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처방전>2회 치매걱정편

새털
2020-04-2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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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윤이형의 단편소설 「루카」를 처방합니다

 

 

 

y깜박깜박’, 건망증인가 치매인가

-나 치매인가 봐.

y가 이렇게 말했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꾸했다. 워낙 뜬금없고 엉뚱한 y의 생각에 대부분 ‘내성’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걸 깜박하고 세탁소에 다녀와서 냄비바닥을 홀라당 태워먹었다는 y의 하소연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한두 번쯤 겪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순식간에 ‘건망증 배틀’이 되었다.

 

-냉장고 문 열고 한참 있어. 뭘 꺼내려 했나 까먹어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 꺼내는 걸 깜박하고 왔어. 나중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더라.

수시로 찾아 헤매는 핸드폰과 자동차열쇠에 대한 원망,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를 찾지 못해 머리가 하얗게 되었던 순간, 고유명사를 까먹고 ‘그거 그거 그거’하며 버벅거렸던 답답함 등. 40대가 넘은 중년인 우리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들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나이 먹으니 ‘빨간색이 좋더라’ ‘자꾸 꽃 사진을 찍게 되더라’ 하는 취향의 변화처럼, 나이 먹으니 ‘자꾸 깜박깜박하게 되더라’는 일상적인 습관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 강사를 하는 나는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거의 외운 학생들의 이름을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까먹는다. 강의실 복도나 교내매점에서 학생과 마주치면 ‘아무개야’라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잘 지내지?”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출석부에 올라있는 이름들은 비슷비슷해서 ‘서현, 나현, 세현, 세희……’ 잘못 발음하기 쉬운데, 간혹 잘못 부르면 학생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처럼 상처 받았다. 그래서 매번 출석부를 다시 확인하고 혀에 힘을 줘서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름에 대한 ‘강박’ 때문인지, 학기가 지나서 학생들을 만나면 그 학생이 무슨 학과이고 기말에세이로 무슨 글을 썼는지도 기억이 나는데 이름만 생각나지 않는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것은 선택적 기억상실인가?

 

-또 냄비 태웠어. 집에 딸이 혼자 있다 놀랐다니까. 집안이 연기로 꽉 차서.

또 다시 냄비를 태워먹은 이야기를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y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던 환절기라서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인지, 혹은 다른 질병이 생긴 것은 아닌지 병원을 다니고 있다며 y는 한동안 외출을 자제했다. 갱년기증상으로 조기치매가 온 것이 아닌지 y의 걱정은 조금 더 심각해졌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y와 나는 나이가 한 살 차이다. 내가 학기마다 학생들의 이름을 헷갈려 하면서도 치매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 또래인 y도 치매일 리 없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그보다는 내가 그렇듯이 기억해야 하고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한 두 개쯤 빠트리는 것이 생길 수 있다고 보았다. 몇 년 사이 y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기르던 앵무새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 가족 모두 깊은 슬픔에 빠졌는데, 특히 남편이 힘들어해서 y는 여행도 가고 남편과 같이 시간을 보내려 애썼다. 그리고 따로 사는 시어머니가 신장투석을 시작해서 매주 한 번씩 병원으로 모시고 다녔다. 분당과 서울을 오가는 장거리 운전의 피로도 y의 건망증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또 y가 말끝마다 입에 달고 사는 외동딸이 그해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새로 알게 된 학부모들과의 관계나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아이 못지않게 y에게도 가중되었을 것이다. 나와 함께 나가는 모임에서도 y는 하던 일을 중간에 그만두게 되는 갈등과 불화를 겪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y가 뭔가를 깜박깜박 잊어버린다는 것이 ‘문제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는 y가 요즘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져 마음고생이 늘었겠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어림짐작과 진단이야말로 ‘절친의 견적’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y가 함께 보낸 세월도 어느 새 십여 년이다. 그런데 y의 일상을 훤히 꿰고 있는 것처럼 ‘아는 척’을 하고 나니……어쩐지 내 마음이 의심스러워졌다. 나는 정말 y를 잘 알고 있을까?

