1년이 되었구나   1년 전 오늘, 엄마가 아파트 안에서 쓰러졌다. 지난한 '간병블루스'가 시작되었다.   4월 15일 : 왜 이를 갈지?    간만에 형제 단톡방에 엄마 소식을 전했다.    하나. 엄마가 몇 주 전부터 이를 조금씩 가셨는데 점점 심하게 가셔. 나의 치과주치의와 의논을 해봤는데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하네. 치매를 의심하는 듯. ㅠ    둘. 지난 번에 허리 통증 주사를 맞았는데도 여전히 아프신가봐.. 점점 더 “힘들다, 힘들다” 소리가 늘어나네...    셋. 소화를 잘 못 시키심. 아무래도 운동량은 없는 상태에서 약은 계속 드시니까... 일단 일체의 간식을 중단. 그랬더니 변비가...ㅠㅠ    넷. 그동안은 기저귀사용이 좀 줄었는데 요 며칠 기저귀 사용이 다시 늘고 있어. 다시 말해 변기에 앉기 전에 이미 대소변을 보신다는 거지. 왜 그럴까? 인지문제일까? 기능문제일까?   4월 23일 : “이 가는 건 치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문제입니다”    <00치과> 원장과 전화 상담을 했다. 의사에 따르면 이를 가는 것은 치의학적 원인이 아니라 심리적 문제라는 게 최근의 연구 결과란다. 치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이를 갈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끼우는 것인데, 그것은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장치를 낀 상태에서도 이를 간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는다고 하니 그렇다면 그쪽에서 상담을...
새털 2020.08.17 조회 185
장르를 바꿔보자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2015년)을 처방합니다       워킹맘의 만성피로, SF 판타지 아니면 답이 없다   만성피로와 어깨 결림에 대한 처방전을 의뢰한 곰도리(닉네임)는 대안학교 과학교사이고, 아직은 엄마의 손이 많이 가는 초등학생 남매를 기르고 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거나, 육아도우미 AI가 개발되어 상용화되거나, 슈퍼 히어로급 초능력을 장착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조건에 놓인 사람이 만성피로를 호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SF 판타지가 아니면 현실에서는 답이 없다. 그래서일까? 곰도리와의 만남은 주객이 전도되어 그의 고충에 대한 의논보다 내 흑역사에 대한 하소연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곰도리는 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선생님이라는 소문대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날 나는 아이 둘을 낳고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했던 삼십대의 날들이 떠올랐다. 말 그대로 석사과정생은 ‘과정’에 있는 사람이니, 용빼는 재주가 있지 않고는 자료검토든 글쓰기든 잘해낼 수가 없다. 그런데 교수님들은 가르쳐주는 것 없이 야단만 쳤고, 강의시간은 단체로 기합을 받는 시간 같았다. 석사과정 동안에는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준비해도, 공부에 대한 안목과 요령이 없기 때문에 ‘뻘짓’을 할 수밖에 없다. 그 무수한 헛발질을 거쳐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데, 나는 자책과 자학 없이 이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은 엄마가 바쁜 때를 귀신 같이 알고 다치거나 아팠다. 그 시절 나는 조금만 삐끗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긴장감 넘치는 일상을 감당하지 못해 허덕였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깨가...
새털 2020.07.09 조회 196
루틴의 ‘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기린 2020.06.24 조회 366
공부 좀 했다    나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남매 중에 내가 상장을 제일 많이 받았다. 조회시간에 교단 앞에 불려 나가 상도 받아서 동네에서도 소문 좀 났었다. 그래서인가 살면서 내가 공부를 좀 한다는 자신감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고 당시에 학력고사 점수로 응시한 대학은 모두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년짜리 기획 세미나 ‘내공프로젝트’ 모집 공지가 올라왔을 때 은근 두근거렸다. 기왕 공동체로 출근까지 하게 된 마당에 강도 높은 공부로 내공을 키울 수 있다니 출근길이 새삼 보람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공 프로젝트는 이문서당과 학이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문서당에서는 원문강독으로 『논어』를 읽고 학이당은 중국고대사상사 세미나와 글쓰기였다.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공부하는데 활용해야 했다. 『논어』를 원전으로 강독해주시는 우샘의 음성은 무거운 경전의 말씀도 편안하게 들리는 힘이 있었다. 강독을 하시다 “우리 아들 키울 때” 라시며 교육에 유용한 꿀팁이라도 전수해주시면 동학들의 호응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을 강독하시면서 우리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주석을 짚어 주실 때는 오랜 경륜의 내공이 느껴졌다.   학이당은 1년 동안 고대의 중국 사상 중 유학을 중심으로 천 년 간의 사유를 다루는 커리큘럼으로 짜져 있었다. 천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첫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읽는다고 읽는데 안 읽혔다. 우리가 너무 난감해하자 문탁샘은 배경지식을 부족한가 싶어서 『십팔사략』을 봐라, 『사기』를 읽자며 계속 참고 도서를 제시했다....
