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양생이다>2회 동학(同學), ‘쿨’ 할 수 없는 친구

기린
2020-06-24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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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부 좀 했다

 

 나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남매 중에 내가 상장을 제일 많이 받았다. 조회시간에 교단 앞에 불려 나가 상도 받아서 동네에서도 소문 좀 났었다. 그래서인가 살면서 내가 공부를 좀 한다는 자신감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고 당시에 학력고사 점수로 응시한 대학은 모두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년짜리 기획 세미나 ‘내공프로젝트’ 모집 공지가 올라왔을 때 은근 두근거렸다. 기왕 공동체로 출근까지 하게 된 마당에 강도 높은 공부로 내공을 키울 수 있다니 출근길이 새삼 보람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공 프로젝트는 이문서당과 학이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문서당에서는 원문강독으로 『논어』를 읽고 학이당은 중국고대사상사 세미나와 글쓰기였다.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공부하는데 활용해야 했다. 『논어』를 원전으로 강독해주시는 우샘의 음성은 무거운 경전의 말씀도 편안하게 들리는 힘이 있었다. 강독을 하시다 “우리 아들 키울 때” 라시며 교육에 유용한 꿀팁이라도 전수해주시면 동학들의 호응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을 강독하시면서 우리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주석을 짚어 주실 때는 오랜 경륜의 내공이 느껴졌다.

 

학이당은 1년 동안 고대의 중국 사상 중 유학을 중심으로 천 년 간의 사유를 다루는 커리큘럼으로 짜져 있었다. 천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첫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읽는다고 읽는데 안 읽혔다. 우리가 너무 난감해하자 문탁샘은 배경지식을 부족한가 싶어서 『십팔사략』을 봐라, 『사기』를 읽자며 계속 참고 도서를 제시했다. 세미나 텍스트도 버거운 데 참고자료까지 그야말로 설상가상이었다. 공부 좀 하는 줄 알았던 자신감에 금이 가는 소리가 저 아래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2. 관성의 법칙

 

 성적은 아랑곳 않고 공부에 대한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독서도 한 몫을 했다. 교과서는 점점 내 손에서 멀어지는 대신 다른 책은 나름 끼고 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이 흔치 않은 그 환경에서도 읽는데 편식을 했다. 재밌는 이야기만 골라서 읽었다. 국어 교과서에서 이야기만 읽다가 동화책으로 세계 문학전집으로 옮겨갔다. 고등학교 때는 하라고 시키는 공부는 안 하고 밤새 소설책을 끼고 살았다. 교과서나 읽기에는 너무 심심했던 시절이었다. 너무 심심해서 흥미진진한 소설로라도 재미를 찾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학이당에서 읽게 된 책은 한 줄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스토리가 없는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저자의 논리적 맥락을 좇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인문학텍스트라고 해봐야 가벼운 에세이류 읽은 것이 전부인 나에게는 학이당의 모든 텍스트가 허들이었다. 한 줄을 넘기지 못하고 읽고 또 읽다가 지치는가 하면 여지없이 딴 생각으로 빠져서 책장이 넘어가지 않기 일쑤였다.

 

 『논어』에 나오는 원문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자의 제자 중에 자로라는 제자가 있다. 자로가 공자님께 군대를 통솔하게 되면 누구와 함께 하겠느냐고 물었다. 공자님은 ‘맨 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으려 하고 황하를 걸어서 건너려는’ 놈하고는 함께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포호빙하(暴虎馮河)’의 스케일에 꽂혔다. 침을 튀기며 자로를 옹호했다. 문답의 맥락은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스토리에 꽂혀 읽는 관성이 작동한 것이다. 새로운 앎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오후 수업이었던 글쓰기는 더 심각했다. 써 온 글을 피드백 받고 나면 다음 주에는 다른 글을 써갔다. 알아들을 수 없는 글이라기에 나름대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다른 내용을 썼는데, 왜 지난 글을 수정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갈아엎느냐는 지적을 계속 받았다. 억울했다. 『논어』에서 읽게 된 원문들은 어디선가 익히 들어본 익숙한 문장이 수두룩했다. 부모님에 대한 효라든가 연장자에 대한 공경이라든가. 그러다보니 너무 ‘마땅해서’ 궁금한 것이 없었다. 효도해야 하는데 효도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는 회로가 작동했다. 저절로 반성문이 써졌다. 반성이 아니라 연구를 하라는 지적을 받아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반성이 뭐가 나쁜가.

