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처방전>4회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편

새털
2020-07-09 12:45
139

루틴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아! 나도 빨리 결혼해야 되는데…….’

 

어릴 때 아토피로 앓았다는 루틴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이 심해졌다. 학위를 따기 위해 이십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을 때도, 사회 초년생 시절 직장생활의 막막함을 느낄 때도, 그리고 루게릭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러했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은 특히 삼십대 초반의 루틴에게 혹독하게 기승을 부렸다. 피부과 약은 독해서 먹고 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잠이 쏟아졌다. 약을 꼬박꼬박 먹는다고 상태가 호전되는 것도 아니고, 피부 발진은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흔적으로 루틴의 손가락 사이사이 껍질이 벗겨지고 다시 돋아난 우툴두툴한 자욱이 꺼끌꺼끌하게 만져졌다.

 

요즘 루틴은 예전만큼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으로 고생하지는 않는다. 심해질 기미가 보이면 미리 스테로이드제를 발라 초기에 진화하고, 컨디션을 조절하려 노력한다. 직접 밥을 해먹게 되면서, 잡곡 위주로 밥을 하고 반찬도 맵고 짜지 않게 간을 맞추니 몸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걸어서 출퇴근하기 때문에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는 편이다. 2년 전부터 시작한 인문학 공부로 틈틈이 책도 읽어야 해서 요즘은 결혼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결혼상대자에 대한 ‘이상형’도 없이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멋쩍어했다. 마치 ‘수능’을 치르듯, 결혼도 해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루틴과 이야기를 하며 언젠가 결혼하지 않은 친구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왜 하필 ‘시험’일까? 우리의 무의식이 혹은 고정관념이 결혼을 피하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최근에는 원하지 않는 시험은 보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고, 루틴도 그러한 입장이다.

 

나는 루틴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왜 루틴이라는 닉네임을 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삼십대 비혼 여성이 주류의 라이프스타일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행적으로 요구되는 스케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결혼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다른 고민 없이 컨베이어벨트에 올라 출산과 육아의 루틴을 살아가게 된다.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집장만과 노후대비의 루틴이 플랜b로 준비되어 있다. 적어도 이십대에 결혼을 해서 자식 둘을 낳고 기른 나는 그런 관행적인 루틴에 따라 살았다. 그래서 나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가기 위해 시간표를 새로 짜는 그가 부러웠다. 이런저런 계획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고 설렘을 숨길 수가 없었다(아! 나도 진작 생각을 좀 했어야 했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해서도 루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절한 처방을 해오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루틴을 위한 ‘응원’ 정도. 그래서 나는 열심히 루틴을 위한 응원과 지지의 말들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작품들을 뒤적였다. 헉! 그런데 이럴 수가! 문학작품에는 고통과 우울의 말들은 넘쳤고, 응원과 지지의 말들은 드물었다. 어떡하지? 난감했다.

 

 

 

 

 

바닥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아, 구르기 클럽

 

언덕에서 구르다가 가로등에 부딪혀 다리에 금이 간 현경씨는 구급차에서 내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슬기씨…… 제가 살게요. 맛있는 거.

(중략)

칠백집이라고 삼겹살집이 있는데, 맵게 무친 콩나물이랑 단호박 양파 버섯을 삼겹살이랑 같이 구워줘요. 알바생이 테이블 옆에 서서 정성껏 고기를 뒤집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주면 우리는 그냥 먹기만 하면 돼요. 삼겹살을 다 먹으면 오징어볶음이랑 볶음밥도 주는데……

슬기씨……

네.

