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 초보등산가

동은
2020-04-28 10:08
238

 

등산은 왜 할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문탁쌤은 나에게 두 가지 제안을 하셨었다. 등산과 매일 걷기. 이 제안을 들었을 때 나에게는 반사적으로 등산에 대해서 거부감이 들었다. ‘음, 등산은 좀...’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산에 대한 경험이 많다. 나는 산 중턱에 있는 학교도 한 시간 반을 걸어 등교한 적도 있었고, 일주일동안 도보행진을 해보기도 하고 괴산에서는 하루에 산 두 봉우리를 넘고 지리산 천왕봉까지 다녀왔으니! 그런데 이렇게 많은 경험이 있더라도 나에게 등산은 여전히 지루한 일이다. 등산만 생각하면 딱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른 <등산은 왜 할까?> 가사각 떠오른다고 해야 할까? "도대체 등산은 왜 하는 걸까? 뭐하러 힘들게 높이 오를까? 어차피 내려올 걸 알면서도 뭐하러 그렇게 높이 오를까???" 이런 가사가~

 

 

 

그런데 지난 달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딸꾹질처럼 툭 ‘산에 가보면 어떨까?’라고 생각한 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뭐가 됐든 산행모임에 나가보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두려운 마음 반, 어쩐지 기대되는 마음 반. 이런 마음가짐에 반하지 않고 첫날 등산은 정말정말 힘들었다. 2주 정도 걷고 만보가 익숙해진 다리라고 생각했는데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숨이 너무 찼다. 여리디 여린 폐(?)는 마치 살갗이 벗겨져 붉은 살에 맨바람을 맞는 느낌이었다! 그 일정하고 지속적인 숨차오름이란... 내려오는 길에는 길도 잃어보고 넘어지기까지 했다. 바지에 흙을 털면서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 웃었다. 다리가 풀려서 넘어지는 일이 처음인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하산한 뒤에 생각했다. ‘다음주에 또 와야징’

 

눈에 띄는 변화들

여전히 왜 등산을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이후로 네다섯 번 정도 더 등산을 했는데 여전히 등산을 하는 이유를 모르더라도 똑같이 다음 주에 또 가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들이 생겼다. 가장 처음 말고는 이제 넘어지거나 다리가 풀리는 일은 없다. 산 위에 1리터씩 갖고 가던 물도 이제는 400ml정도만 있으면 된다. 물 마시는 요령도 생겼다. 중간중간 숨이 차서 목이 아플 때 물을 마셔주면 금방 가라앉는다. 아마 등산이 익숙해지면 이런 요령이 필요 없어질 날이 올까?

등산은 재미없는데 재미있다. 재미가 없는 건 몸을 움직이는 거고, 재미있는 건 그거 빼고 다 재밌다. 특히나 새 풀이 자라나는 봄철이면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랑 같이 오르는 것도 재미있다! 게다가 시기에 맞지 않게 날씨도 선선한 것이 등산하기 더없이 좋다. 아직 초보 등산가라서 등산이라기 보단 산보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언젠가 하게 될 풀코스 등산을 위해 체력을 기르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매주 등산동아리에 따라가고 있다.

 

만보는 어쩌려고?

사실 4월 달에는 만보를 거의 걷지 못했다. 흑흑. 그 이유는 다른 일들을 하려고 하다 보니 만보가 후순위로 밀린 탓이다. 그래도 일기는 틈틈이 썼는데 아무래도 최근 여러 일들에 치이다보니 공유할만한 내용들은 별로 없다. 그래도 짧게든 길게든 내 생각을 주절거리고 있다보면 좀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일기장에 이름이라도 지어줘야 하나 고민하다 관뒀다. 4월달에는 글을 열심히 쓰고 세미나 준비를 하고 이사하는 게 내 일상이었다. 어제 이사가 끝나면서 큰 일들은 거의 지나가고 이제 달라진 상황에 적응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이번 달에는 그나마 등산을 가면서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거나 신체의 변화를 느껴서 다행인 것 같다. 이제 나에게 만보를 걸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양생이 별건가>에서는 만보 걷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산에서 찍은 사진들을  첨부하려고 하는데 영 마땅찮다. 다음엔 산에서 사진 찍는 것도 고민해봐야겠다.

 

너무너무 좋았던 염광교회 뒷산! 주말동안 이사에 지쳐서 못갔지만 다음주부터 다시 가야지!

댓글 4
  • 2020-04-28 10:52

    그대의 관건은 '지속'!!
    '우공이산'을 보여줘~~~

  • 2020-04-28 12:15

    난 천식 땜시 등산하면 너무 힘들어도 걷는 건 괜찮은데
    일주일에 다만 몇일이라도 나랑 만보 걷기 할래?

  • 2020-04-29 22:59

    동은아~
    걸으면서 네가 '길이 넘 예쁘다'고 말할때...
    네가 이쁘더라!
    싫은거 빼고 다 좋은게 등산...맞다 ㅎㅎ
    계속 같이하자~

  • 2020-04-30 11:11

    도대체 등산을 왜하냐고?
    '그 일정하고 지속적인 숨차오름'을 느끼려고.
    그 과정을 계속하다보면 살아있음의 희열을 맛볼수 있을테니까. ㅋㅋ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93
[수면장애편]10월 23일 줌게릴라 세미나 <시간의 향기> 공지
관리자 | 2023.10.16 | 조회 325
관리자 2023.10.16 325
192
[리뷰 오브 대사증후군④]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5)
자작나무 | 2023.05.24 | 조회 292
자작나무 2023.05.24 292
191
후기 [만성질환에 대한 최근의 의학적 이해]를 듣고 생각한 것들 (7)
정군 | 2023.05.23 | 조회 375
정군 2023.05.23 375
190
일리치 약국에 놀러와_ 게릴라세미나 [병든의료] 2회차 후기 (2)
정의와미소 | 2023.05.20 | 조회 212
정의와미소 2023.05.20 212
189
[리뷰 오브 대사증후군③]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 (5)
나래 | 2023.05.17 | 조회 338
나래 2023.05.17 338
188
[리뷰 오브 대사증후군②] 아픈 자 돌보는 자 치료하는 자 모두를 위한 의료윤리 (3)
블랙커피 | 2023.05.10 | 조회 287
블랙커피 2023.05.10 287
187
<일리치약국에 놀러와 5회 고혈압/당뇨/고지혈증편> 후기 (2)
김지연 | 2023.05.05 | 조회 256
김지연 2023.05.05 256
186
[리뷰 오브 대사증후군①]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7)
인디언 | 2023.05.03 | 조회 354
인디언 2023.05.03 354
185
5월 1일 줌게릴라세미나 1차시 공지
겸목 | 2023.04.25 | 조회 200
겸목 2023.04.25 200
184
[2023 인문약방 양생캠프] 드디어 일주일 후로 다가왔습니다. (필독! 최종공지) (2)
문탁 | 2022.12.31 | 조회 424
문탁 2022.12.31 424
183
12월 29일(목) 저녁 7시반 - 기린 북콘서트에 초대합니다
인문약방 | 2022.12.23 | 조회 509
인문약방 2022.12.23 509
182
2023 사주명리 강좌 - 'MBTI보다 명리학' (15)
둥글레 | 2022.12.02 | 조회 1193
둥글레 2022.12.02 1193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