 

 인문학 공부를 하는 공간이라서 그런가 이곳에는 소싯적에 공부 ‘잘’했던 이들이 수두룩했다. 이게 뭔 뜻이냐 물었는데 교과서에서 배웠잖아 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 표정에 다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시크하게 말했다. 나의 과학지식은 초등학교 때 배운 자연에서 끝났고, 영어는 단어 100개 정도나 알까 수학은 중2에서 끝냈다니까. 그래도 난 좀 읽고 쓸 수 있으니까 괜찮아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착각도 이 정도면 훈장감이다. 학교 공부는 하라고 시켰으니까 하기 싫었다는 핑계라도 있지, 이곳은 내 발로 찾아왔다. 공부해서 내공 좀 쌓아보겠다고. 책은 엉덩이 힘으로 읽는 것이다.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가 있을 뿐이다. 너무나 평범한 저 말들이 이 착각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도라니. 말이 쉽지 실천은 너무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함께 부대껴준 동학(同學)들이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진즉에 그만두었을 지도 모른다.

 

 3. 디어 마이 프렌즈, 학이당편

 

 문탁샘과의 인연은 학이당에서 튜터로 만나는 것으로 계속 이어졌다. 문탁샘은 학이당 세미나 첫 시간을 보낸 후 후기에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난 튜터다. 동시에 난 연구자다.” 튜터로써 우리가 어디서 헤매고 있는지 살펴서 조목조목 정리를 해 주었다. 또  연구자로써 세미나 때마다 새로운 질문을 구성하는가 하면 우리가 해답을 찾느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다른 질문으로 옮겨갔다. 결과적으로 학이당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동학의 자리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다. 문탁샘은 그 와중에도 공부는 밥심으로 하는 거라며 학이당 멤버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손수 밥을 차려주기도 했다. 우리가 전전긍긍 써온 에세이를 향해 “난 니가 뭘 쓰고 싶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쓰고 있는 니 욕망을 들여다 봐!” 라고 피드백을 할 때는 목소리가 쨍해지셨다. 덩달아 우리도 긴장하게 되었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 에세이 발표를 마치고 나면 후련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통과의례처럼 그 시간을 보내도 전원이 어김없이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던 걸 보면 문탁샘은 영락없는 우리의 스승이셨다.

 

 

 

 학이당 첫해에 같이 출발한 동학은 총 10명이었다. 각자의 조건도 다 달라서 나처럼 싱글이 있는가 하면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도 있었다. 그 와중에 풍경은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를 끼고 공부를 하러 온 ‘늙은’ 엄마였다. 당시 세미나에 결석을 하게 되면 홈피에 결석계를 냈다. 풍경이 낸 결석계는 “시어머님 병원 오신다고 전화하셨습니다. 딸도 있고 아들도 있는데 '네가 가야겠구나' 하시네요. 불끈했지만 돈 못 벌고 공부만하며 노는 며느리.”의 사정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손맛 또한 일품이어서 문탁에서 풍경이 만든 음식은 매번 완판이었다. 한창 손이 가는 유치원생 엄마에 고분고분한 며느리, 맛집 쉐프까지 겸하면서 공부를 하자니 풍경의 일상이 잠잠한 날이 드물었다. 공부가 늘지 않는다고 하소연을 일삼더니 학이당 3년차엔가는 공부방 총무를 자청하고 나섰다. 번다한 일상의 잔가지를 치고 공부방 붙박이로 거듭나겠다는 출사표를 던지면서. 그러나 여전히 풍경을 찾는 곳이 너무 많았다. 결국 남편의 직장이 있는 지방으로 이사를 가면서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는 시절을 마감했다. (그 후 전주에 있는 고전번역원에 입학하여 만학에 반장 활동까지 한다는 근황을 전해 와서 우리를 기쁘게 했다.)