나 고기 안 먹어요. (「구르기 클럽」, 『문학3』 2020년 2호, 190~191쪽)

 

 

「구르기 클럽」은 최근 내가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가슴이 아리면서도 시시때때로 웃음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독특한 작품이다. 그리고 생각 없이 웃다보면 어느 샌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가히 ‘시트콤’스러운 작품이다.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말릴 수 없다’ ‘거침없이 하이킥’ 등등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시트콤들은 단지 웃기기만 한 게 아니다.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리는 캐릭터나, 그런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꼬이고 꼬이는’ 에피소드 속에는 인생의 ‘희비극’이 반짝 빛난다. 유쾌함과 짠함과 뭉클함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 시청자들은 똥고집을 부리는 캐릭터들의 과장된 이야기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이,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인과관계에 대한 추론과 인물과 자신을 같은 입장에 두고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 어떻게 이 사람에게 저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는 이런 고통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만약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런 사유와 공감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같이 울고 웃게 된다. 더 나아가 저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분노의 감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감정과 윤리의 문제를 연결하고 있는 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이를 ‘시적(詩的) 정의’라고 부른다. 공감과 상상력 없이 정의를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 언덕에서 구르다 가로등에 부딪쳐 다리에 금이 간 사람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구급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마라탕과 삼겹살과 칼국수 가운데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내용이라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본다면, 다리를 다친 사람은 자신 때문에 귀찮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밥을 사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생각해본다면, 이 사람은 왜 언덕에서 구르게 되었을까 궁금하게 된다. ‘구르기 클럽’이라니 도대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구르면……좋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경씨는 입고 있던 남색 플리스를 벗었다.

바닥을 온몸으로 구른다는 게 좋아요. 굴러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저는 바닥을 무서워했거든요. (194쪽)

 

슬기야. 너도 학교 언덕 말고……

엄마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안전하고 완만한 언덕에서 한 번 굴러봐. 앞구르기든 옆구르기든 다 좋아. 오로지 구르는 것에 집중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래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아갔을 뿐이야. (197쪽)

 

 

「구르기 클럽」은 명랑만화 같은 감성을 보여주는 콩트 같지만, 사실 ‘시적(詩的)’이다. 이 짧은 단편소설의 주제는 ‘바닥’과 그것을 ‘이겨내는 일’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인생의 바닥에 대한 이야기이고, 바닥을 친 사람들이 온몸으로 느낀 바닥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구르기 클럽’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이것을 압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 사이의 좁은 길을 맨발로 걷다가 문득 굴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는 정말 일정하게 직선을 그리면서 좁은 길을 앞구르기로 계속해서 굴렀어. 구를 때마다 꼭 바닥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았어. 나의 전진을 응원받는 기분? 손들이 내 몸을 지그시 앞으로 밀어주는 기분이 들었어. (199쪽)

 

 

그런데 바닥은 차갑고 딱딱하기만 한 게 아니란다. “바닥이 나를 밀어주고” “바닥으로부터 전진을 응원받는 기분”이라는 문장은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든다. 이런 문장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구급차를 타고 가며 삼겹살타령을 하든, 언덕에서 굴러 가로등에 부딪치든, 뭐든 괜찮다. 그리고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고단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작가의 ‘시적 정의’라는 것도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 위로는 세상에 대한 긍정과 신뢰를 가져온다. 그렇게 울고 웃으면 못생긴 얼굴은 더 못생겨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런 게 세상에 대한 낙관이다. 소설은 ‘안산’과 ‘5년 전’이라는 두 단어를 통해  2014년의 사회적 재난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재난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안간힘에 대해 함부로 ‘아는 체’ 할 수 없다. 그러나 함께 울고 웃을 수는 있다. 상상력과 공감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진심을 다해 부엌의 좁은 복도를 구르다가 벽에 부딪혔을 엄마의 표정을 상상했었다. 엄마에게 다시 찾아온 ‘힘’의 근원이 그 순간에 있을 것 같아서. 내 상상 속에서 엄마는 대부분이 무표정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입을 달싹거리는 엄마 특유의 곤란한 표정. 하지만 이제는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자신이 무언가에 이토록 열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감탄과 현재만을 살아냈다는 환호. (200~201쪽)

 

 

내가 루틴을 위해 찾아낸 응원의 말도 “자신이 무언가에 이토록 열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감탄과 현재만을 살아냈다는 환호”이다. 무언가에 열중하고, 그 현재를 살아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는 일. 이것이 재난 이후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루틴에게도 나에게도 이것이 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루틴의 힘, 달려라 푸드 트럭

 

