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브 월경2회]월경휴가코드를 만들다

루틴
2021-07-06 09:08
482

 

 

월경휴가코드를 만들다

-<월경의 정치학>(김이은실, 동녘, 2015년)을 읽고

 

 

한달 전쯤 처음으로 월경휴가를 써봤다. 회사생활 6년차가 되어서야 우연히 살펴본 회사규정에 떡하니, 월경휴가라는 것이 있었다.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쓰는 걸 보지 못한, 허울뿐인 규정이란다. 이 규정을 보자마자 쓰고 싶어졌다. 하지만 연속적인 업무가 이어지는 실험의 특성상, 예정된 휴가 아니고서는 약을 먹고 버틸 수 있는 종류의 통증으로 갑작스러운 휴가를 쓰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오랜만에 실험은 없고 컴퓨터 작업이 계획되어 있던 어느 날, 아침부터 몸이 무겁다. 월경이 시작된 것이다. 슬슬 통증이 온다. 위시리스트중에 있던 월경휴가를 써봤다.

 

   작년에 양생프로젝트에서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을 읽고 월경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던 참이었다. 월경기간 동안에 체력적으로 지쳐서 그때마다 나는 약을 먹고 버틴다. 아프기만 하고 생산적이지 않은 그 기간이 싫었다. 하지만 책에서는 월경기간은 몸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평소에 생산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던 나에게는 이러한 시선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내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다. 월경전 증후군이라 치부하며 진통제만 먹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는 몸의 신호를 알아채고 싶었다. 책을 읽은 이후로 월경을 하는 날은 무리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종종 과도하게 펼쳐지는 일이 있으면 월경리듬에 맞춰서 한텀 쉬어가는 계획을 짜곤 했다. 하지만 출근자체가 부담스러울 때도 종종 생겼다. 그런 날은 어쩔 수 없이 진통제를 왕창 먹고 출근을 감행하는데, 그날은 유달리 아픈 날은 아니었지만 월경휴가를 써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참에 실행에 옮겼다. 그날만큼은 무리해서 진통제를 먹지 않고 몸의 변화를 수시로 체크하면서 아프면 좀 누웠다가 일상을 보냈다를 반복하니 평소보다 진통제를 적게 먹고도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출근 후 월경휴가를 쓰겠다고 말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휴가신청을 하려면 휴가코드가 있어야 하는데 쓰려고 보니 코드가 없는 상태였다. 코드생성을 위해서는 높은 분들(주로, 남성)의 승인이 필요했다. 규정에 있으니 요구해도 별 문제는 없겠지만 왠지 모르게 꺼려지고 유난스러워 보였다. 이런 것도 회사복지를 위한 실적이라며 지지해준 무사샘의 조언에 힘입어 진행했다. 소장님도 나 때문에(덕분에) 새로운 휴가코드가 생성이 되었다며 말씀해주셔서 뿌듯하기도 했다. 근데, 나는 왜 월경휴가를 쓰겠다고 말하는걸 꺼려했을까?

 

   <월경의 정치학 >(박이은실, 동녘, 2015년)에서는 많은 경우, 문화인류학적이나 종교학적으로 월경을 터부시해왔다고 한다. 다양한 사회에 존재하는 월경 터부에 대한 이해는 여성에 대한 억압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왔다. 셔리 오트너의 논문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문화와 자연의 관계와 같은 것인가?>에서는 여성은 문화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이라고 여겨져서 정신보다는 몸에 더 가까운 존재로 간주되었다. 또한 월경통으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되었을 경우,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그리고 성규범화가 진행되면서 월경 같은 여성의 내밀한 생리작용은 감춰야 하는 것으로 교육받아왔다. 아마도 이러한 인식이 내가 월경휴가를 요구하려던 시점에 복합적으로 작동한 듯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꺼려했던 이유를 단지, 월경도 대소변처럼 단순한 생리현상인데 유난스럽게 나의 생리활동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행동은 사회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지식사회학적으로, 문화경제적으로 조정받았다는 근거들이 이 책에 설명되어있었다. 월경을 단순 생리현상으로만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어쩌면 남자와 동일해 보이고 싶고, 그래서 사회활동에서 배제되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명예 남성적’으로 살아왔던 나의 모습과 일치되는 맥락이었다. 미시권력에 의해 형성된 담론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생각과 신체를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푸코. 미시권력에 의해서 정해진 월경담론보다는 월경하는 내 몸과 함께 새로운 의미를 재구성해봐야겠다.

 

 

댓글 9
  • 2021-07-06 09:09

    오! 이런 실천 좋아요🥼~

  • 2021-07-06 09:14

    35년도 전에 월경휴가를 싸워서 얻어냈던 기억이 새롭네요 

    그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이런 현실이라니 ㅠ

  • 2021-07-06 09:53

    중학교 때인가?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말고 멘스라고 (은밀히) 부르라는 말을 '가정' 수업 시간에 들은 것 같아요.^^

    영어로 멘스라고 한다고 해서 월경이 월경이 아니고 생리가 생리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ㅎㅎ

     

    • 2021-07-06 10:40

      그러게 말이에요 ㅋ

      무슨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도 못하는 사회도 아닌데

      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멘스라거나 생리라거나... 이렇게 불러야 하니... 

      그러고보니...월경을 월경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사회만큼이나...음...후지군요. ㅋㅋ 

  • 2021-07-06 13:54

    길을 만든, 루틴을 응원합니다^^

  • 2021-07-06 16:22

    요즘 고등학교에선 생리결석이라고 해서 한 달에 하루를 쉴 수 있는데, 조퇴나 결석처리가 되지 않더라구요. 

    당연시 제출해야하는 서류도 없고... 담임선생님이 학부모에게 확인하는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더라구요.

    세상이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명예남성' 이라는 단어가 몹시 걸리는군여 ~ ㅋㅋㅋ

    • 2021-07-07 07:46

      오~그런것도 있나요?

      근데 저희 회사도 그렇고 월경휴가가 아니 생리휴가라 하던데, 책읽어보니 생리도 정식명칭이 아니더라구요. 

  • 2021-07-06 17:33

    오~~ 루틴^^ 님 좀 멋진데요^^

  • 2021-07-08 10:24

    월경휴가를 항목을 만들어가며 썼다는 건 사실 많이 용감한 행동이죠!

    루틴~~ 정말 멋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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