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동아리> - 1차시 : 산행 첫 날

우연
2020-03-16 21:21
368

 

 

난 산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새순이 돋아나는 봄산도 좋고 녹음이 우거진 찌는 듯한 여름산도 좋아한다. 화려한 단풍으로 갈아입는 가을 산도 나름 즐겨하며 눈보라 날리는 겨울 산도 자주 찾는다. 내가 사는 동네 바로 뒤에 산이 있음이 감사하고 시간이 허락하면 전국 방방곡곡 이름난 산을 쏘다니기도 한다. 혼자 쏘다닐 때도 많고 두셋과 같이 하는 날도 있으며 여럿이 함께 할 때도 있다. 

내가 얘기를 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린이 나의 이런 성향을 알고 봄에 등산 동아리를 조직할테니 같이 산에 가자고 하였다. 제안을 받은 것이 작년 가을이었나 겨울이었나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동의도 거절도 하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 홈피에 등산 동아리 참여자를 구한다는 글을 보긴 하였으나 댓글을 달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  왜일까, 언제부터인지 거의 대부분의 일에 적극성이 결여되어간다. 가자고 잡아 끌면 가는 거고  권유가 없으면 그냥 없어진다. 댓글을 달지 않은 것도 이런 무기력증과 무관치 않다. 이런 나의 상태를 알고나 있다는 듯 기린은 여러차례 나에게 직접 대면으로 날짜를 확인시켜주었고 전날 저녁까지도 톡으로 확인시켜줬다. 참 손 많이 가는 사람이야 투덜거렸겠지.^^

 

 

바이러스의 기승으로 일상이 무기력의 늪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월요일 아침, 늦지않게 파지로 향했다. 어제는 공기가 차고 바람이 심해 몸으로 부딪히는 한기가 겨울 같았다. 오늘도 꽃샘추위가 누그러 들지 않는다고 하여 방한복도 배낭에 하나 챙겨 넣었다. 혹시 몰라 같이 나눠 마실 수 있겠금 보온병에 끓는 물도 넉넉히 준비했고 사과와 쿠키도 챙겼다. 나혼자 산에 가면 가져가지 않는 것들이다. 그래도 오늘은 첫 날이니까. 이미 도착해 있는 기린과 함께 파지를 나서  자룡샘을 만나 입구에서 인증샷을 찍고  산길을 올랐다. 집에서 직접 올라온다는 문탁샘을 만남의 공원(?)에서 보기로 했다며 셋이서 오손도손 길을 걸었다. 얼마 안 가  접선장소로 올라가고 있는 문탁샘을 만나  오늘 가기로 한 회원 넷이 모두 모여 첫 산행을 시작했다. 3월 중순을 지나고 있는 산은 아직은 추워  꽃들은 피지 않았고 새순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겨울의 끝자락인 양 나무는 앙상했지만 그래도 시절은 봄을 향해 가고 있기에 코 끝에 스치는 바람은 찬 기운이 덜했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이른 아침의 청량함을 내뿜는 파란빛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파란 빛.  시작부터 이어지는 오르막을 기린은 참 씩씩하게  잘도 걷더라.  집과 문탁 사이를 아침마다 한 시간 넘게 걸어다닌다는 내공이 느껴지는 걸음걸이였다.  조금의 숨가쁨도 없이 사뿐사뿐^^ 

 

 

 

 

 

앞서거니 뒷서거니,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의 세태와 문탁의 상황과 갑갑한 심정과 견뎌야 하는 현실을 두서없이 이야기 하며 두시간을 걸어 바람의 언덕에 도착하였다. 근 10년 전, 이 길을 처음 걸을 때 기린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길에 숨이 가파 쓰러질 뻔 했는데 요즘은 너무나도 가뿐하게 걸을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하였다. 두 시간의 트래킹 후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들뜬 기분으로 전하는 그 기쁨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같이 즐거웠다. 배낭 묵직히 싸간 간식은 꺼냈다가 다시 가방으로 직행하였고  땀 흘린 몸으로 노닥거리고 쉬기에는 날이 아직 차가와 한기를 느끼기 전에 다시 온 길을 되짚었다. 