에타에 올라온 영상은 다행히 GIF 파일이라 현경씨의 비명 같은 건 들을 수 없었다. 영상의 제목은 ‘뀡은 제 머리로 종을 쳐서 은혜를 갚고’였고, 본문은 ‘사람은 가로등을 몸으로 쳐서 가로등을 켠다’였다. 조회수는 삼천, 댓글은 오백을 넘어 ‘이 주의 화제영상’에도 올라 있었다. 영상은 감악관으로 가는 언덕을 빠른 속도로 굴러내려오던 검은 덩어리가 가로등에 부딪히자 꺼져 있던 가로등이 환하게 켜지면서 끝났다. (187~188쪽)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의 가로등에 불을 켜지는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다.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면서 정중한 에스코트를 받는 기분이 든다. 기분 좋은 착각이다. 「구르기 클럽」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도 가로등에 불이 켜지는 순간이다. 다소 황당하게 언덕을 굴러온 사람에 의해 고장 난 가로등에 불이 켜지자, 학생들은 학교커뮤니티에 영상을 올리고 재치 있는 댓글놀이를 이어간다. “역시 기계는 고장 나면 때리는 게 정답인 듯 덕분에 밤에도 어둡지 않네요.”

 

루틴과의 대화에서 가장 시적인 순간은 푸드 트럭이 등장했을 때다.

“친구들과 푸드 트럭을 해볼까 해요. 한 곳에 계속 있는 건 지겨울 것 같고,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생계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푸드 트럭 괜찮지 않아요? 저 1종 면허예요.”

 

루틴은 결혼이 아닌 방식으로 인생을 설계하다보니 함께 살 친구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할 일에 대해서도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간 학위를 따고 취직을 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이제 루틴은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하고 정년까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수정해보고 있단다. 돈 버는 일에 인생의 대부분을 써버리기보다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친구, 여행, 공부’ 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생활을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푸드 트럭에서 게릴라콘서트 같은 것도 하는 거예요. ‘오늘은 한강에서 ‘푸코쇼’를 합니다‘ 홍보하고 인문학콘서트를 여는 거죠.”

“공부 많이 해야겠다.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할 것 아냐?”

“요즘 읽고 있는 책들 예전에는 구경도 못해봤던 것들인데 재미있어요.”

 

식물학 박사인 루틴은 얼마 전에 <논어>를 공부하고 생애 처음 두 쪽짜리 에세이를 썼다. 그걸 읽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논어>가 그렇게 감동적인 책인지 나는 루틴을 통해 배웠다. 나는 상상해본다. 루틴이 어두운 계단을 올라갈 때 센서등의 불이 환하게 켜진다. 책상에 앉으면 스탠드의 불이 탁 켜진다. 책상에는 푸코, 스피노자, 니체 등등 책들이 산처럼 쌓여간다. 내 상상의 가장 멋진 장면은 푸드 트럭을 운전하는 루틴의 모습이다. 루틴은 트럭이 고장 나도 당황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타이어를 한 번 발로 찬다. 역시 기계는 고장 나면 때리는 게 정답이다. 달려라 루틴, 달려라 푸드 트럭!

 

 

 

댓글 7
  • 2020-07-09 12:50

    나수경의 <구르기 클럽>은 창비의 새로운 잡지 <문학3>>(2020년, 2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나수경 작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 2020-07-09 17:24

    이웃집 토토로가 아니라..
    이웃집 루틴이 우리에게 와서 얼마나 기쁜지!
    루틴을 위한 처방, <구르기클럽>!
    알레르기성 피부발전은 없지만 꼭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 2020-07-09 19:09

    루틴에게서는 언제나 에너지가 뿜뿜 !!
    좋은 기운이 넘쳐요~
    자신만을 생각하고 삶을 계획할수 있다는게 넘나 부럽네요.
    저도 생각좀 하고살걸 하는 후회가 막 밀려오지만
    나중에 후회안하려면 지금시점에서 생각좀하고 사는 건 어떤걸까싶은 생각이 동시에 밀려오네요.
    어려워요. 생각좀 하고 사는거!

