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브 월경3회]나의 생리, 나의 몸

작은물방울
2021-07-07 22:26
497

 

 

나의 생리, 나의 몸

-<생리공감>(김보람, 행성B, 2018)을 읽고

 

 

생각보다 많은 남성이 생리를 오줌이나 똥처럼 참았다가 화장실에 가서 ‘버리는’ 것으로 안다. 어릴수록 더 심하다. 2016년 깔창 생리대 이슈가 터졌을 때 처음으로 무상 생리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댓글 중 상당수가 한 달에 7개에서 10개 정도밖에 사용 안 하는 생리대를 왜 국가가 지원해 줘야 하냐는 것이었다. 이 계산은 생리 주기에 생리대를 하루에 하나씩 쓴다고 생각했을 때 나온 값이다. 탐폰과 생리컵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 되면 기사에는 여성들 댓글보다 남성들 댓글이 더 많이 붙는다. 생리를 하는 여성들의 고단함에 공감하는 댓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탐폰이나 생리컵을 사용하면 질이 늘어난다든지, 그런 질에는 넣고 싶지 않다든지 하는 말이 대다수였다.(<생리공감>, 120쪽)

 

어릴 적에 나는 달리기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딱지치기도 엄청 잘했다. 와일드한 어린이는 골목대장이 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까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악바리였다. 그런 어린이에게 시련은 더욱 깊은 법. 가슴에 몽우리가 잡히고 엉덩이 근육이 발달하면서 누구보다 잘 뛰던 아이는 남자애와의 달리기에서 패배를 당한다. 억울함에 눈물이 나왔다. 그래도 지치지 않고 남자애들과 싸워댔고 한 번을 지지 않아 결국 학교 가는 길에 세 명의 남자애들에게 ‘나대지 마’라는 강력한 충고와 함께 발길질을 당했다. 그 후로 나는 여자 아이들만 다니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남자가 되고 싶었다. 가슴도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생리도 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브래지어는 숨이 막힐 듯 답답했고 가슴의 모양이 왜 여성의 중요한 과제인지 납득이 안됐다. 가정 시간이 되면 등짝 스매싱을 피하기 위해 두꺼운 도화지에 고무줄을 감아 등에 붙여 브래지어를 착용한 느낌을 연출하고는 친구들과 키득거렸다. 생리는 더더욱 싫었다. 중학교 내내 여자 선생님들은 우리들의 생리를 말하지 않았고 미개한 너희들만의 생리를 ‘더럽지 않게’ 처리하라는 훈계의 말만 매번 쏟아냈다. 그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가 된다는 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 이라고.

 

철이 들어 ‘여성의 사회화’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이후엔 ‘사랑받는 연인’의 환상에 빠져있었다. 주변에 남성들의 호감을 받는 친구를 살펴보면 나랑 다르게 웃었고 나랑 다르게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고백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돌아오는 답이 ‘넌 너무 터프해서 말이야....’라는 이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한마디로 싫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이유를 매우 깊이 탐구했다. 내가 남자애 같이 굴어서 싫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그 때부터 여성스럽다는 것을 내 몸에 장착해보려 애썼다. 여성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만큼 해야 할 것도 많았다.

 

인문학 공부를 하는 곳에서 인연이 닿아 대안학교에 있는 친구들과 책읽기 수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열일곱 살 친구들과 김보람 작가가 쓴 <생리공감>을 같이 읽었다. 책을 읽고 난 후 생리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읽고 난 후 무언가 남겨보자고 결의(?)했다. 초경을 시작하자마자 엄마가 자신이 사용하는 것이라며 탐폰을 권해줬다는 이야기를 꺼냈던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남자애들에게 생리대를 채워봐요. 그리고 거기에 약간 뜨거운 물을 뿌려요. 아!!! 거기에 따뜻한 굴도 넣어요~ 그리고 그 체험을 인터뷰하는 영상을 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라며 웃으며 말했다. 여자아이들은 깔깔 거리며 웃었고 남자아이들도 약간 어색하지만 웃고 있었다. 나만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당황했다. 나의 피를 사랑하고, 기꺼이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은 용감하고 씩씩하고 밝았지만 아직도 난 나의 ‘피’가 낯설었다. 생리라는 단어는 어색하지 않지만 구체적으로 몸에서 나오는 피는 말하기 어렵다. 더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기분 좋다고 할 수는 없는 애매한 그 무엇. 그것은 내 몸의 일부였지만 한 번도 내 것으로 받아들인 적 없는 몸이었다. 그 몸은 부정당하거나 대상화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며칠 전 친구가 혹시 생리컵을 써 볼 의향이 있냐고 물었다. 이상하게도 대답이 빨리나왔다. 해보고 싶다고. 삼십 여 년 동안 만났던 월경보다 이제는 5~6년 뒤에 일어날 폐경이 더 걱정되는 중년의 나이에 그런 대답이 나온 게 의아했다. 생리컵을 써보기 위해서는 나의 몸에 맞는 것(질에서부터 자궁 내벽의 깊이)을 알아야한다. 그리고 행운도 필요하단다. 나의 몸에 맞는 생리컵 고르기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건투를 빌어보고 싶다.

 

 

댓글 6
  • 2021-07-08 07:42

    전 이미 폐경이라.. 시도할 수 없지만 물방울님의 시도에 저도 건투를 비는 마음을 보탭니다~~~

  • 2021-07-08 08:47

    오...물방울님 글이 좋은디요^^

  • 2021-07-08 09:11

    어느덧 저두 중년…

    작은 물방울님의 도전을 응원해요!

     

  • 2021-07-08 09:40

    월경컵에 대한 이슈가 뜨겁네요^^
    역쉬 물방울은 핫한 녀자야!

  • 2021-07-08 10:19

    “여자가 된다는 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 이라고.”  무의식 중에 나도 이런 생각을 했던듯… 월경컵 써봅시다! 나도 거의 폐경인데…ㅋ

  • 2021-07-08 19:54

    갑자기 페미니즘 세미나 에세이를 읽는 느낌입니다. 뭔가가 오버랩이 되는듯...

    양생 2학기 세미나 같이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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