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 노래로 盈科而後進 마지막회

기린
2020-08-18 06:44
331

 1. 야심찬 시작

 

 올해 인문약방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 ‘양생프로젝트’였다. 양생을 주제로 푸코의 책을 읽고 사주명리를 공부하는 1년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구성원으로써 실제로 ‘양생(養生)’ 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을 택해서 육 개월 동안 실행해 보자는 제안이 채택되었다. 양생이 무엇인지는 자신이 택한 일을 실행하면서 파악해 보자는 의도였다. 동시에 제목을 별건가로 지은 것은 그것이 주는 무겁다는 막연한 인상이랄까 그런 것도 털어내 보자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육 개월이라는 시간을 노래 한 곡을 마스터하는데 할애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동안 반복을 통해 미세하지만 기존과는 다른 몸이 되는 것이 곧 양생이 아닐까 라는 어렴풋한 짐작이 있었고, 노래 부르기가 별건가라는 의미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었다. 시작할 때의 마음은 그랬다는 것이다.

이 계획을 세울 때부터 같이 할 사람을 물색했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혼자서 하게 되면 포기하기 십상이지만 단 두 명일지라도 같이 하게 되면 그로 인한 역동이 끝까지 가는데 의지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래 한 곡쯤은 가볍게 할 수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몇 사람에게 제안을 했더니 다들 부담스러워 했다. 결국은 봉옥샘이 같이 하겠다고 수락했는데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노래 연습을 해서 녹음파일로 만들어서 톡방에서 공유하기로 했다. 우리가 연습한 노래를 듣고 지도해 줄 트래이너까지 겸비하고 ‘야심차게’ 시작했다.

 

 2. 육 개월의 시간

 

 육 개월의 시간을 다 보내고 지난 금요일에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봉옥샘은 그 시간동안 노래를 숙제처럼 해야 했던 점이 아쉬웠다고 했다. 뿔옹 트레이너는 반복해서 끝까지 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나는 육 개월 동안 노래를 부르면서 겪었던 변화들을 두서없이 이야기 했다.

우선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술술 막힘없이 끝까지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봉옥샘이 연습했던 노래도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그럼으로써 작년 축제에서 노래를 엉망으로 부르면서 느꼈던 부끄러움은 어느 정도 흘려보냈다. 영과이후진(盈科而後進), 육 개월을 채우고 나니(盈科) 다시 노래를 부를 기회가 되면(進) 부끄럼 없이 이 노래를 불러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결과야 그 순간이 되어야 알겠지만 어쨌든 그 시간을 쌓은 만큼 가능성은 늘어났다.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봉옥샘은 그마저도 얼마안가 까먹을 것이라 훈수를 두었지만.

노래를 연습한 후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으며 새삼 알게 된 것도 있었다. 내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워낙 덩치가 있기도 했지만 굳이 그렇게 클 필요가 없는데도 목소리가 우렁찼다. 우렁찬 목소리가 필요한 때도 있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크기만 한 목소리는 좀 곤란했다. 안 그래도 내 목소리만 들린다는 말들이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성량껏 내지르면서 부르다보니 노래 한 곡을 다 부르기도 전에 기침이 터져 나왔다. 할 수없이 처음부터 다시 부르기를 몇 번이나 했었다. 그러면서 차츰 성량을 줄이기 위해 몸에 힘을 빼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몸에 힘을 빼게 되자 마음도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차분하게 부르는 내 노래 소리가 훨씬 듣기 좋았다. 잘 부르고 못 부르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때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면서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부를 수 있기까지 반복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이렇게 알게 된 것이 몸에 익숙해지는데도 또 시간이 걸린다. 타고난 성량을 강약에 맞춰 조절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몸은 곧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몸이기도 했다. 육 개월은 내 몸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고 그 상태를 바꾸는 또 다른 도전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든 시간이기도 했다.

 

 3. 양생은 별거다

 

 이 계획을 시작하면서 그 과정을 글로 쓰기로 했다. 그러다보니 노래 한 곡 부르면서 겪게 되는 일을 일일이 해석해야 했다.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그나마 배우고 있는 것을 가져다가 쓰다 보니 채 소화도 못 시키면서 억지로 구겨 넣기도 했다.

푸코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노래 한 곡 부르겠다는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이 규범화인지 양식화인지 따졌던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나 역시 봉옥샘처럼 숙제처럼 노래 부르기를 해치우는 시간도 있었다. 그럴 때 약속했으니 꼭 지켜야 한다는 규범 때문에 하기 싫으면서 억지로 하고 있지 않은가 자책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규범을 정한 사람이 나 자신이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규범으로 정한 이상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양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규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내용을 나의 규범으로 삼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래 한 곡을 부르는 게 뭐 별거이겠느냐는 짐작으로 시작한 일이 별거인 결과에 이르렀다. 추상적인 짐작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다. 반복하다보면 뭔가 변화가 있겠지 라고 짐작했는데 실제로 변화가 있었다. 타고난 기질이 발현되는 지점에서 변용을 시작하는 하나의 포인트는 찾았으니 거기서 출발하는 것, 그것이 타고난 생을 잘 기를 수 있는 양생의 한 방편이 될 수 있겠다. 반복은 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이다. 양생이 별건가 라고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 하다보면 별거인 지점을 찾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웬만하면 혼자보다는 함께 하는 것이 더 좋다. 나는 그랬다. 함께 일 때 별 거 아닌 것도 별거 이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단 한번 시작해 보자.

 

 

 

 

 

댓글 2
  • 2020-08-18 08:28

    몸에 힘을 빼라!! 이거 오디션때마다 멘토들이 하는 말이고, 기린의 노래를 들으며 나도 느꼈던 건데, 드뎌 그걸 기린도 느꼈구나!!! 뭐 내가 노래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할 형편은 못 되지만......

  • 2020-08-18 09:42

    며칠전 파지에서 기린샘의 노래를 일하다 들었는데 이전보다 잘한다는 느낌을 확 받았어요. 그냥 반복하면 나아진다 라는 것은 아닌거 같고 반복하며 뭔가를 깨달은 이유가 있었네요. ㅎ
    봉옥샘이 숙제같다고 말한 지점에 규범화와 양식화의 갈림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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