  • 2020-07-09 23:38

    ‘직업으로 자아실현’해야하는 줄 알았어요~ 아하~! 뒤통수맞은 느낌?? ‘친구, 여행, 공부!’좋다~~~ ㅎㅎㅎ 달려라, 루틴! 응원합니다^^

  • 2020-07-10 15:44

    루틴의 상상을 응원합니다~~~~~

  • 2020-07-11 03:24

    루틴은 복도 많지~~
    바로 옆집에서 공부하고 친구도 만들고 ~
    구르기 클럽처럼 뭔 클럽이든 루틴하고 만들고 싶네요~~^^

  • 2020-07-16 10:11

    저도 저 느낌 아는데... 어둑어둑해질 쯤 가로등이 켜지면 에스코트 받는 느낌^^
    예전에 한강에서 맥주를 먹다가 가로등 켜지는 시간 맞추려고 계속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루틴에게 저도 '띵' 하고 가로등을 켜드리고 싶네요!!
    아!!!
    그러고 보니 나도 1종면허 나중에 채소장사라도 한다고 그것을 땄는데...
    뭔가 통해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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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 2020.07.09 조회 139
루틴의 ‘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기린 2020.06.24 조회 335
공부 좀 했다    나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남매 중에 내가 상장을 제일 많이 받았다. 조회시간에 교단 앞에 불려 나가 상도 받아서 동네에서도 소문 좀 났었다. 그래서인가 살면서 내가 공부를 좀 한다는 자신감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고 당시에 학력고사 점수로 응시한 대학은 모두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년짜리 기획 세미나 ‘내공프로젝트’ 모집 공지가 올라왔을 때 은근 두근거렸다. 기왕 공동체로 출근까지 하게 된 마당에 강도 높은 공부로 내공을 키울 수 있다니 출근길이 새삼 보람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공 프로젝트는 이문서당과 학이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문서당에서는 원문강독으로 『논어』를 읽고 학이당은 중국고대사상사 세미나와 글쓰기였다.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공부하는데 활용해야 했다. 『논어』를 원전으로 강독해주시는 우샘의 음성은 무거운 경전의 말씀도 편안하게 들리는 힘이 있었다. 강독을 하시다 “우리 아들 키울 때” 라시며 교육에 유용한 꿀팁이라도 전수해주시면 동학들의 호응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을 강독하시면서 우리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주석을 짚어 주실 때는 오랜 경륜의 내공이 느껴졌다.   학이당은 1년 동안 고대의 중국 사상 중 유학을 중심으로 천 년 간의 사유를 다루는 커리큘럼으로 짜져 있었다. 천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첫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읽는다고 읽는데 안 읽혔다. 우리가 너무 난감해하자 문탁샘은 배경지식을 부족한가 싶어서 『십팔사략』을 봐라, 『사기』를 읽자며 계속 참고 도서를 제시했다....
관리자 2020.06.09 조회 393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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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ody or Somebody,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진단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감자탕집에는 사람이 미어터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가정에서는 매끼니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주어졌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집밥을 해먹기도 하고, 편의점이나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기도 했다. 또는 오늘은 짜장, 내일은 치킨을 주문하는 ‘배달의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아니라도 가족끼리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적어도 5월 첫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들어간 감자탕집은 외식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줄어든 재수학원 강사 자룡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 자룡의 지병에 대한 처방을 의뢰받은 나와 내가 끌고 나온 친구, 흡사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 네 사람은 그날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감자탕중자 냄비를 올려놓고 마주앉았다.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 하는 동안 게임, 마술, 인형 뽑기 등등 소일거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주문한 사이다 캔이 정답게 올라와 있었다. 자룡이 의뢰한 지병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그날의 상황을 보라. 이건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누가 봐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는 의욕으로 넘치는 ‘낮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은 ‘페이크’이고 자룡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고민, 갈등, 번뇌 등등의 애로사항이 따로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이 자룡을...
