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브 월경5회]'죄 많은 소녀'의 생리대를 다시 생각해보다

겸목
2021-07-14 19:55
217

 

죄 많은 소녀의 생리대를 다시 생각해보다

-『우리의 새빨간 비밀』(잭 파커, 시공사, 2019년)을 읽고

 

 

나는 우리 집 생리대 구매 담당이다. 지금은 큰딸이 직장 근처로 나가 살지만, 그 전까지 우리 집에서 생리를 하는 여자는 셋이었다. 세 여자가 쓰는 생리대의 양은 만만치 않아서, 나는 할인매장을 갈 때마다 사은품으로 낱개 생리대가 몇 개 붙어 있는 대형 포장 생리대를 사왔다. 나는 화장실 수납장에 생리대가 가득 해야 안심이 되었다. 무슨 안심일까? 내가 집에 없을 때 생리대가 떨어져, 딸들이 약국과 슈퍼로 사러 가는 일이 안 일어났으면 했다. 나는 딸들이 생리대를 사러 가는 일을 껄끄럽게 생각할 거라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내가 10대와 20대에 생리대를 살 때, 빨리 계산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을 딸들에게 치르게 하고 싶지 않아, ‘비밀요원’처럼 나 혼자 은밀히 처리하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생리에 대해 이런 ‘후진’ 감수성을 갖고 있었다.

 

『우리의 새빨간 비밀』은 ‘생리의 열정’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한 프랑스 페미니스트의 생리 안내서이다. 저자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생리 중에도 섹스를 해도 될까요?” 같은 질문에 성실히 답해온 사람답게, 이 책에서 생리에 대한 주제를 두루 섭렵하고 있다. 생리를 더 잘 겪어내는 방법에 대한 팁도 있고, 생리는 왜 금기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는가 하는 점을 ‘역사/문화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무좀, 설사, 변비까지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는데, 생리대 광고에는 ‘생리’가 빠진 채 흰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붉은 핏방울이 묻은 생리대가 나오는 광고가 온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식사시간에 방영되면 우리는 민망하거나 역겨울까?

 

2017년에 발표된 영화 <죄 많은 소녀>에서도 ‘생리대’는 스캔들이 됐다. 친구 경민의 죽음 이후 그 전날 같이 시간을 보낸 여고생 영희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는다. 영희가 경민의 죽음에 개입되어 있거나, 혹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형사, 담임, 반 친구 모두 의혹을 보낸다. 영희가 의심 받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생리통이 심해 보건실에 갔더니 보건교사는 “생리 맞아? 지난번에 와서 자고 간 지 아직 한 달이 안 된 것 같은데”라고 핀잔을 준다. 이때 영희는 휴지로 붉은 생리혈을 묻혀 확인시켜 준다. 이 장면을 볼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저렇게까지 해서 자신의 ‘결백’ 또는 ‘진실’을 증명해야 하는 영희가 안쓰럽다기보다는, 저렇게까지 하다니 당돌하고 모질다고 느껴졌다. 영화에서 생리혈은 한 번 더 등장한다. 자신을 추궁하는 형사와의 긴 면담이 끝난 후, 영희가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가는 장면에서 생리혈이 가득한 생리대가 그대로 카메라에 잡힌다. 발표 당시 신인감독 김의석과 신인배우 전여빈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고 여러 상을 수상했지만, ‘옥에 티’처럼 생리대 장면을 이해할 수 없다는 코멘트가 심심찮게 따라붙었다. 아마도 감독은 혐오스럽다고 치부될 수 있는 ‘영희의 진실’을 생리혈로 표현했던 것 같다. 친구가 죽었는데 자기변명만 하고 있는 혐오스러움과 친구의 죽음을 당당히 슬퍼할 수 없는 죄책감을 이중적으로 연출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생리혈에 대해 여러 해석을 해봤지만, 자극적이라는 느낌과 거부감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자극적인 것이지? 이게 35년 동안 거의 매달 피범벅인 생리대를 갈아 끼워온 내가 할 소리인가?

 

 

2015년 루피 카우르는 인스타그램에 여러 장의 사진을 올렸는데, 그중 하나가 유해하다는 이유로 삭제되었다. 원래 루피의 블로그에 있던 <생리>라는 제목의 사진에는 잠옷바지와 침대보에 생리혈이 묻은 채 그가 등을 보이고 누워 있는 모습이 찍혀 있다. 이 두 개의 붉은 얼룩은 검열의 단두대를 작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인스타그램의 이런 행동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고, 다수의 네티즌과 온라인 미디어로부터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이 사진은 이후 다시 게재됐고, 인스타그램 측은 사과했다). ( 『우리의 새빨간 비밀』, 257쪽)

 

 