 

 

 

 『논어』 원문을 배웠으니 그걸로 밥도 벌자는 취지로 어린이 이문서당을 열었다. 느티나무와 초록이 훈장으로 나섰다. 매주 『논어』 한 구절을 읽고 쓰고 암송하는 아이들이 주는 감흥에 우리까지 덩달아 보람찼다. 그 와중에 초록은 남편의 경제활동이 여의치 않아 직업을 구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떻게든 공동체에서 밥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하지만 서당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초록은 학이당을 접고 결혼 전 경력을 살려 직장을 구했다. 초록을 떠나보내면서 우리의 공부가 당장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우리는 함께 공부하면서 ‘내공’을 키우고 싶었다. 전문가 없이도 아마추어의 지성으로 연구하는 연합체 되기, 가족의 자장안에서도 끄달리지 않기, 돈에 연루되어서도 기죽지 않기. 하지만 현실은 늘 우리의 내공을 능가했다. 학이당의 연수가 쌓여가도 우리의 연구력은 좀처럼 늘지 못했고, 가족이 당기는 중력은 그 무엇보다도 힘이 셌다. 돈만 벌면서 사는 것도 불행했지만, 돈 없이는 살 수 없는 현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렇게 같이 공부를 시작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학이당을 떠나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책만 읽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작년에는 학이당에서 공부했던 여울아와 진달래와 함께 『낭송논어』를 출간했다. 육 개월이 넘는 시간을 매주 모여서 『논어』의 문장을 해석하고 낭송하기에 적합하도록 다듬었다. 셋이 모이니 문장 하나를 읽어내는 데도 생각이 다 달랐다. 진달래는 주자의 주석에 근거해 정확하게 뜻을 밝히자고 하면, 여울아는 낭송할 때 의미가 잘 전달되려면 좀 더 유연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는 때로는 진달래의 해석에 동의했다가 여울아가 직접 읽어보라며 낭송용이 아니라고 들이대면 꼬리를 내렸다. 출판사에 넘기기 전 마지막 수정원고는 인디언네 집에서 1박2일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검토했다. 인디언은 삼시 세끼를 차려 먹이며 허리에 복대 투혼까지 발휘하여 사백 구십 여개의 문장을 끝까지 함께 읽었다. 시간이 갈수록 주석이고 낭송이고 그저 끝내자에 대동단결했다. 마지막 문장을 다듬고 원고를 넘기고 나니 몽롱하게 온 몸이 나른해지던 느낌이 아직도 선하다. 물론 교정지가 나왔을 때 우샘의 감수(監修)를 받아서 또 다시 수정을 감수(感受)해야 했지만^^.

 

 

 4. 학이당에서 고전공방으로

 

 학이당에서 공부했던 사년 동안 세미나 했던 책들을 쌓아보면 아마도 내 키는 훌쩍 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만큼 아는 것이 많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자료가 필요해서 다시 그 때의 책을 꺼내보면, 처음 같은 낯선 내용이 새록새록 읽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빛나는 사유는 세미나가 끝나면 저절로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친구들은 남았다.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同窓)들과도 다르고 직장에서 만났던 동료(同僚)들과도 다른 동학(同學)이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공부하다보니 동창이나 동료처럼 ‘쿨’하게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세미나를 하고 에세이를 쓰고 공간을 청소하고 밥당번을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공부거리가 아닌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나의 말과 글과 행동에 대해 지적하는 친구의 말이 불편해서 마음이 부대꼈다. 하지만 점점 나의 문제를 인정하고 고치려고 애쓰게 되었다. 함께 공부했던 시간이 적당히 ‘쿨’하게 선을 긋지 않고 어떻게든 서로에게 개입하려는 마음을 쓰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민낯을 보이면서도 떠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함께 공부하는 동학(同學), 특출한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함께 모여서는 무엇인가 해낼 수 있는 팀이 되었다.

 

 

  저간의 사정으로 떠나는 동학의 자리에 새로운 동학들이 합류했다. 초록도 돌아왔다. 출근을 하지 않는 주말에 다시 공부를 하러 나왔다. 회사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비인간적 처사에 분노하다가, 문탁은 딴 세상 같다며 성토하다가, 여기라도 나와야 정신줄을 잡을 수 있지 않겠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그런 초록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지금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 노릇에 충실하듯이, 나는 지금 여기서 공부가 밥이 되는 일에 충실해야겠다고. 그리고 초록에게 말했다. “초록, 지금 잘하고 있어.”