기린 2020.05.13 조회 367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을...
새털 2020.04.27 조회 320
치매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윤이형의 단편소설 「루카」를 처방합니다       y의 ‘깜박깜박’, 건망증인가 치매인가 -나 치매인가 봐. y가 이렇게 말했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꾸했다. 워낙 뜬금없고 엉뚱한 y의 생각에 대부분 ‘내성’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걸 깜박하고 세탁소에 다녀와서 냄비바닥을 홀라당 태워먹었다는 y의 하소연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한두 번쯤 겪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순식간에 ‘건망증 배틀’이 되었다.   -냉장고 문 열고 한참 있어. 뭘 꺼내려 했나 까먹어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 꺼내는 걸 깜박하고 왔어. 나중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더라. 수시로 찾아 헤매는 핸드폰과 자동차열쇠에 대한 원망,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를 찾지 못해 머리가 하얗게 되었던 순간, 고유명사를 까먹고 ‘그거 그거 그거’하며 버벅거렸던 답답함 등. 40대가 넘은 중년인 우리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들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나이 먹으니 ‘빨간색이 좋더라’ ‘자꾸 꽃 사진을 찍게 되더라’ 하는 취향의 변화처럼, 나이 먹으니 ‘자꾸 깜박깜박하게 되더라’는 일상적인 습관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 강사를 하는 나는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거의 외운 학생들의 이름을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까먹는다. 강의실 복도나 교내매점에서 학생과 마주치면 ‘아무개야’라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잘 지내지?”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출석부에 올라있는 이름들은 비슷비슷해서 ‘서현, 나현, 세현, 세희……’ 잘못 발음하기 쉬운데, 간혹 잘못 부르면 학생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처럼 상처 받았다. 그래서 매번 출석부를...
관리자 2020.04.24 조회 395
문탁   1.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얼마 전이었다. 날이 완연히 따뜻해지자 <인문약방> 등산동아리 친구들의 등산점퍼가 가벼워지고 컬러풀해졌다. 나만 여전히 검정색 겨울패딩 차림. 어, 나도 어딘가 적당한 등산점퍼가 있지 않을까? 옷장을 뒤졌는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카디건이거나 야상점퍼를 입고 산행을 하긴 좀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등산 몇 번을 위해서 옷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 봄 점퍼에 생각이 미쳤고 득달같이 어머니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색깔도 두께도 스타일도 등산용으로 딱 맞춤한 옷을 찾아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찐’분홍 점퍼로 몇 년 전 눈썰미 좋은 며느리가 사다드린 옷이다.   내친김에 나는 어머니 옷들 중에 내가 입을 수 있는 쓸 만한 게 더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옷장 안은 수십년 된 빈티지의상들로 가득했다. 소매 끝이 나달나달해졌지만 유난히 아끼시던 붉은 색 체크무늬 겨울 모직 반코트, 여름철 한, 두 번 밖에 입지 않지만 그걸 위해 정성 드려 풀을 먹여 손질해놓던 모시 스리피스, 입으실 때마다 똥배를 한탄하며 다이어트를 다짐하곤 하시던 패션 바지들...지금 당장 그래니 룩으로 재활용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물론 신상들도 제법 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그것들의 사연을 대체로 알고 있다. 저 여름 원피스는 막내딸이 사가지고 왔는데 자꾸 나를 주겠다고 하셨던 것이고 (한 마디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 저 회색 벙거지 모자는 손주 녀석이 할머니 생신선물로 드린 건데 엄청 맘에...
새털 2020.04.16 조회 143