 

 

 

 

우정에 가는 소리, 친구인가, 이웃인가, 남인가

y는 ‘치매인가 봐’ ‘공부머리가 없어’처럼 자신을 단정 짓는 말들을 툭툭 던질 뿐, 요즘 자신의 심사가 어떤지 그 속내를 시시콜콜 말하지는 않는다. 나와 한 살 차이인데도, y와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결혼을 일찍 해서 이미 아이들이 대학생인 나와 달리 y는 결혼도 늦고 아이도 늦게 낳았다. 나와 y의 출산과 양육에 대한 경험은 아이들의 나이 차이만큼 크다. 서른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어떻게든 경력을 이어가려는 나와 달리 y는 유학을 다녀와서 MBA 학위가 있는데도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한때는 꽤 이름이 알려진 홍보회사에 다녔고 진보정당에서도 일을 했다는 y에게서 ‘경력단절’을 아쉬워하는 소리를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근 3년 동안 y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번다한 일주일의 스케줄 가운데 y와 함께 하는 세미나는 나에게 우선순위 1위였다. 우리는 매주 하루는 같이 세미나를 하고, 수시로 세미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에세이를 쓸 때는 한밤중에도 서로 ‘톡’을 날렸다. 우리는 만나서 스피노자의 철학이니 이반 일리치의 사상이니……하는 책 속의 말만 떠들어댄 것일까?

 

아주 사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엄마들이다. 우리 중엔 동화를 쓰는 사람도 있고,

번역을 하는 사람도, 외주 편집자도, 프리랜서 웹 다자이너도, 패션지 자유기고가도 있다.

유명인은 없지만 다들 쓰는 일에선 한 가락씩은 한다. 망해가고 있다고 알려진 한국 출판계 최후의 성실한 독자들이며,

팬들이며, 독설 넘치는 비평가들이기도 하다. (중략)

우리는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토요일마다 빈집에서 아이와 마주앉아 있는 사람들이다.

아이와 컬러링북을 칠하거나, 와서 김장을 하라는 시어머니의 급한 호출을 받고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유아차라도 끌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러면 ‘맘충’ 취급을 받지 않겠느냐고 볼멘소리로 대답하면서도,

인파 속에서 밀리고 밟히다 아이가 혹시 다칠까 겁내는 마음이,

차가운 초겨울 바람이 아이의 볼을 꽁꽁 얼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실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나약한 핑계이고 열등감이 아닐까,

나는 실은 전혀 정치적 존재가 못 되는 게 아닐까, 자

기검열을 하다 마음을 다친 채 새벽 두시에 책상 앞에서 맥주 캔을 따는 사람들이다.

(윤이형, 「작은마음동호회」, 9~10쪽)

 

소설가 윤이형의 최근 작품들은 나와 y처럼 함께 공부하거나, 인터넷커뮤니티 활동을 하거나, 페미니즘운동을 벌이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최근작 『붕대감기』(마음산책, 2020년)에는 한 명의 남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기혼과 비혼으로 구분지어지는 고등학교 동창생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같은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의 친목, 미러링과 탈코르셋에 동의하는 헤어디자이너의 복잡한 심경, 교내 미투사건에 연루된 교수와 학생의 연대, 회사 선후배에서 생활 동반자로 관계의 전환을 모색하는 중년의 독신들 등. 『붕대감기』는 여자들의 이야기로 조각 맞추기를 한 모자이크화이다. 윤이형의 소설은 남자 대 여자, 이성애 대 동성애, 전업주부 대 워킹맘처럼 선명히 드러나는 대립보다는 그러한 분할선 위에 그어진 미세한 균열에 집중하고 있다. 그 미세한 균열에서 들려오는, 들릴락 말락 하는 작은 소리들은 윤이형의 신경줄을 곤두서게 한다. 그래서 윤이형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동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금’이 가는 균열의 순간을 불편하게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한 작품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작은마음동호회’는 윤이형의 태도와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우리’ 사이에 그어지고 있는 관계의 ‘실금’들을 대범하게 넘기지도, 문제를 명료하게 또박또박 말하지 못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넘길 수도 없는 ‘소심한’ 사람들의 마음의 요철(凹凸)을 핀셋으로 골라낸 듯 ‘콕’ 짚어준다. 윤이형은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게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여자들의 우정을 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윤이형의 우정은 다음과 같다. 같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편협함’과 ‘단호함’에 꾸준히 균열을 내는 일이다.