 

 학이당을 거치면서 새롭게 합류한 동학들과 함께 고전공방으로 다시 뭉쳤다. 고전으로 글도 쓰고 강의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우리의 공부를 생산하자는 뜻을 밝혔다. 요즘은 연구자의 포스가 남다른 자누리의 지휘 아래 최근의 트랜드를 반영하여, 고전 원문과 그와 관련한 에세이를 담은 영상을 만들고 유투브에 올리는 일이 한창이다. 세상의 변화에는 민감하게 그러나 속도를 낼 때는 느긋하고 싶지만 어느 것도 만만치는 않다. 변화는 너무 빠르고 우리만의 속도를 터득하자니 살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도모하고 실행하는 동학들과 함께 길을 내 볼 작정이다.

 

 

 

 

댓글 21
  • 2020-06-24 09:55

    '백일의 논어'가 생각나네요~그때 기린샘을 처음 들었습니다.
    자로를 읽는 기린샘의 이야기처럼, 저 역시 백일의 논어에서
    제 생각에 사로잡혀 읽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신기하게 동학들이 바로 바로 짚어 주었지요.
    문득 들킨 마음이 쪽팔릴 때면 참, 쿨하기 어렵더라구요.
    고마워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괜히 삐져서 ㅋㅋ

  • 2020-06-24 10:00

    제가 문탁생활 시작할때부터 들었던 기린샘의 "밥이 되는 공부"가 ...강의나 집필 활동 뿐만이 아니라, 텃밭과 은방울, 약재를 내리는 양생까지에서...점차점차 더욱더욱 실현되고 확장되어가는 것을, 늘 봅니다~

    밥이 된다는 건, 스스로 먹고 살 뿐만 아니라 함께있는 이들까지도 저절로 먹여살리는 일인것같네요! 기린샘의 밥이되는 공부, 감사하면서 응원합니다~~^^

    • 2020-06-24 19:28

      밥 한번 먹읍시다~

  • 2020-06-24 10:06

    사진 보고 놀랐음!! 모두 젊고 예뻤다!!

    • 2020-06-24 10:40

      나도 중간에 깜놀... 살 좀 빼야하나..

      • 2020-06-24 11:01

        역변의 대명사! ㅋㅋㅋ

  • 2020-06-24 11:02

    '쿨'엔 따뜻함이 없어요~~

  • 2020-06-24 11:15

    글이 너무 짧아(?)요 더 읽고 싶었는데ᆢ
    담엔 더 길~~게 써주세요 ~~~ㅎ

  • 2020-06-24 11:57

    기린은 친구들이 참 많구만 ㅋ
    쿨하지 않고 따뜻한^^

    • 2020-06-24 19:24

      샘^^덕분에 낭손논어 마누리 했던거 새록새록해요~
      이번 글 쓰면서 샘께 새삼 고마웠어요 ^^

  • 2020-06-24 13:59

    동학이라고 해서
    주학 친구들도 나오려나 했는디...
    학이당 친구들만 나오고
    흥! 나빴어

    몇 년 안에 키만큼 고전을 읽었다는 기린. 곧 키만큼 책을 쓸 날도 멀지 않았음을...

    • 2020-06-24 18:34

      주학도 언젠가 연재에 나올 걸...
      근데 나와도 되나...이젠 말할 수 있다 편^^

      • 2020-06-24 19:27

        헉..... 편집자의 이 치밀한 플랜...ㅋ 노라~~ 주학편은.... ㅋㅋㅋ 인터뷰 한번 할까 ㅋㅋㅋ

  • 2020-06-28 17:22

    글 잘봤어요~
    덕분에 새록새록 기억나는 시간들.
    기린샘은 든든한 친구들이 많군요.
    애쓴 만큼. 공들인 만큼. 이겠죠ㅎㅎ
    정진하시길. 응원합니다^^

  • 2020-06-28 23:40

    와아, 좋다.

