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이 별건가> 나의 양생은 - 일기와 걷기

동은
2020-03-24 09:55
102

 

“너 올해도 프로젝트 하나 하자.”

  작년 나는 아침에 매일 10시에 맞춰 길드다로 출근하는 프로젝트를 했다. 문탁쌤이 올해도 프로젝트를 하자고 하셨을 땐 작년 프로젝트랑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바로 “살 빼기”였다. ‘아...’ 언젠가는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일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해버리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알겠다고 호기롭게 말하긴 했지만... 생각이 많아졌다. '뭘 위해서 살을 빼는 거지?', '살을 빼는게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는 거지?'  10대 때부터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내 몸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몸을 불편해하는 사람은 나보다 다른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동안 나에게 살을 빼라는 사람들이 살을 빼라는 이유는 대부분 외모의 범위를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결국 얘기하는 방식은 항상 그랬다 ㅡㅡ! 애인이 생길거야~ 사람들이 널 보는게 달라질거야~)

  나에게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몸에 생긴 변화였다. 3년 전, 허리가 크게 아팠고 발목에 건선이 생겼다. 그제서야 나에게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단식이나 스트래칭같은 나름의 조절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만들었지만 이건 소극적인 대처였다. 뭔가 원인 자체를 들여다보거나 뿌리뽑아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언제나 그렇듯이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같이 가져다 붙이면 끝이 없는 이유들 때문이었다 ㅎㅎ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양생이 별건가>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 내 생각의 관점이 조금 바뀌었다. 나에게 '살 빼기'가 양생인가? (문탁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당연하다고 하실 것 같지만) 나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둥글레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막상 무언가 해야한다고 생각한 뒤에 해야하는 귀찮음이나 무기력, 시도해봤자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없지 않냐는 불안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내가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런 거 아닐까?! 이렇게 내 프로젝트는 "무기력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게 양생을 해보고 싶다"가 되었다. 

 

 

일기와 만보

어떻게 무기력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매일매일 무언가를 해내는 일로부터 나온다. 불안하지 않는 것은? 내 스스로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으면 된다. 나는 이 방법들을 일기와 걷기로 시작하기로 했다.

 

 일기는 이렇게 쓰고 있다. 먼저 간단히 오늘 하루 무엇을 먹었는지 쓴다. (점심/ 문탁밥. 저녁/ 길드다 애들이랑 메콩타이.) 그리고 하루를 돌이키면서 있었던 일과 함께 드는 생각을 적어본다. 길다면 길게 쓰지만 매일매일 쓰는 것은 힘들기에 짧게 쓰더라도 세 부분으로 써보는 큰 틀을 만들어보았다. (하루 중에 가장 힘들었던 일, 가장 기뻤던 일, 그리고 내일 해야하는 일. 이 일기법은 유투브를 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정선희 일기 방법이라고 한다.)

 

지금 내 일기장에 쓰여 있는 내용들 중에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들을 발췌해보았다. 

가장 힘들었던 일

“회의를 진행하는데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당황했다.”

“하루에 몇 시간 못자서 힘들다.”

가장 기뻤던 일

“우연히 알바 문제가 풀려서 다행이다.”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이 너무 재미있다.”

해야 하는 일

“글을 써야 한다.”

“서울에 있는 회의에 가야 한다.”

 

대충 이런 식이다 ^.^ 번잡한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해볼 수 있는 일기라는 뜻으로 <번중일기>라는 거창한 이름도 붙혔다.

 

 

일기를 쓰기로 한 이후로 가방이 더 무거워졌다. 

빨간색은 일정과 관련된 일기장이고 파란색은 식단과 하루를 마무리하는 <번중일기>다.

 

 

걷기는 이렇게 걷고 있다. 맨 처음에는 매일 한 시간 정도 따로 걷는 시간을 내고 싶었는데 만보라는 수치를 채워보자는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나 생각없이 한 말인가에 대해서 깨닫고 있는 중이다.)

며칠 걸으며 알게 되었는데 내가 만보를 채우려면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매일 걷는 코스를 만들기보다 일단 그 날 그 날 가고 싶은 곳, 마음 가는 곳에 간다. 이전에 살았던 곳에 가보기도 하고 수지체육공원에 가보기도 하고, 주변 놀이터 탐방을 가보기도 했다. 생각보다도 걷는 일이 가장 빠르게 나에게 변화를 주었다. 화장실도 자주 가게 되고, 물도 자주 마시게 되고, 저녁에 걷고 나면 바로 뻗어서 잘 수가 있었다.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변화들이 기뻤다.

 만보 걷기는 처음 일주일은 꼬박꼬박 시간을 냈는데 지켜졌는데 그 이후로는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드문 드문 며칠 걸러 걷는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이렇게 만보가 익숙해지면 만보 대신 등산을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영 내가 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는 건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는 과연 등산을 일정하게 갈 수 있을까? (아마도 다음 글에....!)

 

 

내려오는 길에 그만 길을 잃었다.

평소엔 자칭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정도로 길 찾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길을 잃은건 정말 오랜만이다.

산에는 생각보다 길이 많다. 

댓글 5
  • 2020-03-24 11:47

    “회의를 진행하는데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당황했다.”
    “하루에 몇 시간 못자서 힘들다.”

    이 두 문장에서 동은이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무기력 탈출을 응원해요~!

  • 2020-03-24 16:01

    ‘이렇게 만보가 익숙해지면 만보 대신 등산을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은^^ 이런 걸 '초심'이라고 한다. 이 초심으로 월요일에 등산하러 와서 기뻤다. 물론 만남의 광장을 코 앞에 두고 내려가버려서 안타까웠지만^^ 다음 주에도 이 초심으로 너를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KakaoTalk_20200324_153937121.jpg

  • 2020-03-25 13:46

    5분만 더 가면 본인이 마음먹은 곳(만남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을텐데,
    5분만 더 서둘렀으면 사진을 첨부하고 일을 하러 갈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날이 바뀐 오늘, 이 시간까지, 사진 첨부가 안 되어있군. 쩝)
    그 5분이, 동은이가 짊어지고 있는 세계의 무게구나.
    그 5분이, 동은이 수행의 알파요 오메가구나.....

    • 2020-03-25 15:52

      붏현듯 기억이 나서 ... 들어왔는데 이렇게... ....

  • 2020-03-25 17:50

    나는 무심히 방관하려 한다. 응원의 말과 삐딱한 조언도 모두 동은이에게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무심히 동은이의 6개월을 방관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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