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 야식 안먹기 혹은 잘먹기 4회

새털
2020-06-01 22:52
232

공사를 구분해보려 했으나....

 

 

음주의 체계, 공적 또는 사적

 

 

5월엔 두 번의 행사가 있었다. 4개월에 한 번 열리는 문탁워크숍이 있었고,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공식적인 행사 이후에는 공식적인 뒷풀이가 이어졌고, 내가 의도하지는 않은 2번의 술자리가 마련되었다. 이것을 공적 술자리라고 해보자.

 

그리고 5월엔 학교에 이틀 다녀왔다. 강의실 출석 수업은 힘들지만, 학교 앞 스터디카페에서 조별로 5명씩 학생들과 앞으로 쓰게 될 에세이에 대한 주제와 개요를 논의했다. 모처럼 출근을 하고,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고, 막히는 퇴근길을 운전해 집으로 돌아오니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은 개운했다. 내가 일하고 있다는 물리적 느낌이 들었고, 그 기분이 뿌듯했다. 그래서 기분 좋게 2번의 술자리를 집에서 가졌다. 피곤해선지 소주 반 병 마시니 졸려서 잠도 기분 좋게 들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퇴근 후 음주로 사적 술자리라 할 수 있다. 

 

 

공적인지 사적인지 헷갈리는, 낮술

 

 

5월에는 자룡과 2번의 낮술을 마셨다. 내가 매월 쓰고 있는 문학처방전에 이번 달 의뢰인이 자룡이었고, 처방을 받기 원하는 지병은 알코올의존증이었다. 난감한 의뢰였다!!! 그래도 어쨌든 진단과 처방을 해야 했기에 자룡과 2번의 낮술을 마셨다. 그리고 나는 5월 내내 자룡을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40대 중반이 남자에게 가장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 같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고, 깜냥도 생기고, 배짱도 생기는 시기가 40대 중반이다. 그래서 자룡이 자신의 애로사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나는 사실 그의 빛나는 시간들이 부러웠다. 그 빛나는 시간들을 자룡이 멋지게 펼쳐가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처방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너무 잘 살고 있다. 그렇게 마신 낮술이라선지 맛있었고 재미있었다. 이 낮술을 내가 얼마나 기대했는지는 나의 자세가 말해준다. 나는 자룡과 술을 마시러 가기 전에 의식처럼 숙취해소음료를 복용하고 간상태를 좋게 준비했다. 이런 마음의 자세가 음주를 즐기는 준비운동이 된다. 그런데 이런 술자리는 공적인가 사적인가, 일로 만든 술자리이지만 일만 했다기엔 너무 즐겨서....공사가 헷갈리는 술자리였다. 

 

 

 

은밀한 술자리

 

 

이 아귀찜은 자룡과 같이 먹기로 한 메뉴였는데, 그날 아귀찜식당이 문을 안 열어 먹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 저녁 양생세미나 메모를 앞두고, 하루 종일 <성의 역사> 4권 '아담의 원죄'와 '욕망의 주체' 사이에서 헤매던 나는 저녁나절 문탁으로 찾아온 한 사람과 드뎌 아귀찜을 먹었다. 가끔 이 사람은 저녁에 문탁으로 온다. 그 사람은 내 음주생활의 팔할은 함께 한 남편이다. 최근 나는 일주일에 2번은 문탁에서 10시까지 공부하고 귀가한다. 그 이틀 가운데 한두 번 남편과 저녁밥을 같이 먹는다. 밥을 먹고 남편은 집으로 나는 문탁 공부방으로 온다. 그러면 참 기분이 새삼스러워진다. 마치 학교 다닐 때, 도서관 앞에서 헤어지는 기분이다. 남편은 누구보다 나의 음주생활을 꿰뚫고 있는 사람이고, 나란 사람의 인생도 꿰뚫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싶다. 그래서 어느샌가 남편과의 술자리는 그닥 즐겁지 않았다. 그런데 장소를 바꾸니 좀 새로워졌다. 나도 남편의 중년의 시간들을 관찰하게 되고, 그가 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궁금해진다. 모르겠다. 이 술자리가 다시 습관으로 지겨워질지도......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가끔 생각한다.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5월에 술을 좀 많이 마셨다. 8번!!! 여기에 나는 공식적 행사 때문에 마신 2번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고, 문학처방전을 쓰기 위해 자룡과의 낮술을 마셨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결국 다 내가 좋아서 마셨다는 질타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래서 6월엔 좀 자중을 해볼까 한다. 가능할까?