관리자 2020.06.09 조회 417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새털 2020.05.30 조회 282
Nobody or Somebody,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진단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감자탕집에는 사람이 미어터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가정에서는 매끼니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주어졌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집밥을 해먹기도 하고, 편의점이나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기도 했다. 또는 오늘은 짜장, 내일은 치킨을 주문하는 ‘배달의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아니라도 가족끼리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적어도 5월 첫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들어간 감자탕집은 외식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줄어든 재수학원 강사 자룡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 자룡의 지병에 대한 처방을 의뢰받은 나와 내가 끌고 나온 친구, 흡사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 네 사람은 그날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감자탕중자 냄비를 올려놓고 마주앉았다.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 하는 동안 게임, 마술, 인형 뽑기 등등 소일거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주문한 사이다 캔이 정답게 올라와 있었다. 자룡이 의뢰한 지병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그날의 상황을 보라. 이건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누가 봐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는 의욕으로 넘치는 ‘낮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은 ‘페이크’이고 자룡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고민, 갈등, 번뇌 등등의 애로사항이 따로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이 자룡을...
기린 2020.05.13 조회 383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을...
새털 2020.04.27 조회 327
치매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윤이형의 단편소설 「루카」를 처방합니다       y의 ‘깜박깜박’, 건망증인가 치매인가 -나 치매인가 봐. y가 이렇게 말했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꾸했다. 워낙 뜬금없고 엉뚱한 y의 생각에 대부분 ‘내성’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걸 깜박하고 세탁소에 다녀와서 냄비바닥을 홀라당 태워먹었다는 y의 하소연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한두 번쯤 겪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순식간에 ‘건망증 배틀’이 되었다.   -냉장고 문 열고 한참 있어. 뭘 꺼내려 했나 까먹어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 꺼내는 걸 깜박하고 왔어. 나중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더라. 수시로 찾아 헤매는 핸드폰과 자동차열쇠에 대한 원망,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를 찾지 못해 머리가 하얗게 되었던 순간, 고유명사를 까먹고 ‘그거 그거 그거’하며 버벅거렸던 답답함 등. 40대가 넘은 중년인 우리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들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나이 먹으니 ‘빨간색이 좋더라’ ‘자꾸 꽃 사진을 찍게 되더라’ 하는 취향의 변화처럼, 나이 먹으니 ‘자꾸 깜박깜박하게 되더라’는 일상적인 습관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 강사를 하는 나는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거의 외운 학생들의 이름을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까먹는다. 강의실 복도나 교내매점에서 학생과 마주치면 ‘아무개야’라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잘 지내지?”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출석부에 올라있는 이름들은 비슷비슷해서 ‘서현, 나현, 세현, 세희……’ 잘못 발음하기 쉬운데, 간혹 잘못 부르면 학생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처럼 상처 받았다. 그래서 매번 출석부를...
관리자 2020.04.24 조회 415
문탁   1.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얼마 전이었다. 날이 완연히 따뜻해지자 <인문약방> 등산동아리 친구들의 등산점퍼가 가벼워지고 컬러풀해졌다. 나만 여전히 검정색 겨울패딩 차림. 어, 나도 어딘가 적당한 등산점퍼가 있지 않을까? 옷장을 뒤졌는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카디건이거나 야상점퍼를 입고 산행을 하긴 좀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등산 몇 번을 위해서 옷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 봄 점퍼에 생각이 미쳤고 득달같이 어머니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색깔도 두께도 스타일도 등산용으로 딱 맞춤한 옷을 찾아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찐’분홍 점퍼로 몇 년 전 눈썰미 좋은 며느리가 사다드린 옷이다.   내친김에 나는 어머니 옷들 중에 내가 입을 수 있는 쓸 만한 게 더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옷장 안은 수십년 된 빈티지의상들로 가득했다. 소매 끝이 나달나달해졌지만 유난히 아끼시던 붉은 색 체크무늬 겨울 모직 반코트, 여름철 한, 두 번 밖에 입지 않지만 그걸 위해 정성 드려 풀을 먹여 손질해놓던 모시 스리피스, 입으실 때마다 똥배를 한탄하며 다이어트를 다짐하곤 하시던 패션 바지들...지금 당장 그래니 룩으로 재활용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물론 신상들도 제법 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그것들의 사연을 대체로 알고 있다. 저 여름 원피스는 막내딸이 사가지고 왔는데 자꾸 나를 주겠다고 하셨던 것이고 (한 마디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 저 회색 벙거지 모자는 손주 녀석이 할머니 생신선물로 드린 건데 엄청 맘에...