 

말을 할 때마다 상처가 생기지만 그래도 말을 건넨다. 화해나 행복이나 위로를 위해서는 아니다.

나는 우리가 왜 함께할 수 없었는지 정확히 알고 싶다. 우리가 서로의 어떤 부분에 무지했고 어떤 실수들을 했는지,

어떻게 해야 같은 오해와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 자세히 이야기 나누고 부끄럽게 적어두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함께하는 꿈을 꾸는 사람들은 우리가 마지막이 아닐 테니까.

나를 닮은 누군가가 너를 닮은 누군가를 언젠가 만나는 상상을 한다.

다르다는 것, 잘 알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그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영원히 등돌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어떤 시간들을 묶었다. 이 부서진 말들, 아직도 답을 모르는 질문들이 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윤이형, 『작은마음동호회』, ‘작가의 말’ 중에서)

 

 

 

 

y의 치매 걱정은 문득 나에게 질문을 가져왔다. 나는 y를 잘 알고 있을까? 모르는 것일까? 나는 y의 친구인가, 이웃인가, 남인가? 이 곤란한 질문을 앞에 두고 나는 y와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고 보면 함께 중년의 시간을 공부로 보내고 있다는 각별한 동료의식만큼,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에티튜드’도 우리의 관계를 유지하는 안전거리였다.

 

 

y와 대화스토리의 빈틈들

-요즘 신경 많이 쓰는 일이 있었어?

-아니.

-그때 일을 중간에 그만두게 됐을 때 속 많이 상했지? 사람들의 쑥덕대는 소리도 듣기 싫고.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어. 내가 또 이러쿵저러쿵 수다 떠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그때 에세이 쓰면서 마음이 많이 정리됐지.

그랬다. 공부를 좋아하는지 열심히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y는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에세이 속에서 풀어내려 애를 썼다. 공부가 모자라 시원스럽게 정리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러고 나면 한동안 몰두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는 후련하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하는 거구나! 나는 y가 뭔가 성취욕이 없어 보여서 남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내가 공부를 잘 했으면 벌써 그만뒀을 걸. 뭐가 뭔지 몰라서 계속하고 있는 거야.

 

세미나와 관련된 이야기만 하다가 그렇지 않은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하려니 어색했지만, y와의 대화는 나쁘지 않았다. 나와 알고 지낸 십년 이전의 y는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친구들이 있는지, 직장을 그만둘 때 괴롭지는 않았는지 등등 긴 ‘호구조사’의 시간을 가졌다. 진보정당에서 공공보육정책을 마련하는 일을 했는데, 정작 자신이 아이를 낳아서 키우려니 공공보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y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y는 무엇이든 명확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지만, 스스로 수긍이 가면 누구보다도 실행력이 뛰어났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알고 있는 y에 대한 정보에는 스토리텔링이 빠진 이력과 스펙만 입력되어 있었다.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 직장, 집안일, 공부로 치여 사느라, 나와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증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대충대충’ ‘건성건성’ 알아도 유지될 수 있는 관계를 ‘문제’라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겨울 y는 바빴다. 매일 매일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해치우느라 정신 바짝 차리고 지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느라 ‘치매 걱정’은 쏙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바쁜 일정 사이사이 우리는 한두 번 더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당시 읽고 있던 윤이형의 소설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y는 유학시절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불운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더 다가가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했고, 공부한답시고 멀어진 친구들을 그리워했다. y는 인간관계에서 ‘안달복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매일 매일 해치워야 할 일이 많아진 지난 겨울의 스케줄은 y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였다. 바쁜 y를 붙잡고 가끔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문득문득 중년 여자들의 우정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뾰족한 결론은 없다. 그런데 아주 작은 변화는 있다. 내가 내 또래인 y가 나와 비슷하리라 짐작하고 넘어갔던 일들에 대해 y는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할수록 ‘엉뚱하다’ 생각했던 y의 캐릭터가 조금은 이해됐다. 물론 이야기를 나눈 시간만큼 정비례로 이해도가 높아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반비례로 불일치하는 것도 아니니 낙담할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해와 오해 언저리를 오가며 서로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루카, 나는 너에게 네가 왜 루카인지 묻지 않았다.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그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 역시 내가 왜 딸기인지는 묻지 않았으니까. 나는 이제 너와 함께가 아니고 여전히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 살아간다.