  • 2020-06-29 14:27

    학이당 첫해에 문탁샘 집에 가서 해주시는 밥 먹고, 늦은 시간까지 발표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참 재밌었어요. 태어나서 처음 한 경험을 그 시절에서 참 많이 했어요. 자연계 전공 덕에 대학에서 논문도 써 본적 없고, 실험-시험만 치다 졸업해서 '발제'라는 것도 문탁에 와서 첨 알았어요. 벌써 10년 전 얘기네요. 기린샘의 글을 읽다보니 잊혀진 기억들이 되살아나요 ^^

  • 2020-06-29 22:28

    좋은 사람들 옆에서 좋은 삶을 살고 있군요~!!!!!!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산행에서 들은 말인데 글을 읽으니 더 팍 와닿네요. 좋은 동학들이 있는 문탁에 잘 붙어있고 싶네요

    • 2020-06-30 08:36

      유! 똑똑하다!!

  • 2020-06-30 17:14

    두터운 사연에 비해 글이 짧아 아쉬워요. 제 아이의 스승이신 기린샘 다음에는 길게 써주세요.

    • 2020-06-30 18:46

      ㅋ 길~게 쓸 게 있는지 곰곰 살펴보겠습니다^^ 스승이란 말을 들으니 부끄럽고만요;;;