 

12번의 걷기

 

 

8번이나 술을 퍼마시느나 바빴을 것 같은데, 5월에는 12번이나 걸었다. 일주일에 2~3번을 비교적 규칙적으로 걸었더니 체력이 좋아지는 기분이다. 이제 볕이 뜨거워 아침 일찍 아니면 저녁에 걸어야 하는 시기가 돌아왔다. 아침 일찍 부지런히 걷던가, 술을 퍼먹더라도 저녁에 휘청휘청 걸어봐야 할 텐데....아무래도 아침이 모양새가 좋으리라. 그래서 6월에는 눈 뜨자마자 공원으로 나가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양생이 별건가>도 어느새 4개월에 접어들었다. 이 기록이 무엇이 될까? 아직까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없었던 음주에 대한 '검열'이 진행중이다. 그래서 술을 안 마시는 방향으로 조정되는 것은 아니고, 나는 왜 술을 마시나? 술을 마시면 무엇이 좋은가? 술을 마시고 후회되는 점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댓글 2
  • 2020-06-02 08:22

    ㅋㅋㅋㅋㅋ 지난 금요일의 술 자리에 대해 그렇게 '개봉박두'를 유포하더니^^ ㅋㅋㅋ '그 분' 이었군요^^
    이건 거의 '어쨌든 술' 아닙니까? 6월에도 그 활용을 기대하겠습니다~~~

  • 2020-06-02 12:19

    새털은 금요일 밤에 문탁에 들른 내게 술냄새를 풍겨 딱걸렸다.
    "누구랑 마셨어?"
    "아~ 몰라! 비밀이야!"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더니 정말 상상 이상이네 ㅋㅋㅋ
    암튼 술을 검열한다니 발전했다고 해야하나? ㅋㅋㅋㅋㅋㅋㅋ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93
[수면장애편]10월 23일 줌게릴라 세미나 <시간의 향기> 공지
관리자 | 2023.10.16 | 조회 307
관리자 2023.10.16 307
192
[리뷰 오브 대사증후군④]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5)
자작나무 | 2023.05.24 | 조회 280
자작나무 2023.05.24 280
191
후기 [만성질환에 대한 최근의 의학적 이해]를 듣고 생각한 것들 (7)
정군 | 2023.05.23 | 조회 354
정군 2023.05.23 354
190
일리치 약국에 놀러와_ 게릴라세미나 [병든의료] 2회차 후기 (2)
정의와미소 | 2023.05.20 | 조회 199
정의와미소 2023.05.20 199
189
[리뷰 오브 대사증후군③]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5)
나래 | 2023.05.17 | 조회 327
나래 2023.05.17 327
188
[리뷰 오브 대사증후군②] 아픈 자 돌보는 자 치료하는 자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3)
블랙커피 | 2023.05.10 | 조회 275
블랙커피 2023.05.10 275
187
<일리치약국에 놀러와 5회 고혈압/당뇨/고지혈증편> 후기 (2)
김지연 | 2023.05.05 | 조회 248
김지연 2023.05.05 248
186
[리뷰 오브 대사증후군①]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7)
인디언 | 2023.05.03 | 조회 347
인디언 2023.05.03 347
185
5월 1일 줌게릴라세미나 1차시 공지
겸목 | 2023.04.25 | 조회 184
겸목 2023.04.25 184
184
[2023 인문약방 양생캠프] 드디어 일주일 후로 다가왔습니다. (필독! 최종공지) (2)
문탁 | 2022.12.31 | 조회 398
문탁 2022.12.31 398
183
12월 29일(목) 저녁 7시반 - 기린 북콘서트에 초대합니다
인문약방 | 2022.12.23 | 조회 498
인문약방 2022.12.23 498
182
2023 사주명리 강좌 - 'MBTI보다 명리학' (15)
둥글레 | 2022.12.02 | 조회 1185
둥글레 2022.12.02 1185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