어떤 일들은 그저 어쩔 수 없고 어떤 일들은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으며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는 함께 살 수 없다.

그저. 그럴 수 없다. 삶이라는 이름의 그 완고한 종교가 주는 믿음 외에 내가 다른 무언가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믿음을 지켰고 너를 잃었다. 그 사실이 가끔 나를 찌르지만 나는 대체로 평안하다.

그런데 루카, 너는 어떠니. 너는 그곳에서 평안하니. 루카였고 예성이었던 너는.

(윤이형, 「루카」, 『러브 레블리카』, 150쪽)

 

 

 

 

「루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사람, 루카의 연인이었던 딸기와 루카의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연애의 실패담이다. 가장 루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자부하는 두 사람에게 루카의 상실은 헤아릴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긴다. 그런데 나는 이 새드엔딩이 해피엔딩보다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루카의 상실을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공백’으로 비워둠으로써 이들의 연애담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아직 모르는 y의 이야기와 그 공백도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십년간 같이 공부한 y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러나 모른다는 사실은 ‘끝’이 아니다. 그 공백과 균열의 틈새로 우리의 우정이 물들어가기를 기대해본다. 최근 문학상 운영과 관련해서 ‘절필’을 선언한 윤이형 작가에게도 나의 우정이 전달되기를 기대해본다. 나는 독자로서 우리의 ‘편협함’과 ‘단호함’에 균열을 만드는 윤이형의 소설이 계속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치매로 시작했지만 우정에 대한 처방전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사족. 치매를 걱정하는 y를 위해 책을 몇 권 읽어봤다. y가 기억해둘 만한 몇 가지 메모를 남긴다.

첫째, 수험생에게 좋다는 음식을 먹도록 해. 두뇌 회전과 뇌세포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 수험생뿐 아니라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음식이더라. 카레, 견과류, 식물성 단백질 그 중에서도 쥐눈이콩이 특히 좋대.

둘째, 치매와의 전쟁은 성인병과의 전쟁과도 같아.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등은 혈관성 치매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성인병을 예방하는 식단(쉽게 말해서 맵고 짠 음식을 피하는)과 규칙적인 운동을 생활화하도록 해.

셋째, 독서, 낭송, 필사와 같은 두뇌활동을 규칙적으로 하라는데, 이건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 늙어서까지 계속 같이 하자.

마지막으로, 증상이 의심스러울 때는 조기 진단을 받도록 하라는데, 요즘 이런 시스템은 잘 되어 있대. 걱정되면 검사 한 번 받아 봐도 좋을 것 같아.

 

내가 읽은 책에는 “치매, 알고 미리 대비하면 예방/극복할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아하! 치매 전문가가 들려주는 99가지 치매 이야기』, 부산울산경남치매학회, 2017년), 이 ‘예방과 극복’은 치매에 안 걸리거나 완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조기에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면 치매의 진행속도를 늦출 수 있고, 환자와 가족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하면 삶의 질이 나아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초기 증상을 무시해서 병을 키우거나, 치매환자의 이상행동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온 가족이 ‘멘붕’에 빠지는 최악의 상태를 피하자는 메시지였다.