새털 2020.04.16 조회 154
  디스크 질환에는 시리얼 상자를 덧댄 스냅사진을 -장류진의 단편소설 「탐페레 공항」을 처방합니다      졸업 선물로 허리 디스크가 왔다   우리집 큰딸 소영이는 요즘 바쁘다. 어제는 국제학생증을 발급받기 위해 재학증명서를 출력하더니, 오늘은 친구에게 캐리어를 빌려왔다. 내일은 병원에 들러 응급시 쓸 수 있는 진통제를 처방받는다고 하고, 며칠 내로 은행에 들려 환전을 할 계획이란다. 겨울방학 동안 살을 빼서 슬림한 모습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비롯해서 여행지에서 읽을 책 몇 권을 골라놓는 센스까지 빠트리지 않으며 착실히 여행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지난 가을 학기가 시작될 때 소영이는 충동적으로 왕복유럽항공권을 끊었다. 이번 겨울이 대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인데, 4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계절학기 수업으로 방학을 보냈다는 사실이 문득 억울하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 달쯤 외국에서 생활하는 이벤트를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대학생다운 감성이었다. 이때는 60만원짜리 저가항공권을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그런데 항공권을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설명회에 다녀오게 되면서 소영이의 가을 학기는 순식간에 ‘취준모드’로 전환되었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서류 접수를 위해 벼락치기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적성검사 문제 유형을 익히고, 면접스터디에 합류했다. 주말에는 공인영어점수를 받기 위해 시험을 보러 갔고, 그 사이 낀 중간고사도 대충 해치웠다. 면접을 위해 백화점에서 정장바지를 사고 친구에게 구두를 빌려오며 소영이는 사원증을 목에 건 자신의 모습을 그려봤을 것이다. 아마도 오피스드라마에 나오는...
문탁 2020.03.21 조회 312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p31)       1.엄마의 정신은 어디로 외출했을까?     6개월 전, 2차 부상에 대한 병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퇴원시킨 가장 큰 이유는 ‘섬망’ 때문이었다. 오후만 되면 ‘집으로 가자’를 외치는 어머니를 계속 병원에 둘 수는 없었다. 2차 부상이냐? 섬망이냐? 거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수준의 선택 앞에서 난 결국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 하여, 섬망이 사라졌냐고? 결론을 먼저 말하면 섬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2차 부상까지 당하셨다. 특히 2번 요추 압박골절에 이어진 1번 요추 골절은, 어머니도 나도 간병인도 그 누구도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더 황당했다. 넘어진 적도 부딪힌 적도 없다는 나의 말에 의사는 심상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노인들은 기침하다가도 부러져요. 흔한 일이예요” (그런데 왜 어머니의  6개월 입원기간, 4군데의 병원에서 어떤 의사도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주지 않았지? 쩝!)       어쨌든 척추 뼈가 두 개나 부러지고 그 뼈들이 다시 아무렇게나 붙어서 (혹은 여전히 덜 붙어서)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약간 구부러지게 된 어머니는, 집에 오신 이후에도 수시로 ‘집으로 가자’를 외치셨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교회 성가대 애들 밥을 먹여야 하니 밥을 넉넉히 하라고도 하시고,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문탁 2019.09.19 조회 428
엄마를 퇴원시킨 지 딱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음, 지구를 떠나고 싶다.     1. 지난 일주일 동안 난, “엄마, 집에 와서 좋지?” 라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엄마와 눈을 맞추며 애교를 피우고, 전기밥통이나 세탁기 쓰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일일이 일을 가르치고, 엄마가 간병인 아주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해서 차단하고, 간병인 아줌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감정노동을 하고, 집에서 삼시세끼를 찍느라 종종 걸음을 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그걸 널고 개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쓰레기를 버리러 수거장에 나갔다 오고 (그 사이, 잠시 망설인다. 병원에서 기저귀 쓰레기는 따로 수거를 했는데, 집에서는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려도 될까, 라면서), 엄마를 보러 온 온갖 친척, 친지들을 상대하고, 사이사이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 넣고, 하루 두 번 엄마의 간식을 미리 챙겨놓고, 엄마의 병원 서류를 정리하고 입원비를 계산해서 엑셀로 만들어 동생들과 공유하고, 엄마의 똥을 살피고 통증지수를 가늠하여 체크리스트에 적고, 무슨 서방정, 서방정, 서방정들로 점철된 약을 분별하여 하루에 29개나 되는 약을 약통에 담고, 매일 같은 시간에 하루는 오른쪽, 하루는 왼쪽에 포스테오 주사를 놓는다. (그걸 위해 알람을 다시 맞춰 놓았다. 동은에 대한 ‘감시알람’^^이 끝나자마자 ‘포스테오 알람’이 켜졌다^^) 발바닥엔 불이 났고 입안은 다 곪아 터졌다.       2. 엄마를 퇴원시켰다고 하니까 다들 좀 회복되신거냐구 묻는다. 글쎄, 회복이란 무엇일까? 회복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허리골절이니 허리뼈가 붙는 것? 아니면 심각한 통증이 완화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