  • 2020-07-02 19:08

    기다리다 읽어보는 재미...참 좋군요.
    학이당을 하는 그대들이 부러웠다요!
    돌이켜보니 내공쌓기 프로젝트였어요.^^
    기린은 내공이 쌓여가는거 같아요!
    문탁의 다른 많은 친구들도!
    4년의 공백으로 문탁의 새내기가 된 나는...
    이제 다시 시작이에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나는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친구들을 보며
    부럽고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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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 2020.07.09 조회 139
루틴의 ‘힘’ -나수경의 단편소설 「구르기 클럽」을 처방합니다     바닥을 칠 때,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알레르기성 피부 발진에 대한 처방을 의뢰한 ‘루틴’(닉네임)은 6년차 직장인으로, 식물학 박사이고 관련 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루틴은 삼십대 후반의 싱글이며 회사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걸어서 출근한다. 예전에는 회사 아래 음식점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귀가했으나, 자극적인 식당음식이 몸에 좋지 않은 것 같아 최근에는 집에서 저녁밥을 지어 먹는다고 한다. 퇴근 후 밥상을 차리고 치우고 정리하다보면, 노곤함이 밀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된다. 그러니까 현재 루틴은 안정된 직장이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일상생활이 가능한, 비교적 ‘건강한’ 직장인이다. 루틴의 라이프스타일은 커리어의 면에서나 워라밸의 면에서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학위를 마치고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는 지금과 달랐다. 1년차 직장인의 연봉은 높지 않았고, 학위를 따느라 보내는 기간 동안 모아둔 돈도 없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형편에 맞는 집(방?)을 보러 돌아다닐 때, 루틴의 눈에는 일찍 결혼해서 평수를 늘려가고 인테리어를 바꿔가는 친구들의 아파트가 아른거렸다. 학교에 있는 동안에는 개인공간으로 기숙사 방이면 충분했고, 일이 안 풀릴 때는 옆방의 친구들과 고민상담하며 동료의식과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 기숙사의 인프라와 커뮤니티가 빠진 루틴의 현실은 박봉의 일인가구였다. 결혼한 친구들은 각자 나이에 맞게 인생의 규모를 키워가는(남편이든 자식이든 아파트 평수든)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자신만 하향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아...
기린 2020.06.24 조회 336
공부 좀 했다    나는 공부 ‘좀’ 하는 학생이었다. 우리 집에서 사남매 중에 내가 상장을 제일 많이 받았다. 조회시간에 교단 앞에 불려 나가 상도 받아서 동네에서도 소문 좀 났었다. 그래서인가 살면서 내가 공부를 좀 한다는 자신감을 잃은 적이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부터 성적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고 당시에 학력고사 점수로 응시한 대학은 모두 떨어졌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1년짜리 기획 세미나 ‘내공프로젝트’ 모집 공지가 올라왔을 때 은근 두근거렸다. 기왕 공동체로 출근까지 하게 된 마당에 강도 높은 공부로 내공을 키울 수 있다니 출근길이 새삼 보람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공 프로젝트는 이문서당과 학이당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문서당에서는 원문강독으로 『논어』를 읽고 학이당은 중국고대사상사 세미나와 글쓰기였다. 일주일에 이틀을 꼬박 공부하는데 활용해야 했다. 『논어』를 원전으로 강독해주시는 우샘의 음성은 무거운 경전의 말씀도 편안하게 들리는 힘이 있었다. 강독을 하시다 “우리 아들 키울 때” 라시며 교육에 유용한 꿀팁이라도 전수해주시면 동학들의 호응이 급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을 강독하시면서 우리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꼼꼼하게 주석을 짚어 주실 때는 오랜 경륜의 내공이 느껴졌다.   학이당은 1년 동안 고대의 중국 사상 중 유학을 중심으로 천 년 간의 사유를 다루는 커리큘럼으로 짜져 있었다. 천년이라는 시간 감각이 없어서인지 처음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첫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난관이 시작되었다. 읽는다고 읽는데 안 읽혔다. 우리가 너무 난감해하자 문탁샘은 배경지식을 부족한가 싶어서 『십팔사략』을 봐라, 『사기』를 읽자며 계속 참고 도서를 제시했다....
관리자 2020.06.09 조회 393
                     문탁       1. 4월엔 주꾸미   “君子務本 本立道生 孝悌也者 其爲仁之本與” (『논어』, 학이)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김수경, 나은영, 이수민 풀어엮음, 『낭송 논어』, 북드라망, 35쪽)     나는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고 맛있는 걸 즐겨 찾는 편도 아니다. 수련의 결과냐 하면 전혀 그런 건 아니고 사주상 식상(食傷)에 해당하는 토(土)가 고립이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식상고립’! 쉽게 말해 타고나길 비위가 약하다는 뜻이다. 당연히 편식도 심해, 순대도 안 먹고 족발도 안 먹고 민물생선도 안 먹고 오리고기도 안 먹는다. 외국 나가서도 현지 음식을 거의 못 먹는다. 몇 년 전 친구들과 인도여행을 할 때는 매 끼니 굶다시피 했고, 작년 이탈리아 여행에서는 가져간 포트에 누룽지를 끓여서 연명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태어나서 중학교 때까지 중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나는 아스팔트 키드답게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논어』, 양화)에 아주 무지하다. 적산가옥이었던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도 화단도 꽃도 나무도 없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가장 가까운 학교 화단에 가서 봉숭아와 채송화의 실물을 보여주면서 자연 선행학습을 시킬 정도였다. 과일이든 야채든 그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나오기 전엔 그것들의 생로병사를 잘 모른다. 어떤 모습으로 싹을 틔우고 어떻게 자라서 언제 수확을 하게 되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강화도의 모 공동체를...