 

y의 치매 걱정 때문에 찾아봤지만, 나는 그 책들을 통해 나도 치매로부터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치매 환자가 늘고 있는데, 선진국에 비해 4배의 속도라고 한다. 이런 속도로 가면 2024년에는 치매 환자가 1백만 명이 된다고 한다(안인숙, 『치매, 알면 길이 보인다』, 미다스북스, 2019년) 그러니까 우리의 미래는 치매 환자이거나 치매 환자의 보호자로 살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치매는 빠른 속도로 우리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y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댓글 12
  • 2020-04-27 15:57

    저도 요즘 X와 S와 Z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글이 가슴으로 훅~들어오네요. 관계에서 너무 가까이 가지않으려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배려인지 무관심인지 저도 헷갈리더라고요. 처방해준 책이 읽고싶어져요.

    근데, 샘!
    우리는 알콜성치매 걱정해야할듯~
    적절한양의 술을 마시는 기술이 필요해요. ㅎㅎ

    저도 ATM기에 출금신청 해놓고 그냥와버려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받았다는......ㅠㅠ

    • 2020-04-27 16:33

      맞아요...알콜성치매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적절하게 잘 마시는 신공을 연구해봐야지요!!
      그럴려면 교보재가 필요해서...참...

  • 2020-04-28 20:57

    팟방으로 들어도 좋고
    글로 읽어도 좋아요
    소개해주신 책들 다 읽어보고 싶은데 자꾸 까먹어요 ㅎㅎ

    • 2020-04-28 21:29

      잎사귀양님 팬서비스를 준비해볼게요^^
      감사합니다!!

  • 2020-04-29 11:18

    전 사실 팟케스트의 경우, 집중해서 잘 안 듣게 되더라구요.
    뭘 하면서 들리기는 하는데, 듣고 있지는 않게 되는 듯.
    그런데, 글은 어쨋든 눈에 집중해서 읽어야 하거든요.
    잘 읽었어요.
    답이 없는 질문들과 마주하기. 새털샘의 책에서도 그렇게 느껴져요.

  • 2020-04-30 10:09

    관계에서 빈틈을 인정하지 못했던 지난 날의 내가 생각나네요.

    "루카, 나는 너에게 네가 왜 루카인지 묻지 않았다.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그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 역시 내가 왜 딸기인지는 묻지 않았으니까. 나는 이제 너와 함께가 아니고 여전히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 살아간다."

    딸기처럼 루카처럼 살고 싶네요...

    y는 처음 봤을 때랑 지금이랑 다른데
    그녀가 달라진건지 내가 달라진건지 모르겠네요. ^^
    암튼 요즘 y가 보기 좋습디다..

  • 2020-04-30 20:32

    전 주로 월든에서 혼자 작업할 때 인문약방의 팟캐스트를 듣습니다.
    오늘도 들었는데 귀에 쏙쏙 너무 잘 들어오더라구요.
    글로 읽을 때보다 더 좋았습니다.
    앗, 청량리샘이랑 반대네요 ㅋㅋㅋ

    • 2020-05-03 17:04

      쓰기 읽기 듣기...셋이 다 다른 맛이 있어요.
      저도 <문학처방전>을 준비하며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 2020-05-05 17:08

    글을 읽고 y가 누구인지 궁금했고..... 윤이형의 책이 보고 싶은 맘이 들어서 살짝 설렜고....

    그러다 이 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겠지.. 잠시 슬퍼졌어요. 하지만.... 댓글을 읽고 새털샘이랑 콩땅이랑 술 한 잔 하면 좋겠구나... 싶었죠!

    가까운 누군가를 두고... 이런 글로 전하는 마음이 ... 그냥 좋군요!! ^^

    • 2020-05-05 19:50

      곰도리편도 하나 써야겠네요. g에 대해서...