물론 예술가 루피 카우르의 사건은 인스타그램의 사과로 끝났지만, 이 해프닝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나처럼 ‘구닥다리’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새빨간 비밀』에서는 ‘멘스트랄라’(Menstrala)라 불리는 생리 예술가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을 신화 속 영웅 페르세우스에 비유하고 있다. 메두사의 잘린 머리를 들어 대중들에게 보여준 페르세우스처럼, 생리 예술가들은 대중을 ‘돌로 만들어버리는’ 생리혈에 대해 면역력을 길러 더 이상 돌로 변하지 않고 예술 속의 메시지와 힘을 포착할 수 있게 하는 사람들이다. 피를 흠뻑 머금은 탐폰을 빼내는 여성의 모습을 클로즈업한 사진석판이나 피 묻은 생리대가 가득 찬 쓰레기통과 여성용 위생용품들로 꽉 찬 선반이 있는 욕실 풍경 등을 보여주는데, 이들의 메시지는 이 피들은 무섭거나 더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피야말로 누구의 ‘희생/고통/상처’가 없는, 유일하게 폭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초대받아 간 집 소파에 와인을 엎지르게 되었다면 당연히 ‘민폐’이다. 그러나 혐오와 수치스런 행위는 아니다. 얇은 속옷에 쉽게 배어나올 수 있는 생리혈에 대해서도 딱 그만큼만 ‘당황’하기로 하자. 우리 집 딸들도 이제는 제 손으로 생리대를 사서 쓴다. 괜히 내가 ‘오바’했다.

 

 

 

댓글 10
  • 2021-07-15 08:37

    마지막 사진은 루피 카우르가 인스타에 올려 유명해진 사진이다. 루피 카우르는 <밀크 앤 허니> <해와 그녀의 꽃들> 두 권의 시집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인도 출신의 캐나다 시인이며 화가이다.

  • 2021-07-15 08:39

    "이 피야말로 누구의 ‘희생/고통/상처’가 없는, 유일하게 폭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 이 문장이 새삼 와닿는 글이네요^^

    월경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때를 함께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 2021-07-15 15:28

      산부인과를 배울 때 제일 먼저 듣는 이야기가 환자가 아닌데 병원에 오는 유일한 진료과가 산과라고 배워요

  • 2021-07-15 09:07

    70년대 중후반 담배피는 여자는 공공장소에서 느닷없이 따귀를 맞았다

    선배는 그래서, <흡연여성 잔혹사>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못지 않은 "월경여성 잔혹사" 들!!

  • 2021-07-15 10:19

    수퍼에서 생리대를 살 때 꼭 검정비닐봉지에 넣어서 가져왔던 생각이 나네요. 일리치약국에 들여온 누르 생리대 포장엔 아예 생리혈을 상징하는 빨간 원이 그려져 있어요! 월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부터 시작하고 싶네요~~

  • 2021-07-15 15:25

    김일성이 살아 있었을 때 몇년에 한번씩 전쟁이 일어난다는 뉴스인지 찌라시인지 아무튼 비교적 공식적인 소식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비상식량인 라면과물과 같은 비중으로 아니 어쩌면 더 큰 비중으로 생리대를 비축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현대전은 국지전이면서 속전일 테니 며칠 굶 것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에 씻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생리대가 없다는 것은

    더 힘들 것 같았다.

    • 2021-07-15 16:27

      맞아요! 생리대 라면과 물과 동급인 생필품이에요. 그걸 생각하면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도 드네요!

  • 2021-07-16 09:43

    초경을 시작하자 어머니가 나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서답'을 내주었다.

    면으로 된 월경대를 우리 동네에서는 서답이라고 했는데 다른 지방에서는 개짐이라고 불렀다 한다.

    내가 집을 떠날 때까지 서답 빨래는 내 몫이 아니라  손녀딸을 애지중지한 할머니 몫이었다. 

    서답은 찬물에서 핏물을 빼고 비누칠을 해서 빨래를 한 뒤 삶아야했다.

    옥상 빨래줄에 서답이 휘날리는 게 그 때는 별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집이나 그랬을 것 같다.

    내가 고등학생이 된 뒤 학교에 갈때는 1회용 생리대 코텍스를 쓰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진해에서 마산으로 기차 통학을 했는데 벚꽃길로 유명한 경화역이 내가 기차를 타는 역이었다.

    언젠가 통학길에 기차에서 평소 자주 만나던 남자 선생님과 같은 좌석에 앉은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  크리넥스라는 말을 하려 했는데 입에서 코텍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집에 가서 수없이 이불킥을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걸 보니 그 부끄러움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나 보다.

    옥상에서 햇볕에 말려야 하는 서답빨래와 달리 월경, 생리대, 코텍스는 입밖으로 꺼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

    생각해 보면 크리넥스도 코텍스도 그당시 나를 문명의 세계로 이끈 도시적 신문물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었는데 말이다.^^

     

    • 2021-07-16 10:04

      저도 초경때 엄마가 천기저귀를 주셨는데 엄두가 안나 생리대로 바로 갈아탔죠. 근데 두 아이 키우며 기저귀 빨아보니 할 만했어요. 면기저귀가 빨아댈수록 부드러워지는 것도 좋고. 그땐 그걸 생리대와 연결짓지 못했어요. 그랬다면 제 생리생활도 조금은 쾌적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네요. 다시 천생리대로 돌아가기엔 힘들 거란 이 생각도 통념일까요?

  • 2021-07-16 17:27

    예수교 장로회 한 목사가 '여자는 기저귀를 차서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했다는데, 이 교파에서는 아직도 그런가?ㅎㅎ

    월경 금기의 역사는 곧 여성 혐오 잔혹사네요. 우리 안의 혐오도 만만찮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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