새털 2020.05.30 조회 275
Nobody or Somebody,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진단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감자탕집에는 사람이 미어터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가정에서는 매끼니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주어졌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집밥을 해먹기도 하고, 편의점이나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기도 했다. 또는 오늘은 짜장, 내일은 치킨을 주문하는 ‘배달의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아니라도 가족끼리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적어도 5월 첫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들어간 감자탕집은 외식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줄어든 재수학원 강사 자룡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 자룡의 지병에 대한 처방을 의뢰받은 나와 내가 끌고 나온 친구, 흡사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 네 사람은 그날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감자탕중자 냄비를 올려놓고 마주앉았다.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 하는 동안 게임, 마술, 인형 뽑기 등등 소일거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주문한 사이다 캔이 정답게 올라와 있었다. 자룡이 의뢰한 지병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그날의 상황을 보라. 이건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누가 봐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는 의욕으로 넘치는 ‘낮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은 ‘페이크’이고 자룡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고민, 갈등, 번뇌 등등의 애로사항이 따로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이 자룡을...
기린 2020.05.13 조회 367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을...
새털 2020.04.27 조회 320
치매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윤이형의 단편소설 「루카」를 처방합니다       y의 ‘깜박깜박’, 건망증인가 치매인가 -나 치매인가 봐. y가 이렇게 말했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꾸했다. 워낙 뜬금없고 엉뚱한 y의 생각에 대부분 ‘내성’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걸 깜박하고 세탁소에 다녀와서 냄비바닥을 홀라당 태워먹었다는 y의 하소연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한두 번쯤 겪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순식간에 ‘건망증 배틀’이 되었다.   -냉장고 문 열고 한참 있어. 뭘 꺼내려 했나 까먹어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 꺼내는 걸 깜박하고 왔어. 나중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더라. 수시로 찾아 헤매는 핸드폰과 자동차열쇠에 대한 원망,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를 찾지 못해 머리가 하얗게 되었던 순간, 고유명사를 까먹고 ‘그거 그거 그거’하며 버벅거렸던 답답함 등. 40대가 넘은 중년인 우리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들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나이 먹으니 ‘빨간색이 좋더라’ ‘자꾸 꽃 사진을 찍게 되더라’ 하는 취향의 변화처럼, 나이 먹으니 ‘자꾸 깜박깜박하게 되더라’는 일상적인 습관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 강사를 하는 나는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거의 외운 학생들의 이름을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까먹는다. 강의실 복도나 교내매점에서 학생과 마주치면 ‘아무개야’라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잘 지내지?”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출석부에 올라있는 이름들은 비슷비슷해서 ‘서현, 나현, 세현, 세희……’ 잘못 발음하기 쉬운데, 간혹 잘못 부르면 학생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처럼 상처 받았다. 그래서 매번 출석부를...
관리자 2020.04.24 조회 395
문탁   1.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얼마 전이었다. 날이 완연히 따뜻해지자 <인문약방> 등산동아리 친구들의 등산점퍼가 가벼워지고 컬러풀해졌다. 나만 여전히 검정색 겨울패딩 차림. 어, 나도 어딘가 적당한 등산점퍼가 있지 않을까? 옷장을 뒤졌는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카디건이거나 야상점퍼를 입고 산행을 하긴 좀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등산 몇 번을 위해서 옷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 봄 점퍼에 생각이 미쳤고 득달같이 어머니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색깔도 두께도 스타일도 등산용으로 딱 맞춤한 옷을 찾아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찐’분홍 점퍼로 몇 년 전 눈썰미 좋은 며느리가 사다드린 옷이다.   내친김에 나는 어머니 옷들 중에 내가 입을 수 있는 쓸 만한 게 더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옷장 안은 수십년 된 빈티지의상들로 가득했다. 소매 끝이 나달나달해졌지만 유난히 아끼시던 붉은 색 체크무늬 겨울 모직 반코트, 여름철 한, 두 번 밖에 입지 않지만 그걸 위해 정성 드려 풀을 먹여 손질해놓던 모시 스리피스, 입으실 때마다 똥배를 한탄하며 다이어트를 다짐하곤 하시던 패션 바지들...지금 당장 그래니 룩으로 재활용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물론 신상들도 제법 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그것들의 사연을 대체로 알고 있다. 저 여름 원피스는 막내딸이 사가지고 왔는데 자꾸 나를 주겠다고 하셨던 것이고 (한 마디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 저 회색 벙거지 모자는 손주 녀석이 할머니 생신선물로 드린 건데 엄청 맘에...