  • 2020-05-06 01:46

    편협함과 단호함에 균열을 낸다는 것이 무엇일까? ... 생각해봅니다.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 2020-05-06 08:33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이 연애에 한정되지 않은 인생사의 직관이란 생각이 들어요.
      편협함과 단호함도 그것의 또 다른 버전으로 느껴지고.
      각자 모두 잘 살고 싶으니까....우리는 뭔가를 하게 되지 않을까?
      잽잽잽 어퍼컷을 날리며....

글쓰기
새털 2020.05.30 조회 55
Nobody or Somebody,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다 -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문학동네, 2019년)을 처방합니다       진단의 어려움, 무엇이 문제인가    코로나19의 여파로 감자탕집에는 사람이 미어터졌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과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지면서, 각 가정에서는 매끼니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 주어졌다. 가족들이 돌아가며 집밥을 해먹기도 하고, 편의점이나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간편식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때우기도 했다. 또는 오늘은 짜장, 내일은 치킨을 주문하는 ‘배달의 민족’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주말이 아니라도 가족끼리 외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적어도 5월 첫 번째 월요일 점심시간에 우리가 들어간 감자탕집은 외식 나온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코로나로 수업이 줄어든 재수학원 강사 자룡과 그의 초등학생 아들, 자룡의 지병에 대한 처방을 의뢰받은 나와 내가 끌고 나온 친구, 흡사 가족처럼 보이는 우리 네 사람은 그날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감자탕중자 냄비를 올려놓고 마주앉았다.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과 맥주 한 병, 그리고 학교에 가지 못 하는 동안 게임, 마술, 인형 뽑기 등등 소일거리 찾기에 매진하고 있는 초등학생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주문한 사이다 캔이 정답게 올라와 있었다. 자룡이 의뢰한 지병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데, 그날의 상황을 보라. 이건 알코올 의존증을 해결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누가 봐도 한 번 제대로 마셔보자는 의욕으로 넘치는 ‘낮술’의 현장이었다. 나는 알코올 의존증은 ‘페이크’이고 자룡이 해결하고 싶은 다른 고민, 갈등, 번뇌 등등의 애로사항이 따로 있으리라 짐작했다. 무엇이 자룡을...
기린 2020.05.13 조회 297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을...
새털 2020.04.27 조회 292
치매를 걱정하는 친구에게 -윤이형의 단편소설 「루카」를 처방합니다       y의 ‘깜박깜박’, 건망증인가 치매인가 -나 치매인가 봐. y가 이렇게 말했을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건성으로 대꾸했다. 워낙 뜬금없고 엉뚱한 y의 생각에 대부분 ‘내성’이 생겨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은 걸 깜박하고 세탁소에 다녀와서 냄비바닥을 홀라당 태워먹었다는 y의 하소연은 사실 우리 대부분이 한두 번쯤 겪은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자리는 순식간에 ‘건망증 배틀’이 되었다.   -냉장고 문 열고 한참 있어. 뭘 꺼내려 했나 까먹어서. -현금인출기 앞에서 돈 꺼내는 걸 깜박하고 왔어. 나중에 은행에서 전화가 오더라. 수시로 찾아 헤매는 핸드폰과 자동차열쇠에 대한 원망, 쇼핑몰 주차장에서 차를 찾지 못해 머리가 하얗게 되었던 순간, 고유명사를 까먹고 ‘그거 그거 그거’하며 버벅거렸던 답답함 등. 40대가 넘은 중년인 우리들에게 이런 에피소드들은 나이 먹어가는 것을 실감하는 액세서리 같은 것이다. 나이 먹으니 ‘빨간색이 좋더라’ ‘자꾸 꽃 사진을 찍게 되더라’ 하는 취향의 변화처럼, 나이 먹으니 ‘자꾸 깜박깜박하게 되더라’는 일상적인 습관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 강사를 하는 나는 한 학기가 끝나갈 때쯤 거의 외운 학생들의 이름을 다음 학기가 시작되면 까먹는다. 강의실 복도나 교내매점에서 학생과 마주치면 ‘아무개야’라고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잘 지내지?”라고 말을 얼버무린다. 출석부에 올라있는 이름들은 비슷비슷해서 ‘서현, 나현, 세현, 세희……’ 잘못 발음하기 쉬운데, 간혹 잘못 부르면 학생들은 마치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 것처럼 상처 받았다. 그래서 매번 출석부를...
