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야식 안 먹기 혹은 잘 먹기 1화

새털
2020-03-02 23:59
417

 

 

 

1~2월 동안 합정동에 있는 서교인문연구실의 강좌를 하나 수강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시작해서 9시 30분에 끝나는 수업이었는데

보통 10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래서 부리나케 지하철로 달려가도 10시 30분쯤이고

늦은 시간이라 지하철 배차시간도 길었다. 환승을 두 번 하고 집 근처 지하철역에

내리면 11시 30분쯤 됐고,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귀가하면 11시40분쯤이다!!

 

11시 40분은 어떤 시간일까? 무지 피곤한 시간대이기도 하지만

무지 허기지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근데 이때의 허기는 배가 고프다는 허기와는 다르다.

오히려 뭔가 더 해야 하는데 강제종료되어야 하는 허기 같은 것이다.

뭔소린가?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이때의 허기는

피곤한 하루를 보내느라 활성화된 뇌와 신체가 작동을 종료하지 못하고

'부르릉'거리는 느낌이다. 

 

이때 필요한 게 뭘까? 

TV를 켜고 예능을 보거나 재탕해주는 드라마를 보며 멍때리는 시간을 보내는 것과

떡볶이, 치킨, 피자 같은 야식으로 위를 채워서 졸음을 불러오거나

알코올로 뇌를 무디게 하는 일이다.

 

 

실제로 하루는 목요일 강의가 끝나고 집에 왔을 때, 배달이 가능한 야식이 거의 없어

억지로 온식구가 2만원부터 배달 가능한 떡볶이를 주문해서 먹었다. 

또는 합정에서부터 햄버거를 사들고 와서 눅눅해진 감자튀김을 먹기도 했다.

이 시간쯤 먹으면 뇌가 제정신이 아니라, 거의 다 맛있다!

그런데 다음날 속이 더부룩하고 얼굴도 붓고 아침이 유쾌하지 못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뱃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T.T

문제는 야식이 아니라 늦은 시간까지 스케줄이 이어지는 데 있다.

어쩔 수 없는 수업, 강의, 회의, 회식들을 쌈박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내가 그렇게 스케줄을 조절하는 인간이 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일단은 매월 야식리스트를 기록해보며 왜 그런 스케줄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런 야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

 

세 장의 사진은 1~2월 동안 내가 기억하는 맛있는 술자리의 모델이다.

첫번째 사진은 자룡과 함께 파지사유에서 낮술로 시작해 저녁을 먹고 헤어진 날이다.

낮술의 장점은 장기전으로 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이해가 쬐금은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 사진은 문탁 친구들과 비오는 날 서로의 안부를 물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얼굴 보고 사는 사이이지만, 안부를 묻고 확인하는 시간은 필요하다.

가까운 사람과의 애틋한 시간! 진짜 소중하다.

마지막 사진은 지난 주 금요일 감자수제비를 끓여서 혼자 소주를 마셨다.

금요일 저녁은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기분이라 몸과 마음이 늘어진다.

한 주를 잘 지냈다면 이때의 술맛은 '달다'. 

드라마 <이태원클라쓰>의 손현주의 대사처럼 '인상적인' 일주일을 보냈기 때문이다.

한 주의 스케줄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에 소주 한 병을 휘리릭 비웠다!!

 

나는 야식을 줄이고 싶지만, 맛있는 술자리를 줄이고 싶지는 않다.

아니 건성건성 마시는, 맛도 모르고 마시는 술자리는 피하고 싶다.

일단 재미가 없고, 뇌가 제정신이 아니라 다음날 기분이 안 좋다.

쓰고 보니 건성건성 대충 먹는 야식이 아니라 맛있는 술을 야무지게 마시는

미션이 된 것 같고, 그래서 뱃살을 줄일 수 있을지 의심스럽지만

내 방식의 '양생'을 시작해본다.

일기 쓰듯 3월의 야식과 음주를 기록하고, 매월 한 번씩 보고하겠음!!

 

 

 

 

 

 

 

댓글 6
  • 2020-03-03 08:48

    낮술은 대낮부터 뇌를 다운시켜 사람들 사이의 경계감을 풀어버린다.
    밤까지 공부하면 뇌가 활성화되어 잠이 오지 않는다. 야식의 포만감에 의지해 잠을 청한다.
    우째 다 뇌와 감정의 농간같기도 하고...
    술과 야식 사이 적절함 또는 적합함을 찾아가는 여정인건가요? 아니면 일상의 적합함인가? 그래 양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낮술과 야식을 하지만 일삼지는 않은 사람으로 내 적합함의 묘미는 이 두가지 사이에서는 찾을 수 없구나! 를 느꼈수.
    하지만 새털에게는 진정한 양생의 지점이네요~~

  • 2020-03-03 11:39

    금요일 저녁 혼자서 소주 한병을?
    아! 알게 된 이상 새털의 혼술을 모른 척 할 수 없을 것 같다.
    말리면 부작용이 생길 것 같으니.. 때로.. 같이 마셔야 하나?^^
    더불어 양생의 도를 찾는 수밖에...

    • 2020-03-03 13:29

      혼술의 맛이 있어요!!
      일이 잘 안 풀릴 때는 안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땐 나름의 호젓함이 있는데 설명이 어렵네요^^
      혼자든 여럿이든 술을 잘 먹는 도가 있어요~~

  • 2020-03-03 14:07

    어라... 양생은 모르겠고...뱃살 줄이기는 힘든 미션이겠어요.
    왜냐!
    세상에 맛 없는 요리는 있어도, 맛 없는 안주는 없는 법이라~ㅎㅎㅎ

  • 2020-03-03 15:18

    그럼 깡술로?
    무척 공감되고도 쏙쏙 읽히는 군요?

  • 2020-03-17 19:01

    ‘야식말고 낮술’로 정리해 봅니다..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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