  디스크 질환에는 시리얼 상자를 덧댄 스냅사진을 -장류진의 단편소설 「탐페레 공항」을 처방합니다      졸업 선물로 허리 디스크가 왔다   우리집 큰딸 소영이는 요즘 바쁘다. 어제는 국제학생증을 발급받기 위해 재학증명서를 출력하더니, 오늘은 친구에게 캐리어를 빌려왔다. 내일은 병원에 들러 응급시 쓸 수 있는 진통제를 처방받는다고 하고, 며칠 내로 은행에 들려 환전을 할 계획이란다. 겨울방학 동안 살을 빼서 슬림한 모습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비롯해서 여행지에서 읽을 책 몇 권을 골라놓는 센스까지 빠트리지 않으며 착실히 여행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지난 가을 학기가 시작될 때 소영이는 충동적으로 왕복유럽항공권을 끊었다. 이번 겨울이 대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인데, 4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계절학기 수업으로 방학을 보냈다는 사실이 문득 억울하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 달쯤 외국에서 생활하는 이벤트를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대학생다운 감성이었다. 이때는 60만원짜리 저가항공권을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그런데 항공권을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설명회에 다녀오게 되면서 소영이의 가을 학기는 순식간에 ‘취준모드’로 전환되었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서류 접수를 위해 벼락치기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적성검사 문제 유형을 익히고, 면접스터디에 합류했다. 주말에는 공인영어점수를 받기 위해 시험을 보러 갔고, 그 사이 낀 중간고사도 대충 해치웠다. 면접을 위해 백화점에서 정장바지를 사고 친구에게 구두를 빌려오며 소영이는 사원증을 목에 건 자신의 모습을 그려봤을 것이다. 아마도 오피스드라마에 나오는...
문탁 2020.03.21 조회 298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p31)       1.엄마의 정신은 어디로 외출했을까?     6개월 전, 2차 부상에 대한 병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퇴원시킨 가장 큰 이유는 ‘섬망’ 때문이었다. 오후만 되면 ‘집으로 가자’를 외치는 어머니를 계속 병원에 둘 수는 없었다. 2차 부상이냐? 섬망이냐? 거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수준의 선택 앞에서 난 결국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 하여, 섬망이 사라졌냐고? 결론을 먼저 말하면 섬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2차 부상까지 당하셨다. 특히 2번 요추 압박골절에 이어진 1번 요추 골절은, 어머니도 나도 간병인도 그 누구도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더 황당했다. 넘어진 적도 부딪힌 적도 없다는 나의 말에 의사는 심상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노인들은 기침하다가도 부러져요. 흔한 일이예요” (그런데 왜 어머니의  6개월 입원기간, 4군데의 병원에서 어떤 의사도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주지 않았지? 쩝!)       어쨌든 척추 뼈가 두 개나 부러지고 그 뼈들이 다시 아무렇게나 붙어서 (혹은 여전히 덜 붙어서)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약간 구부러지게 된 어머니는, 집에 오신 이후에도 수시로 ‘집으로 가자’를 외치셨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교회 성가대 애들 밥을 먹여야 하니 밥을 넉넉히 하라고도 하시고,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문탁 2019.09.19 조회 415
엄마를 퇴원시킨 지 딱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음, 지구를 떠나고 싶다.     1. 지난 일주일 동안 난, “엄마, 집에 와서 좋지?” 라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엄마와 눈을 맞추며 애교를 피우고, 전기밥통이나 세탁기 쓰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일일이 일을 가르치고, 엄마가 간병인 아주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해서 차단하고, 간병인 아줌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감정노동을 하고, 집에서 삼시세끼를 찍느라 종종 걸음을 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그걸 널고 개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쓰레기를 버리러 수거장에 나갔다 오고 (그 사이, 잠시 망설인다. 병원에서 기저귀 쓰레기는 따로 수거를 했는데, 집에서는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려도 될까, 라면서), 엄마를 보러 온 온갖 친척, 친지들을 상대하고, 사이사이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 넣고, 하루 두 번 엄마의 간식을 미리 챙겨놓고, 엄마의 병원 서류를 정리하고 입원비를 계산해서 엑셀로 만들어 동생들과 공유하고, 엄마의 똥을 살피고 통증지수를 가늠하여 체크리스트에 적고, 무슨 서방정, 서방정, 서방정들로 점철된 약을 분별하여 하루에 29개나 되는 약을 약통에 담고, 매일 같은 시간에 하루는 오른쪽, 하루는 왼쪽에 포스테오 주사를 놓는다. (그걸 위해 알람을 다시 맞춰 놓았다. 동은에 대한 ‘감시알람’^^이 끝나자마자 ‘포스테오 알람’이 켜졌다^^) 발바닥엔 불이 났고 입안은 다 곪아 터졌다.       2. 엄마를 퇴원시켰다고 하니까 다들 좀 회복되신거냐구 묻는다. 글쎄, 회복이란 무엇일까? 회복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허리골절이니 허리뼈가 붙는 것? 아니면 심각한 통증이 완화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