관리자 2020.04.24 조회 342
문탁   1.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얼마 전이었다. 날이 완연히 따뜻해지자 <인문약방> 등산동아리 친구들의 등산점퍼가 가벼워지고 컬러풀해졌다. 나만 여전히 검정색 겨울패딩 차림. 어, 나도 어딘가 적당한 등산점퍼가 있지 않을까? 옷장을 뒤졌는데 마땅한 것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카디건이거나 야상점퍼를 입고 산행을 하긴 좀 부담스럽다. 어떻게 해야 하지? 등산 몇 번을 위해서 옷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다 갑자기 어머니 봄 점퍼에 생각이 미쳤고 득달같이 어머니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색깔도 두께도 스타일도 등산용으로 딱 맞춤한 옷을 찾아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찐’분홍 점퍼로 몇 년 전 눈썰미 좋은 며느리가 사다드린 옷이다.   내친김에 나는 어머니 옷들 중에 내가 입을 수 있는 쓸 만한 게 더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옷장 안은 수십년 된 빈티지의상들로 가득했다. 소매 끝이 나달나달해졌지만 유난히 아끼시던 붉은 색 체크무늬 겨울 모직 반코트, 여름철 한, 두 번 밖에 입지 않지만 그걸 위해 정성 드려 풀을 먹여 손질해놓던 모시 스리피스, 입으실 때마다 똥배를 한탄하며 다이어트를 다짐하곤 하시던 패션 바지들...지금 당장 그래니 룩으로 재활용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물론 신상들도 제법 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사는 나는 그것들의 사연을 대체로 알고 있다. 저 여름 원피스는 막내딸이 사가지고 왔는데 자꾸 나를 주겠다고 하셨던 것이고 (한 마디로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 저 회색 벙거지 모자는 손주 녀석이 할머니 생신선물로 드린 건데 엄청 맘에...
새털 2020.04.16 조회 137
  디스크 질환에는 시리얼 상자를 덧댄 스냅사진을 -장류진의 단편소설 「탐페레 공항」을 처방합니다      졸업 선물로 허리 디스크가 왔다   우리집 큰딸 소영이는 요즘 바쁘다. 어제는 국제학생증을 발급받기 위해 재학증명서를 출력하더니, 오늘은 친구에게 캐리어를 빌려왔다. 내일은 병원에 들러 응급시 쓸 수 있는 진통제를 처방받는다고 하고, 며칠 내로 은행에 들려 환전을 할 계획이란다. 겨울방학 동안 살을 빼서 슬림한 모습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비롯해서 여행지에서 읽을 책 몇 권을 골라놓는 센스까지 빠트리지 않으며 착실히 여행준비를 마쳐가고 있다.   지난 가을 학기가 시작될 때 소영이는 충동적으로 왕복유럽항공권을 끊었다. 이번 겨울이 대학생으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인데, 4년 동안 아르바이트와 계절학기 수업으로 방학을 보냈다는 사실이 문득 억울하고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한 달쯤 외국에서 생활하는 이벤트를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대학생다운 감성이었다. 이때는 60만원짜리 저가항공권을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그런데 항공권을 구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설명회에 다녀오게 되면서 소영이의 가을 학기는 순식간에 ‘취준모드’로 전환되었다.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서류 접수를 위해 벼락치기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적성검사 문제 유형을 익히고, 면접스터디에 합류했다. 주말에는 공인영어점수를 받기 위해 시험을 보러 갔고, 그 사이 낀 중간고사도 대충 해치웠다. 면접을 위해 백화점에서 정장바지를 사고 친구에게 구두를 빌려오며 소영이는 사원증을 목에 건 자신의 모습을 그려봤을 것이다. 아마도 오피스드라마에 나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