새털 2020.04.16 조회 143
  디스크 질환에는 시리얼 상자를 덧댄 스냅사진을 -장류진의 단편소설 「탐페레 공항」을 처방합니다      졸업 선물로 허리 디스크가 왔다   우리집 큰딸 소영이는 요즘 바쁘다. 어제는 국제학생증을 발급받기 위해 재학증명서를 출력하더니, 오늘은 친구에게 캐리어를 빌려왔다. 내일은 병원에 들러 응급시 쓸 수 있는 진통제를 처방받는다고 하고, 며칠 내로 은행에 들려 환전을 할 계획이란다. 겨울방학 동안 살을 빼서 슬림한 모습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비롯해서 여행지에서 읽을 책 몇 권을 골라놓는 센스까지 빠트리지 않으며 착실히 여행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지난 가을 학기가 시작될 때 소영이는 충동적으로 왕복유럽항공권을 끊었다. 이번 겨울이 대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인데, 4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계절학기 수업으로 방학을 보냈다는 사실이 문득 억울하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 달쯤 외국에서 생활하는 이벤트를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대학생다운 감성이었다. 이때는 60만원짜리 저가항공권을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그런데 항공권을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설명회에 다녀오게 되면서 소영이의 가을 학기는 순식간에 ‘취준모드’로 전환되었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서류 접수를 위해 벼락치기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적성검사 문제 유형을 익히고, 면접스터디에 합류했다. 주말에는 공인영어점수를 받기 위해 시험을 보러 갔고, 그 사이 낀 중간고사도 대충 해치웠다. 면접을 위해 백화점에서 정장바지를 사고 친구에게 구두를 빌려오며 소영이는 사원증을 목에 건 자신의 모습을 그려봤을 것이다. 아마도 오피스드라마에 나오는...
문탁 2020.03.21 조회 298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알마, p31)       1.엄마의 정신은 어디로 외출했을까?     6개월 전, 2차 부상에 대한 병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퇴원시킨 가장 큰 이유는 ‘섬망’ 때문이었다. 오후만 되면 ‘집으로 가자’를 외치는 어머니를 계속 병원에 둘 수는 없었다. 2차 부상이냐? 섬망이냐? 거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수준의 선택 앞에서 난 결국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 하여, 섬망이 사라졌냐고? 결론을 먼저 말하면 섬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2차 부상까지 당하셨다. 특히 2번 요추 압박골절에 이어진 1번 요추 골절은, 어머니도 나도 간병인도 그 누구도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진 것이어서 더 황당했다. 넘어진 적도 부딪힌 적도 없다는 나의 말에 의사는 심상하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노인들은 기침하다가도 부러져요. 흔한 일이예요” (그런데 왜 어머니의  6개월 입원기간, 4군데의 병원에서 어떤 의사도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주지 않았지? 쩝!)       어쨌든 척추 뼈가 두 개나 부러지고 그 뼈들이 다시 아무렇게나 붙어서 (혹은 여전히 덜 붙어서) 꼬부랑 할머니처럼 허리가 약간 구부러지게 된 어머니는, 집에 오신 이후에도 수시로 ‘집으로 가자’를 외치셨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교회 성가대 애들 밥을 먹여야 하니 밥을 넉넉히 하라고도 하시고, 당신이 제일 사랑하는...
문탁 2019.09.19 조회 415
엄마를 퇴원시킨 지 딱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나는, 음, 지구를 떠나고 싶다.     1. 지난 일주일 동안 난, “엄마, 집에 와서 좋지?” 라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엄마와 눈을 맞추며 애교를 피우고, 전기밥통이나 세탁기 쓰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일일이 일을 가르치고, 엄마가 간병인 아주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해서 차단하고, 간병인 아줌마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감정노동을 하고, 집에서 삼시세끼를 찍느라 종종 걸음을 치고,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그걸 널고 개고, 하루에도 서너번씩 쓰레기를 버리러 수거장에 나갔다 오고 (그 사이, 잠시 망설인다. 병원에서 기저귀 쓰레기는 따로 수거를 했는데, 집에서는 그냥 일반쓰레기로 버려도 될까, 라면서), 엄마를 보러 온 온갖 친척, 친지들을 상대하고, 사이사이 장을 봐서 냉장고를 채워 넣고, 하루 두 번 엄마의 간식을 미리 챙겨놓고, 엄마의 병원 서류를 정리하고 입원비를 계산해서 엑셀로 만들어 동생들과 공유하고, 엄마의 똥을 살피고 통증지수를 가늠하여 체크리스트에 적고, 무슨 서방정, 서방정, 서방정들로 점철된 약을 분별하여 하루에 29개나 되는 약을 약통에 담고, 매일 같은 시간에 하루는 오른쪽, 하루는 왼쪽에 포스테오 주사를 놓는다. (그걸 위해 알람을 다시 맞춰 놓았다. 동은에 대한 ‘감시알람’^^이 끝나자마자 ‘포스테오 알람’이 켜졌다^^) 발바닥엔 불이 났고 입안은 다 곪아 터졌다.       2. 엄마를 퇴원시켰다고 하니까 다들 좀 회복되신거냐구 묻는다. 글쎄, 회복이란 무엇일까? 회복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허리골절이니 허리뼈가 붙는 것? 아니면 심각한 통증이 완화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