 

 

 

 

자룡샘이 이 길을 거쳐 청계산까지 근 일곱시간 넘게 산 탄 경험을 이야기했고 기린은 우리도 언제 한 번 해 보자며 의기 충만 했다. 꽃 피고 날 따듯한 봄이 오면 부석사에 사과꽃이 만개하니 소백산도 한 번 가보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여럿이 가려면 가까운 곳이 좋으니 남한산성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했다. 자룡샘은 산행을 하고 싶었는데 혼자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며 등산 동아리가 꾸려져 참 잘됐다 생각했다고 했다. 비닐봉지에 사람 수에 맞게 삶은 계란을 네 개 달랑달랑 들고 왔는데 별 인기를 끌지 못하여 그 달걀은  우리 집에 옮겨져 울 아들 간식이 되었다. (자룡님 땡큐^^)

영화 이야기, 좀비 이야기, 70 80 가요와 90년대 대중음악, 현 아이돌 노래와 요즘 트로트 가요제까지 각자의 취향과 관심은 가벼운 수다가 되어 빠르게 놀리는 발걸음에 개의치 않고 우리 사이를 떠다녔다. 

 

 

 

 

 

 

맑고 깨끗한 새소리가 들렸다. 제법 몸집이 있는 새 한마리. 우리 모두 새에 관해서는 무식이라 그냥 휘파람새로 하기로 한다. 그 울음소리가 정말 휘파람 소리 같았으니까. 산 길을 걷다보면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꽃 한송이의 이름을 알고 싶을 때가 많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 나무, 꽃, 풀, 새들은 나에게로 와서 좀 더 깊은 의미가 될 것이기에. (나의 무식이 한스럽다. ㅠㅠ)

등산 동아리의 원대한 계획과 구성원들의 프로페셔널한 걸음 속도(?ㅋㅋ)와 더없이 맑은 봄날의 상쾌한 공기 속에서  4시간의 첫 산행이  즐겁게 끝났다. 몸을 움직임은 언제나 정답이다. 

 

 

하산 후  문탁샘이 사 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우리 넷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담 주에는 좀 더 많은 반가운 얼굴들을 기대해 보며......

댓글 8
  • 2020-03-17 08:17

    내려오면서 말했습니다. "음...이름을 바꿔야겠어. 등산동아리 아니고 '광교산 산책동아리로'로 "
    왜 그랬을까요?
    우연과 자룡이 만나니,
    7시간 등산, 사과꽃 흩날릴때 영주 부석사, 철축 필 때 남한산성, 청계산 등반, 지리산 종주...등.... 음.... 끝도 없이 올해 등산동아리의 이벤트가 기획되고
    기린은 얼씨구나 맞장구를 치고
    저만 혼자, 저으기 "음...힘들텐데.."라며 중얼거렸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영하라는 일기예보에 살짝 걱정했는데 전혀 춥지 않았구요, 기온도 햇볕도 바람도 아주 적당했습니다. 면역력 백프로 증강입니다.^^

  • 2020-03-17 09:14

    아참, 그리고 이 새 이름이 뭔가요?
    알려주시는 분께 커피 한잔^^

  • 2020-03-17 10:16

    코로나는 밀폐된 공간에서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데,
    코로나는 면연력이 낮으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데
    코로나 예방에는 등산이네요
    저도 산 공기를 좋아해서 걷기를 좋아하는데요 ~ 선생님들 관절 조심하세요 꼭 스트레칭 하고 올라가시구용

  • 2020-03-17 18:56

    ㅎㅎㅎ 문탁샘이 ‘시작은 미미하나 끝도 창대하지 못했다’고 하셨지만, 기린샘은 백두산에 가는 원대한 목표를 ㅋㅋ
    가자 백두산!! 그 전에 매주 참석부터!!

  • 2020-03-17 22:27

    와~ 아쉽게 놓쳤네요.
    다음주부터 시간될때 저도 합류할게요!
    아침 8시반이죠? 기억해야지!

  • 2020-03-17 22:42

    흠...그런데...프로페셔널한 걸음속도..라니
    좀 고민되네요ㅠㅠ
    전 아마추어 속도인데...

    • 2020-03-19 15:36

      웬열~~~~저도 아마추어예요!! 꼭 오세요 제발~~~ ㅋ

  • 2020-03-18 08:15

    프로페셔널한 걸음속도는 빠른 속도가 아니라 자신에게 최적화된 속도를 말한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결과 직박구리는 아니고 어치가 맞는 듯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으로는 산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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